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정윤수의 힐링 healing 필링 feeling

나는 결코 철도원처럼 살 수 없으리라

삶의 우직함, 견고함에 대하여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나는 결코 철도원처럼 살 수 없으리라

3/4
나는 결코 철도원처럼 살 수 없으리라

폐선이 된 철로에 낡은 표지판이 서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춘포면에서 역으로 꺾어 들어오는 길에 보니, 주택가 담벼락에 춘포역 및 철도 문화와 관련된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한눈에도 제법 솜씨 있는 사람들이 일부러 엄선하고 간격과 위치와 크기를 고려해 세심하게 신경 써서 붙인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차를 세우고 사진 하나씩을 보고 또 보았다.

그렇게 역사 가까이 오니 두 사람이 역사 바로 앞의 담벼락을 정돈하고 있었다. 사전 예고도 없이, 약속도 없이 찾아온 길이었는데 운 좋게도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가꾸는 현장을 보게 된 것이다.

기억하고 남기는 것

“익산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일인데, 우리 같은 예술가에게 의뢰가 온 것이다. 익산시와 익산문화재단이 올해로 건립 100주년을 맞는 춘포역을 재조명하고 이를 역사적으로나 관광명소로나 활성화하자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그 일환으로 지역의 사진가, 조각가들이 힘을 합쳐서 역사 안팎을 새로 꾸미는 중이다.”

정강희(50) 전북조각회장의 말이다. 춘포역과 관련한 조형물을 설치하고 김재관 사진작가가 기증한 110여 점의 간이역 사진을 설치하는 중이다. 충남 천안의 자동차부품연구원에서 일하는 김재관(54) 씨는 10여 년 동안 흑백필름으로 간이역을 찍어왔다. 그중 116점을 익산문화재단에 기증한 것이다. 익산문화재단은 장차 춘포역을 전시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등 ‘근대문화유산 박물관 춘포’ 사업을 준비 중이다.



“이 작은 역사 안에서 각종 문화 공연이나 어린이를 위한 미술학교 등이 운영될 예정이다. 역사 안에 들어가보면 벌써 작은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일이 이 역을 중심으로 펼쳐질 예정”이라고 고성미(39) 작가는 말한다. 정강희 작가와 더불어 춘포역사 일대의 공공미술 작업을 하는 중이다. 쌀쌀한 날씨에 야외에서 작품과 접착제와 페인트를 가지고 작업을 하던 터라 미술가 특유의 작업복을 입고 있었는데, 잘 어울려 보였다.

정강희 작가는 역사 앞에 서서 좀 더 힘을 줘서 말했다.

“전남 곡성에 가면 기차만 가지고 관광이 가능할 정도로 해놓았다. 여기가 그만큼 될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외지의 관광객 유입만을 생각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춘포라는 작은 마을과 이 작은 역에 오랜 역사가 있었음을 기억하고 남기는 것부터가 중요하다. 수많은 사람이 이 역에서 큰 도시로 일하러도 가고 공부하러도 가고 그랬다. 그런 기억들을 최소한 망각되지는 않도록 하는 게 우리 일이다.”

우직하고 견고한 삶

전주와 군산을 직선으로 잇는다 해 ‘전군가도’라고 불리는 도로의 한복판이 춘포다. 28번 국도가 바로 전군가도다. 이 전군가도는 1908년 10월 완공된, 일제가 식량 수탈의 목적으로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아스팔트 포장을 한 직선의 도로다. 그야말로 최초의 신작로인 셈이다. 봄철에는 길고 긴 벚꽃길로 장관을 이룬다. 만경강을 중심으로 해 드넓은 곡창지대가 펼쳐지는 곳이어서 직선의 가도와 전주선 철도가 놓였으며 춘포역이 그러한 역사를 기억하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오래전에는 군산 앞바다에서 만경강을 따라 나루터가 들어와 시장이 형성되기도 했던 곳이다. 이 일대를 완전히 장악했던 일본인 호소카와가 이 곡창지대에 ‘대장촌 농장’이란 이름을 붙였고 일본의 야마모토현에서 많은 일본인이 이주해 일하던 역사도 아울러 기억해야 한다. 그 건축 유산들이 만경강 일대에 산재한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러 서둘러 담벼락으로 되돌아간 작가들을 뒤로하고 역사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춘포역은 슬레이트를 얹은 박공지붕(지붕면이 양쪽 방향으로 경사진 지붕)의 목조 구조로 우리나라 철도 역사의 건축 기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일제강점기의 작은 역들은 대개 춘포역을 전형으로 삼아 건립됐다. 익산 일대 최대의 곡창지가 다름 아닌 춘포였으니 춘포역사는 어떤 의미로든 보존하고 기억해야 하는 장소다.

덧없이 오후를 핥고 지나가는 겨울 해를 걱정하며 임피역으로 이동했다. 임피역도 2008년 5월부터 여객 운송 업무가 멈췄다. 기차체험 공간, 간이 테마공원, 잔디밭, 연못 그리고 기차 두 량이 설치돼 있지만, 인적이 끊긴 간이역은 쓸쓸하고 더구나 큰 개 네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역무실 안에 누군가 있었다. 나는 몇 마디라도 들어볼까 하다가 최근에 읽은 어떤 기사의 석연치 않은 내용 때문에 관두었다. 임피역에 코레일에서 선임한 명예역장이 있었다. 2009년 6월, 전국 31개 무인역에 대한 ‘명예역장 공모’ 때 선발돼 지금까지 무보수로 명예역장을 해온 사람이다. 그런데 군산시가 기간제 근로자 신분의 임피역 관리인으로 전 시의원을 따로 선임하면서 불편해진 것이다. 역사의 일부를 빌려 쓰는 군산 시에서 보낸 관리인과 비록 ‘명예직 신분’이나마 5년이 넘도록 역사 일대를 관리해온 33년 철도공무원 기장 출신의 명예역장이 불편하게 동거하는 일이 이 작은 임피역의 미묘한 문제다. 잠깐 들렀다 가는 외지인이 그러한 문제까지 탐문할 수는 없어서 나는 그저 좀 더 오래 역사에 머무르기만 했다. 큰 개 네 마리는 여전히 역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3/4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목록 닫기

나는 결코 철도원처럼 살 수 없으리라

댓글 창 닫기

2023/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