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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관광객 각자가 ‘방역 대장’… 안전 관광 하세요”

[인터뷰] '철통 방역' '경제 혁신' 두 마리 토끼 쫓는 원희룡 제주지사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20-06-08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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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인 무비자 입국 제한은 방역 첫 단추

    • 공항·항만이 국경선, ‘국경 방역’ 개념 동원

    • 강남 모녀 손배? 졸지에 자가 격리된 사람만 40여 명!

    • ‘포스트 코로나’…산업 체질 개선, 혁신 기회로

    • ‘올레 8코스’ 산들바람, 이제 가상관광으로 만나볼 것

    • 질(質)적 성장 패러다임 전환, ‘더 큰 제주’ 실현

    “방역은 늘 최악을 대비해야 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한 뒤 경제 회복을 앞당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머뭇거리다가 상황이 나빠져 최악의 관광도시로 전락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관광도시 수장으로서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중국인 무비자 입국 제한을 건의하는 건 쉽지 않았을 거 같다는 물음에 원희룡(56)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강력한 국경방역 개념을 동원했다”며 부연하는 대목에선 전시(戰時)의 결연함이 묻어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제주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여느 도시도 그러하겠지만, 관광산업과 1차 산업이 핵심인 제주도의 충격은 더 컸다. 그러나 제주도는 정부에 앞서 코로나19 대응 단계를 ‘심각’으로 끌어올렸고, 지난 3월 서울 강남 확진자 모녀의 제주 관광이 문제가 되자 1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강수’를 뒀다. 공항과 항만에는 ‘국경 수준의 방역조치’를 단행했다. 그래서일까. 황금연휴 기간(4월 29일~5월 5일) 19만6138명이 제주를 찾았을 때에도 추가 확진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지역 내 감염 사례도 없었다. 5월 8일 원 지사와의 인터뷰도 자연스레 코로나19로 시작했다.

    대형 마스크 착용한 돌하르방

    제주국제공항 청사를 나오면 마스크를 착용한 대형 돌하르방이 관광객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배수강 기자]

    제주국제공항 청사를 나오면 마스크를 착용한 대형 돌하르방이 관광객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배수강 기자]

    - 제주에 오니 대형 마스크를 한 돌하르방이 인상적이다(제주국제공항 청사 출구와 제주도청 정문에 있는 돌하르방 마스크 앞면에는 ‘마스크 착용’이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서는 끊임없이 반복 노출해 주의를 환기시켜야 한다. 일일이 관광객을 따라다니며 ‘마스크 착용해라’ ‘손 씻어라’고 할 순 없지 않나(웃음). 방심하는 순간 사고가 난다.” 

    - 원 지사는 지난 1월 정부에 무비자 입국 제한을 요청했다. 당시 정부는 무비자 입국 제한에 소극적이었다. 

    “그렇다. 중국과의 관계나 제주 관광산업을 고려하면 무비자 입국 제한은 지나친 거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결단을 내려야 했다. 방역은 늘 최악을 대비해야 한다. 질질 끌다가 최악의 관광도시로 전락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경제 회복을 앞당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1월 27일 대응 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하고 2월 2일 정부에 무비자 입국 일시 중지를 건의했다. 정부에는 인천국제공항 등에서도 입국 제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동시에 공항과 부두에 발열 감시 카메라 설치를 건의해 처음으로 카메라 2대씩 설치했다. 다른 공항과 비교하면 한 달 반가량 빠른 조치였다. 사태 초기 단행한 코로나19 방역의 첫 단추였다.” 



    - 2월 중순부터는 대구 신천지교회 확진자가 급증했고, 2월 21일 대구를 다녀온 도민이 첫 확진자로 판정됐는데. 

    “우리도 신천지 신도 전수조사를 해야 했다. 신천지 측은 교회가 집단으로 매도되고 신도들의 신상 노출로 인한 2차 피해를 걱정했다. 그래서 조사원들에게 비밀 유지 각서를 받고 일체의 신상 노출 여지를 없앤 뒤 교회 책임자들에게 ‘조사장에 입회해서 한번 보시라’고 했다.”

    안전관광 있어야 관광수익 기대

    - 교회 측은 진정성을 받아들였나. 

    “그렇다. 뺏거나 싸울 일 없이 오히려 교회 관계자들이 신도 명단을 주면서 조사를 도왔다. 연락이 안 되는 신도들, 예를 들어 군 입대했거나 해외 체류, 혹은 입원 중인 신도 등을 직접 수소문해 줘 이틀 만에 640여 명의 신도에 대한 전수조사를 끝낼 수 있었다. 이후 신천지 교육생 100여 명도 조사했고, 감시 기간에도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신천지에 대한 조사를 빨리 마치고 다른 쪽 방역에 집중할 수 있었다.” 

    - 지난 3월 서울 강남 확진자 모녀를 상대로 제기한 1억 원 손해배상소송은 전국적 뉴스가 됐다. 

    “돌이켜 보면 초기 대처와 신천지교회 조사에 이은 세 번째 ‘방역 포인트’였다. 모녀로 인해 도의 행정력이 낭비된 건 둘째 치더라도, 모녀가 방문한 업소들은 모두 며칠씩 문을 닫았다. 졸지에 자가 격리를 당한 분만 40명이 넘었다. 이들 피해를 합치면 1억 원은 크지 않은 액수다. 판단은 사법부의 몫이지만 방역에 협조하는 도민들의 억울한 분노를 대변하는 건 도정의 몫 아닌가.” 

    그의 말처럼, 제주도의 코로나19와 관련한 단호한 대처는 정부 내에서도 평가를 받는다. 무비자 입국 일시 중지와 국내선 발열 감시 카메라 설치, 공항에서 렌터카를 타기 전까지 걸어가면서 검사하는 ‘워크스루 선별진료소’ 설치, 기내 음식·음료 제공 제한 등 다양한 ‘제주식 방역 모델’은 이제 전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워크스루 선별진료소에서는 2명의 확진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 방역 대책이 굉장히 촘촘한 느낌이다. 

    “연간 1500만 명이 방문하는 국제관광도시다. 방역도 국제도시 기준에 맞춰야 한다. 제주는 섬인 만큼 공항과 항만이 곧 국경이고, 그래서 처음부터 ‘국경 방역’ 개념을 동원한 거다. 안전이 있어야 경제가 있고, 안전 관광이 담보돼야 관광 수익도 생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안전한 관광 모델을 준비할 테니 관광객들도 각자가 ‘방역 대장’이라고 생각하고 검사에 협조하면서 철저히 감염 예방 수칙을 지키는 ‘방역 관광’을 해야 한다.” 

    - 제주식 안전관광 모델은 어떤 건가. 

    “축제장이나 행사장, 관광지에서 감염증 의심 환자가 생기면 바로 대중과 분리해 검사하고, 곧바로 자가 격리할 수 있도록 여행 스케줄과 항공편을 조정해서 지원하는 식이다.” 

    앞서 제주도는 5월 6일 ‘100일간의 코로나19 방역 현장기록’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이에 따르면, 도내 확진자는 13명으로 모두 대구나 해외 방문자, 가족 접촉자였다. 관광객 19만6000여 명이 몰린 연휴 기간에도 확진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터뷰 이후인 5월 9일 서울 이태원 소재 클럽에 다녀온 30대 여성이 양성 판정(14번째 확진자)을 받았다. 

    - 방역도 중요하지만 제주는 지난해 한일 갈등에 이어 코로나19로 관광산업이 큰 타격을 받았는데. 

    “그렇다. 감귤 등 1차 산업과 관광산업은 제주 경제를 지탱하는 기반 산업이지만 외부 요인에 무척 민감하다. 무비자 입국 제한으로 중국인 관광객도 크게 줄었고. 당장은 1조8000억 원의 경영안전자금을 투입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장기적으로 제주의 산업구조를 다변화해 경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코로나19가 한편으론 제주 산업구조의 체질 개선과 혁신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젊은 인재들과 가상관광 콘텐츠 개발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5월 5일 제주국제공항을 찾아 발열 감시 카메라를 점검하고 있다.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5월 5일 제주국제공항을 찾아 발열 감시 카메라를 점검하고 있다.

    - 혁신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미는? 

    “세계 유명 관광지들, 예를 들어 미국 뉴욕이나 이탈리아 베네치아 등에선 가상관광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제 비대면, 원격 관광 쪽으로 제주 관광 콘텐츠를 적극 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제주올레 8코스’(서귀포시 월평마을에서 시작해 대평포구에 이르는 해안길)를 클릭하면 유명인과 함께 산들산들 바람이 부는 해안길을 걷는 것과 같은 가상관광 콘텐츠 말이다. 젊은 인재들을 키우고 이들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 제주도는 지난해 ‘제주더큰내일센터’를 개소하는 등 신성장 동력으로 인재 육성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렇다. ‘더큰내일센터’는 2년간 청년들을 집중 육성해 창업 훈련을 하는 인력 훈련센터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시대 관광을 준비해야 한다. 브랜드와 자연 자원이 좋은 제주에 인재가 더해지면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 젊은 인재들이 창업을 하거나 외부 기업과 협업하는 활동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 센터는 향후 제주 인재와 산업 생태계를 키우는 ‘성장점’이 될 거라고 본다. 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세계시장에 나서면 제주도에 있다는 건 제약이 될 수 없을 거다.” 

    - 2010년대 들어 급격한 인구 유입으로 제주는 인구 70만 시대를 앞두고 있다(1월 기준 69만6553명). 상하수도, 교통 문제 등 도시 수용력에 한계가 있을 거 같은데. 

    “예상보다 10년 이상 앞선 비약적인 성장으로 수용력이 포화 상태에 달한 건 사실이다. 도시 인프라는 도민 사회의 공감대와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지난해 말 준공한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 가동을 기점으로 생활쓰레기 문제는 안정화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광역음식물쓰레기 처리시설과 제주하수처리장 현대화 사업 등도 계획대로 추진해 제주의 환경 수용력을 높여나가겠다. 물론 필수 인프라 시설 설치에 따른 보상 문제를 둘러싼 어려움이 많았지만 도지사로서 지고 갈 짐이라고 생각한다.”

    “왼쪽 뺨이든 오른쪽 뺨이든 맞을 수밖에…”

    - 도정을 맡은 지 6년이 됐다. 

    “성장정책 패러다임을 양이 아닌 질(質)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래를 위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면서 난개발이나 환경 훼손을 방지하고 제주 핵심 가치인 청정 환경을 지켜왔다고 자부한다. 물론 개발에 따른 갈등과 이해관계 불일치 같은 전환기의 성장통도 있었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미래 전략산업을 육성하는 기반을 다지는 일도 중요했다. 여러 현안에 있어 결정을 내리는 지사는 어느 한쪽 입장만 대변할 수 없는 위치다. 왼뺨이든 오른뺨이든 이마든 맞을 수밖에 없다.” 

    -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건강한 토론과 건전한 비판을 수용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도민 통합과 ‘더 큰 제주’를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제주 발전을 견인해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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