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호

진보·좌파 교육계 文 ‘정시 확대’에 ‘멘붕’

“사교육 시장만 노 난다… 文 믿은 우리가 바보”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19-11-26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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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말 한마디에 수시에서 정시로 급선회

    • 조국 사태로 무너진 공정성, 정시로 만회?

    • 정시 확대되면 고교학점제 수능 대비로 전락

    • 대치동 학원가 장악한 좌파, 제2의 전성시대?

    • 교육 모르는 靑 실장·수석이 교육정책 주도

    • 좌파 교육감들 청와대 반기…靑 “부담 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1월 6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교육 불평등 해소와 입시 만능 경쟁교육 철폐를 위한 고등학교 교사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정시 확대 철회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1월 6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교육 불평등 해소와 입시 만능 경쟁교육 철폐를 위한 고등학교 교사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정시 확대 철회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대증요법만 쓰던 사람도 큰 병 걸리면 대학병원에 가는데 이 정부는 국가의 미래가 달린 교육을, 제대로 된 철학도 없이 여론 눈치만 보며 떠밀려가고 있다.” 

    진보성향 교육계 인사인 S씨는 격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시 선발 비율 확대’ 발언으로 교육계가 충격에 빠졌다. 10월 22일 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대학입시의 정시모집 선발 비율을 40%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대입에서 꾸준히 수시 비율을 높여가던 정부가 하루아침에 ‘정시 확대로’ 방향을 틀자 학생, 학부모, 교사들은 황당함을 넘어 배신감마저 느낀다. 

    S씨는 “서열화와 수월성을 전면에 내세우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진보교육계는 토론과 발표, 모둠수업으로 대표되는 혁신학교 사업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며 “심지어 진보 정권이라는 문재인 정부에서, 아이들이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에 짓눌린 고릿적 시대로 회귀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이러려고 문 대통령을 지지했나, 후회가 막심”이라고 분노했다.

    학종 체제 한 번에 뒤집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사진기자단]

    진보 교육 지지자 K씨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12년과 2017년, 해당 캠프에 교육 공약을 전달한 적이 있다.
    “이미 초등학교에서는 6년 동안 한 번도 시험을 치르지 않고, 초중고 교육과정도 학종(학생부종합전형·수시의 한 종류)에 최적화돼 있는데, 이렇게 갑자기 정시 비율을 높이면 누굴 믿고 아이들을 가르치겠습니까.” 

    현재 다수의 중·고등학교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정성평가 위주의 수행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전국 모든 중학교는 2016년부터 자유학기제를 시행 중이고, 고등학교 역시 ‘창의 융합형 인재 양성’에 중점을 둔 2015 교육과정에 따라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갑자기 정시 선발 비율을 높이면, ‘강남 수험생’ ‘재수생’만 유리해지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일고 있다. K씨는 “정시 확대는 그동안 학종에 맞춰 꾸준히 진화해온 수시 위주의 초중고 교육과정을 한 번에 뒤집어버리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사건은 10월 22일 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대학입시의 정시모집 선발 비율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비롯됐다. 3일 뒤인 10월 25일에도 문 대통령은 교육개혁 관계장관회의에서 “정시 확대를 위한 학종 개선 방안을 11월까지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그동안 줄곧 ‘학종 보완 및 개선’에 무게를 뒀던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입장을 급선회했다. 10월 22일 문 대통령 발언이 있던 날 오후 바로, 부교육감회의를 열어 “그동안 당·정·청은 학종 쏠림이 심각한 대학들, 서울·수도권 일부 대학에 대해 정시모집 수능 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함께 협의해왔다”며 대통령 발언을 뒷받침했다. 정시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의중을 교육부가 사전에 모르지 않았다는 항변과도 같다. 하지만 이러한 유 장관의 행보를 석연치 않아 하는 이들이 있다. 

    앞서 유 장관은 9월 4일 동북아역사재단 심포지엄에서 “수시와 정시 비율이 바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굉장한 오해이고 확대 해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그는 “학종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최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정시 확대로 공정성 만회?

    이를 두고 한 진보 교육계 인사는 “대통령이 교육도 검찰개혁처럼 직접 챙길 심산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대통령 발언 이후 주무 부처인 교육부는 소위 쑥대밭이 돼버렸다. 정시 확대는 문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를 180도 뒤엎는 것인 데다, 교육부의 움직임과도 방향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계는 “문 대통령이 교육부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시 비중 확대를 발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청와대와 교육부는 두 조직의 엇박자에 서로 난감해하는 모습이다. 11월 11일 유 부총리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교육개혁 관계장관회의에서 대통령이 정시 확대 지시를 한 게 아니라 ‘학종에 대한 불신이 너무 높으니 학종의 공정성을 높이는 방안과 함께 일정하게 수능 비율을 상향 조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취지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교육계는 이 같은 변명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전교조 조합원이자 서울 일반고 교사인 H씨는 “하루이틀 전에 알게 된 것을 두고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변명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백년을 내다보고 세워도 모자랄 교육을 1년도 아니고, 며칠 만에 손바닥 뒤집듯 바꾼다는 게 황당할 따름”이라며 씁쓸해했다. 

    한편 정부가 정시 확대라는 교육정책을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진보 교육계 한 관계자는 “대통령조차 교육철학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조국 사태’ 이후 정부가 ‘공정성’ 면에서 타격을 받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이를 만회하고자 학종의 공정성을 운운하며 임시방편으로 급하게 ‘정시 부활’을 들고 나왔다”고 꼬집었다. 진보 진영 교육시민단체들 역시 “총선에 제물로 교육을 바치는 셈”이라며 문 대통령과 청와대를 비판했다.

    고교학점제 제대로 정착할지 의문

    이에 대해 이광호 청와대 교육비서관은 ‘신동아’와의 통화에서 “내부적으로 여론을 분석한 결과 나온 방안일 뿐”이라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학종 비율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학종의 불공정성도 수면으로 떠올랐다. 이에 청와대는 국민의 뜻에 따르고자 정시 확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교육비서관의 말대로, 우리 사회에 학종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즉흥적인 노선 변경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갑작스러운 정시 확대는 공교육 혁신에 역행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정시 확대로 수능이 입시의 중심이 돼버리면 교실은 객관식 오지선다형 정답 찾기 수업에 집중하게 돼 창의적 교육은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이마저 수능에 최적화한 사교육 시장에 밀려 공교육은 용도 폐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무엇보다 고교학점제가 도입하기도 전에 좌초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대두된다. 고교학점제는 고등학생이 적성과 희망 진로에 따라 필요한 과목을 선택해 배우고 기준 학점을 채우면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고교학점제와 수능절대평가(2021년 도입 예정)를 교육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교육부는 오는 2022년 고교학점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해 2025년에는 전면 도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진보 교육계는 이번 수능 확대 발표로 해당 공약들이 다 좌초될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고교학점제와 수능절대평가는 모두 수능의 영향력이 축소돼야 제대로 정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시가 확대되면 고교학점제는 수능 대비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서울 소재 일반고 M교사는 “수능 과목이 지배하는 학교에서 과목 선택권이 핵심인 고교학점제가 과연 설 자리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문 대통령이 정시 확대를 밀어붙여서 수능 영향력을 키운다면 교육 공약은 물 건너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시 전형이 미래 인재 양성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창의교육이 부실화된다는 점 때문이다. 전 세계가 경쟁적으로 ‘교실수업 혁신’을 추구하는 상황에 우리나라만 객관식 답안 맞히기에 집착한다면 그 자체가 퇴행일 수밖에 없다. 

    현행 입시 제도는 오랜 혼란을 거친 결과물이다. 수능 시험의 폐해를 줄이려고 도입된 게 학종과 입학사정관제(학종 전신)다. 그동안 교육부는 학종의 신뢰 회복에 초점을 맞추며 궁극적인 입시 방향을 학종에 맞춰왔다. 지난해에는 각계 의견을 취합해 ‘2022년까지 정시 30% 단계 확대’ 방안을 마련했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입시 부정 의혹이 터지자 13개 대학에 대해 학종 실태조사를 실시하며 “학종 개선을 중심으로 대입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정시 확대 방향을 구체화하겠다”고 돌연 입장을 바꾸자 교육계는 공교육과 입시 혼란의 주범으로 교육부를 지목한다.

    ‘제2의 호황’ 예상되는 사교육 시장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동아DB]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동아DB]

    사교육 업계는 때아닌 호황을 누리게 됐다. 만약 정시 비중이 기존 30%보다 더 높아지면 혜택을 보는 지역은 단연 서울 강남 등 ‘교육특구’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서울대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정시 비중을 50%로 높이면 강남 3구 출신이 84%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벌써부터 대치동이나 분당 등의 대형 학원들은 정시 대비를 위한 수능반과 학종 대비를 위한 내신반을 편성해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EBS, 인터넷강의로 수능 대비를 해왔다면, 앞으로는 소수정예학원, 족집게 과외 등 고액을 지불해야 하는 사교육업체의 배를 불려줄 공산이 크다. 

    교육업체 주식도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인터넷 수능강의 업체 메가스터디교육은 10월 25일 전날보다 5.21% 오른 3만8000원에 장을 마쳤다. 이 회사는 수능강의 시장점유율 1위다. 디지털대성은 전날 대비 2.68% 올랐고, 메가엠디와 비상교육은 전날보다 각각 18.23%, 2.05% 상승했다. 

    한편 대치동에서는 “현재 사교육 시장을 장악한 386 운동권 좌파 세력이 문 대통령 덕을 톡톡히 보게 생겼다”는 얘기가 나돈다. 1993년 첫 수능시험을 계기로 사교육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운동권 출신 좌파 세력은 현재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서울 소재 한 일반고 부장교사는 “현재 공교육으로는 수능 대비가 미흡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사교육 시장으로 빠질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사교육 쏠림 현상과 함께 서울 강남 대치동이나 목동 등 학군 좋은 동네에 대한 집중 현상도 뚜렷해질 전망이다. 벌써부터 강남 집값이 들썩거릴 조짐을 보인다. 상대적으로 지방 학생과 학부모들의 박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게 결판나는 수능의 맹점으로 인해 재수생·삼수생이 늘어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이처럼 정시 확대에 따른 부작용이 불 보듯 뻔한 데도 정부가 ‘눈 가리고 아웅’식의 정책을 편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청와대 안에서 교육 논리가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학종에 문제가 있으면 학종을 개선·보완하면 될 것이지, 왜 정시 확대라는 엉뚱한 처방을 내렸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교육을 모르는 아마추어들이 교육을 주도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진보 교육자들은 현재 청와대에서 교육정책을 주도하는 참모들이 ‘비교육 전문가’라는 점을 꼬집는다. 진보 교육계 S씨는 “참모 대부분이 학력고사 세대라, 국민들의 공정성에 대한 요구를 ‘줄 세우기’ 식의 수능시험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교육 모르는 참모들이 교육정책 주도

    2018년 8월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영란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이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동아DB]

    2018년 8월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영란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이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동아DB]

    또한 현재 진보 교육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현 정권에서 교육문화수석을 두지 않은 게 큰 실수”라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진보 교육계는 문 정부 임기 초반에 문 대통령에게 “교육개혁 강행을 위해 교육문화수석 자리를 만들지 말고, 교육부총리에게 힘을 실어달라”는 요구를 여러 차례 했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 교육문화수석이 교육부를 좌지우지한 탓에 교육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며 진보 교육계의 실망은 커지고 있다. 진보 교육계 지지자 K씨는 “문 대통령을 믿은 우리가 순진했던 것 같다”며 “문 정부 들어 교육이 정치 논리와 시장 논리에 휘둘리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요즘 청와대 주변에선 누가 대통령 국회 시정 연설문에 ‘정시 선발 확대’ 문구를 기재했는지를 두고 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입에서 “정시 확대”라는 구체적인 정책 지시가 나온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는 교육부 장관을 제쳐두고 대통령이 직접 지휘봉을 잡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인사들은 “청와대 실장(김상조) 또는 수석급에서 처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진보 교육계 한 인사는 “문 정부 출범 초기부터 청와대 내 참모와 대선 캠프 출신 참모들이 교육정책 결정을 주도한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나돌았다”며 “이번 연설문 사건으로 청와대에서 교육정책을 주도하는 이들을 짐작할 수 있게 됐다. 분명한 건 청와대 내에서 여전히 교육이 정치 논리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인사의 전언에 따르면 10월 25일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교육관계 장관회의에서는 이전 발언(10월 22일 정시 확대 발언)보다 구체적인 숫자(정시 비율)가 언급될 뻔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판에 수석 몇 명이 “대통령 입에서 한번 나온 수치는 되돌리기 어렵다”며 극구 말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시 확대 비율 40%는 어떻게 산출된 수치일까. 지난해 국가교육회의 대입개편 공론화위원회가 내놓은 조사 결과를 보면, 설문에 참여한 시민참여단은 2022학년도 대입 정시 비중을 45% 이상으로 높이는 안에 가장 많은 지지(52.5%)를 표했다. 해당 결과를 토대로 정부는 2022학년도 대입 정시 비율 상한선을 30%로 정했다. 

    국가교육회의 한 관계자는 “정시 비율 상한선은 30%로 정해졌지만, 공론화 당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수치가 45%인 만큼 이번에 문 대통령은 30%와 45%의 중간값인 37.5%를 기준 삼아 40%로 상향한다는 발언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문 대통령의 정시 비율 확대 발언 직후 교육계는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청와대를 정면 비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청와대의 시각은 딴판이다. 심지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10월 30일 YTN 방송에 출연해 지난해 공론화 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국민의 정서상 정시 선발 비율을 45%까지도 확대 가능하다”고 발언해 또 한 번 논란을 샀다. 이날 인터뷰에서 김 실장은 “정시 확대가 일부 강남 부유층 학생들에게 유리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전국 학생들의 특수한 사정에 맞게 다양한 전형이 제공되는 길을 찾아주려고 하고 있다”며 선문답식 해명을 내놨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대통령의 말처럼 정시 선발 비율을 높이면 우리 교육은 이제라도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다. 안타깝게도 이에 대해 선뜻 대답하기 힘든 실정이다. 더욱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주요 정책을 조변석개(朝變夕改·아침저녁으로 뜯어 고친다)하는 방식으로는 교육에서 미래를 찾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 소재 한 일반고 교사는 “정부가 원칙 없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교육 공약은 누더기가 됐다. 설령 조국 사태가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불러왔다 하더라도 그 방향과 속도를 정략적으로 결정해선 안 된다”며 “여론에 따라 교육정책을 바꾸는 건 지나친 포퓰리즘”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청와대에 맞불 놓은 진보 교육감들

    청와대와 진보 성향 교육계는 서로 마주 보고 달려오는 기차처럼 부딪치기 일보 직전이다. 그 사이에 교육부가 끼어 있다. 진보 교육계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협의회)는 이미 청와대를 향해 전면전을 선포했다. 11월 4일 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정시 선발 비율 확대가 가져올 학교 교육과정 파행을 우려한다”며 “정시 확대 중단하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성명에는 17개 시도교육감 중 12명의 교육감이 이름을 올렸다. 충청(김병우)·대구(강은희)·제주(이석문)·울산(노옥희)·충청(김지철)·강원(민명희)·전북(김승환)·광주(장휘국)·서울(조희연)·인천(도성훈)·전남(장석웅)·경북(임종석)으로, 진보는 물론 보수 성향 교육감까지 일제히 한목소리를 냈다. 협의회의 사정에 정통한 서울시교육청 한 인사의 전언이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교육감들이 ‘성명’을 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정시 확대에 대한 반대 의견을 비공식적으로 청와대에 전달할 수 있음에도 공개적으로 견해를 드러낸 것은 문 대통령을 향해 강력하게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성명에 담긴 내용도 중요한데, 시도 지역 초중고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 입장에선 더는 물러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듯하다. 교육감들로서는 청와대에 ‘맞불’을 놓은 격이다.” 

    협의회가 학종을 고수하는 이유는 “고교 교육 정상화에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차라리 학종에 내신 반영 비율을 높이거나, 학종 교과영역인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수업시간 중 수행한 활동 내용을 대거 반영하면 교실 수업이 한결 활기차질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문 정부의 든든한 지원자로 여겨졌던 전교조 등 진보 성향의 71개 교육시민단체도 최근 들어 청와대에 반기를 들었다. 11월 28일 이들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정시 확대는 낡은 수능 체제로 되돌아가는 공교육 포기 선언이자 교육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졸속 행정”이라며 “공론화 과정을 거쳐 어렵게 이룬 사회적 합의와 대입 4년 사전예고제의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실천교육교사모임 역시 “이번 사태를 야기한 청와대 비서진 내 책임자를 경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청와대는 긴장하는 눈치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진보 교육감들의 반기가 부담된다”고 털어놓았다.

    교육계도 자성해야

    11월 14일 대전 서구 만년고등학교에서 수능시험이 시작되기 전 학생들이 책을 보고 있다. [뉴스1]

    11월 14일 대전 서구 만년고등학교에서 수능시험이 시작되기 전 학생들이 책을 보고 있다. [뉴스1]

    교육계 내부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이 학종을 불신하는 이유, 수시보다 정시를 선호하는 이유를 근본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동안 고등학교에서는 학종을 ‘명문대 보내기’ 수단으로만 활용해온 게 사실이다. 여기에 ‘내 자식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문대에 보내겠다’는 일부 계층의 이기심이 작동하면서 학종에 대한 불신은 커졌다. 

    서울 일반고 교사 Y씨는 “지금도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1% 학생들 위주로 동아리 활동이나 봉사활동, 수상 실적 등을 허위로 작성하거나 부풀리는 일이 이뤄지고 있다. 상위권 학생에 대한 ‘몰아주기’ 행태 또한 서로 알아도 눈감아주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털어놓았다. 

    국민들은 ‘조국 사태’로 인해 나라가 두 쪽으로 쪼개진 것도 모자라 교육계마저 정시 확대를 놓고 양비론을 펼치는 행태에 한숨을 쉴 수밖에 없다. 교사 H씨는 “수시, 정시 비율을 놓고 소모적인 논쟁을 할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교육개혁을 통해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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