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호

150마일 마디마디 비극의 스펙트럼

분단의 영화들과 DMZ

  • 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입력2015-08-19 17: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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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17~24일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가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캠프 그리브스에서 열린다. 볼 수 있지만 볼 수 없는 곳, DMZ는 분단 70년을 맞는 우리의 인식과 냉엄한 현실의 괴리를 잘 보여준다.
    150마일 마디마디 비극의 스펙트럼
    분단 70년이라지만 우리는 여전히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한다. DMZ를 가는 길 자체가 그렇다. 어떻게 가야 할지도 막막하다. 민간인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분명한데, 어디서 어디까지가 허가된 것인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통일대교에서 도라산 전망대, 제3땅굴이 있는 DMZ 전시관까지는 어떻게 가는 것일까. 민통선 안, 캠프 그리브스까지는 또 어떻게 가야 하는 것일까.

    문산을 거쳐 임진강역 자유의 다리에서 흔히들 ‘공동경비구역’으로 불리는 판문점까지는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진서면, 군내면 일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판문점은 명실공히 DMZ 안에 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38선이라 불리는 군사분계선 지역을 정확하게 양분하는 것이다. 일반인은 특정한 허가를 득하지 않으면 거기까지 갈 수가 없다. 남방한계선 밑, 도라산역과 도라전망대, 제3땅굴 지역이 있는 DMZ 전시관까지만 관람이 허용된다. 물론 그것도 자유로운 것은 결코 아니다(지도 참조).

    이번 호 취재를 기획하면서 광복 70년, 분단 70년이라는 낱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다른 것은 그다지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분단 상황을 그린 영화는, 뒤져보면 부지기수다. 그런데 정작 분단의 상징이라는 휴전선은커녕 그 이남의 철책도 평소라면 결코 갈 수 없는 지역이다. 군사지역이기 때문이다. 볼 수 있지만 볼 수 없는 곳, 인지하고 있지만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는 곳이 바로 여기다. 그 현실과 인식의 괴리를 느낄 때에 비로소 분단 현실에 대한 진정한 경각(警覺)이 생긴다.

    세계 유일의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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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안을 그나마 망원경으로라도 기웃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덕이다. DMZ국제다큐영화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 경계의 코앞 현장에서 개막식을 하는 영화제다. DMZ 자체가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여기서 분단의 현장이란 군사분계선 남쪽과 철책(GOP) 바깥 사이, 그러니까 비무장지대라 불리는 DMZ(DeMilitarized Zone)를 말한다.



    올해로 7회를 맞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철책 바로 아래의 민통선(민간인통제구역) 내 캠프 그리브스에서 열린다. 캠프 그리브스(Camp Greaves)는 6·25전쟁 정전협정 후 50여 년간 미군 2사단 506보병대대가 주둔해오다 1997년 미군 철수 후 2007년 8월 한국 정부에 반환됐다. 이를 경기도와 파주시, 경기관광공사가 평화, 안보, 생태체험시설로 활용할 것을 군 당국에 제안했다가 2013년에 이르러서야 안보체험시설 지원협약이 체결된 후 DMZ 체험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캠프 그리브스는 가장 오래된 미군기지 중 한 곳이다. 그 때문에 미군의 현대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근대문화유산이기도 하다. 볼 만한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영화제 개막행사를 위해 사람들은 보통 임진강역에 모여 주최 측이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통일대교를 거쳐 마을로 들어간다. 이전에는 문산역에 모여 기차를 타고 가기도 했다.

    영화제는 해마다 세계의 다큐멘터리 작품 100여 편을 모아 상영하는데 아무래도 전쟁과 평화, 분단과 통합, 이념 혹은 탈(脫)이념의 얘기를 담은 작품이 상대적으로 많다. 분단 70년을 맞아 올해는 ‘분단70년 특별전’을 마련해 특히 눈길을 끈다. 특별전을 구성하는 11편의 작품(표 참조)들 면면은 분단된 지 ‘70년’이 됐다는, 물리적인 오랜 비극성과는 별개로 그야말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그려내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올해만큼은 특히 이 특별전 하나만으로도 영화제와 휴전선 인근을 찾을 가치를 지니게 됐다는 의미다.

    작품 중에는 ‘가미카제 특공대원의 증언’처럼 분단의 기원이 된 일본 군국주의의 실체에 접근하는, 지금 다시금 주목해야 하는 다큐멘터리에서부터 ‘안나, 평양에서 주체영화를 배우다!’처럼 한국 국민으로서는 좀처럼 가능하지 않은, 엉뚱발랄한 평양행을 실현해낸 유쾌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콘텐츠로 빼곡하게 차 있다. 아마, 이미 70년이나 흘러버려서 파편화하고 내면화한 분단을 일상으로 사는 지금, 이런 미시적 서사들이야말로 분단의 비극성을 궁극적으로 비추는 먼, 그러나 명징한 불빛이 돼보려는 기획일 것이다.

    2년 전, 영화제 개막식을 위해 민통선 안으로 들어갔다 온 국내외의 영화감독, 영화 관계자들은 평생 그 기억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겠는가. 어찌 그렇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세계 어느 곳에 이러한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는 나라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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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칙한 상상

    박찬욱 감독의 히트작 ‘공동경비구역 JSA’는 충남 서천 갈대밭과 경기도 양수리 종합세트장에서 그럴듯하게 찍었지만 영화 속의 공간은 바로 이곳 DMZ, 비무장지대다. 남북은 분단 수십 년 넘게 약속한 군사분계선으로부터 각각 2km 구간인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을 넘어 경쟁하듯 서로의 비무장지대 안에 GP를 구축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DMZ 안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경비하는 구역, 곧 판문점 인근 GP에서 근무하는 남북 병사들의 우정과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남측 병사 이병헌과 김태우는 북측 병사 송강호와 신하균이 있는 GP를 넘나들며 초코파이를 나눠 먹기도 하고 김광석 노래를 함께 듣기도 한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양측 병사들은 북한군 장교 김명수에게 발각되고 이를 무마하려는 과정에서 신하균은 장교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송강호와 이병헌은 그런 장교를 엉겁결에 살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남한 측 병사 이병헌은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 사건은 곧 남북 군사 간 최대 스캔들로 비화할 지경에 놓이고,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결국 중립국 감시위원회 소속 군인인 한국계 스위스인 이영애가 파견되기에 이른다.

    지금 생각해봐도, 아니 지금과 같은 남북 결빙의 시기에는 더욱더, ‘공동경비구역 JSA’는 발칙한 상상의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이희호 여사가 방북을 해도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코끝 한 번 안 보일 만큼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어 있는 지금으로서는 역설적으로 나올 수 없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이상한 것이고 영화는 때로 더더욱 이상한 존재다. 역사는 예측을 불허해서, 영화는 때때로 너무 앞서 생각하고 행동한 나머지 예언 같아서 이상하다. 시간이 흘러서야 그것의 의미나 가치를 되새기게 만든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펼치는 이야기와 공간의 설정은 진정 판타지에 불과했던 것일까. 박찬욱 감독이 꿈꾸던 남북 ‘공동의 구역’은 이제 도로(徒勞)의 환상으로만 머물게 된 것일까. 분단은 이대로 지속되기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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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에 대한 존중

    장훈 감독이 만든 ‘고지전’은 ‘공동경비구역 JSA’를 전쟁 액션으로 확장해 놓은 듯한 내용의 작품이다. ‘고지전’의 주인공들도 사실상 남북한을 넘나든다. 고지는 이쪽저쪽으로 소유권이 바뀌고 병사들은 암암리에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이쯤 되면 전투는 다른 차원으로 치환된다. 이념은 사라지고, 생존에 대한 존중만이 남게 된다. 적(敵)과 아(我)의 경계가 무너지고 역설의 배려가 교환된다.

    전투가 벌어진 곳,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은 38선 인근 중부전선의 애록고지다. 1951년 휴전협상이 진행되지만 모든 전투가 그렇듯이 바로 이 시기에 오히려 무의미한 죽음이 줄을 짓는다. 책상머리에서 협상을 진행하는 양측의 장성들은 보다 유리한 카드를 쥐기 위해, 한 뼘의 땅이라도 더 가져가기 위해, 그리하여 편의적으로 지도에 줄을 긋기 위해,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몬다. 애록고지의 사상자가 6·25전쟁사에서 기록을 세운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영화는 바로 그 잔혹한 과정을 들춰낸다. 죽음의 원혼이 떠도는 최전방 고지에는 이미 대의 같은 것은 내쳐진 지 오래다. 군사조직의 명령체계도 오래전에 무너졌다. 이들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때론 의도적으로 고지를 내주고, 또 마치 약속된 듯이 다시 차지한다. 이들에게는 이들만의 비밀이 켜켜이 쌓여간다. 그리고 결국 적을 죽이는 대신 아군 상관을 죽이는 일까지 발생한다.

    휴전선 인근에서, 저 멀리 북한 땅이 보이는 전망대에서 70년 전의 전투를 떠올리는 건 꽤나 질긴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때의 비극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철저하게 땅속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150마일, 255km의 이 긴긴 휴전선의 마디마디마다 분단의 아우성이 깊이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파내는 작업은 쉽지 않지만 또 그것은 언젠가, 끊임없이, 반복해서 꺼내져야 한다. 분단의 해소는 고통으로 시작된다는 것, 거기에는 ‘고지전’처럼 공포의 드라마와 진실의 실체가 숨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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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인가, 현실인가

    분단의 현장임에도 오히려 둘러볼 곳이 많다는 것은 왜곡된 분단의 현실이 만들어낸 착시일 수 있다. 이곳에 와서 즐거울 수 없을 테고, 되레 숙연해지는 것이 대개의 정서적 밑바탕일 테지만 도라산 전망대에서 발견하게 되는 고즈넉한 자연풍경은 그저 잘 짜인 관광 코스의 절정감을 맛보게 한다. DMZ 영화제 덕에 이곳까지 올 수 있는 행운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이 된다.

    사람들이 이곳을 아주 자유롭게 오가고, 그럼으로써 분단을 긍정적으로 일상화함으로써 결국은 분단을 해소하려는 욕망들을 키워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물며 여기가 과연 총성이 숨어 있는 곳인지 헷갈릴 정도다. ‘위장된 평화’라고들 하지만 70년이 이대로였다면 계속해서 이대로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환상을 품게 만든다.

    어릴 적 혹독한 반공 교육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저 산 너머에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다는 가설을 오랫동안 간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막상 눈앞의 저 북한 능선은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구석이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지금 지나간, 낡은 이념의 시대를 공연히 부둥켜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그 허망함을 느끼게 된다.

    지난해 언젠가 공개된 강제규 감독의 알려지지 않은 단편 ‘민우씨 오는 날’의 핵심적인 장면은 통일대교에서 찍혔다. 6·25전쟁이 터지기 하루 전날 남편 고수를 떠나보낸 문채원은 이제 나이 든 할머니 손숙으로 변했다. 그녀는 언젠가부터 자신의 얼굴을 젊을 적의 문채원으로 기억한다. 치매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찬합에 남편이 좋아하는 오곡밥과 반찬을 싸들고 나가면 언제든지 그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오래오래, 무려 70년 동안이나 잘생긴 남편 고수가 이제나저제나 돌아올까, 오늘이 지나면 혹은 내일이 지나면 한 번이라도 만나게 될까 학수고대하던 할머니 손숙은, 그러나 이제는 여기가 어딘지 모른다. 그녀는 무작정, 그리고 무조건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만 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군인들이 자꾸 앞을 막아선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낸다. 오늘은 입북이 취소됐다는 것이다. 그때 잠깐 손숙은 문채원이 아니라 손숙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절규한다. 지금 아니면 다시는 북한 땅에 있는 남편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이 늙은 여인은 절감한다. 그녀는 통일대교에 눈물을 뿌린다. 통일부 관계자로 보이는 남녀가 안타까워한다. 군인조차 안쓰러워 어쩔 줄을 몰라 한다.

    휴전선을 저 멀리 두고 마주하면 아직 많은 사람이 보지 못한, 그래서 아쉬운, 강제규 감독의 보기 드문 단편 ‘민우씨 오는 날’이 실제로 통일대교를 건너가, 그럼으로써 ‘오늘은 입북이 허용돼’ 평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관객이 모이는 가운데 상영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그곳 북한에서 많은 젊은이가 소리 죽여 눈물을 흘리고 그 숨죽인 울음들이 다시 통일대교를 건너 이 땅, 남한으로 건너왔으면 좋겠다. 영화가 분단을 분단시키고 남이나 북이나 같이 살아가는 세상으로 만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우리는 또 얼마나, 긴 세월을 또 기다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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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철마와 함께

    아마도 많은 감독이 분단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겠다며, 혹은 전쟁영화를 찍겠다며 어찌어찌 이곳을 방문했을 것이다. 감독들은 진심으로 느꼈을 것이다. 영화가 이 뼈아픈 현장의 아우성을 담는 것은 그 어떠한 노력으로도 불가하다는 것을. 자신의 상상이, 또 그것으로 써내려간 수십 줄의 시나리오가 자칫 역사 앞에 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돌아온 해병’을 기억해내고 ‘포화 속으로’의 처절함을 반추하며 ‘동막골’을 ‘웰컴’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곳을 스스로를 성찰하는 길로 찾아오게 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DMZ영화제 같은 세계 유일의 영화제가 그 개막식을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에게 개방하는 것이다. 영화 관계자들만이 특권으로서 그것을 향유케 하지 말아야 한다.

    개막작이 상영되는 통일촌에, 캠프 그리브스에 멋들어진 극장 하나가 들어서면 좋겠다. 그러면 휴전선 건너 북쪽 어딘가에도 비슷한 규모의 극장이 또 하나 들어서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제가 명실공히 남북 영화제가 되고, 사람들이 티켓 한 장만 끊으면 여기와 저기를 자유롭게 오가는 것이다.

    아 그것은 모두 꿈인가. 꿈에 불과한 것인가. 영화는 진정 ‘그곳’으로 가고 싶다. 철마와 함께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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