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호

설채현의 ‘반려견 마음 읽기’

반려인 필수 펫티켓 6

“모르는 개 함부로 아는 척 금지”

  • 설채현 수의사·동물행동전문가

    dvm.seol@gmail.com

    입력2018-12-05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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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에 반려견 인구가 크게 늘어난 때는 2002년이다. 2002 한일월드컵으로 국가적 에너지가 넘쳤을 때 출산율뿐 아니라 반려견 입양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월드컵 베이비’뿐 아니라 ‘월드컵 반려견’도 넘쳐난 것이다. 문제는 반려견이 양적으로 급증한 반면 관련 문화의 질적 성장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반려견을 키우면서 발생하는 책임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형성되기 전 반려견 인구가 늘다 보니, 최근 반려인과 비반려인 사이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반려인은 늘 반려견의 행복을 마음에 둔다. 반려견이 행복하려면 5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부적절한 영양 관리로부터의 자유, 불쾌한 환경으로부터의 자유, 신체적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정신적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자연스러운 본능을 발휘하며 살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나는 어떻게 하면 반려견을 좀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가 많다. 그때마다 이 5가지 조건에 대해 설명하면서 더불어 한 가지를 더 강조한다. 내 반려견의 행복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 반려견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추가해 총 6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반려견이 아무 피해도 주지 않는데 단지 개라는 이유로, 또 반려인이 개를 키우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다. 그들 눈치를 보라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없는지, 평소 좀 더 주의 깊게 생각해봐야 나와 내 반려견, 그리고 우리 모두가 좀 더 행복해진다는 뜻이다. 이에 오늘은 반려견을 키우는 보호자가 알아야 할 기본 펫티켓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펫티켓은 pet(반려동물)과 etiquette(예절)의 합성어로 반려동물을 키울 때 지켜야 할 기본 예절을 뜻한다.


    세상에 물지 않는 개는 없다

    먼저 산책할 때 펫티켓부터 살펴보자. 기본적으로 챙길 것은 배변봉투다. 이 부분은 정말 단기간에 많이 좋아졌다. 이제는 반려인 대부분이 배변봉투를 지참한다. 그러나 예외적인 몇몇 반려인이 있다. 그들 때문에 전체 반려인이 욕을 먹는다. 개와 산책을 나갈 때는 내가 혹시 전체 반려인에게, 또 우리나라 반려견 문화 전반에 피해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반려견과 산책할 때 또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세상에 물지 않는 개는 없다’이다. 미국 연수 시절 교수님이 내게 수없이 강조한 내용이다. 사실 나는 세상에 물지 않는 개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숑 프리제종인 내 강아지 버블이다. 버블이는 아무리 극한 상황이 와도 어느 누구도 물지 않을 것이라고 내심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버블이가 언제든 누군가를 물고 사고를 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려 노력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 안전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으로 운전을 시작할 때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차 빼고 다른 차는 다 미쳤다고 생각해라.’ 실제로 다른 차들이 미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철저하게 방어운전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세상에 물지 않는 개는 없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내 반려견이 아무리 착하고 잘 교육받았다 해도 방어운전 자세를 풀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보호자가 할 일이 분명하다. 산책 나갈 때 개에게 반드시 산책줄을 하는 것이다. 또 모든 개에게 입마개를 할 필요는 없지만 단 한 번이라도 다른 개나 사람을 물려 한 개, 또 문 경험이 있는 개에게는 입마개 교육 후 반드시 입마개를 해야 한다. 법적으로 맹견에 포함되는 개 또한 마찬가지다.

    운전 연수 못잖게 중요한 반려인 교육

    이번에는 실내에서의 펫티켓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 반려견 관련 분쟁이 빈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파트 위주 주거 형태다. 수많은 사람이 같이 사는 환경에서 개가 짖는 문제로 이웃과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다. 개가 한 번 짖기 시작하면 통제하기 어렵다. 초인종이 울릴 때, 밖에서 소음이 들릴 때, 보호자가 집을 비웠을 때 등 개가 짖는 상황도 다양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보호자가 공부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개를 키우기까지 진입장벽이 너무 낮다.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면허를 받아야 하는데, 개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그냥 기른다. 이런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개를 사는 데 드는 비용도 일본의 10~20%에 불과하다. 외국은 다르다. 독일은 ‘훈데슐레’라는 교육기관에서 일정기간 수업을 들어야만 반려견을 키울 자격을 준다. 이 교육을 통해 보호자는 개의 습성, 기본적 교육방법 등을 익힌다. 개와 더불어 살다 문제가 생길 때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하는 마음가짐도 갖게 된다. 

    외국의 교육은 반려인뿐 아니라 비반려인에게도 광범위하게 이뤄진다. 반려동물 문화가 성숙한 나라 사람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개와 더불어 성장한다. 그러다 보니 개를 대하는 태도가 우리나라 사람과 다르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바로 그 점에 놀랐다. 

    미국 사람들이 개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 감동한 게 아니다. 그보다는 대부분 개에게 특별히 눈길을 주거나 예쁘다며 가까이 다가서지 않는 데 놀랐다. 처음엔 ‘내가 반려동물 문화 선진국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갖고 있었나 보다. 이들은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보다도 개에게 관심이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잘 알지 못하는 개에게 갑자기 다가서고 친한 척하는 행동이 개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개가 불편을 느낄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길을 가다 마주친 아이가 예쁘다고 무작정 다가서서 눈 맞추고 말 걸고 스킨십을 하면 되겠나. 어린이가 그런 상황을 어색하게 느끼고 심하면 무서워 울음을 터뜨릴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그런데 유독 개에 대해서는 이런 상식을 무시하는 것이다. 

    “저도 강아지를 키워서 잘 알아요. 제가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면 괜찮을 거예요” 같은 말은 의미가 없다. 겁 많고 불안함을 쉽게 느끼는 개 처지에서 볼 때 무작정 자기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은 두려운 존재일 뿐이다. 

    우리나라에 잘못 알려진 펫티켓 중 하나는 ‘친하지 않은 개를 만날 때 손을 내밀어 냄새를 맡게 하라’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TV 프로그램에서 이런 정보를 여러 번 접했다. 나뿐 아니라 매우 많은 사람이 이 내용을 들어서, 한국에서 이 행동은 일종의 매너처럼 여겨진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나는 처음 개를 보면 자연스레 손부터 내밀었다. 그러자 교수님께서 ‘왜 그런 행동을 하냐’고 물으셨다. 내가 알고 있던 대로 ‘냄새를 맡게 해 친해지려고 한다’고 답하자 교수님은 내게 반문했다. ‘개의 후각이 얼마나 뛰어난지 모르나. 팔 길이 차이로 냄새를 맡고 못 맡고 할 것 같으냐’고. 그러면서 ‘앞으로는 조심하라’고도 하셨다. 

    모든 동물에겐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가 있다. 해당 공간을 침범당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우리가 만원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계속 신경이 쓰이는 이유다. 개도 마찬가지인데 그 범위가 일정하지는 않다. 사회성이 좋은 개는 퍼스널 스페이스가 아주 좁고, 불안도가 높은 개는 아주 넓다. 우리가 빨리 친해지겠다며 손을 내밀다 혹시라도 그 개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침범하면 개는 자기 공간을 지키고자 그 손을 물 수 있다. 

    일반인이 지켜야 할 또 다른 펫티켓은 개 앞에서 상체를 굽히거나 눈 마주치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겁 많은 개는 사람이 자기를 향해 상체를 굽히면 공격 신호로 받아들인다. 자기가 믿지 못하는 대상의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순간, 상대가 자기에게 다가와 공격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나보다 10배는 큰 외계인이 갑자기 내 머리 위로 허리를 숙일 때 느껴질 공포를 생각해보라. 내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의 감정을 떠올린다면 개 마음을 어렵잖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개가 마음 열 때까지 기다리기

    시선을 맞추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어쩌다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조용한 곳에 불려가 혼난 경험이 있다. 남자라면 어린 시절 이런 일을 많이 겪었을 것이다. 개도 마찬가지다. 친근한 사람과의 눈 맞춤은 사랑의 표현이다. 그렇지 않은 대상이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건 공격심의 발로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이 강아지를 처음 만났을 때 호의의 표시로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한다. 눈을 맞추고 상체를 숙이면서 손을 내민다. 이걸 다 못 하게 하면 뭘 어떡하냐고? 낯선 개와 처음 만났을 때 가장 좋은 자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사회성 좋은 강아지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기 전 먼저 자기 호의를 표시한다. 가까이 다가와 엉덩이를 흔들고 몸 근육을 이완한 상태로 만져달라고 한다. 그때 나 또한 친근함을 표시하면 된다. 

    개가 다가오지 않을 때는 좀 더 기다리는 게 더 좋다. 만약 그 개와 친해지고 싶으면 상체를 숙이지 말고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춘다. 그리고 눈이 직접 마주치지 않게 옆쪽에 앉아 개가 스스로 다가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래도 다가오지 않는다면? 개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려견 문화 선진국의 아이들은 일찍부터 동물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운다. 생명의 소중함, 개를 대할 때 주의할 점 등도 교육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힌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몇몇 학교의 방과 후 특별수업 외에 이런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심장이 뛰는 생명체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관련 교육 장면을 봤다. 개를 데려다 놓고 학생들에게 만지며 놀도록 하는 게 아니었다. 학생들이 청진기를 통해 개의 심장소리를 듣고 자기 심장소리도 듣게 했다. 학생들은 그 체험 후 ‘이 친구도 나와 같이 심장이 뛰는구나. 인형이 아니라 생명임을 알게 됐다’고 답했다. 바로 이 마음이 기본에 놓인 상태에서, 그 생명들과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향후 더 많은 아이가 이런 환경에 노출되면 우리나라에도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과 키우지 않는 사람이 서로 존중하고 상호 피해를 주지 않는 환경이 마련될 것이라 믿는다.


    설채현
    ● 1985년생
    ● 건국대 수의대 졸업
    ● 미국 UC데이비스, 미네소타대 동물행동치료 연수
    ● 미국 KPA(Karen Pryor Academy) 공인 트레이너
    ● 現 ‘그녀의 동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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