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호

사바나

건강기능식품에 빠진 2030

“요즘 같은 불황에 몸이라도 건강해야죠”

  • 윤혜진 자유기고가

    imyunhj@naver.com

    입력2020-01-0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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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6조 원 규모로 성장한 건기식 시장

    • 콜라겐, 히알루론산, 노니 등 이너뷰티 인기

    • 해외 직구로 전 세계 유명 제품 구입

    • 정해인, 방탄소년단 모델로 20·30대 공략

    • 인터넷 후기 무조건 믿으면 안 돼

    ‘사바나’는 ‘회를 꾸는 , 청년’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컨버전스 뉴스랩(News-Lab)입니다. ‘사바나’ 기자들은 모두 밀레니얼 세대에 속합니다. 커보니 ‘취업이 바늘구멍’이 돼버린 경제 현실을 목도했습니다. ‘우리 때만큼 노력 안 한 탓’이라는 윗세대의 ‘꼰대질’도 감내했습니다. 이제는 청년의 삶을 주어(主語) 삼아 윗세대가 ‘불편할 법한 이야기’를 꺼내놓으려 합니다.

    [GettyImage]

    [GettyImage]

    # 대학 졸업반인 김다은(여·24) 씨는 집에 가는 길에 학교 앞 H&B(헬스&뷰티) 스토어에 자주 들른다. 유튜브 화장품 리뷰에서 봐둔 립밤 하나를 고른 뒤, 이내 건강기능식품(건기식) 매대로 몸을 돌렸다. 김씨는 마시는 콜라겐과 가르시니아 성분이 함유된 슬리밍(다이어트) 제품 사이에서 한참 고민하다, 1+1 행사 중인 슬리밍 제품을 사들고 즐거운 마음으로 매장 문을 나섰다. 콜라겐은 이미 홈쇼핑에서 눈여겨봐둔 제품으로 구입할 생각이다. 

    김씨는 “취업 면접에 대비해 외모에도 신경 써야 하는데, 자격증 공부하느라 그럴 틈이 없다”며 “아쉬운 대로 피부 관리와 체중 조절에 도움을 준다는 건강기능식품을 꼭 챙겨 먹는다”고 말했다. 

    # 30대 직장인 최은석(남·32) 씨의 회사 책상 위에는 건강기능식품이 수두룩하게 놓여 있다. 건기식의 전통 대표 주자로 꼽히는 홍삼, 종합비타민, 루테인, 유산균 등이다. 점심 식사 후 최씨는 알약을 한 움큼 먹는다. 최씨는 “처음에는 집에서 챙겨 먹고 나왔는데, 그러다 보니 자꾸 빼먹는 날이 많아서 아예 눈에 잘 보이는 책상 위에 두고 먹고 있다”며 “젊어서부터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귀찮아도 잘 챙겨 먹으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이너뷰티 제품으로 건강과 외모 동시 관리

    최근 건기식을 구매하는 20·30대가 늘고 있다. 홍삼, 프로바이오틱스, 비타민, 루테인 등 기존의 대표 건기식은 물론이고 콜라겐, 히알루론산, 스피룰리나, 노니 등 이름도 생소한 제품들이 20·3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제품들의 공통점은 건강과 함께 외모까지 챙길 수 있는 ‘이너뷰티 제품’이라는 것. ‘몸속 건강을 채워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의미의 이너뷰티는 전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특히 콜라겐의 인기가 무섭다. 콜라겐은 피부 진피층의 90% 이상을 구성하는 성분으로, 40세 이후 몸속에서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에 일찌감치 콜라겐을 식품 혹은 약으로 보충해주려는 이가 많다. 피부 관리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인식에 힘입어 콜라겐 구매 연령대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덕분에 콜라겐 시장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다. 2017년 228억 원에서 2019년 366억 원으로 급격히 늘었다. 최근 남자 아이돌 그룹 ‘뉴이스트’의 멤버 황민현이 방송에서 피부 관리를 위해 콜라겐을 먹고 있다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일명 ‘김사랑 콜라겐’으로 유명한 뉴트리의 ‘에버콜라겐’은 2014년 론칭 이후 지금까지 500만 병이 팔렸다. 누적 매출액만 1800억 원. 에버콜라겐은 국내 최초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2중 기능성을 인정받은 저분자콜라겐펩타이드를 함유하고 있다. 먹는 콜라겐의 핵심은 얼마나 체내에 흡수가 잘되는지이기 때문에 저분자일수록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준혁 뉴트리 마케팅팀 대리는 “젊어서부터 콜라겐을 섭취해 ‘동안 피부’를 유지하려는 이가 많다”며 “자사 몰 매출 기준 2030 구매 비율이 49%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인기 품목인 히알루론산은 피부 진피층의 콜라겐과 엘라스틴 조직 사이를 채워주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수분을 피부 속에 저장해 피부를 촉촉하게 만들어주는 기능을 한다. 과거에는 콜라겐이나 히알루론산 모두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 스타일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체내 흡수율을 높이는 식품 형태의 제품이 인기다.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20·30대에게는 클로렐라보다 더 많은 단백질을 함유한 스피룰리나와 해독 효과가 있는 노니 열매 제품도 반응이 좋다. 특히 노니 가루로 만든 노니 주스는 가수 산다라 박, 해외 유명 모델 미란다 커 등이 즐겨 마시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해외 직구로 건기식 싸게 구매

    2019년 10월 올리브영 홍대점은 20·30대 고객층을 잡고자 건강기능식품 코너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CJ올리브네트웍스 제공]

    2019년 10월 올리브영 홍대점은 20·30대 고객층을 잡고자 건강기능식품 코너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CJ올리브네트웍스 제공]

    2019년 건기식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3.5% 성장한 4조5821억 원이다. 시장이 커지며 건강기능식품 유통 채널도 다양해졌다. 특히 20·30대의 구매 비중이 높아진 데는 온라인 채널의 성장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가 2018년 11월 발간한 ‘2019 건강기능식품 시장 현황 및 소비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터넷몰 구매 건수 비중이 40.6%로 가장 높고 대형마트(18.9%), 네트워크 마케팅(8.7%), 약국(8%)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인터넷 사용에 능숙한 20·30대는 ‘아이허브’나 ‘아마존’ 등 글로벌 유통 플랫폼을 통해 해외 제품을 직접 구매하기도 한다. ‘해외 직구를 통해 건강기능식품을 구매해본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한 20대는 32.8%, 30대는 41.2%에 이른다. 여행이나 어학연수 등을 통해 해외에서 판매되는 제품을 먼저 접한 뒤 한국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제품을 구매해 계속 복용하는 이도 늘고 있다. 

    직장인 윤병대(33) 씨는 6년 전 호주 어학연수 시절 처음 접한 건기식 제품들을 지금도 애용하고 있다. “최근 몸이 부쩍 안 좋아져서 평소 잘 이용하는 사이트에서 종합비타민과 프로바이오틱스를 직구했다”며 “국내산보다 가격도 싸고, 원료도 좋다고 해서 믿고 먹고 있다”고 밝혔다. 

    항공사 승무원인 박모(34) 씨는 “호주, 뉴질랜드 등 건강기능식품으로 유명한 나라에 가면 캐리어에 건기식을 가득 담아올 때가 많다”며 “지인들이 부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 대부분이 이미 해외 직구로 제품을 사본 경험이 있어 현지 가격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했다. 

    H&B 스토어의 성장세도 20·30대 건기식 구매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올리브영·롭스·랄라블라 등에는 간식을 고르듯 건기식을 쇼핑하는 젊은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H&B는 딱딱한 분위기의 약국과 달리 편의점처럼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마음껏 제품을 고를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업계 1위인 올리브영은 최근 매출 톱 3위인 서울 홍대점을 새로 단장했는데, 20·30대 고객층을 잡기 위해 건기식 코너를 이너뷰티존으로 개편하고 가성비 좋은 1만~2만 원대 상품을 대폭 늘렸다.

    방탄소년단 내세운 비타민C, 품절 대란

    레모나x방탄소년단 광고 포스터.  [경남제약 제공]

    레모나x방탄소년단 광고 포스터. [경남제약 제공]

    건기식에 대한 젊은 층 수요가 늘어나면서, 제약사는 물론 식품업체들도 건기식 시장에 뛰어들었다. 제품 제형(劑形)과 디자인을 바꾸거나 인기 모델을 기용해 20·30대의 공감을 얻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산수유, 흑마늘 등 건강즙으로 유명한 천호엔케어는 2019년 2030세대를 겨냥해 만든 제품 ‘하루활력’에 덧붙여 ‘하루활력 그대로 담은 깔라만시’ ‘하루활력 그대로 담은 석류’ 등을 내놓았다. 빙그레도 2019년 6월, 여성 건강 전문 브랜드 ‘비바시티’로 건기식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기존의 가공식품 노하우를 살려 피부 보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스틱형 젤리 3종과 면역력을 키워주는 구미젤리 3종을 내놓았다. 

    젊은 층에게 어필하는 모델을 기용하거나 제품의 디자인적 요소를 강화해 이미지 쇄신에 나서는 업체도 많다. KGC 인삼공사는 2018년 봄, 정관장 대표 제품인 ‘홍삼정 에브리타임’ 모델로 배우 정해인을 기용해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경남제약은 1983년 출시한 비타민C ‘레모나’의 새 얼굴로 방탄소년단을 내세웠다. 2019년 11월 내놓은 ‘방탄소년단X레모나’ 패키지는 국내 품절 대란을 넘어 해외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중장년층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기존 오프라인 업체들도 20·30대를 타깃으로 하는 새로운 마케팅을 모색하고 있다. 방문판매 제품 중 판매량 1위인 건기식 ‘헤모힘’ 판매처인 애터미는 2018년 처음으로 토크콘서트 형식의 ‘2030 클래스’를 열었고, 간편결제 시스템인 애터미페이도 도입했다. 이윤지 애터미 커뮤니케이션팀장은 “20대 회원이 2017년 6만 명에서 2019년 12만 명으로, 30대 회원은 같은 기간 10만 명에서 18만 명으로 크게 증가했다”며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와 교육 자료, 글로벌 소식 등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술자리에서 홍삼 스틱 나눠 먹어

    40·50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건기식이 20·30대의 필수품으로 바뀐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팍팍한 삶 속에서 몸이라도 건강해야 한다는 방어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30대 자영업자인 최모 씨는 “예전에는 술자리에서 숙취 해소 음료를 먹으면 ‘남자가 뭐 유난을 떠느냐’고 야유를 받곤 했는데, 요즘은 다 같이 홍삼 스틱을 나눠 먹는다”며 웃었다. 이어지는 최씨의 말이다. 

    “밤늦게까지 장사하다 보면 몸이 금방 축나요. 회사 다니는 친구들도 힘들긴 매한가지죠. 한 친구는 ‘얼마 전 마흔셋밖에 안 된 부장이 정리해고됐는데, 다음 차례는 자기가 아니겠느냐’고 걱정하더라고요. ‘회사에서 쫓겨나도 다른 일을 하려면 건강해야 한다’며 그렇게 자기 몸을 챙겨요.”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들다는 취업, 고된 업무와 어설픈 인간관계로 자충우돌하는 사회 초년생, 내 집 마련이 힘들어 결혼을 망설이는 젊은 남녀 등 이 땅의 모든 청춘은 오늘도 내 몸을 지키고자 건기식으로 눈을 돌린다. 

    황혜선 성균관대 소비자가족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건기식이 중장년층의 기력 보충제 정도로 여겨졌다면, 요즘은 마케팅 단계에서부터 ‘어떻게 하면 건강과 젊음을 동시에 유지하며 활기차게 살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춘다”며 “그러다 보니 이용 연령대도 점점 어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요즘 젊은이들은 경기가 어렵고,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도 자주 놓이다 보니 믿을 건 자신뿐이라는 생각이 더욱 공고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건기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인터넷 후기가 화려하다고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 SNS에서 인기를 끈 다이어트용 방탄커피도 2018년 식약처가 실시한 점검에서 여러 업체가 허위 과장 광고로 적발됐다. 커피 속 지방이 일시적으로 포만감을 주고 식욕을 억제할 수는 있지만, 장기간 마시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져 동맥경화나 혈관 손상, 심혈관 질환 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경고를 제대로 고지한 업체는 많지 않았다. 먹방으로 유명한 유튜버 스타 벤쯔도 자신이 대표로 있는 건기식 회사 제품의 기능을 과장 광고해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황혜선 교수는 “건기식을 SNS로 구매할 경우에는 제조원이 어디인지, 판매 허가를 제대로 받은 제품인지 알기 힘들어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보상을 받기 힘들다”며 “식약처나 소비자보호원 같은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제품의 질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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