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호

“여자와 사귀는 ‘맛’ 한번 빠지면 못 헤어나요”

‘음지의 자유인’ 서울의 레즈비언들

  • 이승재 | 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4학년 권수현 |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3학년

    입력2014-08-20 16: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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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30대 레즈비언 급증 조짐
    • “남자와의 사랑? 시시해요”
    • 레즈비언 만남 주선 앱 활성화
    • 홍대앞 이태원 전용 술집에서 ‘번개’
    • 안정된 전문직끼리 선호
    “여자와 사귀는 ‘맛’ 한번 빠지면 못 헤어나요”

    레즈비언 커플의 사랑을 다룬 영화 ‘블루 이즈 더 워미스트 컬러(Blue is the warmest color)’의 한 장면.

    레즈비언(lesbian). 여성들 간에 연애가 성행했다는 고대 에게 해의 레스보스 섬에서 유래한 말로, 여성 동성애자를 뜻한다. 취재 결과, 최근 동성애 성향 여성들끼리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 전용 술집,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인터넷 카페들이 성행하면서 서울에서 레즈비언 수가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였다. 서울의 레즈비언을 위한 온라인 사이트와 오프라인 장소들을 전수조사해 그녀들의 생각과 사랑, 고민을 들어봤다.

    ‘레즈비언 전용’ 전수조사

    서울의 레즈비언들은 특정한 바(Bar·서양식 술집)나 클럽(Club·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곳)에서 자주 모인다. 주로 홍대 앞(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과 이태원(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인근)에 위치해 있었다. 특히 홍대 앞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었다. A, G, W, M, K, P 등 바가 여섯 곳이었고 L, P, 또다른 P 등 클럽이 세 곳이었다. 이태원엔 L, M 등 바 두 곳이 있었다. 이태원의 P 바는 게이(gay·남성동성애자)들과 레즈비언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는데 최근 들어 레즈비언들이 발길을 거의 끊었다고 한다. 한 가게 업주는 “레즈비언들은 게이들과 한자리에서 어울리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이태원에 레즈비언 단골집이 더 많을 것으로 여겨졌지만 실제론 달랐다. 이태원은 미군 중심으로 가게들이 운영되면서 게이 바가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어 게이 바를 따라 레즈비언 바도 조금씩 생겨나는 양상이었다.

    게이들과는 다소 다른 성향인 레즈비언들은 젊은 예술가들이 주로 모이는 홍대 앞의 개방적이고 세련된 문화에 더 친숙함을 느껴 이 지역을 자주 찾게 됐다고 한다. 이로 인해 홍대 앞에 레즈비언들을 위한 술집이 많이 자리 잡게 됐다는 것이다. 홍대 앞은 요즘 동성애자들을 위한 퀴어 축제가 자주 열리면서 동성애의 메카로 인식되고 있다.



    이태원과 홍대 앞을 드나드는 레즈비언의 연령대로도 구분된다. 이태원엔 주로 20대 후반~40대 레즈비언이 단골로 방문한다. 반면, 홍대 앞엔 10~20대의 어린 레즈비언이 주로 모인다.

    레즈비언이 자주 찾는 홍대 앞 업소는 대개 번화가에서 벗어난 조용한 골목에 위치해 있다. 상당수는 남자 손님을 아예 받지 않는다. 동성애 성향이 아닌 일반 여성 손님도 꺼리는 편이다. 이 때문에 전화로 업소 사장에게 업소 출입을 사전에 요청해 승낙을 받은 뒤 방문하는 방식으로 취재했다.

    홍대 앞의 레즈비언 단골집 중 레즈비언 사이에서 가장 유명세를 타는 P에 먼저 들렀다. 이곳은 실내 조명이 어둡고 손님의 신분을 철저하게 보호해준다. 널찍한 실내 중앙에 있는 오픈키친에서 특색 있는 음식과 술, 음료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곳에선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초등 여교사의 커밍아웃

    홍대 앞의 또 다른 업소는 내부의 벽이 유리로 돼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은은한 분위기였다. 5개의 테이블과 긴 바를 배치해놓고 있었다. 빨강과 검정으로 시크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군데군데 두고 있었다. 동생애자들의 상징인 무지개색 바람개비 소품이 눈에 띄었다. 업소 바깥 테라스엔 테이블 두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이 야외 테라스에서 이 업소 사장 A(41) 씨와 그의 손님인 B(34) 씨를 인터뷰했다. 두 사람은 레즈비언이다.

    ▼ 언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았나요.

    A씨_ 17세 때였죠. 처음엔 여자를 좋아하는 게 단순히 친구로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그러나 어느 날 한 여자를 향한 내 마음이 그냥 우정이 아니라 사랑임을 깨달았죠. 커다란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 주변에서도 알게 됐나요?

    A씨_ 네.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았죠. 학교에서 내 별명이 ‘내시’였어요. 너무 창피해 자살까지 시도했죠. 부모님이 알고 정신과 병원에 데리고 갔어요.

    ▼ 몰라서 묻는 말인데…동성애는 질병의 일종인가요.

    A씨_ 아니죠. 그러나 그땐 병으로 봤죠. 의사는 우울증과 이성공포증이라고 진단하면서 내게 약을 투여했습니다.

    B씨_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제가 특별하다는 점을 알았어요. 장애인을 돌보는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미국에 갔었어요. 전 세계에서 대학생들이 왔죠. 거기에서 나랑 친해진 사람이 모두 레즈비언이었어요. ‘아, 나도 레즈비언이구나’라는 사실을 그때 깨닫게 된 거죠. 곰곰이 되짚어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여자를 좋아해 왔던 거예요.

    ▼ 그 이전에 남자친구를 사귀진 않았나요.

    B씨_ 당시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때 이후 많은 게 달라졌어요. 한 폴란드인 친구가 건넨 동성애자용 안내책자에 이태원의 한 게이 바가 소개돼 있었어요. 귀국해 거기를 들렀다가 홍대 앞에 레즈비언 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 바를 찾아가면서 레즈비언의 사랑을 시작했어요.

    ▼ 그 후에도 남자를 사귀었나요.

    B씨_ 남자를 좋아해보려 했지만 더 이상 좋아지지가 않아 포기했어요.

    “길에서 마주쳐도 알아봐요”

    “여자와 사귀는 ‘맛’ 한번 빠지면 못 헤어나요”

    주말 서울 홍대 앞 거리.

    B씨에 따르면, 홍대 앞과 이태원의 레즈비언 바들은 서울의 레즈비언들이 새로운 레즈비언 친구들을 만나고 사귀는 ‘사랑방’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언론매체는 레즈비언 단골집들을 소개하지 않았다. 따라서 레즈비언들은 언론을 통해 레즈비언 바에 관한 정보를 얻지는 않으며 주로 비슷한 성향인 지인의 소개로 이들 바를 찾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엔 레즈비언 전용 인터넷 카페나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활발히 소통한다.

    ▼ 친구나 직장 동료에게 커밍아웃을 한 적은.

    B씨_ 얼마 전 직장 상사에게 커밍아웃을 했어요. 나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주변 선생님들에게는 이미 말했죠.

    ▼ 선생님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던가요.

    B씨_ “멋있다”고 하는 분도 있고 응원해주는 분도 있어요. 몇몇 보수적인 분은 탐탁지 않다는 반응이었지만 크게 거부감을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B씨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도 ‘쿨’ 한 반응을 보일까. 판단이 서지 않는다. B씨는 “부모님은 엄청 충격을 받았다. ‘마귀를 물리쳐야 한다’며 목사와 마주하게도 했다. 이후 가짜 남자친구를 주기적으로 집에 데려가 부모님을 안심시킨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서울의 레즈비언들은 어떻게 상대를 만나고, 어떻게 데이트하며, 얼마나 오랫동안 사귈까. A씨와 B씨에게 물었다.

    ▼ 지금 사귀는 여성이 있나요.

    A씨_ 현재는 없어요. 직장에 다닐 때 직장 동료 여성들이랑 몇 번 사귀었어요. 보통 4~5년 사귀게 돼요.

    ▼ 새로운 여성은 주로 어떻게 만납니까.

    A씨_ 요샌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발달해서요, 레즈비언 애플리케이션이나 카페를 통해 주로 만나요. 레즈비언끼리는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서로 알아볼 정도예요. 그게 또 우리만의 재미이기도 하죠.

    B씨_ 저는 지금 만나는 여성이 있어요. 온라인으로 알게 됐어요. 1년째 사귀고 있죠.

    ▼ 온라인에서 어떻게 만난 거죠.

    B씨_ 레즈비언 카페에 애인 구한다고 올렸는데 연락이 와서 만났어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잘 통하는 면도 있고 끌리는 면도 있었어요.

    ▼ 그전엔 어떻게 상대를 만났나요.

    B씨_ 학교에서 만났죠. 상대는 대개 이성애자(※ 남성에게만 성적으로 끌리는 여성이나 여성에게만 성적으로 끌리는 남성)였어요.

    ▼ 상대는 같은 학교 여교사?

    B씨_ 네.

    “제가 계속 대시하니까…”

    ▼ 남성에게만 성적으로 끌리는 보통의 여성이 어떻게 같은 여성인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건지.

    B씨_ 아, 정확히 말하면, 그분들은 원래 이성애자였는데 제가 계속 대시를 하니까 제게 끌리게 된 거죠. 그러니까 그분들은 저로 인해 이성애자에서 양성애자(※ 남성과 여성 모두에 성적으로 끌리는 여성이나 남성과 여성 모두에 성적으로 끌리는 남성)로 바뀐 거죠.

    ▼ 애인을 만나면 주로 어디에서 뭘 합니까.

    B씨_ 홍대 앞 거리를 걷죠. 신사동 가로수길에도 자주 가요. 때로는 자동차 데이트도 하고. 여느 연인들과 똑같아요.

    ▼ 데이트할 때 애정 표현은 어떻게…. 키스도 하나요.

    A씨_ 저는 애정 표현에 자유로운 편이에요. 그렇지만 데이트할 땐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뽀뽀 정도만 해요. 홍대 앞 거리엔 그런 모습을 봐도 신경 쓰거나 쳐다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런 쪽으로 많이 자유로운 분위기죠.

    B씨_ 저는 주로 집에서 데이트해요. 그냥 이성애자들과 똑같아요. 키스도 하고 포옹도 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면서 만나요.

    ▼ 남녀가 데이트를 할 땐 주로 남자가 데이트 비용을 더 많이 대는 편이죠. 레즈비언 커플의 경우 여성 역할을 하는 팸(famine)과 남성 역할을 하는 부치(butch)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어느 한쪽이 데이트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기도 하나요.

    A씨·B씨_ 반반씩(※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상당수 레즈비언 커플은 동거할 때도 각자의 수입과 재산을 따로 관리하며 생활비를 반반씩 부담한다고 한다).

    ▼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만나는 여성분과 주로 플라토닉 러브를 원하는지 아니면 육체적인 사랑을 원하는지….

    A씨_ 저는 육체적 사랑 쪽이죠. 세상에 가장 재미있는 게, 하나는 돈 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섹스 아닌가요? 저 역시 관계 맺는 것이 좋아요.

    B씨_ 결혼 상대로 여자와 사귄 여자는 반드시 피하라는 말이 있죠. 그 ‘맛’을 알면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해요. 레즈비언이 남자와 결혼해 파경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팸은 열이면 열 전부 이혼해요. 부치는 좀 덜하지만요. 팸은 부치에게서 늘 챙김만 받아오다 남자를 챙기려고 하니 힘든 거죠. 부치는 항상 상대방을 챙겨만 주다가 남자에게 챙김을 받으니 만족해하는 거고요. 상당수 레즈비언 커플은 팸과 부치가 정해져 있어요. 팸과 팸인 경우도 많고요. 그러나 부치와 부치인 경우는 거의 없죠.

    ▼ 결혼에 대한 생각은?

    A씨_ 하고 싶지 않아요.

    B씨_ 저도 여자와의 결혼은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A씨와 B씨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레즈비언들의 생각과 생활상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특히 여성과 사랑은 하되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 대답이 흥미를 끌었다. 우리 사회와의 불가피한 타협처럼 들리기도 했다. 여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려면 양가의 가족을 설득해야 하고, 직장에도 알려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동성결혼을 허용하지 않는 법적 난제에 부딪혀야 한다. 감내하기 벅찬 일일 수 있다.

    “아우팅이 싫어서…”

    1990년대엔 서울 서대문구 신촌 창천동 어린이공원에 레즈비언이 모였다. 그래서 이 일대는 ‘레즈 공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은 폐업한 최초의 레즈비언 클럽 레스보스도 1990년대 초 신촌에서 문을 열었다. 그러나 한 지상파 방송 시사 프로그램이 창천동 공원을 동성애자들의 탈선 온상으로 비판하면서 레즈비언들은 이 공원을 더 이상 찾지 않았다. 이제 레즈비언들은 홍대 앞을 터전으로 삼고 있다. 홍대 앞의 레즈비언 전용 클럽 L은 ‘금P토L’(금요일엔 P클럽, 토요일엔 L클럽)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레즈비언 사이에서 인기를 끈다. 물론 홍대 앞의 레즈비언 업소 사이에도 부침이 있다. 레즈비언 바 M은 올해 4월 문을 닫았다.

    주말 저녁 L클럽을 찾았다. 이곳은 건물 8층에 위치해 고개를 들어 올려봐야만 간판이 보인다. 홍대 앞을 자주 다니는 사람도 여기에 레즈비언 클럽이 있는지 잘 모르는 이유다. L은 3개 층으로 돼 있다. 테이블이 많아 클럽보다는 술집에 가까운 인상이다. 디제잉에 맞춰 많은 여성이 스테이지에서 춤을 췄다. 이들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어보니 서울 강남, 부산, 수원 등 다양했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름난 클럽인 듯했다. 지방에서 온 일부 여성은 KTX 첫차가 다닐 때까지 이 클럽에서 밤을 세웠다.

    홍대 앞의 레즈비언 바들은 소위 레즈비언들의 번개(즉석만남)에 단골로 이용된다. 레즈비언 김은혜(25·가명) 씨는 “일반 카페에서 번개를 하면 아우팅(※ 동성애자가 원치 않게 커밍아웃당하는 일)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므로 레즈비언 술집에서 모인다”고 귀띔했다.

    홍대 부근에서 레즈비언 단골 술집을 운영하는 C씨에 따르면, 서울의 레즈비언 세계에서도 계층이 나눠지고 있다. C씨는 “어느 순간부터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20대 레즈비언들만 홍대 앞 쪽 레즈비언 바에 온다. 사회적 지위가 어느 정도 있는 전문직 레즈비언끼리 따로 어울리는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이태원의 레즈비언 바를 찾는 레즈비언들을 만나기 위해 저녁 늦게 지하철 이태원역에서 내렸다. 이번엔 업소 사장과 사전 예약을 하지 않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5분쯤 걸어가니 주황색 가로등불 하나가 어둠을 밝히는 조그마한 언덕길이 나왔다. 단독주택들 사이에 노란색 벽돌로 지어진 가게가 나왔다.

    “여긴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방음설비가 된 문을 열자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복도가 나왔다. 복도 끝엔 앞의 문과 똑같은 방음문이 있었다. 그 문을 열자 내부가 드러났다. 파란색과 빨간색 네온사인이 어두운 실내를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천장에는 미러볼이 천천히 돌며 초록색 불빛을 사방으로 내뿜었다. 바텐더가 칵테일을 만들고 있었고 여성 손님 4명은 소파에 앉아서, 다른 여성 손님 3명은 바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남녀가 들어서자 일제히 우리를 쳐다봤다. 점원이 다가와 “무슨 용무로 오셨나요?”라고 물었다. 남자의 등장에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일부 손님들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점원은 이어 “게이이신가요?”라고 물었다. “아닌데요”라고 하자 “남자 손님은 여기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때 마침 이 업소 여사장 D씨가 들어왔다. 취재 의도를 설명하고 D씨를 설득한 끝에 그와 인터뷰를 하게 됐다. 그러다 바에서 술을 마시던 여성 손님 E, F, G씨도 대화에 동참했다. 이들의 자기소개에 따르면 D씨는 30대 레즈비언, E씨는 30대 직장인 레즈비언, F씨는 28세 직장인 양성애자, G씨는 27세 레즈비언이다.

    “여자와 사귀는 ‘맛’ 한번 빠지면 못 헤어나요”

    미국의 동성연애자 잡지 ‘애드버킷’의 표지. 교황의 얼굴에 동성 간 결혼을 금지한 캘리포니아 주 발의안 8호에 반대한다는 ‘NO H8’을 합성해 넣었다.

    D씨는 8개월 전 다른 레즈비언 바에 들렀다 지금 사귀는 여성을 만났다고 한다. E씨와 F씨는 연인 사이. G씨는 E씨와 F씨의 친구였다. D씨는 “레즈비언 바에 들러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E씨는 “아우팅 염려가 있어 주로 레즈비언 전용 바나 집에서만 애인을 만난다. 애정표현도 단둘만의 공간에서 하는 편”이라고 했다. G씨도 “나이 든 분들이 있는 자리에선 시선이 의식돼 여자와 손을 잡는 것도 꺼려진다”고 했다. 이들 네 명은 극소수의 가족이나 친구에게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혔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레즈비언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 같고 이로 인해 자신이 상처 입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레즈비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레즈비언으로서의 삶에 커다란 구속이 되고 있다고 했다.

    ▼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숨긴다고 자유를 얻는 것은 아닌 것 같네요.

    D 사장_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사람이 많아요. 이런 분위기가 바뀌면 좋겠어요. 유럽이나 호주에선 여성들 간 동성애를 관용적으로 봐주고 있어요. 제가 이 업소를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우리 사회의 분위기 때문입니다. 이 근처 레즈비언 바들 중 몇 군데가 종교단체와 동성애 혐오주의자들에게 공격받은 적이 있어요.

    F씨_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데 왜 성별이 같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공격의 대상이 돼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어요. 성의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특히 제 고민은 결혼에 대한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는 동성끼리의 결혼이 불법이죠(※ 2013년 12월 현재 동성 간 결혼을 합법화한 나라는 15개국이며 이 중 아시아 국가는 없다). 살다보면 상속 문제나 재산 문제가 분명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법적으로 동성끼리의 결혼이 인정되지 않아 쉽지 않아요.

    레즈비언 위치검색 서비스

    서울의 레즈비언들은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에 서울의 20~30대 레즈비언들이 즐겨 머무는 레즈비언 전용 인터넷 커뮤니티를 취재했다. ‘티지넷’과 ‘미유넷’이 대표적인 레즈비언 커뮤니티였으나 미유넷은 2013년 5월 문을 닫았다. 티지넷은 회원제로 운영하며 남성 및 일반 여성의 출입을 차단하기 위해 신분인증을 받게 한다. 아이핀 인증 후 티지넷 회원에 가입했다. 그러자 목소리를 인증하고 운영자에게 승인을 받으라는 새로운 요구가 전해졌다. 공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해 음성녹음을 했으나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다.

    반면 ‘티지넷 네이버 카페’는 복잡한 절차 없이 가입할 수 있었다. 10대 레즈비언 커뮤니티인 이 카페는 티지넷에 비해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였다. 정모/번개 게시판, 커밍아웃 게시판은 물론이고 카카오톡 아이디와 회원 셀카도 전체공개로 게시돼 있었다. 회원들도 레즈비언을 비난하는 게시물에 적극적 태도로 반박했다.

    레즈비언 전용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중엔 ‘브렌다’가 가장 활성화돼 있었다. 회원 가입을 하면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순서대로 주변의 레즈비언들을 검색할 수 있다. 우리는 브렌다에 가입해 프로필 사진과 나이만 설정해뒀는데 하루 만에 세 명의 레즈비언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중 두 명은 서울에 거주하는 레즈비언이었고 한 명은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 여성이었다. 그가 보낸 ‘니하오’라는 메시지는 자체 번역기를 통해 ‘안녕하세요’라고 변환돼 나타났다.

    이런 온라인 카페나 앱으로 만나 연인이 된 레즈비언 커플을 숱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수정(22·가명) 씨는 “이반커뮤니티에서 새 짝을 알게 돼 오프라인에서 만났다”고 말했다. 김민지(23·가명) 씨는 “카페의 정모(정기모임)는 친목도모 목적으로, 1대 1 만남은 사귀려는 목적으로 참여한다. 내가 원하는 여성 스타일과 이상형을 쓰면 관심 있는 사람이 댓글을 다는 식으로 1대 1 만남이 성사된다”고 말했다. 박지원(25·가명) 씨는 “스마트폰 앱에서 그녀의 뒷모습 사진을 보고 그 분위기에 반해 연락을 취했다. 마침 그녀는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어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고 했다.

    레즈비언들은 첫 만남 때 상대에게 자신의 이름과 함께 ‘성향’을 밝힌다. 여기서 성향은 ‘진보’ ‘보수’ 같은 것이 아니라 ‘부치’ ‘팸’ 같은 것을 의미한다. 최모(26·여) 씨는 “헤어스타일까지 남자 같은 레즈비언은 ‘티부(티나는 부치)’로, 두 역할이 모두 가능한 레즈비언은 ‘전천’으로, 딱히 성향이 없는 레즈비언은 ‘무 성향’으로 부른다”고 했다.

    띵, 티부, 전천…10대로 확산

    레즈비언 전용 인터넷 카페나 스마트폰 앱의 등장으로 10대 레즈비언들도 외견상 크게 늘고 있다. 그렇다보니 10대 레즈비언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은어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이들은 레즈비언을 ‘띵’이라고 칭한다. 이모(20·여) 씨는 “10대 레즈비언들은 거리에서 레즈비언으로 보이는 또래의 괜찮은 여성이 지나가면 ‘띵’이라고 슬쩍 말한다. 알아들으면 레즈비언이고 아니면 일반 여성이다”라고 전했다.

    서울의 1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레즈비언 유행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서울의 온·오프라인 레즈비언 전용 장소를 모두 살펴본 결과, 동성애 성향 여성들이 서로 손쉽게 의사소통하고 만날 물적 기반이 갖춰져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실제로 많은 여성이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동성애에 호기심을 가진 일반 여성도 별 망설임 없이 동성애로 이끌려갈 환경이 조성되고 있었다. 나이가 어린 여성일수록 동성애에 더 개방적이었다. 서울이 레즈비언 인구의 증가를 이미 경험한 미국·유럽·호주의 상황을 닮아갈지 모른다는 추정이 얼마든지 가능해 보인다. 이제 레즈비언 문제를 보다 진지하게 바라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미디어글쓰기’ 과목 수강생들이 취재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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