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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정치 권위자 조영남 서울대 교수

“현대판 시황제는 언론이 만든 허상… 시진핑 권력 장쩌민 후기보다 약해”

  • 이문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현대 중국정치 권위자 조영남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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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면서 권모술수의 달인”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3부작,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3부작,

개혁·개방기를 다룬 덩샤오핑 3부작은 대작입니다. 중국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들었고요. ‘개혁·개방의 총 설계사’ 덩샤오핑이 중국에 남긴 족적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시진핑(習近平)이 2017년 10월 19차 당대회에서 잘 정리했습니다. ‘마오쩌둥이 중국을 떨쳐 일어나게(站起來·잔치라이) 했고, 덩샤오핑이 부유하게(富起來·푸치라이) 이끌었고, 자신이 중국을 강하게(强起來·창치라이) 만들겠다’는 게 시진핑 발언의 골자입니다.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했다면 덩샤오핑은 나라를 잘살게 했습니다. 덩샤오핑의 최대 업적은 인민이 잘 먹고 잘사는 게 혁명의 원래 의지라는 점을 정확히 깨달아 그것을 실천했다는 점입니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충격 속에서 물꼬를 확 틀어버렸습니다. 사회주의 재해석을 말로만 한 게 아니라 정책으로 실천했습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덩샤오핑은 1989년 6·4 톈안먼 시위를 무력 진압해 사상자를 낸 비극의 책임자이기도 합니다. 

“덩샤오핑의 삶에서 최대 오점입니다. 동유럽 사회주의가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보수 원로들의 진압 요청도 있었습니다. 약간의 양보를 하면 군대를 동원하지 않아도 됐는데 국내외 조건이 맞물리면서 그렇게 하지 못한 것입니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초기 시장화, 개방된 중국을 설정하고 정책을 수립했을까요. 아니면 모색, 실험의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의 중국이 등장한 것일까요. 

“미래에 대한 비전은 명확했으나 구체적·계획적 방법론은 없었다가 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장경제 도입, 개방, 사적 소유 허용 등의 방향성은 확고했습니다. 1979년부터 덩샤오핑이 시장경제를 얘기합니다만 구체적 실현 방식은 정확하게 몰랐을 겁니다. 사회주의 국가의 점진적 시장화는 세계에서 누구도 해본 적 없는 실험이었습니다. 프랑스 유학 경험이 덩샤오핑의 결심에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사적 소유를 무시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뼈저리게 느꼈을 테고요. 



덩샤오핑의 리더십은 원칙을 분명하게 세우면서도 방법론에서는 융통성이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정책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방법론을 다양화합니다. 시행착오도 두려워하지 않고요. 특구, 농촌, 도시에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됩니다. 21개 조사단을 51개 국가에 파견해 시장경제를 학습한 것도 주목할만한 일입니다. 

덩샤오핑은 국제 정세의 흐름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능력, 파악한 정세를 바탕으로 내부를 설득하는 능력,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능력, 집요하게 싸워서 마침내 이기는 능력을 갖췄습니다. 이론가면서 전략가, 혁명가면서 권모술수의 달인입니다. 덩샤오핑의 진면목은 1989~1992년 사이에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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