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호

도나스, 고로케, 사라다빵이 주는 기쁨

김민경 ‘맛 이야기’㊴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0-12-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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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가루빵을 튀긴 뒤 설탕을 듬뿍 묻혀 먹는 시장표 ‘도나스’. 최근 레트로 감성을 타고 인기를 끌고 있다. [GettyImages]

    밀가루빵을 튀긴 뒤 설탕을 듬뿍 묻혀 먹는 시장표 ‘도나스’. 최근 레트로 감성을 타고 인기를 끌고 있다. [GettyImages]

    일전에 꽈배기를 배달해 먹은 적이 있다. 유난스럽게 무슨 꽈배기까지 배달하느냐며 친구에게 던진 핀잔이 내 입을 채 떠나기도 전, 감탄이 터져 나왔다. 혹시 현관문 뒤에서 누가 꽈배기를 튀기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따끈하고 폭신한 맛이 놀라웠다. 

    레트로 감성을 타고 도시 곳곳으로 ‘도나스’가 돌아왔다. 우리말 표기법에 맞게 쓰자면 ‘도넛’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눈앞에서 갓 튀겨, 설탕 묻혀 먹는 따끈한 시장의 맛을 표현하기에 ‘도나스’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도넛은 한 손에 커피를 들고 한입 달콤하게 즐기는 도시적인 맛을 떠오르게 한다. ‘고로케’를 ‘크로켓’이라고 부르기 힘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자글자글 폭신폭신 노르스름

    달걀처럼 동그랗고 쫄깃한 빵 안에 팥소가 가득 들어 있는 태극당 찹쌀도나스. [태극당 홈페이지]

    달걀처럼 동그랗고 쫄깃한 빵 안에 팥소가 가득 들어 있는 태극당 찹쌀도나스. [태극당 홈페이지]

    튀김은 운동화도 맛있게 만드는 조리법이라는 농담이 있다. 달군 기름에 튀김 재료를 넣으면 수분이 빠지면서 자글자글 기포가 튀어 오른다. 재료의 조직 속으로 뜨거운 공기가 침투하며 튀김이 부풀어 오른다. 먹음직스러운 색으로 노르스름하게 익어가며 기름이 배어든다. 수분은 빠지지만 스며든 기름 덕에 촉촉해진다. 

    쌀가루 혹은 밀가루 반죽으로 튀겨 만든 빵은 세계 여기저기에서 오랫동안 먹어 왔다. 우리나라도 웬만한 전통시장과 한때 번성했던 도시 중심가 상점 거리에 가면 유명한 도넛 가게가 하나씩은 다 있다. 노점일지라도 짧게는 20~30년, 길게는 60~70년의 세월을 살아낸 곳이 보인다. 행여 주인은 바뀌었을지언정, 기름 솥은 쉬지 않고 끓어온 장소들이다. 


    큼직하기로 유명한 인천 신포시장 꽈배기. [신포국제시장 홈페이지]

    큼직하기로 유명한 인천 신포시장 꽈배기. [신포국제시장 홈페이지]

    ‘도나스’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게 쫄깃한 빵 안에 팥소가 들어 있는 찹쌀도나스다. 보통 큰 달걀처럼 동그랗고 매끈한 모양새지만, 경기 수원 ‘추억의 도너츠’ 같은 집은 이 도넛을 일부러 못난이처럼 쭈글쭈글하게 만들어 오히려 인기를 끌기도 한다. 



    ‘도나스’계의 2인자는 타래처럼 꼬아놓은 꽈배기다. 꽈배기는 반죽에 따라 쫀득한 것, 포슬포슬한 것,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인 것, 곁 면에 결이 있는 것 등으로 종류가 다양하다. 밀가루와 쌀가루 반죽 비율, 발효 정도 등에 따라 이런 질감 차이가 생긴다. 

    ‘도나스’ 가게에 가면 으레 맛있는 속재료에 빵가루를 포슬포슬 붙여 튀긴 ‘고로케’(크로켓)도 맛볼 수 있다. ‘고로케’ 속에는 마요네즈와 케첩으로 무친 ‘양배추 사라다(샐러드)’를 비롯해 ‘카레 사라다’, 잡채 등을 넣는다. 폭신한 ‘도나스’ 사이에 오이, 양배추, 당근 등을 넣고 마요네즈와 케첩으로 맛을 더해 샌드위치처럼 팔기도 한다.

    전국 각지 가볼 만한 ‘도나스’ 가게들

    대전 성심당의 카레고로케. 포슬포슬 씹히는 빵가루와 카레의 조화가 매력적이다. [성심당 공식 인스타그램]

    대전 성심당의 카레고로케. 포슬포슬 씹히는 빵가루와 카레의 조화가 매력적이다. [성심당 공식 인스타그램]

    서울 제기동, 오장동, 불광동, 영천동 등에 있는 역사 깊은 시장 골목에 가면 실력파가 만든 맛좋은 ‘도나스’를 만날 수 있다. 인천 신포시장에선 큼직하기로 유명한 꽈배기를 파는 ‘신포꽈배기’가 가볼 만하다. 부산 자갈치시장과 진시장에도 다양한 종류의 도넛을 푸짐하게 늘어놓고 파는 가게가 있다. 강원 속초에서는 ‘코끼리분식’에서 파는 도넛이 유명하다. 강릉의 ‘싸전’ ‘바로방’ 등은 고로케를 먹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곳이다. 

    흔히 먹는 ‘도나스’보다 훨씬 크고 폭신하면서도 쫀득한 맛이 나는 중국식 도넛을 맛보려면 경기 수원 ‘이가꽈배기’에 가보자. 70년 역사를 가진 경북 포항 ‘시민제과’를 비롯해 전국 각지의 유서 깊은 제과점에서도 제법 맛있는 ‘도나스’를 판다. 대전 ‘성심당’, 군산 ‘이성당’, 춘천 ‘대원당’, 광주 ‘궁전제과’, 서울 장충동 ‘태극당’ 등의 화려한 진열대에는 늘 ‘도나스’와 ‘고로케’가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음식평론가 브리야 사바랭은 “새로운 요리의 발견은 새로운 별의 발견보다도 인류 행복에 더 많이 기여한다”고 했다. 나는 튀김빵 즉, ‘도나스’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경북 포항 시민제과의 사라다빵. 튀긴 빵 사이에 케첩으로 맛을 낸 ‘사라다’가 듬뿍 들어 있다. [시민제과 공식 인스타그램]

    경북 포항 시민제과의 사라다빵. 튀긴 빵 사이에 케첩으로 맛을 낸 ‘사라다’가 듬뿍 들어 있다. [시민제과 공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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