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호

"장하성 조속히 강단으로 돌려보내야"

노동운동가 출신 김대호의 장하성 再비판

  • 입력2018-10-2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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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도는 고귀했으나 생지옥 만든 이론들 

    • 국가가 들이댄 칼 한계기업·가난한 가계 향해 

    • 공공부문·대기업 근로자에는 힘 실어줘 

    • 4~5분위 부동산 투자·해외 소비, 1~3분위 일할 기회·소득 줄어

    • 경제 자해 정책 트라우마 간과한 혁신성장

    [뉴시스]

    [뉴시스]

    ‘신동아’ 2017년 7월호를 통해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의 역저 ‘왜 분노해야 하는가’를 소재로, 그가 가진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문제 관련 지론을 비판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비판의 핵심 요지는 ‘무지, 착각 가득한 담론, 현실 괴리 정책 이어질 것’이라는 제목의 칼럼 말미에 집약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장하성 실장 등이 공유하는 ‘불법’ ‘착취’ 프레임에 입각한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담론은 기본적으로 세계화, 개방화, 지식정보화와 맞물린 산업, 기업의 생산성 격차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기업의 위험 분산·완충 시스템 미비 문제도 간과하고 있다. 결정적으로는 한국 특유의 약탈적(지대추구적) 노동시장 문제와 공공부문 문제도 간과하고 있다. 이를 고치지 않는 한 여름날 재래식 변소에서 구더기가 기어 나오듯이, 현실과 괴리된 정책 담론이 끊임없이 기어 나올 것이다.” 

    그런데 2018년 10월 현재에도 여전히 자본 또는 기업의 과잉 ‘착취’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니 상식과 논리에도 반하고, 유래도 찾기 힘든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라는 구더기가 기어 나오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3축

    8월 26일 문재인 정부의 ‘경제사령탑’으로 불리는 장 실장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배포한 발표문을 통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배경, 원리와 주요 정책을 발표했다. 이를 친절하게 해설하기 위함인 듯 청와대 공식 페이스북에는 ‘왜 ‘소득주도성장’인가요?’(8월 31일 오후 4시 27분)라는 9장짜리 카드뉴스가 올라가 있다. 

    소득주도성장 등은 장 실장이나 홍장표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의 독창적 생각이라기보다는 민주, 진보, 노동 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 한국의 ‘진보 진영’이 널리 공유해온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예컨대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그 핵심인 ‘3년 내 최저임금 1만 원’ 정책 등은 2016년 3월 2일 발표한 더불어민주당 총선 공약 ‘777플랜’에 주요하게 들어 있다. 



    장 실장은 기자 간담회 발표문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20여 개나 제시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여 개국을 대상으로 한 △투자 △소비 △정부 지출 △기업소득과 가계소득 비중 관련 통계다. 장 실장은 “소비가 경제성장을 견인하지 못하는 이유는 경제가 성장한 만큼 (중산층과 저소득층) 가계소득이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근본적인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경제성장의 성과 중에서 가계소득으로 분배되는 몫이 크게 줄어들었고, 둘째는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의 소득불평등이 심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민총소득(GNI)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67.9%에서 61.3%로 크게 줄었습니다. 반면에 기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17.6%에서 작년에 24.5%로 크게 늘어났습니다.(중략) 과거에 대기업들은 버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미래를 위해 투자했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 기업들이 버는 돈(기업소득)에 비해 투자 규모를 크게 늘리지 않았습니다. 가계소득 비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소비가 줄고, 기업소득 비중과 기업저축은 증가했지만 기업투자는 크게 늘지 않고 있는 것이 한국 경제의 현재 구조입니다.(…)”

    가계 생계비 줄이기와 사회안전망 및 복지

    장 실장은 “경제가 성장을 해도 가계소득은 늘지 않고, 근로자 간 임금 격차는 더 커졌으며, 고용안정성은 낮고, 기업의 투자는 몇 년째 제자리걸음”을 하는 현실을 타개하고자 “경제구조를 바꾸는 일”을 시작했다면서, 그 핵심이 “가계소득을 높여 총수요 기반을 넓히고(소득주도성장), 대기업·수출기업 위주에서 중소·혁신기업 위주의 정책으로 전환하며(혁신성장), 불공정한 경제구조·거래 관행 해소(공정경제)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요컨대 문재인 정부의 경제성장 정책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의 세 축이고, 소득주도성장은 △가계소득 늘리기△가계 생계비 줄이기 △사회안전망과 복지의 세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3축 중 하나인 사회안전망과 복지 정책은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로 오면서 재정 수입 및 지출의 증대에 따라 점점 확대·강화돼왔다. 보수와 진보를 초월한 확고한 컨센서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확대, 강화 속도와 대상(프로그램)의 우선순위를 둘러싸고 이견이 좀 있을 뿐이다. 

    또 다른 축인 가계 생계비 줄이기 역사도 길다. 사교육비는 과외 금지를 명한 전두환 정부부터 중요한 이슈였고, 주거비는 주택 200만 호 건설을 간판 공약의 하나로 내세운 노태우 정부부터 중요한 이슈였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신혼부부 보금자리 주택 정책, 박근혜 정부에서는 수도권 행복주택(임대주택) 정책이 있었는데, 대체로 공약은 창대했지만 실적은 미미했다. 통신비와 카드수수료 문제 역시 김대중 정부부터 중요한 이슈였다. 

    가계 생계비 줄이기로 말하면, 이명박 전 대통령만큼 과감하고 구체적인 공약을 한 사람이 없다. 이 전 대통령은 ‘서민생활비 30% 인하’를 공약했는데, 그 요지는 기름값, 통신비, 고속도로 통행료, 약값, 사교육비, 보육비 등 6대 부문의 주요 생활비 부담을 30% 절감해 4인 가족 기준으로 매월 44만 원, 연간 530만 원 이상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소득이나 재산을 가계로 이전하는 일이 쉬울 리 없는 터라 공약들은 대체로 용두사미가 됐다. 당연히 이 공약들을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문재인 정부의 가계 생계비 줄이기와 사회안전망과 복지 공약이 이전 정부의 그것과 얼마나 다를까. 

    결국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이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핵심이자, 확실히 차별되는 정책은 ‘최저임금 대폭 상향’을 통한 ‘가계소득 늘리기’ 정책이다. 장 실장은 이것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극히 일부라지만, 사실상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머지는 다 해오던 것들이고, 방향보다는 확대, 강화 속도의 문제로 간주돼왔기 때문이다. 물론 문재인 케어는 예외인데, 이건 별도로 논할 엄청나게 심각한 문제다.

    장하성의 통계 무지 혹은 착각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핵심 원리는 노조나 근로자 편향의 국가규제(최저임금, 노동시간, 비정규직 등), 단속처벌, 행정명령(파리바게뜨 5378명 직고용 명령), 노조 결성 및 활동 지원(삼성전자서비스 전 사장 구속, 공공부문 노조 2대 지침 철폐) 등 국가 강권력이라는 수단으로 기업소득을 가계소득으로 이전시킨다는 것이다. 조세와 재정(복지)이라는 2차 분배 구조가 아니라 국가 규제와 노조운동 지원 등을 통해 기업소득을 바로 가계나 근로자에게 이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늘린 가계소득이 국내 소비를 늘리고, 늘어난 소비가 국내 투자와 고용을 촉진하게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선순환으로, 되기만 하면 20년 집권이 아니라 200년 집권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핵심 가정 3개 ①국가 강권력으로 기업소득을 가계소득으로 이전한다는 것 ②이를 국내 소비 증대로 연결한다는 것 ③이것이 기업의 국내 투자와 고용을 촉진한다는 것 모두 심각한 모순이거나 비약임을 눈치챌 것이다. 

    3대 가정의 허구성은 기업 능력이나 시장 성격이 천차만별인 수많은 기업 중에서 소득 증가를 주도한 기업들이 어떤 기업이고, 그 소득이 어떻게 얻어진 것인지, 이를 최저임금으로 뭉텅 떼올 수 있는지 살피면 알 수 있다. 가계소득도 그 주요 구성 부분인 보수,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영업잉여(자본소득+노동소득), 순 수취 재산소득이 어디서 어떻게 늘어났고, 분위별로 어떻게 분배되는지 살피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장 실장은 주장의 설득력을 강화하기 위해 수많은 통계를 인용했는데, 유감스럽게도 통계의 세부 내역을 보지 못했거나, 그 질적 특성을 깔아뭉개기 마련인 평균값에 현혹된 것처럼 보인다. 장 실장이 주요하게 언급한, 국민총소득(GNI)에서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는 한국은행 ‘제도부문별 소득계정(명목·연간)’의 ‘총 본원소득(GNI)’ 통계에서 나온 것이다. 

    장 실장은 <표1>에 근거해 가계소득 비중은 67.9%(2000년)에서 61.3%(2017년)로 줄고, 기업소득 비중은 17.6%에서 24.5%로 늘었다면서, 이 원인을 기업이 가계 몫을 과도하게 착취한 데서 찾았다. 그 배후에는 자본·재벌·대기업 친화적이고,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보수 정부가 있다고 본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영혼

    그런데 기업소득은 법인기업의 ‘총 본원소득’을 말한다. 이는 2017년 기준 비금융법인소득이 90%, 금융법인소득이 10%를 차지한다. 가계소득은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총 본원소득’이며 피용자 보수(임금 및 사용자 측 사회보험료 부담분), 비법인기업(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영업잉여, 순재산소득으로 대별되는데, 가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72%, 12%, 10.5% 순이다. 

    가계소득의 핵심인 피용자 보수는 2000년 261조 원에서 2017년 767조6000억 원으로 2.94배 늘어났다. 동 기간에 GDP는 2.72배, GNI는 2.74배 늘어났다. 하지만 가계소득의 또 다른 부분인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영업잉여(원천)는 동 기간에 1.26배 늘었고, 순재산소득은 45조 원에서 112조 원으로 2.46배 늘었다. 따라서 가계소득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은 전체 피용자 보수의 증가율이 낮아서가 아니라, 자영업자라고 불리는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영업잉여 증가율이 너무 낮고, 순재산소득 증가율도 낮아서다. 그런데 기간을 잘게 쪼개 보면 2011~2015년에는 가계소득은 연평균 4.9%, 기업소득은 2.1%, GNI는 4.1% 증가했다. 1995~2000년에도 이런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이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써서가 아니라, 수출(경기, 경쟁력)이나 환율 등에 영향을 많이 받는 기업소득에 비해 가계소득, 특히 그 대부분을 차지하는 피용자 보수가 하방 경직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머지 대부분의 기간에는 기업소득 증가율이 높았다. 그런데 이 역시 삼성전자, 현대기아차, 현대중공업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포함된 비금융법인이 증가를 주도했다. 그런데 이들의 소득은 다른 경제주체(협력업체나 근로자)에 대한 착취를 가혹하게 해서가 아니라, 전 세계 시장을 상대로 장사를 잘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 임직원들의 보수 수준에서 알 수 있듯이 피용자 보수도 충분히 높다. 1차 협력업체들의 형편도 대체로 좋다. 기술력과 교섭력(선택권과 거부권)이 있는 곳은 확실히 좋고, 없는 곳의 이윤은 좀 박하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가계소득 비중 하락 요인은 잘나가는 ‘자영업자’ 내지 ‘비법인기업’이 법인기업으로 지속적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업소득이라고 하지 않고 법인소득이라고 했으면 ‘착취’ 프레임에 말려드는 사람은 좀 줄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기업소득이라고 하니 실제로는 가계로 분류되는 고용원이 있는 개인사업체들이 다 기업처럼 느껴진다. 천문학적 이익을 내는 삼성전자와 직원 월급도 못 줘서 허덕이는 수많은 한계기업이나 개인사업체(비법인기업)가 다 같은 기업 혹은 자본처럼 여겨지면서, 질적 특성을 사상한 통계(기업소득 비중 과다)를 근거로 휘두른 최저임금이라는 칼을 맞게 됐다.

    최저임금이라는 칼이 향하는 곳은?

    8월 2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8·29 소상공인 총궐기 최저임금 제도 개선 촉구 국민대회’ 참가자들. [뉴시스]

    8월 2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8·29 소상공인 총궐기 최저임금 제도 개선 촉구 국민대회’ 참가자들. [뉴시스]

    최저임금이 중위임금에 비해 한참 낮은 수준이라면 몰라도 40%나 50%를 돌파하면, 최저임금이 영업과 폐업, 국내 존치와 해외 이전, 5명 고용이냐 3명 고용이냐, 주40시간 이상 풀타임 고용이냐 주15시간 미만(주휴수당 예외) 파트타임 고용이냐 등을 결정하는 선이 된다. 상식적으로 임금은 임률(시급)×근로시간인데, 임률은 최저임금 규제로 강제할 수 있어도, 근로시간이나 근로 기회(일자리)는 강제할 수 없다. 따라서 최저임금 상향이 저임금 근로자 가구의 가계소득 증대로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15년 한국 최저임금이 5580원(연봉 1399만4640원)일 때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48.4%였다. 같은 시기 미국 36%, 일본 40%, 독일 48%, 영국 49%, 프랑스 62%다. 

    한국은 기업도 가계도 양극화가 심한 편이다. 삼성전자처럼 천문학적 이익을 내는 기업도 있지만,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기업도 무려 40% 내외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기치 아래 국가가 들이대는 칼(최저임금, 노동시간 등)은 부유한 기업과 가계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한계기업(자본 및 노동)과 가계로 향한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가 더 강하게 보호하고, 더 힘을 실어주려는 대상은 공공부문과 대기업의 근로자(가구)다. 한국은 기본급이 낮고 제(諸)수당이 많으며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임금체계가 공공부문과 대기업에 만연하다. 

    따라서 최저임금을 끌어올리면 고임금 근로자의 임금도 덩달아 오를 수 있다. 노조 처지에서는 최저임금을 끌어올리면, 기업 차원에서 임금 인상 투쟁을 하지 않아도 임금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한편 시장지배력이 있는 기업들은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급상향으로 인한 생산원가 상승분을 가격에 전가할 수 있다.

    포퓰리즘에 찌든 권력자들

    요컨대 소득 4~5분위 부자 근로자 가구 중심의 임금소득 증대에 힘입어 전체 가구의 평균 소득은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1~3분위 가구, 특히 비임금근로자 가구의 시장소득(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은 크게 감소하게 돼 있다. 이는 2018년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 통계로 입증됐다. 그런데 4~5분위 가구는 과거 해오던 대로 부동산 투자를 하거나 해외 소비를 늘리고, 1~3분위 가구는 일할 기회도 줄고, 소득 자체가 줄어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게다가 최저임금 급상향으로 인해 중소·영세기업 근로자들이 기존 일자리에서 내몰리고, 새로운 일자리 찾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중·저소득 가구의 소비는 더욱 움츠러들게 돼 있다. 또 하나, 한국에서는 최저임금 급상향의 최대 수혜자가 국내 소비에 극도로 인색한 외국인 근로자인데, 허술한 외국인 근로자 정책으로 인해 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국내 소비를 더욱 위축시킬 수도 있다. 

    요컨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핵심 가정을 바탕으로 말한다면 ①가계소득 증대는 부자 근로자(가구)의 소득 증대에 힘입어 평균값으로는 달성할 수 있으나, 중·저소득 가구의 일자리와 시장소득을 줄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심화시킨다. 따라서 ②국내 소비 증대는 정반대 결과를 초래하고 ③국내 투자와 고용 증대는 오히려 훨씬 악화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급상향 정책은 생산요소 가격을 급등시키고, 탄력성 없는 근로시간 상한(52시간) 규제는 기업의 인력 운용에 큰 부담을 안긴다.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은 변화와 부침이 극심한 시대에 정규직=영구직을 정상으로 여기니 고용에 대한 부담을 극대화한다. 고용 창출을 주도하는 중소·영세기업의 경우, 너무나 급격한 경영 여건의 변화로 인해 투자와 고용 의지 자체가 심대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경우 노조 편향의 거친 국가 규제 외에도 파리바게뜨 5378명 직고용 명령 같은 행정규제, 노조에 대한 기업의 정당방위 행위에 대한 처벌, 법인세 인상, 검찰, 국세청, 고용노동부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이는 먼지 털기 수사, 조사 등으로 인해 국내 투자와 고용 의지가 한없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가계소득 비중 하락의 결정적 요인은 비교우위 산업 및 기업과 창의 열정이 넘치는 중소기업 및 개인이 국내 투자와 고용 확대를 꺼렸기 때문인데, 문재인 정부는 이를 더욱 꺼리게 만들고 있다.

    실물경제에 무지한 강단 학자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비극은 그냥 복지가 곧 경제요, 성장이요, 안정이라면서 복지를 대폭 강화하면 될 것을, 진보적 성장 담론이 없다면서 실물경제에 무지한 강단 학자와 포퓰리즘에 찌든 권력자들이 지극히 특수한 조건(1930년대 대공황 상황 등)에서나 작동하는 경제이론(임금주도성장론)을 만들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 강권력으로 경제주체들이 밀고 당기면서 나름의 질서를 형성한 시장에 거칠게 개입했기 때문이다. 

    장 실장이 통할하는 경제정책은 소득주도성장 정책 하나만 문제가 아니다. 실은 공정경제와 혁신성장 정책도 그에 못지않게 심각하다. 공정경제 정책이 문제인 것은 갑질(부당한 약탈과 억압)의 끝판왕인 국가(공공)의 엄청난 패악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혁신성장 정책이 문제인 것은 사회적 유인보상체계-위험완충체계-지배운영구조의 부실과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문재인 정부의 경제 자해 정책이 만든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모르기 때문이다. 경제적 자원(돈, 사람, 인재, 부동산, 관심 등)을 움직이는 유인보상체계의 후진성에 관한 한 사회주의 국가와 일부 남미 국가 등 실패 국가들 외에는 비교 대상이 없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지난해 ‘신동아’에 쓴 글에서 약간 짚었다. 

    지난 세기에 의도는 고귀했으나 인간과 시장의 동역학에 무지해 생지옥을 만든 정치·경제 이론 몇 개를 우리는 안다. 사회주의, 파시즘, 주체사상이 대표적이다. 소득주도성장론도 그 반열에 오를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만 폐기할 게 아니다. 공정경제, 혁신성장 정책 등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을 몽땅 폐기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경제 잡고, 일자리 잡고, 사람 잡는 장하성을 강단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김대호
    ● 1963년 경남 사천 출생 
    ● 진주고·서울대 금속공학과졸업 
    ● 박영진열사추모사업회 간사 
    ● 노동정책 잡지 ‘단결의 길’편집장 
    ● 대우자동차 근무 
    ● 現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 저서 : ‘대우자동차 하나 못살리는 나라’ ‘한 386의사상혁명’
     ‘진보와 보수를 넘어’‘노무현 이후-새 시대플랫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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