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호

최저임금 인상 그 후

김진호 전 골드뱅크 사장의 ‘자영업 붕괴론’

“569만 자영업자는 현대판 소작농, 장사 잘돼도 임대료 때문에 망해”

  • 입력2018-07-2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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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건사회보다 잔인

    • 김영란법, 최저임금 ‘직격탄’

    • 빈곤층으로 속속 추락

    • 권리금 인정하고 건물주 권리 제한해야

    3월 상가임대료가 올라가면서 빈 점포가 늘어가고 있는 서울 강남 가로수길.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3월 상가임대료가 올라가면서 빈 점포가 늘어가고 있는 서울 강남 가로수길.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수는 569만 명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38개국 중 미국, 멕시코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취업자 가운데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21%)도 선진국(10% 내외)의 두 배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끔찍해”

    이런 자영업자들이 요즘 무너지고 있다. 영업이익은 떨어지고 빚은 늘고 있다. 숙박·음식점 서비스업의 생산지수(93.7)는 2005년 이후 가장 낮아졌고 이들의 1분기 말 대출 잔액(51조2589원)은 1년 전보다 4조4644억 원이 늘었다. 최저임금 급등으로도 직격탄을 맞는다. 많은 자영업자가 중산층에서 극빈층으로 속속 전락한다. 

    자영업자들은 노조를 갖고 있지 않고 단체행동도 하지 않는다. 이런 자영업자들을 거들떠도 안 보던 정치권에서도 “자영업자들이 다 죽게 생겼다. 근로소득자보다 자영업자를 보호하는 대책이 더 시급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2000년대 골드뱅크 신화로 알려진 김진호 전 골드뱅크 사장은 지금 여의도에서 음식점을 운영한다. 그래서 자영업자의 눈으로 자영업자의 사정을 본다고 한다. 그는 “569만 자영업자는 ‘현대판 소작농’이고 임대료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모 공중파 TV 프로그램인 ‘백종원의 골목식당’ 이야기부터 꺼냈다. 

    ‘하루 평균 2000명이 식당을 폐업하는 현실에서 자영업 식당들이 백종원의 치명적 독설을 극복하고 절대 망하지 않는 음식특화 거리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취지라는데요. 

    “백종원이 장사를 잘 못한다고 식당 주인들을 비판하는데, 그런 공개적 모욕이 끔찍해서 저는 못 보겠더라고요.” 



    그래도 그런 조언을 받아 고객이 늘었다는데…. 

    “공중파에 노출되는 효과 때문이죠. 이걸 광고비와 전단비로 환산해보세요. 이 프로그램의 문제점은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자영업자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점이죠. 자영업자들이 망해서 폐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임대료로 집약되는 구조에 있습니다.”

    자산 10억 중산층 ‘몰락 스토리’

    김 전 사장은 자산 10억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전형적 스토리를 이렇게 묘사한다. 

    “은행이나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중년의 나이에 명예퇴직합니다. 수중에 퇴직금과 위로금, 그간 저축한 돈을 합쳐 4억~5억 원이 있어요. 자녀 뒷바라지도 해야 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하니 일해야 하죠. 그러나 일자리는 별로 없어요. 결국 목돈을 들여 서울 부도심에 대형 식당을 냅니다. 처음 6개월간 적자를 내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엔 단골손님도 찾고 장사가 잘돼요. 장밋빛 노후를 설계하죠. 

    그러나 2년마다 건물주와 계약을 갱신하는데, 건물주가 ‘장사가 잘되니 임대료를 올려달라’고 합니다. 대개 많이 인상해달라고 하죠. 투자한 게 있으니 그렇게 따라가죠. 임대료에서 월세가 오르니 보증금도 오릅니다. 목돈이 들죠. 그러던 어느 날 청탁금지법(김영란법), 미투운동, 촛불시위, 사드 배치, 구제역 파동 같은 것이 닥칩니다. 손님이 뚝 끊겨요. 매달 1000만 원이 넘는 임차료에 종업원 월급도 줘야 하고 음식 재료 구입으로도 만만치 않게 돈이 나가죠. 요즘 식당 종업원들이 월급 하루만 늦어도 안 나오고 노동청으로 달려가죠. 주인은 수중에 돈이 없고 은행은 대출을 안 해줍니다. 결국 일수를 씁니다. 건물주는 ‘장사가 되든 안 되든 오른 임대료는 그대로 내라’고 하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요리사가 갑자기 안 나오는 돌발 변수가 생기죠. 부가가치세 납부하라는 독촉장도 날아옵니다. 지옥문이 열리고, 결국 견디다 견디다 가게를 내놓습니다. 권리금, 인테리어 비용도 제대로 못 건지고요. 

    이어 더 작은 음식점을 냅니다. 배달 나가는 종업원 인건비라도 아끼려고 직접 배달에 나서기도 하고 밤늦게까지 정말 열심히 일해요. 그러나 건물주와의 불평등 구조와 외생적 리스크는 어김없이 반복되죠. 이런 사이클로 두어 번 폐업하면 자산 10억 가정도 빈곤층으로 주저앉게 되죠.”

    “회식 자제령”

    손님이 붐비는 식당도 문을 닫는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 건가요? 

    “IMF 구제금융 때는 정부와 정치권이 ‘소비를 줄이면 안 된다’면서 자영업자들을 걱정해주는 말이라도 했어요. 요즘엔 이런 메시지도 내지 않아요. 3만 원 이상 접대를 금지한 김영란법을 만들었고 자영업자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킨 최저임금 급격 인상을 단행했죠. 이런 정책으로 자영업이 직격탄을 맞는 부분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특정한 정책이나 사회적 현상으로 인해 손님이 급감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일시적 유동성 문제로도 많은 자영업자가 큰 타격을 받거든요.” 

    구체적으로 김영란법 이후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3만 원 이상 접대 금지로 매상이 줄었죠. 결제 방식 변화로 자영업 생태계가 뒤틀렸고요. 이전에 음식점들은 주류업체에 3개월에 한 번씩, 육류공급업체엔 6개월에 한 번씩, 후불로 결제했어요. 김영란법 시행 후 여의도 고기식당 중 10%가 문을 닫았어요. 이 중 일부가 부도를 냈겠죠. 그러니 주류업체와 육류 공급업체가 음식점에 현금 결제 방식을 요구한 겁니다. 큰 식당은 여신을 3억 원 정도 두고 있는 것을 당장 갚아야 할 상황이 됐죠. 1·2 금융권에서 대출받기 어렵고 식당 인테리어로 5억 원이 넘게 들어갔지만 담보로 인정받지 못해요. 결국 1억 원을 빌려서 100일 안에 1억2000만 원을 갚는 식으로 사채를 씁니다. 손님이 다시 늘기 시작해도, 결국 유동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문을 닫기도 하죠.” 

    정부나 정치권을 원망하는 마음도 가질 법하겠네요. 


    “문재인 대통령이 그래도 서민을 걱정해주는 말을 자주 하니, 자영업자들이 지난해 대선과 6월 지방선거 때 1번을 찍었을 거예요. 박근혜 정부 땐 불과 3일 전에 임시공휴일을 결정해 발표했어요. 여의도 특성상 공휴일엔 손님이 별로 없으니 준비한 고기 재료 중 상당량이 무용지물이 됐단 말이죠. 평일과 휴일 매출이 10배 넘게 차이 나거든요.”

    ‘농노’와 ‘지주’

    중소 자영업자들은 “정말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한다”고 말한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중소 자영업자들은 “정말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한다”고 말한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지금 외식산업 매상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화이트칼라 직장인이 많은 서울 여의도에선 미투운동이 큰 위력을 떨칩니다. 상당수 직장인이 아예 저녁 회식을 안 하려 하죠. 한 대형 금융회사 대표도 얼마 전 ‘회식 자제령’을 내렸어요. 증권사 직원들은 주가가 오르면 기분이 좋아서 모이고 내리면 내리는 대로 모이는데, 이들의 발길도 줄었죠. 미투운동이 필요하지만, 자영업자들을 걱정하는 말 한 마디를 해주거나 방법을 찾아주는 것이 정치라고 봐요.” 

    김 전 사장은 자영업자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자영업자와 건물주의 관계에서 찾는다. 그는 이 관계를 ‘농노’와 ‘지주’에 비유한다. 

    자극적인 말 같네요. 


    “과장된 말이 아닙니다. 대체로 자영업자들이 건물주에게 내는 임차료는 매출의 25~30%에 달하죠. 봉건시대 소작농이 내던 지대와 별 차이가 없어요. 나아가, 그땐 흉년이 들면 지주가 지대를 깎아주기라도 했지만, 지금은 손님이 줄어도 건물주는 임대기간에 임대료를 깎아주지 않죠.” 

    사정이 더 못하다? 

    “더 잔인해졌죠. 월세 임차인이 장사를 잘해 이익을 내면 그 건물 가치가 올라가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건물 가치가 오르니 건물주는 임대 기간이 만료된 뒤 임대료를 올려요. 손님이 끊기면 그건 자영업자가 고스란히 떠안고요. 자영업자가 일군 부가가치가 건물주에게 쏠리는 구조죠. 공정하다고 할 수 없어요.”

    ‘갑질 도구’ 된 화해조서

    ‘자영업자가 하루 12시간 일하고 손님도 그럭저럭 오는데 돈이 어디로 갔는지 없는 이유가 임대료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김 전 사장은 족발가게 사건을 환기시킨다. 2016년 건물을 인수한 이모 씨가 월 297만 원인 임대료를 1200만 원으로 4배 올려달라고 하자 족발가게를 운영하는 임차인 김모 씨가 거부했다. 이씨가 소송에서 승소해 족발가게에 대한 인도 가처분신청 집행이 시도됐지만 김씨와 시민단체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 등이 반발했다. 6월 4일 집행이 완료됐고, 3일 뒤 김씨는 망치로 이씨의 머리와 어깨를 때려 살인미수혐의로 구속됐다. 

    김 전 사장은 “둔기로 사람을 때린 일은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건물주 마음대로 임대료를 4배나 올리는 게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사가 안되면 망하고, 장사가 잘돼도 임대료 상승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지죠. 세계적인 햄버거 프랜차이즈도 서울 도심의 임대료 상승을 견디지 못해요.” 

    자영업자를 위한 임대차보호법이 있는데요. 

    “임대차보호가 잘되고 있으면 자영업자들이 이렇게 망해나가지 않죠. 예를 들어, 법률가들이 ‘제소 전 화해조서’라는, 임대차보호법을 무력화하는 방법을 찾아냈어요.” 

    임차인과 건물주의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취지로 알려져 있는데, 변질됐다? 

    “갑질 도구가 됐죠. 임차인과 건물주는 예상되는 갈등을 해결할 원칙을 미리 정해놓자는 차원에서 화해조서를 씁니다. 이 조서에 ‘언제까지 원상 복구해 인도한다’ ‘권리금을 인정하지 않는다’ 같은 건물주에게 유리한 내용이 들어가죠. 대개 건물주는 화해조서 서명을 (재)계약 조건으로 걸어 임차인이 동의하도록 만들죠. 그러면 이 화해조서는 민법220조에 의해 법률과 같은 효력을 냅니다.”

    일본과 독일의 경우

    김 전 사장에 따르면, 일본에 100년 넘은 음식점이 많은 것은 일본이 임차인을 건물주로부터 훨씬 철저하게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선 국가 예산으로 골목상권을 활성화해놓으면 건물주가 임대료를 확 올려 이익의 대부분을 낚아챈다. 

    김 전 사장은 “정부도 해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문제의 근원인 임대료 부분을 고쳐 자영업자들을 소작농에서 자영농으로, 중산층으로 육성해야 한다. 자본주의 선진국인 독일도 건물주의 권리를 어느 정도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그의 제안이다. 

    “권리금을 법적으로 인정해야 해요. 지금은 임차인이 자신의 인테리어 및 사업권 일체를 5년 단위로 건물주에게 강탈당하는 꼴이죠. 또한, 현 임대차보호법은 영세상인만 보호하는데, 그 영세상인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요. 임차인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는 ‘무제한 계약 갱신’이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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