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

박원순표 ‘대동강 구상’ 놓고 옥신각신

“제재 상황서도 할 수 있어” vs “대북제재 위반 소지 커”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19-03-21 16: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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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 “평양과의 도시협력구상 실행” 협약서 서명

    • 서울시 “한강개발 노하우, 北서 쓰일 수 있어”

    • 전문가 “유엔 안보리 의해 서울시가 책임질 수도”

    평양 대동강의 모습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평양 대동강의 모습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동강 구상’이 얼개를 드러내고 있다. 서울시가 평양과의 협력 사업에 첫 발을 떼면서 대동강 수질개선 지원을 주요 의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첫발을 뗀 단계지만 벌써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별개라는 서울시 측 주장과, 제재 위반 소지가 커 한‧미 간 현안으로 번질 거라는 반론이 맞서고 있어서다.

    “사잇길 있지 않을까…”

    3월 15일 진성준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이승환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협회) 회장은 ‘평양과의 도시협력구상 실행’ 협약서에 서명했다. 협회는 2007년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남북협력에 필요한 정부 위탁업무와 조사·연구 등을 수행한다. 

    서울시가 밝힌 협약의 골자는 이렇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번영과 경제공동체”를 위해 “지속가능한 남북교류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고자 협력한다.” 즉 서울과 평양 간 협력사업의 여정에서 출발선을 끊은 셈이다. 

    앞서 2월 14일 박원순 시장은 ‘한국지방자치학회 동계학술대회’에 참석해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을 통해 지자체가 교류협력의 주체가 되면 정부의 기금 지원 등이 한층 원활해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행 남북교류협력법은 지방자치단체를 교류협력의 주체로 규정하지 않는다. 다만 법을 폭 넓게 해석해 지자체의 남북교류 참여는 허용하는 수준이다. 이와 관련 지난해 10월 전국 15개 시‧도지사(자유한국당 소속 대구시장·경북지사 제외)들은 법률 개정을 통한 지자체 차원의 남북교류 활성화를 제안한 바 있다. 법 개정에 앞서 서울시가 치고 나간 모양새다. 



    이미 서울시는 2016년 ‘서울·평양 포괄적 도시협력 구상’을 통해 사회문화교류, 경제개발, 도시 인프라 등 3대 분야 협력 계획을 내놨다. 이를 위해 2018년 남북협력추진단을 신설했고 남북협력기금(400억 여 원)도 조성했다. 

    서울시 남북협력추진단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서울‧평양 도시협력) 사업 계획은 없고 어떤 사업이 제재상황에서 진행 가능한지 논의하는 단계다. 2016년 발표한 3대 분야 10대 과제의 도시협력 구상 대부분이 현 제재 상황에서 할 수 없는 사업”이라면서도 “구멍이나 사잇길이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대북제재로부터 자유로운 틈새 협력 의제가 있다는 뉘앙스다.

    “2007년에도 대동강 준설 지원 논의”

    2018년 제 3차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한 박원순 서울시장(사진 맨 오른쪽) / 평양사진    공동취재단

    2018년 제 3차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한 박원순 서울시장(사진 맨 오른쪽) / 평양사진 공동취재단

    세간의 눈길은 대동강 수질개선 지원에 쏠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8년 9월 평양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박원순 시장에게 대동강 수질 문제를 직접 거론한 바 있다. 앞선 서울시 관계자는 “(대동강 수질개선 지원이) 한강 개발로 세계적 노하우 가진 서울시의 역량과 북한의 필요가 맞는 지점”이라고 밝혔다. 

    대동강은 하저 침전물로 홍수가 잦고 유속이 느려 오염이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대북전문가는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 방북 즈음 대동강 준설 지원이 논의됐다. 기술이 부족한 북한 측의 요구가 컸다”면서 “지류인 보통강 인근에 사는 당 간부들도 원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전문가는 북한정세와 남북관계에 두루 능통한 인물이다. 

    하지만 대동강 수질개선 지원 구상을 두고 전문가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서울시 측 기대와 달리 ‘사잇길’이 될 수 없으리라는 시각이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을 지낸 남성욱 고려대학교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수질 개선에 필요한 기계류는 언제든 군사 목적으로 전용 가능해 제재 위반 소지가 크다”며 “제재 저촉 소지를 두고 한미 간 민감한 현안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일성대 유학 경험이 있는 대북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도 “안보리 결의안 2397호 등 대북제재는 군사 및 경제는 물론 인도주의 협력 분야도 규제한다”며 “수질 개선에 필요한 ‘물 여과 및 정화용 기계류’, ‘펌프’, ‘파이프’ 등도 대북수출금지품에 해당한다”고 꼬집었다. 

    앞선 익명의 대북전문가도 “서울시 측은 (대동강 수질개선을 두고) 제재 면제를 기대하는 듯 하나 결코 그렇지 않다”며 “무리해서 추진할 경우 추후 안보리 개입으로 서울시가 책임을 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3월 12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는 전문가 패널 연례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 활동, 금수품 밀수 등이 제재 위반이라고 명시했다. 보고서는 지난해 9월 방북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동승한 벤츠 차량도 제재 위반 사례로 꼽기도 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칼날이 아직 날카롭다는 방증이다.

    “北, 물자지원 원하는 듯”

    일각에서는 수질 개선이 북한 측이 내건 구실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남 교수는 “북한이 실제 대동강 수질 개선보다 하천변 시설 정비 등 물자 지원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서울·평양 간 도시협력 구상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그간 북한은 대남 교류 창구를 노동당으로 단일화해왔기 때문이다. 

    란코프 교수는 “미국이 대북제재 부문에서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니만큼 서울시도 무기한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앞선 익명의 대북전문가는 “남북한 모두 대화 창구 단일화를 원하는 만큼 서울시도 북한과의 교류는 중앙정부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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