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현장취재&인터뷰 | 한국군 최강 여전사들

“가장 어려운 훈련이 뭔가?” “가장 쉬운 훈련은 없다!”

특전사 베테랑·신세대 7人의 포효

  • 조성식 기자 | mairso2@donga.com

“가장 어려운 훈련이 뭔가?” “가장 쉬운 훈련은 없다!”

3/5
“가장 어려운 훈련이 뭔가?” “가장 쉬운 훈련은 없다!”
뒤엉킨 낙하산

곱상한 외모의 김정아 상사는 고교 졸업 후 친구 따라 여군에 입대했다. 정작 친구는 탈락하고 그는 특전사로 배치됐다. 그의 특기는 태권도. 중학교 1학년 때 이미 3단이었다. 1990년 임관한 그는 여군 최초로 세계군인체육대회에 태권도 대표선수로 2년 연속 출전해 은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8년 태권도에 에어로빅을 가미한 태권무를 제작해 전군에 보급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특전사 여군 최초 부중대장, 최초 천리행군 완주 등의 기록도 그의 것이다. 707특임대 소속으로 이라크 파병에도 참여했다.

▼ 남군들 사이에서 힘들지 않았나.

“그보다는 인간관계가 힘들었다.”

▼ 남군들 시선이 쏠렸을 텐데.



“같이 있으면 그런 시선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걸 대처하는 교육을 잘 받았기에 별문제가 없었다. 남군들도 교육이 잘돼 있는 편이다.”

특전사 천리행군은 그냥 걷기만 하는 게 아니다. 일주일간 하루 60~70㎞씩 걸으며 갖가지 훈련과 전술을 익힌다. 피로골절, 낙마, 발목 부상 등으로 숱한 탈락자가 나온다. 그는 “너무 힘들어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빠질까 싶어서 대대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대대장이 ‘여군으로서 처음이니 더 힘들 거다. 하지만 해낼 수 있다’고 격려했다. 천리행군을 마치고 돌아오자 동료들이 부대 앞 도로에 늘어서서 박수로 맞았다. 내게는 특별히 꽃목걸이를 걸어줬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육아에 대해 묻자 그는 “나는 나쁜 여자”라며 아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아이 이모인 여동생이 대신 돌봐줬다고 한다. 아들도 특전사를 지원할 생각이다. 그는 “내 자식이라 그런지, 솔직히 말리고 싶다”며 웃었다.

건장한 체격의 강경희 상사는 직장생활을 2년쯤 하다 뒤늦게 입대했다. 어릴 때 대민지원을 하는 ‘군인 아저씨’들을 멋있게 느꼈던 기억이 그를 군으로 이끌었다.

▼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나.

“(여군학교에서) 임관 2주 전 홍보 비디오를 보여줬다. 특전사 대원의 강하 시범을 봤는데, 나비 같았다.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특전사 갈 생각을 굳혔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공수교육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아버지께 좋은 유전자를 받은 덕분이다. 그런데 고공강하 훈련은 달랐다. 생각대로 몸이 안 움직이더라. 많이 울었다. 세 번 불합격이면 퇴교인데, 두 번 탈락하고 마지막에 겨우 통과했다. 고공을 시작하면서 군 생활이 즐거워졌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그도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한번은 여군 선배와 한 조로 고공강하를 하다 서로 낙하산이 포개졌다. 순간적으로 기절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몸이 빠르게 빙빙 돌고 있었다. 피가 몰려 발이 터질 것 같았다. 가까스로 선배 낙하산과 분리하고 예비 낙하산을 펴 지상에 내려올 수 있었다.

“그 순간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삶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너무 끔찍했으나 교관의 지시로 곧바로 다시 올라갔다. 몹시 원망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렇게 공포를 극복했기에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

1990년 9월 15일, 고공강하를 하던 여군 이모 상사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국군의 날 행사와 관련된 훈련이었다. 최 원사의 회고다.

“몸이 산산조각 났다. 곧바로 검정 비닐봉지에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를 정도로. 사고가 나고 곧바로 훈련할 때가 가장 힘들다. 그런데 그걸 극복하지 않으면 고공을 할 수 없다. 사실 나도 그날 강하를 하다가 허리가 꺾이면서 부상을 당했다. 파라포일이라고 새로 들여온 낙하산인데, 워낙 속도가 빨랐다. 해마다 그날이 되면 대전 현충원 국립묘지를 찾는다.”

전 준위가 거들었다.

“고공이 위험한 건 줄곧 일정한 자세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면 몸이 통나무처럼 구르게 된다. 그러면 예비 낙하산도 펼 수 없다.”

강 상사는 고공훈련 때 만난 남군과 결혼했다. 결혼식도 고공에서 낙하산을 펴고 진행했다. 강 상사 부부를 포함한 세 쌍의 군인이 고공결혼식을 하는 장면은 TV 뉴스에도 나왔다.

특전사 여군의 자녀는 어떨까. 강 상사는 딸만 셋이다. 큰딸이 중학생이 되자 3박4일 특전캠프에 보냈다. 딸도 좋아했다고 한다. 최 원사는 외아들에게 직접 낙법과 권투를 가르친다. 남편도 특전사 원사인 그의 꿈은 아들이 빨리 공수교육을 받아 세 식구가 함께 강하하는 것이다.

3/5
조성식 기자 | mairso2@donga.com

관련기사

목록 닫기

“가장 어려운 훈련이 뭔가?” “가장 쉬운 훈련은 없다!”

댓글 창 닫기

2022/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