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호

20대 리포트

‘자녀동반 근무’ 광진구청 최초 실험

“직장맘 육아고민 해결… 업무 지장 없어”

  • 정여진 연세대 글로벌인재대학 3학년

    she.is.ambitious@gmail.com

    입력2018-12-1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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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치원 보내고 받기 전후 함께 근무”

    • “방학 때도 활용”

    • “베이비시터 쓸 필요 없어”

    • “일본 회사·기관에선 앞다퉈 도입”

    광진구청 한 사무실에서 한 여직원이 아이를 곁에 두고 일하고 있다. [사진제공·광진구청]

    광진구청 한 사무실에서 한 여직원이 아이를 곁에 두고 일하고 있다. [사진제공·광진구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6년에 발표한 ‘성별 임금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남녀 임금격차가 36.7%로 34개국 중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여성이 결혼이나 임신,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되거나 휴직 후 직장으로 돌아가기 쉽지 않다는 점이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강사 ◯(여·34) 씨는 출산휴직 후 복직했다가 육아를 위해 불가피하게 다시 직장을 떠났다. 강씨는 “직장맘은 보통 오전 8시부터 오후 7~8시까지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겨야 한다. 베이비시터에게 급여를 주면 월급이 거의 다 달아난다. 이 때문에 직장생활을 포기하는 여성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육아휴직 후 복직한 여성의 43.4%가 1년 이내 직장을 그만둔다. 서울에 사는 주부 정나○(여·37) 씨도 “복직한지 보름 만에 아이를 봐주던 시어머니가 건강이 나빠져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뒀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 광진구청은 지난해 7월부터 공공기관 중 최초로 남녀 직원이 사무실에서 아이를 자신의 곁에 두면서 근무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처음 시도되는 이 ‘자녀 동반 근무 시스템’을 취재했다.

    이 구청 3별관 2층엔 특별한 사무실이 있다. 내부엔 장난감, 동화책, 볼 풀장, 식탁, 의자, 유아 전용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TV가 있고, 구청 직원들이 자신의 아이를 옆에 두고 근무한다. 구청은 2017년 7월 공공기관 중 처음으로 자녀를 데리고 일할 수 있는 ‘자녀 동반 근무 시스템’을 도입했다.




    장난감, 동화책, 볼 풀장 있는 사무실

    일본 월포워드사의 사무실에서 나루세 다쿠야 대표(왼쪽 두 번째)가 아이를 데려온 직원과 함께 일하고 있다. [사진제공·월포워드]

    일본 월포워드사의 사무실에서 나루세 다쿠야 대표(왼쪽 두 번째)가 아이를 데려온 직원과 함께 일하고 있다. [사진제공·월포워드]

    여기에 업무용 PC 2대와 전화기 1대가 설치돼 있어 이 방에 자녀를 데려온 직원들이 업무를 본다. 운영시간은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어린이집·유치원에 등원하기 이전 시간이나 퇴원한 이후 시간에 자녀를 맡길 곳이 없는 직원이 이 시간 동안 자녀를 이 사무실에 데려와 함께 있는 것이다. 또 자녀가 방학을 맞아 갈 곳이 없을 때에도 이 사무실이 유용하게 이용된다고 한다.

    직원들 사이에선 “육아고민이 어느 정도 해결됐고 업무에 지장이 별로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광진구 관계자는 “육아가 부담스럽지 않고 아이 동반 근무가 일에 지장을 주는 게 아니라 즐거운 일로 느껴지도록 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광진구청처럼 아이를 동반하고 근무하도록 해놓은 직장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일본에서는 이 시스템을 도입한 회사나 공공기관이 흔하다. 일본 회사들은 여성 직원이 출산 후 회사를 그만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 동반 근무 제도를 적극 활용해온 것이다.


    “사원의 아이는 우리의 아이”

    일본 도쿄 인근 가마쿠라시에 있는 콘텐츠 기업 윌포워드도 그중 하나다. 이 회사 측은 “사원의 아이는 우리의 아이”라면서 자녀가 있는 여성들을 적극 채용한다. 자녀 동반 근무를 위해 단독주택을 개조해 사무실로 쓰고 있다. 다음은 나루세 다쿠야(38) 대표와 e메일 인터뷰한 내용이다.

    -자녀 동반 근무를 시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16년 내 아들이 태어났을 때 직원 모두가 자연스럽게 아이를 데려올 수 있는 회사 문화가 형성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아이를 회사에 데려오기 시작했다. 이는 새로운 제도라기보다는 ‘아이를 데려오는 것을 금지하지 않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다.”

    -자녀를 둔 여성을 앞장서서 채용하고 있다는데.

    “남성의 관점이 아닌 여성의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좋은 기업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육아 문제로 일하지 못했던 엄마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자녀 동반 근무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가장 좋은 점은 아이 곁을 떠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회사에 와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육아와 결혼에 부정적인 독신 여성 사원들이 ‘육아를 하면서도 일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된 것도 좋았다. 나쁜 점은 딱히 없다.”

    나루세 대표는 “사회와 기업에서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집안일과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원 모집 공고에 “가정을 최우선으로 하며 재택근무도 가능. 밥도 회사에서 함께 먹는다”고 써놓았다.

    체험선물을 파는 도쿄 소재 회사인 소우익스피어리언스도 자녀 동반 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직원 64명 중 42명이 여성이다. 8명은 아이를 늘 데려오고, 7명은 가끔 데려온다. 회사 내부의 책상 귀퉁이마다 아이가 돌아다녀도 위험하지 않도록 완충재가 부착돼 있다. 아이가 노는 곳엔 직원들이 흙 묻은 신발로 다니지 못하게 돼 있다.


    저출산 문제의 해법?

    이 회사 홍보 담당 세키구치 마사히로(37) 씨는 “아이를 데려오는 것은 제도라기보다는 생각의 공유이자 최소한의 규칙”이라고 설명했다. “사원을 지원하려는 취지가 아니라 회사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다. 적은 비용으로 유능한 사원들이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장기적으로 회사에 이익이 되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 회사에선 출산과 육아를 이유로 퇴사한 여직원이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여직원들은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는데 회사에 데리고 올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 “대가족 같은 여건에서 육아를 하는 것 같아서 좋다”고 말한다. 아이가 없는 사원들도 “아이들이 있어 회사 분위기가 더 좋다” “앞으로 육아를 할 텐데 좋은 훈련이 된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 회사는 자녀 동반 근무를 도입하는 회사를 100개로 늘리자는 프로젝트를 시행 중이다. 운영 방식을 알아보기 위해 설명회에 참가한 회사가 100개가 넘었고 그중 10여 개 회사는 실제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세키구치 씨는 “아이가 있는 사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회사의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명확해지면 이 제도가 보편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우리나라에서도 이 문제의 해법으로 이제 자녀 동반 근무 확대를 심각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이 기사는 연세대 글로벌인재학부 ‘미디어와 현대사회’ 과목 수강생이 홍권희 교수의 지도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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