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호

유엔군은 과연 세균전을 실시했나 [김학준의 6·25재조명⑤]

‘생물학무기’ 사용 주장은 근거 없거나 조작된 것

  • 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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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20-06-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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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덧 광복 이후 최대의 민족 참사였으며 오늘날까지도 한민족 모두에게 큰 부담을 안기는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했다. 이 계제에 이 전쟁을 둘러싼 수많은 쟁점 가운데 16가지만 가려 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쟁점 : 유엔군은 과연 세균전을 실시했나

    6·25전쟁 중 수원에서 북진하는 
유엔군 탱크부대. [동아DB]

    6·25전쟁 중 수원에서 북진하는 유엔군 탱크부대. [동아DB]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쟁이 확대되고 길어지던 시점인 1951년 2~3월 소련과 중공은 그리고 그들에 뒤따라 북한은 유엔군이 세균전을 실시하고 있다고 ‘폭로’하면서 유엔군을 맹비난했다. 미국은 그 ‘폭로’가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은 모략 선전이라고 맞받아치면서, 진상을 가리기 위해 국제적십자사에 조사를 요청하자고 제의했다. 그들은 이 제의를 거부했다. 

    그 이후 많은 연구서가 출판됐다. 어떤 것은 공산 측의 주장에 기울어졌고 어떤 다른 것은 공산 측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최근의 연구는 밀튼 라이튼버그(Milton Leitenberg)가 1998년과 2000년 각각 발표한 논문이다. 옛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문서처에서 1998년 1월 12건의 문서을 찾아낸 필자는 이 문서에 근거해 중공과 북한 및 소련이 주장했던 미국의 ‘생물학무기 사용’은 근거가 없거나 조작된 것이었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쟁점 : 휴전을 어느 쪽이 지연시켰나

    1951년 7월 휴전회담이 시작되면서 국제사회는 휴전 또는 종전이 빨리 성립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회담은 예상 밖으로 길어져 무려 2년을 끌었다. 인적 희생과 물적 손실이 커졌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되자, 휴전을 어느 쪽이 지연시켰느냐는 논쟁이 일어났다. 유엔군 측에서는 공산군 측에, 그리고 공산군 측은 유엔군 측에 각각 책임을 돌렸다. 

    이 논쟁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좌파’ 역사학자들은 트루먼 행정부에 책임을 물었다. 트루먼 행정부가 소련을 비롯한 공산 세계의 ‘비인도주의적’ 성격을 세계적으로 부각하기 위해, 포로송환 문제가 제기됐을 때 ‘전원 송환’이 원칙인데도 ‘포로 개개인의 자유의사를 확인하자’는 안을 앞세움으로써 회담을 지연시켰다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결단인 ‘반공포로 석방’의 정당성을 우리가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미국의 제안이 인도주의에 입각한 것은 확실하며, 이것을 거부한 공산 측에 문제가 있었다. 그동안 지연된 휴전회담이 1953년 3월 스탈린이 죽으면서 급격한 진전을 보인 사실은 스탈린이 휴전회담 진전을 가로막은 장본인이었음을 방증한다.



    쟁점 : 6·25전쟁은 베트남전쟁의 전례였나

    1960년대 말 이후 베트남전쟁이 격화하면서, 특히 미국의 베트남전쟁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가 심화됐고 그 과정에서 6·25전쟁에 대해 관심이 새롭게 커지는 가운데 6·25전쟁을 베트남전쟁의 전례로 파악하는 저술들이 출판됐다. 영국의 역사학자 칼룸 맥도널드(Callum MacDonald)의 ‘베트남전쟁에 앞선 코리아전쟁’이 대표적 사례다. 

    그 저서들은 예외 없이 코리아에서의 전쟁과 베트남에서의 전쟁 사이에는 닮은 점이 많다는 상사론(相似論)을 제시했다. 독립운동가 호찌민이 이끄는 북(北)이 식민지 세력에 협력한 사람들로 구성된 남(南)을 상대로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독립운동가 김일성이 이끄는 북이 식민지 세력에 협력한 사람들로 구성된 남을 상대로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한 것과 닮았다는 것이다. 코리아에서 북이 전개한 민족해방운동을 미국을 비롯한 외세가 가로막았듯이, 베트남에서 북이 전개한 민족해방운동을 역시 미국을 비롯한 외세가 가로막았다고 그 저서들은 지적했다. 

    이 상사론을 제시한 대표적 정치인이 1972년 실시된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입후보한 조지 맥거번(George McGovern) 연방 상원의원이다. 그는 그러한 논리에서 베트남으로부터 미군을 철수시켜야 하며 코리아에서도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제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 상사론에는 문제가 있다. 베트남의 경우 남쪽에서도 호찌민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았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코리아의 경우 남쪽에서는 김일성을 지지하는 사람은 토착 공산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비록 대한민국 정부의 시책에 반대하거나 불만을 가졌다고 해도 김일성을 지지하거나 받아들일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것이 베트남과 코리아의 큰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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