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호

단쓴단쓴 단맵단맵, 미각을 깨우는 마법 주문

김민경 ‘맛 이야기’ ㉘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0-09-2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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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도 숨은 캄캄한 밤, 가로등 없는 길을 운전하다 보면 눈에 띄는 것은 오로지 중앙선뿐이다. 하늘과 땅의 경계는 어둠에 뭉개져 구분이 안 되지만 샛노란 선만은 길을 따라 뻗었다 굽었다 하며 나를 이끌어준다. 까만 아스팔트 위에 노란 선처럼 보색을 쓰면 눈에 확 띈다. 이케아(파랑과 노랑) 로고의 강렬함,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빨강과 초록의 조화 역시 서로 상대 색을 추켜세우며 어울리는 멋이 있다.

    디저트 성공 공식 ‘단쓴’

    길쭉길쭉하게 썬 오렌지 껍질을 설탕물에 조리면 맛있는 간식이자 풍미 넘치는 요리 재료가 된다. [GettyImage]

    길쭉길쭉하게 썬 오렌지 껍질을 설탕물에 조리면 맛있는 간식이자 풍미 넘치는 요리 재료가 된다. [GettyImage]

    맛에서도 ‘보색 효과’는 톡톡히 살아난다. 말차나 녹차가루를 그대로 입에 넣으면 떫고 쓰고 텁텁하다. 그런데 이런 가루맛이 단맛과 어우러지면 새로운 풍미가 새록새록 돋는다. 최근 녹차의 쌉싸래한 맛을 더한 과자나 아이스크림 종류가 여기저기서 화제가 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녹차 몽쉘통통, 녹차 오예스, 녹차 브라우니, 녹차 빼빼로, 녹차 투게더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제품을 먹어 보면 확실히 쌉싸래한 맛이 난다. ‘단짠’이 입맛을 돋우는 끼니 요리 공식이라면, ‘단쓴’은 디저트가 가진 하나의 계보다. 

    ‘단쓴’이 어느 날 유행처럼 생겨난 것은 아니다. 티라미수 위에 달지 않은 카카오가루를 새카맣게 뿌리는 것, 찐득하고 달콤한 치즈케이크를 에스프레소와 함께 먹는 것도 역시 단맛과 쓴맛의 찰떡궁합 덕이다. 달고 쓴 맛의 매력을 가진 것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말린 오렌지 껍질 조림이다. 오렌지 껍질을 설탕에 조려 말린 것으로, 오렌지의 진한 향과 쫄깃쫄깃함이 매력적이다. 게다가 달콤한 첫맛, 쌉싸래한 끝맛까지 모두 갖고 있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오렌지 과육은 맛있게 먹고 남은 껍질을 길쭉길쭉하게 썬다. 마멀레이드 만들 듯 가늘게 썰기보다는 좀 도톰하게 썰어야 씹는 맛이 난다. 오렌지 껍질 흰 부분은 도려내지 말고 그대로 둔다. 손질한 껍질은 물에 담가 우르르 한번 끓인다. 물을 갈아 우르르 끓이기를 두 번 반복한다. 총 세 번 끓이는 것이다. 이러면 흰 부분의 과도한 쓴맛이 빠진다. 

    이제 쓴맛을 줄인 오렌지 껍질에 물과 설탕을 같은 양으로 넣고 끓인다. 오렌지 껍질, 물, 설탕 무게가 1.5:1:1 비율이 되도록 하면 된다. 설탕이 녹으면 불을 약하게 줄여 뭉근하게 조린다. 시럽 양이 반 이하로 줄고, 오렌지 껍질에 반짝반짝 윤기가 돌면 불을 끈다. 이후 오렌지 껍질을 채반에 널어 꾸덕꾸덕하게 말리면 완성이다.



    쫀득하고 새콤달콤한 오렌지 껍질 조림

    오렌지 껍질 조림에 초콜릿 코팅을 입혀 만든 ‘단쓴’ 디저트. [GettyImage]

    오렌지 껍질 조림에 초콜릿 코팅을 입혀 만든 ‘단쓴’ 디저트. [GettyImage]

    좀 더 정통적인 레시피는 오렌지 껍질에 설탕 시럽을 부어 절이고, 다음날 이 시럽을 다시 끓여 오렌지에 부어 절이는 과정을 3~5일 동안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면 오렌지 풍미가 훨씬 진하게 남는다.

    쫀득하고 새콤달콤하면서 근사한 모양을 가진 오렌지 껍질 조림은 쓸모가 많다. 과자처럼 집어 먹고, 술안주로 곁들이고, 잘게 썰어 빵이나 과자 만들 때 섞고, 아이스크림이나 시큼한 요거트에 섞어 먹으면 맛있다. 단맛이 적은 다크초콜릿을 녹여 오렌지 껍질 조림에 묻혀 굳히면 ‘오랑제트(orangette)’라는 유명한 초콜릿 과자가 된다. 


    밀가루에 생강가루를 섞어 만든 귀여운 사람 모양 과자 ‘진저맨 쿠키’. [GettyImage]

    밀가루에 생강가루를 섞어 만든 귀여운 사람 모양 과자 ‘진저맨 쿠키’. [GettyImage]

    맛의 대비가 매력적으로 드러나는 식재료가 하나 더 있다. 생강이다. 그토록 맵고 쓰고 아무리 씹어도 섬유질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생강은 사실 단맛의 절친한 친구다. 얇게 썰어 설탕에 조려 만든 편강을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편강의 달면서도 은근히 아린 맛과 매운 향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귀여운 사람 모양의 ‘진저맨 쿠키’도 그렇다. 밀가루와 생강가루를 섞어 달콤 매콤하게 만든 이 과자는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다. 

    생강은 청으로 만들어 먹는 경우가 많지만, 잼으로도 즐길 수 있다. 생강청을 거르고 난 생강에 설탕을 넣고 보글보글 끓여 믹서에 곱게 갈면 된다. 은은하되 알싸한 향이 그대로 살아 있는 생강잼은 쿠키나 빵에 도톰하게 얹어 먹으면 좋다. 우유에 듬뿍 넣고 끓여 뜨거울 때 후후 불며 먹는 맛도 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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