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호

정치 인사이드

‘보수 걱정거리’ 된 자유한국당

불안한 황교안, 보수대통합에 달렸다

  • 이종훈 정치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9-11-18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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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헛발질’ 연속으로 깊어지는 보수의 탄식

    • ‘패스트트랙 가산점’ 반격한 黃…나경원 ‘견제’

    • 공천 찾아 ‘친황’ 전향하는 친박 도돌이표

    • 통합 실패하면 ‘비대위 체제’ 고개

    11월 6일 국회 본청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보수대통합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11월 6일 국회 본청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보수대통합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요즘 보수 지지층의 걱정거리가 늘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들린다. 조국 정국에서 기세를 올리던 그들이다. 덩달아 자유한국당의 정당 지지율도 올랐다. 그런데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 이후 한국당은 완전히 잔치 분위기였다. 따지고 보면 자신들만의 노력으로 이룬 성과도 아니었다. 열심히 장외투쟁을 벌인 것은 인정한다. 원내투쟁도 그 나름대로 성과가 없지 않았다. 

    그런데 나경원 원내대표가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몸싸움의 전면에 나선 의원들에게 ‘공천 가산점’을 주겠다고 나섰다. 조국 전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활약한 의원들에게는 표창장과 상품권까지 수여했다. 황교안 대표는 ‘인재 영입 1호’로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을 지목했다. 공천기획단 역시 친황(親黃)파 일색으로 꾸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보수대통합 제안을 하고 나섰다. 한국당 지도부 투톱의 ‘헛발질’이 최근 보수 지지층 사이에서는 가장 큰 걱정거리다. ‘황교안 리스크 + 나경원 리스크’ 정도를 넘어 ‘황교안 리스크 × 나경원 리스크’ 지경에 도달한 때문이다. 

    나 원내대표 임기는 12월 10일까지다. 그런데 재신임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더 열심히 전면에 나서는 한편, 의원들에게 이런저런 약속을 던지는 식인데, 바로 그게 리스크를 가중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黃 최대 관심사는 나경원 일정’

    4월 25일 국회 의안과 앞에서 패스트트랙 법안 접수를 저지하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4월 25일 국회 의안과 앞에서 패스트트랙 법안 접수를 저지하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요즘 황 대표 최대 관심사는 나 원내대표 일정이라는 소문까지 돈다. 나 원내대표의 행보가 워낙 광폭이다 보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 원내대표 역시 차기 대선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원내대표 찍고 대선후보까지 넘보는 전략이다. 이는 결국 황 대표와 경쟁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나 원내대표가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몸싸움으로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할 의원들을 대신해 출석하겠다고 말한 직후 황 대표가 전격적으로 검찰에 출석한 것도 경쟁 심리의 발동으로 봐야 한다. 경쟁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출혈경쟁도 좋다고 말할 순 없다. 최근 두 사람은 거의 출혈경쟁 양상이다. 그 정점을 찍은 것이 황 대표의 보수대통합 제안이다.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수류탄부터 투척하고 ‘돌격 앞으로’를 외친 격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아무도 말릴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황 대표도 나 원내대표도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하다. 이것은 곧 측근정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때 측근이 중요하다.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사람이어야 하는데, 아부하면서 그른 방향으로 가도 잘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더 나아가 그 방향이 옳다고 끌고 가는 사람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 아닌가 한다. 도대체 누가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를 이렇게 유도하고 있는 것일까. 자발적일까, 아니면 측근들일까. 아니면, 유유상종이라고 둘 모두일까. 둘 모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긴 한다. 본인의 판단과 유사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을 측근으로 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가장 피해야 할 선택이지만, 쉽게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두 사람 주변에 최근 ‘재간둥이’들이 모여들긴 할 것이다. 자칭 ‘국사(國師)’라는 사람도 찾아올 것이고, ‘지략가’를 자처하는 사람도 찾아올 것이다. 하나같이 당신이야말로 대통령감이라며, 대통령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할 것이다. 얼마나 달콤한 제안인가. 하지만 감언이설에 넘어가는 순간, 판단력은 흐려지고 그자들에게 휘둘리기 시작한다. 너무 아집이 강한 것도 문제지만, 너무 귀가 얇은 것도 문제다.

    관료 출신과 보수 기독교 인사

    자유한국당의 1차 인재 영입 대상이던 박찬주 전 육군 대장(왼쪽).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이 3월 2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을 예방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만나 인사말을 하고 있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뉴시스]

    자유한국당의 1차 인재 영입 대상이던 박찬주 전 육군 대장(왼쪽).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이 3월 2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을 예방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만나 인사말을 하고 있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뉴시스]

    황 대표 주변에는 유독 행정관료 출신이 많다. 황 대표의 야심작인 총선기획단에 그들이 포진해 있다. 행시 출신의 박맹우 단장과 추경호 간사, 사시 출신의 김도읍 위원 등이다. 김 위원은 황 대표의 비서실장이다. 박 단장은 당 사무총장이다. 추 간사는 당 전략기획부총장이다. 이들 못지않게 황 대표에게 영향을 미치는 집단은 보수 기독교계 인사들이다. 황 대표는 지난 11월 6일 보수대통합을 제안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지난 10월 3일과 9일, 19일과 25일에 저는 광화문광장에 있었습니다…범(汎)자유민주 세력이 분열하지 말고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염원이었고 또 명령이었습니다.” 

    그가 참석한 광화문 집회를 주최한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총괄대표는 전광훈 목사다. 지난 3월 20일, 대표 선출 직후 황 대표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방문했을 때, 한기총 회장으로서 전광훈 목사는 이런 덕담을 남겼다. 

    “위기적 상황에서 우리 하나님께서 일찍이 준비하셨던 황 대표님을 한국당의 대표님으로 세워주셨다. 제 개인적 욕심으로는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을 이어가는 세 번째 지도자가 돼줬으면 좋겠다.” 

    광화문광장을 장악한 보수 기독교계와 행정관료 출신의 참모, 그들 사이에 황 대표가 있다. 나 원내대표는 여전히 자기 계파가 없다. 원내대표에 당선될 때도 친박계의 지지에 힘입은 바 크다.

    친박계의 그늘

    나 원내대표는 본래 비박계, 친이계였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나경원 4인방’으로 불리던 강승규, 진성호, 안형환, 신지호 전 의원이 그나마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 가운데 강 전 의원은 나 원내대표 비서실장을 맡고 있다. 이외에 나 원내대표가 지난 11월 3일 검찰에 출석할 때 동행한 친이계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와 이만희 원내대변인도 측근으로 통한다. 물론 정용기 정책위의장도 빼놓을 수 없다.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친이계로 불리던 이들이다. 친이계 출신이지만 친박계 지지를 받아 겨우 당선될 수 있었던 나 원내대표, 그래서 존재감 부각과 세력 확장에 애를 쓰는 중이지만 황 대표의 견제까지 더해지면서 최근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도 나 원내대표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 친박계 그늘이다. 당내 세력 기반이 약했던 두 사람으로서는 당직 초기 친박계 지원이 불가피했던 측면이 없지 않다. 아마 친박계를 이용한 다음, ‘팽(烹)’ 해버릴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충수로 부침을 겪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형국이다. 결국 그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처지로 몰려버렸다. 당연히 두 사람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보이는 것은 오직 누가 더 극우인지 입증해 보이려는 것뿐이다. 두 사람이 상호보완재 역할을 해줄 수는 없었을까. 물론 가능했다. 두 사람이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역할 분담을 했더라면 달랐을 것이다. 그런데 소통을 별로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역할 분담도 잘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최근 사건이 하나 터지고 말았다. 나 원내대표가 10월 22일 의원총회에서 ‘패스트트랙 투쟁 당시 고생한 의원들에게 가산점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황교안 대표에게 건의했다’고 말한 직후였다. 바로 다음 날 오전 당 일일점검회의에서 황 대표는 이렇게 지적하고 나섰다. 

    “공천 규칙은 공천관리위원회의 심사와 엄격한 절차가 있는데,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그런 것과 관련해 근거 없이 자꾸 이런저런 말들을 하면 당 전체의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해당(害黨) 행위다.” 

    나 원내대표의 가산점 제안을 해당 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런 논평까지 내놨다. 

    “황 대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한 번만 더 공천 룰 관련 발언이 협의 없이 나갈 경우엔 당무감사위원회 조사에 부칠 수도 있다’고 강하게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한다…겉으로는 나 원내대표와 일절 불협화음이 없는 것처럼 대범하게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초조하게 철옹성을 쌓고 있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신상진 자유한국당 의원도 이렇게 우려했다. 

    “좀 더 긴밀한 협의를 통한 발표, 이런 게 좀 강화되지 않으면 당내 불협화음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풍전등화’ 황교안 리더십

    신상진 자유한국당 의원. [뉴시스]

    신상진 자유한국당 의원. [뉴시스]

    신 의원은 친황계로 분류된 인물이다. 황 대표와 친황계의 생각이 이렇게 부정적이라면, 나 원내대표의 재신임 과정도 그렇게 녹록지는 않을 것이다. 친박계를 사이에 놓고 벌인 경쟁에서도 최근 황 대표에게 밀리는 모습이다. 친박계에서 친황계로 전향하는 의원 숫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 원내대표보다는 황 대표 편에 서는 것이 공천을 받는 데 유리할 것이란 판단이 영향을 미친 탓이다. 

    나 원내대표만 물러나면 만사형통일까. 황 대표로서는 앓던 이를 뺀 기분일 것이다. 대선주자급 정도 되는 의외의 ‘강자’가 새 원내대표로 당선되지 않는다면, 또는 측근을 새 원내대표로 당선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당분간 1인 독주체제로 당을 이끌고 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황교안 1인 체제를 보수 지지층은 어떻게 생각할까. 흡족해할까, 불안해할까. 현재로서는 후자일 것으로 보인다. 

    대표 취임 초기 황 대표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정치 신인이라는 점이 고려돼 그렇게 혹독한 비판을 받진 않았다. 이후 그 나름대로 정치력을 보이는 노력을 기울였고, 서서히 긍정 평가가 늘어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다 최근 일련의 강경한 발언과 독단적 행보가 이어지면서 부정 평가가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대통령도 그러하듯 정당 대표 역시 이런 부침을 겪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재평가를 거친 뒤, 결국 아닌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오면, 때로는 치명적이다. 황 대표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유승민(왼쪽 두 번째) 바른미래당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 전 대표가 11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유승민(왼쪽 두 번째) 바른미래당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 전 대표가 11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첫 번째 관문은 보수대통합, 그중에서도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모임인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과 통합할 수 있느냐다. 호기롭게 통합하자며 선수를 친 마당에 결실을 얻지 못한다면, 황 대표는 리더십에 심각한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황 대표의 보수대통합을 적극 지지하고 나선 친박계 초·재선들도 그때는 다른 길을 찾으려 할 것이다. 황 대표로 총선을 치르기 어렵다는 생각도 확산될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곧바로 선수 교체설이 다시 고개를 들 것이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넘겨 참신한 위원장을 모셔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록 황교안 대표 1인 체제를 구축한다고 하더라도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처지에 놓일지 모른단 생각이다.

    [신동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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