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호

[윤채근 SF] 차원이동자(The Mover) 11-1

수메르 고대 문명의 비밀

  • 윤채근 단국대 교수

    .

    입력2020-07-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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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월한 이야기꾼 윤채근 단국대 교수가 SF 소설 ‘차원 이동자(The Mover)’를 연재한다. 과거와 현재, 지구와 우주를 넘나드는 ‘차원 이동자’ 이야기로, 상상력의 새로운 지평을 선보이는 이 소설 지난 회는 신동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편집자 주>

    1

    “세 종류의 이동자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야외 테라스 난간을 등지고 앉은 닥터Q가 심홍색 노을로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선예림이 근무하는 대학 인근 카페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 소음이 닥터Q의 음성을 빨아들여 그 안에 담긴 중요성을 희석시키는 듯했다. 예림이 옆에 앉은 공민서를 힐끗 쳐다본 뒤 그에게 물었다. 

    “셋이 오붓하게 만난 것도 오랜만인데,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와인 한 모금을 삼킨 닥터Q가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우선 은둔형 이동자가 있죠. 선 교수님과 민서 씨가 만난 이탈자가 그런 경우입니다. 이들은 조용히 숨어 행성의 역사를 관찰만 하겠죠? 따라서 크게 위험하진 않습니다.” 



    민서가 불쑥 끼어들었다. 

    “하지만 성격이 바뀌었어요.” 

    고개를 크게 끄덕인 닥터Q가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그렇죠. 제가 말씀드릴 두 번째 부류로 변화한 겁니다. 바로 차원 증식자! 이들은 소란스럽게 움직이며 시공간에 개입하고 결과적으로 차원을 증식하는 데 일조합니다. 그 의도와 무관하게 위험하므로 추격자의 주요 제거 대상입니다.” 

    예림이 상대의 잔에 와인을 따르며 말했다. 

    “제가 만난 이탈자는 은둔자와 증식자 사이의 경계에서 망설이는 것 같았어요. 결국 두더지에게 포섭됐지만.” 

    잔을 들어 올린 닥터Q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바로 그 두더지가 세 번째 종류의 이동자입니다. 이들은 차원을 마구 증식해 시공간에 혼란을 초래하는 데서 멈추질 않죠. 행성을 적극적으로 파괴하고, 또 그 행위를 끝없이 반복합니다. 차원이 자꾸 늘어나 시공간이 엉킬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론 차원 자체가 지워지거나 함몰되겠죠?” 

    셋 사이에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한숨을 내쉰 예림이 물었다. 

    “그럼 우린 뭘 해야 되나요? 아니, 구체적으로 뭘 할 수 있을까요?”

    2

    흑해 수위가 급격히 높아진 건 신들이 불러온 비정상적인 강풍 탓이었다. 바람은 바닷물을 남쪽으로 몰아와 대홍수를 일으켰고, 큰 배에 올라탄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류가 몰살됐다. 신들이 창조한 최초의 고등 문명이 그렇게 사라지자 대지에는 깊은 침묵만이 감돌았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거대한 물살이 빠져나간 자리에 지류가 모여 강물을 이뤘고, 강가에 모여든 생존자들은 멀리 동쪽에서 이주해 온 이방인들과 힘을 합쳐 다시 문명을 일궈냈다. 그들은 그렇게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에 자리 잡고서 훗날 수메르라 불릴 고대 문명을 꽃피웠다.

    3

    “지구 역사에서 차원이 분기된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씀이세요?” 

    놀란 표정의 예림이 닥터Q에게 물었다. 

    “물론 추정이지만, 그런 지점들은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차원이 최초의 원본이 아니라 증식된 차원이라는 데엔 동의하셨죠? 그럼 그렇게 증식된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예림이 민서를 바라봤다. 민서가 말했다. 

    “당연하죠. 우리의 현재 차원이 튕겨 나온 지점, 그러니까 분기점을 찾으면, 적어도 우리 세대에서만큼은 더 이상의 차원 증식을 막을 방법도 찾을 수 있다고 믿어요.” 

    예림이 맥주로 목을 축인 뒤 민서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 지점, 예를 들면 어디인가요?” 

    닥터Q를 한번 바라본 민서가 완전히 어둠에 잠긴 하늘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고대 수메르 문명이 비교적 최근에 생긴 분기점 중 하나일 수 있어요.” 


    4

    신들의 징벌을 두려워한 수메르 사람들은 신전 건립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들은 신들의 분노가 빚은 대홍수의 참사를 기록해 후손에게 남겼고, 후대 제사장들은 신들을 모신 지구라트에 대중을 모아놓고 주기적으로 홍수 이야기를 하며 참회를 요구했다. 여러 도시로 쪼개진 신정사회에서 인간이 신들에게 도전할 가능성은 아예 봉쇄돼 있었다.


    윤채근
    ●1965년 충북 청주 출생
    ●고려대 국어국문학 박사
    ●단국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저서 : ‘소설적 주체, 그 탄생과 전변’ ‘한문소설과 욕망의 구조’ ‘신화가 된 천재들’ ‘논어 감각’ ‘매일같이 명심보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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