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호

신정부터 설까지 ‘닥치고 몰입’ 하라

새해 맞이 정치학

  • 이종훈 |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5-12-22 09: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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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정부터 설까지 ‘닥치고 몰입’ 하라

    원숭이를 주제로 한 한국조폐공사의 ‘2016년 병신년 12간지 기념메달’

    2014년 이맘때도 우리는 2015년 신년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했다.” 내 주변의 많은 이는 나중에 이렇게 술회했다. 2016년 새해를 맞아 달력을 넘겨보며 우리는 다시 열망을 불태운다. 새해부터 시급히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냉정하자’고 말하고 싶다. 무리한 계획은 정신을 피폐하게 하고 몸을 축나게 하고 결국 성사되지도 않는다.

    시작은 창대, 끝은 미미

    과도한 목표, 게으름, 예상치 못한 일. 신년 계획을 망치는 3대 요인이다. 첫째와 둘째는 결국 우리 문제다. 스스로 조정하고 극복해야 한다. 예상치 못한 일은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 그런 점에서 운명의 영역으로 봐야 한다. 예상치 못한 일은 자주 나를 굴복시킨다. 목표 달성을 방해하고 의지를 꺾는다. 의외로 치명적이다. 더욱이, 게으름에 알리바이까지 제공한다. 신년 계획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는데도 자책감마저 남지 않게 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온전히 예상치 못한 일은 없다. 예컨대, 예상치 못한 일 중에는 신정 연휴도 포함된다. 이미 빨갛게 표시돼 충분히 예견 가능함에도 우리는 연휴를 마치 없는 것처럼 여긴다. 막상 연휴가 닥쳐 어디로 해돋이 여행이라도 가면 세워둔 신년 계획에 치명상을 준다. 빨간 날은 그 전후 일정에 적지 않은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빨간 날의 비일상성 탓이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과 일탈은 휴식으로도 작용하지만, 사전사후 적응과정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뺏는다. 스트레스를 낳는다. 이것이 계획의 실행을 초장부터 망친다.    

    ‘일반 놀반’ 골든타임

    신년 계획에도 골든타임, 즉 생사가 달린 초기 대응기간이 있다. 응급처치에서 심폐소생술은 최단 5분에서 최장 10분 내에 시행해야 한다. 이때의 1분 1초는 이후 시간 대비 수십만 배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신년 계획에선 12개월을 기준으로 1/4분기, 그중에서도 1월이 바로 골든타임에 해당한다. 이토록 중요한 기간이지만 연말연시 들뜬 분위기 속에서 일하는 것 절반 노는 것 절반, 곧 ‘일반 놀반’으로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기간 불에 기름 붓는 역할을 하는 것이 설 연휴다. 연말이 다가오는 11월이면 벌써 송년회가 시작된다. 12월 중순 정도에 대략 송년회를 마무리하는 분위기다. 이후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돌입한다. 크리스마스, 신정 연휴를 마치면 시무식, 신년 하례가 이어진다. 서양에선 이것으로 연말연시 연휴 끝이다. 다시 평범한 일상이다. 서양인들은 1월 초부터 곧바로 신년 계획 실행에 돌입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신년 분위기가 설 연휴 때까지 이어진다. 설 연휴가 2월 말로 잡힌 해에는 사실상 3월 1일부터가 본격적 신년으로 인식된다.     

    신정~설, 애매한 시기

    다시 말해, 신정에서 설 연휴까지의 긴 기간이 다수의 한국인에게 애매한 시기로 비친다. ‘새해인 듯 새해 같지 않은 새해’다. 1월 1일에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고, 한 달여 뒤인 설 연휴에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정~설 기간을 대충 흘려보내는 사람이 많다. 사람은 원래 개념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것에 잘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음력 1월 1일(한국에선 설, 중국에선 춘절)을 기념하는 한국과 중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중국인들은 신정~춘절까지의 시기에 대해 한국인들과 비슷한 인지부조화를 겪을 게 틀림없다. 게다가 중국의 경우 춘절 연휴 때 고향 갔다 오는 길이 어마어마하게 멀다. 물론 정서적으로 얻는 것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중국인들이 춘절까지 상당한 물리적 에너지를 소진한 뒤 한 해를 시작하는 건 분명하다.  

    1달 내 계획 포기 70%

    그러나 우리가 중국인 걱정해줄 처지는 아니다. 우리의 새해 맞이도 중국만큼이나 많은 낭비적 요소를 지녔다. ‘잡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우리 직장인의 66.9%는 신년 계획을 한 달 안에 포기한다. 30.4%는 작심삼일에 그친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2월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설 연휴가 신년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의지를 꺾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설 연휴를 없앨 순 없다. 과거 일제가 낡은 명절이라는 의미로 ‘구정(舊正)’이라고 써가며 없애려 했고 박정희 정부도 공무원에게 불이익을 줘가면서 양력 1월 1일, 신정으로 통합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몸에 밴 전통은 하루아침에 어떻게 되지 않는다. 지금의 청년세대가 기성세대가 돼 제사를 안 지내고 고향 부모님을 안 찾으면 어느 순간 설 연휴가 없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결국 개인적으로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구체적, 계량적, 작은 목표

    우리는 이러한 한국적 특수성을 감안해 좀 더 엄밀하게 신년 계획을 잡아야 한다. 안 그러면 이전의 여느 해처럼 흐물흐물해지기 십상이다. 무엇을 언제부터 할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지는 신년 계획의 목표에 해당한다. 상당수 직장인이 이 목표를 너무 크게, 추상적으로 잡는다. 잡코리아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신년 목표 중 상위에 오른 것은 다이어트, 연애, 이직, 저축, 여행, 내 집 마련이다.
    연애는 본인의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상대가 싫다고 하면 어찌할 수 없다. 저축과 여행은 돈을 가지고 그냥 하면 되는 일상적인 일이다. 이직과 내 집 마련은 너무 큰 목표로 비친다.
    다이어트하기에는 봄이 계절적으로 딱이다. 꽃피는 춘삼월에 운동으로 땀 빼고 난 뒤 샤워하고 그 상쾌한 기분이 사라지기 전에 달달한 봄바람 맞으며 님을 만나면 된다. 다이어트에 별로 무리가 안 따른다. 반면 연초 한겨울부터 득달같이 업무와 다이어트에 동시에 달려들면 이것도 저것도 안 될지 모른다. 설 연휴가 끝난 즈음 패잔병처럼 널브러질 수 있다.
    신년 목표로는 무엇보다 구체적이고 계량적이고 작은 목표가 좋다. 특정 어학 과정을 마스터하겠다든지, 재무제표 등 회계실무를 떼겠다든지, 체중을 2kg 줄이겠다든지, 한 달간 술을 안 마시겠다든지 하는 목표 말이다. 작은 목표지만 실질적 도움을 주고 추가적 행동을 유발한다.  

    ‘닥몰’

    목표 설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제부터 할 것인가’, 즉 착수 시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1월 1일부터 설날 연휴까지가 최적의 실행 시점일 것이다. 1월 1일부터 설날 연휴까지 목표로 ‘닥몰’, 닥치고 절대 몰입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싶다. 그러면 해당 기간 내에 그 ‘구체적이고 계량적이고 작은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 신정~설날을 흐지부지 보내온 과거와 단절할 수 있다. 실질적 성과물과 함께 한 해를 시작할 수 있다.     

    새 학기 맞는 대학생처럼…

    적지 않은 직장인은 신년 계획에서 좌절을 맛본 뒤 서서히 가열하는 방식으로 회귀한다. 이 경우 신정~설날은 예열기간에 속한다. 생활이 늘어지게 된다. 쉬는 것도 아니고, 뭔가를 해내는 것도 아닌 상황이 이어진다. 결국 설 연휴를 보낸 뒤, 마치 새 학기를 맞이하는 대학생처럼, 3월부터 비로소 가속하기 시작한다. 돌이켜보면 별로 한 일도 없이 1, 2월 두 달이 훌쩍 지나가버린 것을 알게 된다.

    1월 1일부터 질주하라

    그러니 1월 1일부터 전력으로 질주해보기 바란다. ‘안돼, 첫날부터 그런 식으로 달리면 무리가 따를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에게 반문하고 싶다. ‘당신은 기계인가?’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예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더욱이 몸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일은 준비운동 없이 바로 돌입할 수 있다.   

    ‘예열’ 원하면 송년회 줄여라

    그래도 예열을 원한다면 새해를 맞기 전에 해두는 게 좋다. 크리스마스 이후부터 12월 31일까지를 예열기간으로 두라는 말이다. 그전에 술 마시는 송년회는 다 끝내놓는 게 좋다. 예열이란 말 그대로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게 컨디션을 최적 상태로 만드는 것이니까.
    그러려면 송년회 자리를 줄여야 한다. 지인들에게 약속을 잡는 전화를 돌리기 전에 이 사람들과 정말 송년회를 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송년회를 신년회로 돌리고 저녁자리를 술을 안 마시는 점심자리로 바꾸면 된다. 이런 식으로 조정하면 12월 송년회를 절반 이상, 3분의 2 이상 줄일 수 있다.
    신정부터 설까지 ‘닥치고 몰입’ 하라

    부산 해운대 앞바다의 신년 일출.



    물질 챙기기, 사람 챙기기

    새해 맞이에서 신년 계획과 함께 빠뜨릴 수 없는 일이 신년 인사다. 신년 계획이 주로 물질을 챙기는 것이라면 신년 인사는 사람을 챙기는 것이다. ‘해 바뀜이 있지만 계속 변치 말자’,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건 인맥 관리에 서 중요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신정과 설을 함께 두고 있으니 인사 시점을 잘 택해야 한다. 사람들은 대개 12월 31일까진 한 해를 보낸다는 데에 더 마음이 쏠린다. 제야의 종이 울린 직후 신년 인사를 담은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 메시지가 일제히 발송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사실, 신년 인사는 1월 1일부터 설 사이 어떤 시기에 하더라도 어느 정도 용인되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되도록 일찍 하는 게 좋다. 유력 정치인들은 보통 1월 1일 집을 개방해 신년 인사를 받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1월 1일 혜화동 시장공관을 열었다. 그는 자신에게 신년 인사를 온 정치인, 기자들에게 떡국을 대접했다.  

    시무식 때 한꺼번에

    회사에서 시무식이 있으면 웬만하면 참석하는 게 좋다. 임직원들과 한꺼번에 신년 인사를 할 수 있으므로 훨씬 수월하다. 관계의 맥락에 따라, 신년 인사를 문자메시지로 할지, 연하장으로 할지, 전화통화로 할지, 직접 대면해서 할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2016년 중반쯤부터 김영란법이 시행되지만, 많은 사람은 보통 설에 인사를 할 땐 선물을 보낸다. 전경련이 펴낸 ‘궁금할 때 펴보는 기업윤리 Q&A 217’에서는 직접적이든 암묵적이든 대가가 있었다면 선물이 아닌 뇌물로 규정한다. 암묵적 대가가 모호하고 입증도 쉽지 않은 게 문제다. 설 선물이 없어지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효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설 인사와 추석 인사

    누구에게 신년 인사를 할지와 관련해선, 신년 인사는 추석 인사와 사실상 연계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추석 때 인사를 하던 분에게 설에 인사를 하지 않으면 이 분은 어딘지 모르게 서운함을 느낄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추석과 설 인사를 해야 할 대상은 일치시키는 것이 좋다. 그러니까 이들은 1년에 두 차례 인사를 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1년에 한 차례 인사를 할 대상이라면 1월 1일 전후에 하는 것이 좋다.
    2016년, 달라진 새해 맞이로 더 나은 한 해를 살아보는 건 어떨까.


    신정부터 설까지 ‘닥치고 몰입’ 하라
    이 종 훈

    ● 성균관대 박사(정치학)
    ● 국회도서관 연구관
    ● CBS 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 진행자
    ● 現 아이지엠컨설팅(주) 대표, 시사평론가
    ● 저서 : ‘정치가 즐거워지면 코끼리도 춤을 춘다’ ‘사내 정치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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