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호

모 아니면 도! 그게 내 ‘시원 스타일’

마약 같은 ‘닥공 골퍼’ 박성현

  • 엄상현 기자 | gangpen@donga.com

    입력2015-07-24 13:2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모 아니면 도! 그게 내 ‘시원 스타일’
    6월 7일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대회 마지막 라운드. 박성현(22·넵스)은 2위에 3타차 앞선 1위로 라운드를 시작했다. 큰 실수만 안 하면 1부 투어 데뷔 2년 만에 첫 승이 가능했다. 2위는 올 시즌 2승을 올리며 무섭게 기세를 올리던 이정민(23·BC카드).

    전반 9홀은 두 선수 모두 버디 2개와 보기 2개로, 박성현이 3타차 리드를 유지한 채 마쳤다. 우승의 희망이 아른거렸다. 그런데 후반 시작하자마자 샷이 흔들렸다. 이정민이 10번 홀에서 버디를 잡으며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게 부담이 됐을까. 박성현은 11번 홀 더블 보기로 두 타를 잃으면서 이정민에게 공동 1위를 내줬다.

    숨 막히는 랠리가 이어졌다. 12, 13, 14번 세 홀 연속 파에 이어 15번 홀 버디, 16번 홀 보기를 두 선수가 똑같이 이어갔다. 17번 홀도 둘 다 파로 끝냈다. 그리고 18번 마지막 파5홀. 박성현은 세 번 만에 홀 컵 1m 가까이 공을 붙였다. 버디 찬스! 넣으면 우승이었다. 웬만한 프로선수들은 어렵지 않게 넣을 수 있는 거리.

    수많은 갤러리가 숨죽인 가운데 박성현이 퍼팅을 하는 순간, 그들에게선 “아~!” 하는 아쉬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공은 무심하게도 홀 컵을 살짝 스쳐 지나갔다. 실망감이 너무 컸던 탓일까. 이어진 연장전 첫 홀에서 박성현은 더블 보기로 무너지면서 파로 마무리한 이정민에게 우승컵을 내주고 말았다.

    그로부터 정확히 2주 후인 6월 21일,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대회 마지막 라운드 우승 조에서 두 선수는 다시 만났다. 5타차 앞선 상태에서 시작한 박성현은 막판까지 추격의 끈을 놓지 않은 이정민을 2타차로 따돌리며 첫 우승을 차지했다. 2주전 연장 역전패의 아쉬움을 한 방에 털어버린 짜릿한 승리였다. 시즌 3승으로 최고의 기세를 올리던 이정민을 상대로 한 승리라 빛을 더했다.



    “퍼팅? 이제 좀 감이 와요”

    모 아니면 도! 그게 내 ‘시원 스타일’
    박성현은 이후 출전한 두 차례 경기에서도 12위, 18위를 기록하는 등 상위권을 유지하면서 일약 상금랭킹 4위에 올랐다. 이런 컨디션이면 시즌 2승도 충분히 노려볼 만하다. 중국에서 열린 금호타이어 여자오픈대회 이후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퍼팅과 숏게임 연습을 한다는 그를 서울 시내 한 골프센터에서 만났다.

    ▼ 요즘 컨디션은 어때요?

    “너무 피곤해요. 좀 쉬면서 체력을 보충하려 했는데,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히려 더 바쁜 것 같아요.”

    ▼ 올 시즌 초반에 두 차례 컷오프(탈락) 하는 등 난조를 보였는데.

    “퍼팅 문제가 가장 컸어요. 고민 많이 했죠. 대회 끝날 때마다 퍼팅 연습을 중점적으로 했는데, 다행히 감을 찾아가면서 성적이 점점 좋아진 것 같아요.”

    올 시즌 박성현의 퍼팅 성적은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6월 말 현재 평균 퍼팅 순위가 1부 투어 선수 150명 중 99위. 지난해엔 31위였다.

    ▼ 퍼팅이 잘 안되는 이유가 뭔가요.

    “지난해 시즌이 끝날 무렵부터 퍼팅이 잘 안됐어요. 어드레스를 할 때마다 그게 자꾸 생각나면서 안 들어갈 것 같더라고요. 심리적 압박이라고 해야 하나? 짧은 거리 퍼팅 때 그게(심리적 압박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지난번 롯데 칸타타 대회 마지막 퍼팅 때도 짧은 퍼팅을 놓쳐서 우승을 못했죠.”

    ▼ 해법은 찾았나요.

    “긴장을 푸는 게 쉽지 않아서 선배들에게 물어봤는데, 경기 중에 캐디랑 말을 많이 하는 게 중요하대요. 저는 긴장하면 할수록 오히려 말수가 줄고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그걸 고치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 캐디와의 호흡은.

    “마음도 편하고 잘 맞는 것 같아요. 어릴 적 연습할 때부터 잘 아는 오빠거든요. 제가 부탁해서 이번에 처음 같이 하게 됐는데 바로 우승했죠, 하하.”

    “성격도 교정 중”

    ▼ 스스로 어떤 성격이라고 생각합니까.

    “예민해요. 사소한 것 때문에 잠을 잘 못 잘 정도로. 골프 잘하는 선수들을 보면 말도 시원시원하게 하고 낯도 잘 안 가려요. 저는 사람 많은 곳에 있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하고, 낯도 꽤 가리는 편이에요. 골프를 칠 때 성격이 영향을 주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성격을 고쳐보려고 애쓰고 있어요. 전지훈련 가서는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같이 라운드도 하고. 그러다보니 성격도 좀 바뀌고 정신적으로도 성장한 것 같아요.”

    ▼ 어머니께서 산만한 성격 때문에 골프를 권했다고 하던데.

    “산만하기보다는 좀 활발하고 활동적이었죠. 그런데 너무 어릴 적(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골프를 시작해서 그런 건지, 성격이 변했어요. 점점 소극적이고 소심해졌어요. 말수도 줄고 낯도 가리고.”

    모 아니면 도! 그게 내 ‘시원 스타일’
    ▼ 그럼 어릴 때 성격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거군요.

    “그렇죠, 그때처럼 다시 활동적이고 활발해지려고 노력하는 거죠.”

    박성현의 골프 인생은 중학교 2학년 때 골프부가 있는 경북 구미 현일중학교로 전학하면서 전기를 맞았다. 그곳에서 만난 골프 스승이자 멘토 박성희 선생 덕분에 그의 기량은 일취월장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에 뽑혔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드라이버 입스(yips, 샷이나 퍼트를 할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몹시 불안해하는 증세) 때문에 1년 만에 태극마크를 반납해야 했다. 입스는 3년 가까이 그를 괴롭혔다. 그사이, 또 다른 악재가 겹쳤다. 고교 졸업을 앞두고 프로 무대에 입문하기 위해 테스트를 받으러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 드라이버 입스가 얼마나 심했나요.

    “한 라운드에 OB를 10개 정도 낸 적도 있어요. 상상할 수 없는 곳으로 공이 날아가니까. 비기너(beginner)가 쳐도 이보다는 잘 치겠다 싶을 정도였죠. 3년 동안 정말 힘들었어요.”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

    ▼ 골프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어요?

    “제가 가장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게, 입스 때문에 골프를 그만두는 거예요. 골프를 못하던 사람도 아니고, 잘하다가 잠시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 거잖아요. 마음먹으면 무조건 고칠 수 있다,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중간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 정신력이 무척 강한 것 같네요.

    “쉽게 시작하지도 않지만,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하는 성격이에요. 하기 싫은 일은 절대 안 하고, 하하.”

    ▼ 지난해 미국 전지훈련 때 드라이버샷을 혼자 교정했다던데.

    “지난 6년 동안 필리핀으로 전지훈련을 다녀왔는데 성적이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어요. 뭔가 변화를 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지난해 처음으로 연습 환경을 바꿔보려고 미국에 갔죠. 친구 집에 머물면서 혼자 연습했어요. 골프를 시작한 이후 골프에 대해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가장 많았던 것 같아요.”

    ▼ 어떻게 훈련했습니까.

    “드라이버샷이 잘 맞았던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스윙 동영상을 정말 많이 봤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먹으면서도 봤어요. 그때 그 느낌을 되찾으려고 했죠. 그러면서 제 스윙을 새로 촬영한 것과 비교해 봤죠. 두 달 계획을 잡고 갔는데 한 달이 지나도록 공이 제대로 안 맞아서 심적으로 정말 힘들었어요. 그냥 한국으로 돌아올까, 다시 필리핀으로 갈까 싶기도 했고요. 이런 순간도 이겨내야 할 것 같아 꾹 참고 매달렸죠. 그런데 어느 순간, 딱 감이 오더라고요. 예전 그때 그 느낌. 그때부터 샷이 조금씩 안정을 찾았죠.”

    ▼ 자신의 골프 스타일을 설명한다면,

    “시원한 스타일? 어릴 적부터 여자 골프는 잘 안 봤어요. 여자들이 치는 걸 보면 왠지 답답하더라고요. 그래서 남자 골프를 더 많이 봤고, 저도 골프를 시원하게 쳐야겠다고 생각했죠. 제 스윙을 보는 분들이 ‘시원하다’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린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그게 제 스타일이죠.”

    ▼ 공격적이라는 말을 많이 듣더군요.

    “저는 제가 공격적인지 몰랐어요. 다들 저처럼 치는 줄 알았죠. 그런데 이정민 언니랑 쳐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이정민 언니는 굉장히 안정적으로 치던데, 저는 그렇게까지 칠 필요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저는 점수를 한 번에 크게 잃는 경우가 많은데, 반대로 갑자기 몰아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은 고쳐야 할 게 아니라 보완해 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모 아니면 도! 그게 내 ‘시원 스타일’
    “3년 뒤쯤 LPGA 도전”

    ▼ 그러다보니 페어웨이 안착률이 124위인데….

    “티샷을 해서 공만 살면 된다고 생각해요. 러프든 어디든 다 쳐낼 자신이 있거든요. 페어웨이 안착률은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그래서 ‘마약 골프’ ‘청심환 골프’라는 말을 듣나 봅니다.

    “마음 졸이면서 보는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제 스타일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어요. 잘나가다가도 갑자기 안 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은데, 그게 제 스타일이고 그래서 (팬들이) 저를 좋아하는 것 아니겠어요, 하하.”

    박성현은 올해 초 한국외대 국제스포츠레저학부 2학년에 복학했다. 가능한 한 올해부터는 골프와 학업을 병행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매주 대회가 이어지다보니 골프와 학업,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한번 해보는 데까지 해볼 참이다. 한순간 반짝하고 사라지는 선수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박성현의 골프 인생 목표는 40세까지 투어 생활을 하는 것. 그리고 미래는 LPGA(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에서 펼쳐볼 생각이다.

    “우승하기 전까지는 마음이 조급했는데, 일단 우승하고 나니까 한결 여유로워진 것 같아요.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해요. 상황에 따라 그 시기가 빨라질 수도 늦어질 수도 있겠지만, 한 3년 뒤에는 미국 무대에 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Lady Green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