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호

“영끌 말고 청약? 서울은 이미 로또… 3기 신도시 당첨도 보장 못해”

[사바나] “장관님 주택 청약 안 해보셨죠?” ‘영끌’ 30대 목소리 들어보니…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0-09-02 18: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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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아파트 당첨자 최저 청약가점 60.6점 … 30대에겐 불가능한 수치

    • 부양가족 둘 있는 39세 무주택자도 청약가점 52점에 그쳐

    • 청약 과열로 ‘신혼부부 특별공급’ 경쟁률 100대 1 훌쩍 넘는 상황

    • “영끌 말고 분양 받으라” 훈수 두기에 앞서 30대 현실부터 알아보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제 40대 지인 한 명은 청약통장 가입 기간이 길고 아이도 있어요. 청약가점 50점이 넘습니다. 그런데도 최근 서울 상계동 롯데캐슬 청약에 실패했어요. 30대 보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돈을 마련하는 일)’ 대신 청약을 기다리라니, 어이가 없네요. 정부가 현실을 1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무주택 세대주 장철민(34) 씨가 한 얘기다. 

    장씨를 분노하게 만든 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8월 31일 발언이다. 김 장관은 이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출석해 “30대가 ‘영끌’해 집을 사는 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앞으로 서울과 신도시 공급 물량을 고려해 기다렸다 합리적인 가격에 분양받는 게 좋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장관 말대로 서울 및 신도시 주택을 ‘합리적인 가격에 분양’받으려면 청약에 당첨돼야 한다. 아파트 일반 분양은 신청자의 청약가점 순으로 결정되며, 청약가점은 무주택 기간·청약통장 가입 기간·부양가족 수 등을 바탕으로 산정한다. 이때 무주택 기간은 청약통장 가입자가 만 30세가 되는 날부터 계산한다. 나이가 많고 부양가족 수가 많을수록 청약가점이 높아지는 구조다. 청년은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청약 경쟁에서 낙오한 30대의 눈물

    부동산전문 리서치업체 리얼투데이 조사에 따르면 7•8월 서울지역 아파트단지 당첨자의 최저 청약가점 평균은 60.6점이었다. 과연 30대가 이 정도 점수를 확보할 수 있을까. 30대 끝자락에 있는 39세 무주택 세대주 김모 씨 사례를 살펴봤다. 그는 24세에 청약통장에 가입했고 자녀가 한 명이다. 무주택 기간(20점), 청약통장 가입 기간(17점), 부양가족 수(15점)를 토대로 한 청약가점은 52점. 당첨권에 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장씨 상황은 더 나쁘다. 현재 청약가점이 26점에 불과하다. 그는 “나는 일반분양으로 아파트를 사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장씨는 결혼기간 7년 이내 부부에게 우선권을 주는 ‘신혼부부 특별공급’에 그나마 희망을 두고 있다. 그런데 최근 청약경쟁이 치열해지며 이 또한 당첨이 어렵긴 마찬가지가 됐다. 7월 14일 분양한 서울 성북구 ‘롯데캐슬 트윈골드’ 신혼부부 특별공급 경쟁률은 133대 1에 달했다. 주택 마련 꿈을 이루려고 매일 한국감정원 청약홈 사이트에 접속하고 한 달에 200만 원씩 저축하고 있는 그는 최근의 높은 청약 경쟁률과 부동산값 급등에 좌절감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30대가 ‘영끌’해 집을 사는 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에요. 청약가점이 낮아 일반분양 시장에선 경쟁이 안 되는데, 집값은 하루가 다르게 뛰어 오르지 않습니까. 김 장관이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무주택자 이진우(31) 씨 얘기다. 이씨는 내년 결혼을 앞두고 서울 노원구 4억 원대 20평형 아파트를 ‘영끌’해 매수하려 했다. 하지만 눈여겨본 아파트 값이 6개월 새 1억 원 가까이 올라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이후에도 서울에서 예산 범위에 드는 아파트가 나오면 바로 매수하려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고 대출규제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손 놓고 있다가 영영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3기 신도시 당첨, 누가 보장하나

    이씨 같은 30대는 최근 부동산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6월 전국에서 거래된 아파트 1만1106호 중 3601호(32.4%)를 30대가 구입했다. 김 장관은 이들의 ‘패닉 바잉(Pannic Buying)’을 멈추고자 앞선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을 모르는 지적으로 30대 분노에 불만 지른 격이 됐다. 

    “김 장관 말은 일단 집을 사지 말고 기다렸다가 향후 분양될 3기 신도시나 서울지역 아파트를 노려보라는 건데, 거기서는 30대가 당첨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나요. 불확실한 미래를 보고 오랜 기간 내 집 없이 불안정하게 살아가라는 말 아닙니까.” 

    이씨 항변이다. 

    내년 하반기 분양이 예정된 3기 신도시(경기 고양 창릉‧과천‧남양주 왕숙‧부천 대장‧안산 장상‧하남 교산 및 인천 계양)에는 주택 약 6만 호가 건설된다. 이 물량 전체가 공공분양으로 공급돼 신혼부부 및 생애최초 특별공급 비율이 민간분양에 비해 높게 정해질 전망이다. 그렇다 해도 경쟁이 몰리면 당첨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8월 말 공공분양한 경기 성남시 산성역 자이푸르지오 청약 경쟁률은 최소 20대 1(59㎡)에서 최대 76대 1(84㎡)에 달했다. 

    “3기 신도시 공공분양도 고려하고 있죠. 하지만 경쟁률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 않나요. ‘영끌’해 서울에 집을 구하는 게 가능하다면 그때까지 기다리지는 않을 겁니다.” 

    직장생활 5년차 정유석(30) 씨 얘기다. 이용만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3기 신도시 경쟁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공공분양 아파트는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게 보통이다. 그렇다면 청약 경쟁이 치열할 개연성이 크다. 특별공급 물량이 많다 해도 비슷한 조건의 30대 다수가 경쟁하면 결국 운으로 승자가 정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아파트 공급량 늘려야 ‘영끌’ 사라진다

    30대의 ‘영끌’ 주택 매수를 줄이려면 서울 내 아파트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찬웅 공인중개사는 “30대 상당수는 서울 밖에 아파트 분양 물량이 나와도 청약 통장을 쓰려 하지 않는다”면서 “추후 자녀교육 등을 고려해 서울로 집을 옮기려 할 때 집값 차이로 진입 자체가 불발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씨는 “30대가 왜 ‘서울’에 집을 사고 싶어 하는지 정부가 생각해주면 좋겠다. 신도시 건설뿐 아니라 서울 내 재개발‧재건축에도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서울에 공급을 늘리려면 재건축‧재개발 활성화가 중요하다. 정부는 공공재건축 방안을 통해 서울에 공공주택을 늘리겠다지만 초과이익환수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이를 재건축의 키를 쥐고 있는 재건축 조합이 긍정적으로 해석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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