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호

미·중·일·유럽 사면초가 한국만 환율전쟁 희생양?

하반기 세계경제는 어디로?

  • 유재동 |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jarrett@donga.com

    입력2015-07-21 17: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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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중·일·유럽 사면초가 한국만 환율전쟁 희생양?
    지금 세계경제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짙은 안개에 싸여 있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 한국 경제의 흐름도 상당한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다. 상대적으로 내수(內需)가 견고하지 못한 우리 경제는 오래전부터 글로벌 경기 여건의 변화에 따라 출렁거림을 자주 반복해왔다.

    현재 글로벌 경제의 주된 리스크로 꼽히는 것들은 대부분 짧게는 약 10년, 길게는 수십 년간 세계경제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과 관련된 것이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수년간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해온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 어떤 시련도 이겨내온 ‘단일통화’ 유로존의 붕괴 우려, 두 자릿수 성장률이 당연해 보이던 중국 경제의 감속(減速), 세계 통화정책의 역사를 다시 쓰다시피 한 일본의 전무후무한 ‘돈 풀기’ 실험….

    만약 이런 리스크가 나쁜 형태로 현실화한다면 과연 글로벌 경제에 어떤 일들이 전개될지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또한 그만큼 두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소비와 투자 부진, 급속한 고령화 등 ‘내부의 적’들과 힘겹게 맞서 싸우는 한국엔 이런 대외 변수가 버겁게만 느껴진다. 글로벌 경제 리스크의 면면을 짚어보고 향후 전개방향을 예측해본다.

    ‘진통제’ 투여 중단 → ‘자본 이탈 쓰나미’?

    미국 연방준비제도라(Fed, 연준)는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직후 0~0.25%의 초저금리와 양적완화(QE, 중앙은행이 채권을 매입하는 형태로 시장에 돈을 푸는 것) 정책을 펴왔다. 양적완화는 지난해 종료됐다. 이제 금리 정상화(인상)만 남겨놓았다. 많은 전문가는 그 시점을 올 하반기로 예상한다.



    연준이 정책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미국 경제가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 정상 궤도에 올라섰음을 뜻한다.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최고 3%대를 바라본다. 실업률도 ‘완전고용’ 상태에 해당하는 5% 안팎으로 예상된다. 어떤 이유에서든 미국 경제가 잘 굴러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글로벌 경제나 한국 경제에 청신호다. 양적완화 정책을 입안한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도 최근 ‘동아일보’가 주최한 국제금융포럼에서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건 한국에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이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역사가 말해준다. 과거에도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신흥국 등으로 흩어져 있던 자금이 일순간에 미국으로 회귀하면서 경제력이 취약한 나라들이 줄줄이 휘청거렸다. 외국인 투자자의 급격한 자본 이탈을 감당하지 못하고 외환위기를 맞은 1994년의 멕시코,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인 경우다. 올해도 벌써부터 터키와 남아공, 인도네시아, 베네수엘라 등이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비록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지만 이런 신흥국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흔들리면 글로벌 경제에 위기감이 ‘전염’되면서 금융시장 불안이 확산될 여지가 있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막대한 가계부채가 마음에 걸린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시차를 두고 우리 기준금리와 시장금리에 반영된다. 6월 말 현재 국내 가계부채 총액이 1100조 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금리 인상으로 대출이자가 늘면 한계 가구 파산, 가계 가처분소득 감소로 인한 소비 침체가 우려된다. 정부는 이에 대비해 가계대출의 고정금리 비중을 높이고 있지만, 여전히 금리 상승 위험에 노출된 변동금리 대출이 전체의 70%를 차지한다.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자 등 취약계층의 부채가 많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미 연준이 연초부터 시장과 소통하면서 점진적인 통화정책을 쓰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점. 또한 설령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일부 신흥국 경제가 흔들린다 해도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로 외환 건전성을 높여온 한국은 금융 부문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전 세계 금융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고리로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고 대외개방도가 높은 한국이 그 중심에 있는 만큼, 금융시장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최선의 대비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중국 경제는 10% 안팎의 빠른 성장을 매우 당연한 일로 여겨왔다. 그러던 중국이 갑자기 속도를 줄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연간 성장률이 7.4%로 1990년 이후 2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세계경제를 떠받치는 거대 기관차 중국이 멈춰 서면 한국은 물론 각국 경제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리스가 무너지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커다란 충격이 닥쳐오리라는 점이다.

    세계경제의 ‘기관차’ → 세계경제의 ‘블랙홀’?

    미·중·일·유럽 사면초가 한국만 환율전쟁 희생양?
    ‘차이나 리스크’는 올해 더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다. 많은 전문가는 중국 정부가 목표로 내건 7%대 성장조차 어렵다고 전망한다. 올 1, 2분기에도 중국의 성장률은 7% 안팎에 그쳤다. 그나마 지난해 11월 이후 4차례나 거듭된 기준금리 인하 등 경기부양책에 힘입은 바 크다. 당국은 추락하는 경기를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애를 쓰지만 아무래도 힘에 부치는 분위기다. 중국은 최근 한국과 비슷하게 수출 부진에다 내수 침체가 겹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최근에는 실물경제의 부진이 금융시장의 불안감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증시가 널뛰기를 하면서 잦은 폭락세를 보이고 있다. 상하이 지수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150% 이상 급등하더니 6월 중순 이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급락 장세를 연출했다. 단순한 ‘조정’이라고 보기엔 낙폭이 너무 커서 드디어 중국의 거품 경제가 붕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심지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주곡이던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빗대 ‘중국판 서브프라임’이 터질 것이라는 경고음도 들린다. 중국이 금융위기 직후 경기부양책을 내놓는 과정에서 지방정부의 부채가 급격하게 늘어난 것도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다.

    ‘G2 경제대국’ 중국이 흔들리면 글로벌 경제 전체가 심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은 일본과 동남아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며 미국, 유럽 등과의 교역 규모도 상당하다. 남미, 중동 등 원자재 강국들도 ‘자원의 블랙홀’인 중국 수요가 줄면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중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독감에 걸린다. 올 상반기(1~6월) 기준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은 전체 대외 수출액의 25%를 넘었다. 하지만 수출액은 지난해 상반기 대비 2.1% 줄었다. 비중은 높은데 실적은 뒷걸음질치고 있으니 충격이 더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말 보고서에서 중국 성장률이 1% 하락하면 한국 성장률도 0.17% 낮아진다고 분석했다.

    대중 수출 부진은 일시적인 경기 요인 탓도 있지만 구조적인 문제로 발생한 측면도 크다. 중국 정부의 성장전략이 과거의 수출 중심에서 내수 중심으로 변하면서 수입 규모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중 두 나라 간의 기술 격차가 좁혀지면서 중국이 한국에서 예전처럼 부품이나 중간재를 수입할 필요성이 줄었다는 점도 수출 둔화 요인으로 작용한다.

    유로존 위기 → 글로벌 경제 반영구적 리스크?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로 다시 불거진 유로존 위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글로벌 경제의 단골 리스크였다. 그만큼 해결이 쉽지 않고 앞으로도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유로존의 문제는 경제력이 서로 다른 국가들을 하나의 단일 통화로 묶은 데서 출발했다. 일반적으로 산업 경쟁력이 약한 나라들은 환율 상승을 통해 수출을 늘리면서 위기 극복을 모색할 수 있다. 하지만 유로존에 편입된 그리스는 별도의 통화정책을 펼 수 없다보니 재정을 동원해 경기를 살릴 수밖에 없고, 결국 빚만 늘어나 지금의 위기를 키우게 된 것이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그리스와 다른 국가들이 유로존을 잇달아 탈퇴하고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지는 최악의 국면이 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채권단 협상과 추가 구제금융 과정에서 정치적 리스크와 불확실성이 확산될 것이고, 유로존의 체제 불안은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계속 표류하는 국면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유로존이 완전히 해체돼 새 출발하지 않는 한 글로벌 경제가 반(半)영구적인 골칫덩이를 계속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유로존 사태는 한국 경제에 금융과 실물 양면으로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금융 부문에서는 불안심리 확산 정도에 따라 외국인 자금의 이탈로 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 과거 남유럽 재정위기가 발생했을 때도 유럽계 은행들은 저마다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 등 신흥국에 투자한 돈을 대거 회수했다. 지금은 국내 금융회사들이 위기에 대비해 외환 부문의 방파제를 많이 쌓아둔 터라 4, 5년 전과 같은 큰 혼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유럽발 위기가 미국의 금리 인상이나 중국 금융 불안 등 기존의 악재와 맞물려 증폭될 경우 국내 시장도 투자심리 악화 등으로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다.

    실물 부문에서는 유로존의 불안이 유럽 전역의 경기침체를 고착화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한국의 대(對)유럽연합(EU) 수출은 전체 수출의 8~9%로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유럽에 대한 수출은 지금도 유로화 가치의 상대적 약세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로존의 불안은 이런 유로화의 추가 하락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 전문가들은 유로존 위기가 당장은 잠잠해지더라도 세계 경제 흐름과 각국의 재정 상황에 따라 만성적으로 다시 불거져 한국 경제를 괴롭힐 가능성도 크다고 보고 있다.

    일본의 ‘환율 도박’ → 이웃 나라 거지 만들기?

    역사적으로 엔화 가치의 향방은 한국 경제의 운명과 묘한 상관관계를 보여왔다. 한국은 엔저 현상이 두드러질수록 경제위기 국면에 빠져드는 경우가 잦았다.

    엔저가 장기간 큰 규모로 진행된 것은 1980년대 말(1차), 1990년대 중반(2차), 2000년대 중반(3차) 등 세 차례가 있었다. 1차 엔저는 단군 이래 최대의 경제 호황이라는 ‘3저(低) 호황’에 종지부를 찍었고, 2차 엔저는 수출 감소와 경상수지 적자 확대 등의 과정을 거쳐 1997년 외환위기의 빌미를 제공했다. 3차 엔저는 국내 금융권의 외환 건전성을 악화시키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의 충격을 키웠다. 모두가 금융과 실물 양면으로 한국에 깊은 내상(內傷)을 남겼다.

    2012년 아베노믹스 탄생을 계기로 시작된 4차 엔저는 그 스케일이 지난 3차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시장에 돈을 풀며 엔화 약세를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엔저가 길어야 3년을 넘기지 못한 데 비해 벌써 3년째 이어지는 이번 엔화 약세는 앞으로도 최소 2, 3년은 더 지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엔저의 가장 큰 폐해는 무엇보다 국내 기업들의 수출경쟁력 악화다. 한국과 일본의 수출경합도는 50%를 넘는다. 한국 기업의 수출품 절반이 해외 시장에서 일본산(産)과 경쟁한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일본 기업들이 엔저를 무기로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면서 부활의 날갯짓을 하는 동안 한국 기업들의 실적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이 대표적이다. 도요타와의 가격경쟁에서 밀린 현대차는 주가가 2012년 5월 기록한 정점(27만2500원)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처럼 수출 타격이 이어지는데도 원화 가치는 여전히 강세 기조다. 내수 침체로 수입이 더 큰 폭으로 줄면서 경상수지가 3년째 ‘불황형 흑자’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 한국 외환 당국이 엔저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원화의 상대적 가치는 엔화뿐 아니라 유로화 등 주요국 통화에 대해서도 뚜렷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글로벌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이 한국으로 유입돼 나타난 측면도 있지만, 주요국 중앙은행이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추기 위해 기준금리를 내리거나 양적완화에 나서는 환율전쟁을 벌이는 탓도 크다. 올해 상반기에만 약 30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내리거나 시중에 돈을 푸는 통화완화책을 발표했다.

    한국은행도 이에 대응해 올 들어 두 차례 기준금리를 내렸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엔화나 유로화 가치의 하락을 감내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이 각국의 경기부양 모드에서 소외돼 글로벌 환율전쟁의 ‘나 홀로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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