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호

홍차 한 잔에 럼주 반 모금, 소소하게 즐기는 '홈카페' 레시피

김민경 ‘맛 이야기’ ㉖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0-09-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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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긋한 차 한 잔은 일상에 휴식을 선물한다. [GettyImages]

    향긋한 차 한 잔은 일상에 휴식을 선물한다. [GettyImages]

    가끔 편의점에 들르면 다채로운 음료 종류에 눈이 바쁘다. 헛개차, 마테차, 루이보스, 깔라만시 등엔 어느새 익숙해졌다. 히비스커스, 레몬그라스, 라벤더, 어성초, 아로니아처럼 다소 낯선 재료를 활용한 차는 아직 낯설다. 팥, 호박, 콩 같은 의외의 재료로 만든 차에도 눈길이 간다. 

    다양한 음료를 선택할 수 있는 건 좋은데 어째 차가 다 차가운 종류뿐이다. 아침, 저녁에는 서늘하고 감염병으로 인해 마음이 차가울 때이니만큼 집에서 따뜻한 차를 즐겨보기로 한다. 

    손쉬운 방법은 온라인 쇼핑으로 차를 구해 맛보는 것이다. 꽃차와 허브차는 눈과 코를 무척 즐겁게 한다. 은은한 매화, 색이 고운 히비스커스와 당아욱, 기품 있고 풍미도 진한 홍화, 어쩐지 아련한 해당화, 화사한 메리골드…. 우리 국화인 무궁화를 차로 가공한 것도 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캐모마일, 기분 전환이 되는 박하, 두고두고 마셔도 좋은 재스민, 푹 자는 데 도움이 되는 레몬밤, 다이어트에 좋다는 마테 등도 있다.

    과일청으로 만드는 초간단 블렌딩차

    말린 과일로 차를 만들면 새콤달콤한 맛을 즐길 수 있다. [GettyImages]

    말린 과일로 차를 만들면 새콤달콤한 맛을 즐길 수 있다. [GettyImages]

    한 발 나아가 과일을 말려 차로 즐기는 방법도 있다. 식품 건조기가 있으면 편하다. 오븐이 있다면 낮은 온도에서 오래오래 구워 말려도 된다. 전자레인지에 과일을 잘 펼쳐 조금씩 데우듯 말리는 방법도 있다. 신선한 과일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과일청 건더기의 물기를 뺀 다음 말려도 된다. 잎차를 우릴 때 마른 과일을 함께 넣으면 은은하고 달큰한 향이 차맛을 더해준다. 집에서 하는 초간단 블렌딩이랄까. 

    잎차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라면 맛볼 만한 게 한층 많다. 즐겨 마시는 찻잎과 잘 씻은 오렌지 껍질, 시나몬스틱, 정향(클로브)을 뜨거운 물에 같이 우린다. 상큼하고 알싸한 향에 기분이 좋아지고, 몸도 산뜻해진다. 비 오는 날, 어쩐지 몸이 처지는 날에 좋다. 오렌지 대신 다른 감귤 종류를 넣거나, 시나몬 대신 계피를 써도 괜찮다. 단, 계피는 향이 세니 조금만 넣자. 



    홍차를 조금 진하게 우린 다음 따뜻하게 데운 사과주스를 부어 마실 수도 있다. 따뜻할 때 설탕을 조금 넣어 먹는다. 진하고 단 사과 향에 새콤한 맛이 어우러진 쌉쌀한 차로 영국에서는 오처드 티(orchard tea)라고 부른다. 

    밤에는 되도록 차를 마시지 않지만 독주 럼(rum)을 넣은 차라면 한밤이라도 반갑다. 찻주전자에 홍차를 우리는 동안 큼직한 잔에 휘핑크림을 한입 크기 정도 짜고, 설탕을 솔솔 조금만 뿌린다. 그 위에 럼을 반 모금 정도 붓는다. 따뜻하게 우린 홍차를 한 컵 살살 부어 마신다. 친구들과 모였을 때 함께 마시면 말이 술술 나오고, 잠이 솔솔 오는 차다. 

    밀크티는 주로 홍차로 만들지만 보이차 그중에도 숙차로 만들면 잘 어울린다. 조금 독특한 밀크티를 먹고 싶다면 물과 우유를 1대 3 정도로 섞고, 홍차, 시나몬스틱, 정향(클로브), 카르다몸을 넣고 끓인다. 카르다몸이 없으면 빼도 된다. 따뜻한 차에 설탕을 넉넉히 넣어 마시면 ‘차이 티(chai tea)’랑 비슷한 맛이 난다.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는 차 마시는 일을 ‘진하고, 달고, 적당히 뜨겁고, 무거운 이슬을, 혀끝에 한 방울씩 떨어뜨려 맛보는 것은 한가한 사람만이 누리는 운사(韻事)다’라고 했다. 우리는 한가해서 차를 마시는 게 아니라, 차를 마시는 동안만이라도 한가함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차 한 잔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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