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호

설채현의 ‘반려견 마음 읽기’

산책길 입마개 강제는 미친 짓!

보호자 교육이 먼저다

  • 입력2018-04-0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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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가 몸높이 40cm 이상 반려견의 경우 산책 시 반드시 입마개를 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산책줄 길이도 2m 이하로 제한한다는 방침이다. 과연 이 조치가 시행되면 개물림 사고가 사라지고 우리 사회가 좀 더 안전해질까. 내 의견은 ‘그럴 리 없다’이다.
    지난해 한 유명인의 개가 사람을 물고 그로 인해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뒤 후폭풍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 파급효과로 최근 ‘이상한’ 정책까지 발표됐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내놓은 ‘반려견 안전관리 대책’ 얘기다. 이 대책에는 체고(몸높이) 40cm 이상 반려견 산책 시 입마개 의무화, 모든 반려견 산책줄 길이 제한(최장 2m)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사실 반려견 입마개는 필자가 행동전문 수의사이자 트레이너로서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 가장 먼저 배운 트레이닝 방법 중 하나다. 입마개가 반려견에게 불편을 주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제품을 고르고 반려견을 잘 교육한 뒤 사용하면 학대라고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이 잘못된 이유는 뭘까. 

    첫째, 사람이 개한테 물리는 사고의 대부분은 반려견 산책 시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반려견이 산책 길에 있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 주로 발생한다. 이른바 ‘최시원 씨 사건’도 집 안에 있던 반려견이 잠시 현관문이 열린 사이 밖으로 뛰쳐나가 피해자를 물면서 발생했다. 도사견이 줄을 풀고 문밖으로 나가 행인을 공격한 사건, 시베리안 허스키가 어린이를 문 사건 등 최근 언론에 보도된 개 물림 사건도 유사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집 현관 앞에 안전 문만 하나 설치했어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을, 보호자의 관리 부주의로 인한 사고라는 점이다. 정부가 계획대로 반려견 입마개를 의무화한다 해도 우리가 걱정하는 많은 사건을 막기 어렵다.

    산책할 때만 입마개하면 OK?

    둘째, 반려견이 사람을 물지 그러지 않을지를 좌우하는 건 몸체 크기가 아니다. 반려견이 어릴 때 사회화 교육을 받았는지, 또 보호자가 기본적인 트레이닝 방법과 반려견의 특성에 대해 아는지가 오히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물론 반려견의 크기에 따라 피해자의 상해 정도가 달라질 수는 있다. 하지만 키 180cm 이상 남자한테 맞으면 더 아프다는 이유로 그런 사람 전체에 집 밖에 나갈 때는 수갑을 차라고 요구하는 건 비합리적이지 않은가.
     
    어떻게 개와 사람을 비교하느냐고 말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세상에는 개보다 위험한 것이 매우 많다. 해외 연구 결과를 보면 개는 사람은 물론 대부분의 운송수단보다 안전하다. 심지어 욕조, 유모차, 전기코드, 나무, 침대 등이 개보다 더 위험하다. 달리 말하면 이런 물건으로 인해 다칠 위험이 더 높다. 사람이 개에게 물려 죽을 확률은 1800만분의 1로, 평생 로또에 2.5번 당첨될 확률과 비슷하다. 우리 사회가 개에게만 유독 심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셋째, 개에게 입마개를 하려면 교육이 필요하다. 사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보호자가 입마개를 채울 때 개가 얌전히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집에서 보호자가 쉽게 입마개를 할 수 있는 개는, 대부분 산책 시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달리 말하면 산책 시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개들은 입마개를 씌우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정부는 입마개를 하라고만 할 뿐, 그 방법을 보호자에게 어떻게 교육할지에 대해서는 아무 대책도 없는 상태다.



    “짧은 산책줄이 사고 부추길 수도”

    나는 늘 반려견 보호자들에게 ‘개에게는 입이 손이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손으로 하는 대부분의 일을 개는 입으로 한다. 또 개는 입을 통해 몸의 열도 발산한다. 입마개는 이런 활동을 방해하므로 본질적으로 개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럼에도 입마개를 하게 하려면 보호자가 개를 덜 힘들게 하는 입마개를 선택하고, 개가 그것을 감수하도록 교육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과정 없이 정부가 입마개를 강요하면, 이어 발생할 문제는 뻔하다. 상당수 보호자가 입마개를 채우는 데 실패해 아예 반려견 산책을 포기할 것이다. 그러면 개는 가장 기본적 욕구 중 하나인 산책을 못 하게 됨으로써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 결과로 다른 문제 행동을 더 많이 일으킬 개연성이 높다. 길게 본다면 우리나라 반려견 문화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것이 반려견 산책줄 길이 2m 제한이다. 반려견과 산책할 때 줄을 사용하도록 의무화하는 조치에는 적극 찬성한다. 나는 보호자들께 ‘개와 다닐 때 절대 손을 놓지 마세요’라고 자주 이야기한다. 강아지의 뇌는 평균적으로 사람의 2.5~3세 수준이다. 우리는 다 자란 개가 말썽을 부리면 ‘넌 다 큰 애가 왜 그러냐’라고 말하곤 하는데, 사실 개는 다 커도 애다. 같이 다닐 때 꼭 손을 잡고 다녀야 한다. 산책줄은 개의 손과 같다. 반려견이 평소 얌전하다고 마음을 놓아도 안 된다.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리거나 고양이가 뛰어가면 돌변해 이성을 잃고 보호자가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내 반려견의 안전을 위해서도 야외에서는 반드시 산책줄을 해야 한다. 

    다만 산책줄 길이 제한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한다. 모든 동물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위험에 처했다고 느끼면 싸우거나 도망치는 것 둘 중 하나를 택한다. 이를 ‘Fight or Flight’라고 한다. 그런데 짧은 목줄은 Flight 즉 도망침을 어렵게 만든다. 예를 들어보자. 많은 보호자가 산책 중 길 건너편에서 다른 개가 걸어오면 ‘친구’를 만나게 해주려고 한다. 사회화가 돼 있지 않은 반려견들이 싫다는 표현을 계속해도 상당수 보호자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다른 개 쪽으로 자기 개를 이끈다. 그러다 보면 Fight or Flight 반응이 발생할 수 있는데, 산책줄에 묶여 Flight 할 수 없는 개는 자기방어 목적으로 Fight를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Flight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도록 3m이상의 산책줄을 사용하도록 추천한다. 단 줄이 길수록 보호자가 제어하기 어려운 게 문제긴 하다. 이 또한 교육이 필요한 부분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이번엔 유명인과 연관된 사고로 큰 이슈가 됐지만 사실 개물림 사고는 매우 다양한 유형으로 발생한다. 지금 당장 이슈만 덮으려는 미봉책보다는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반려견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육이다. 문제를 일으킨 개에 대한 교육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앞서 지적했듯 개는 다 자라도 인간 3세 수준의 ‘아이’다. 3세 아이가 문제를 일으키면 아이뿐 아니라 보호자도 교육해야 하지 않겠나. 어려운 트레이닝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게 아니다. 보호자가 강아지의 본능과 언어 행동 등만 이해해도 많은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확신한다. 미국에서는 학교에서 개에 대해 가르친다. 그래서인지 반려견 보호자의 펫티켓이 아주 좋은 편이고, 보통 사람들도 강아지가 주위를 지나다닐 때 만지려 하거나 두려워 피하려 하는 것 같은 과잉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독일의 일부 지역에서는 개를 키우려면 몇 가지 필수교육을 반드시 이수하도록 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는 반려견 진료비 등에 부가가치세를 내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다. 이명박 정부 시절 세원 확충을 위해 만든 제도다. 부가가치세를 내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이 돈을 유기견 보호 및 반려견 관련 사업에 투자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유기견 증가와 개물림 사고 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만만치 않다. 반려견 보호자에게 걷은 부가가치세를 보호자 교육 등에 투자한다면 입마개 의무화, 산책줄 길이 제한보다 훨씬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설채현
    ● 1985년생
    ● 건국대 수의대 졸업
    ● 미국 UC데이비스, 미네소타대 동물행동치료 연수
    ● 미국 KPA(Karen Pryor Academy) 공인 트레이너
    ● 現 ‘그녀의 동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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