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호

이건희 회장이 똑같은 양복 다섯 벌을 가진 까닭[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⑨]

  •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1-03-1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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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시 출근? 비서실까지 난색을 표한 ‘7‧4제’

    • “쓸데없이 책상에 오래 앉아 있지 마라”

    • 고정관념 파괴한 의식개혁 운동

    • 몸을 바꿔야 생각이 바뀐다

    • “방에서 화장실갈 때 최단 코스로 걸어본 거죠”

    • 같은 양복만 다섯 벌…“어디서든 통하니까”

    이건희 회장이 2014년 반도체 30주년을 맞아 기념 서명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건희 회장이 2014년 반도체 30주년을 맞아 기념 서명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혁명은 선언이나 메시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실천이 있어야 한다.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 선언의 실천으로 쏘아올린 신호탄은 전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 조정인 ‘7·4제’(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였다. 

    7·4제는 프랑크푸르트 선언 직후인 1993년 7월 7일 일본 도쿄 회의에서 떨어진 ‘명령’이었다고 한다. 삼성JAPAN 대표이사를 지낸 조용상은 도쿄에서 지시를 내릴 때 현장에 있었다.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부터 생각한 듯했습니다. 그런데 회장의 도입 검토 지시에 경영진은 미적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굳이 한다면 할 수 있습니다’ 혹은 ‘도입에 시간이 좀 걸립니다’라면서 말이죠. 그런데 회장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당장 시작해!”라고 지시했고, 전격적으로 시행됐습니다.” 

    오전 9시 출근, 저녁 6시 퇴근에 맞춰져 있던 직원들의 ‘생체시계’를 갑자기 바꾼다는 게 쉬운 일인가. 아침 시간 10분, 20분 차이가 얼마나 큰가. 당시만 해도 밤늦게까지 사무실에서 남아 일하는 게 모범 사원의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그런데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오후 4시 퇴근이라니. 

    조용상의 말처럼 시행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오죽하면 비서실부터 “직원들에게 1시간씩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고 있으니 4시 퇴근을 5시로 해 달라”고 읍소(?)했지만 회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후 4시로 하되 시간외수당도 그대로 지급하라는 거였다.




    비서실까지 난색을 표한 7·4제

    박근희 전 삼성생명 부회장(현 대한통운 부회장) 말이다. 

    “어느 날, 비서실 이학수 재무팀장이 신경영점검상황실에 들어서더니 당시 조영철 인사팀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7·4제를 시행했느냐’고 묻더라고요. 조 팀장이 아니라고 했는지 이 팀장은 ‘왜 안했느냐? 회장님 지시사항이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벼락같이 화를 냈습니다. 이 팀장이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은 처음 봤습니다.”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은 당시 조영철 인사팀장과 직접 대화를 나눴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의 말이다. 

    “어느 날 조 팀장이 아주 난처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황 이사, 생각을 좀 해봐요. 인천 사는 직원들은 아침 7시까지 수원공장에 가야 하는데 그 시간에는 지하철이 다니지 않아요. 출근시간에 맞추려면 전부 통근 버스를 해줘야 합니다. 회장은 일찍 퇴근해 학원가서 공부하라고 하지만 일찍 퇴근하는 사람들이 다 학원으로 간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공장은 또 어떻게 돌립니까. 회장께 신중하게 검토해달라다고 말씀드려주세요’라고.” 

    황영기는 고민 끝에 회장을 찾아가 “현장의 애로사항들이 하나둘이 아니니 준비를 좀 한 다음에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회장은 “조영철이가 그러더냐?” 되묻고 즉각 조 팀장을 호출하더니 “회장인 내가 임직원들 생각 바꿔보겠다고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인사팀장이 안 되는 이유만 늘어놓는가”라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황영기는 “당신이 내린 조치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한 답답함보다는 신경영을 하겠다는 열의를 부하 직원들이 몰라주는 것 같아 무지하게 섭섭했던 거 같았다”고 전했다.


    “쓸데없이 책상에 오래 앉아 있지 마라”

    왜 이건희 회장은 개혁의 첫 조치로 출퇴근 시간을 바꿨을까. 겉보기에는 러시아워를 피해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일찍 퇴근해서 자기 계발에 힘쓰라는 배려 측면이 있다. 생전의 이 회장 말이다. 

    “저녁 6시 넘어서까지 뭐 하러 회사에 앉아 있나? 4시, 5시에 일과를 끝내고 운동을 하든지, 친구를 만나든지, 어학 공부를 더 하든지 해봐라. 가족과 최소 일주일에 두 번 저녁을 먹으면 자연히 가정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윗사람이 퇴근해야 하는데’ 하며 안 나가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직원들이 안 나가면 부서장은 책임을 져야 한다. 이건 당분간 명령이다.” 

    짧은 말이지만 ①윗사람 눈치 보기를 깨라는 귄위주의 타파에 대한 주문 ②자기 계발에 힘쓰지 않으면 급변하는 시대에 뒤처진다는 인재중심 경영에 대한 의지 ③가정이 안정돼야 일도 잘할 수 있다는 가정 중시 경영 의지가 읽히는 메시지다. 

    실제로 이건희 회장은 7.4제 실시를 ‘T자형 인재’를 키우려고 한 조치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책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고인은 우선 인재 유형을 ‘I’자형과 ‘T’자형으로 나누면서 I자형은 한 가지 분야에만 정통하고 다른 분야는 아무 것도 모르지만 T자형은 다른 분야까지 폭넓게 알고 있는 종합적인 사고 능력을 갖춰 산업이 융 복합되는 시대에 더 경쟁력이 있을 거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삼성이 처음 7.4제라는 파격적인 출퇴근 제도를 실시했을 때 다른 기업 직장인들은 물론이고 우리 임직원들조차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들었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느냐‘ ’제대로 지켜지기나 하겠는가‘ 정말 말도 많았다. 일리 있는 반대의견에 부딪히면서 사실 나도 흔들렸지만 여러 의구심을 무릅쓰고 본래의 의지대로 강행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 사원들에게 자기개발의 시간을 만들어주어야겠다는, 내 나름대로 의지가 확고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자기개발을 강조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T자형 인재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삼성이 앞장서서 그 본보기를 보이고 뒤이어 그것이 사회로 확산되면 그만큼 우리 사회에 T자형 인재가 많아지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국가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게 나의 믿음이다.‘

    그가 T자형 인재를 강조하게 된 것에는 나름 배경이 있다. 반도체사업 초기에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을 큰 돈을 들여 대거 영입해 임원자리에 앉혔지만 자기 분야에만 몰두해온 스페셜리스트이다 보니 종합적인 상상력이 부족하고 자기 일에만 충실한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임원급들이라면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안목을 가진 인재가 진정 기업에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 회장은 줄곧 74제를 ‘T'자형 인재를 키우는 인재육성 전략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7·4제에는 보다 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 삼성에서 30년 이상 인사전문가로 활약한 노인식 전 삼성경제연구소 인적자원개발담당 사장은 “취지의 본질은 일하는 방식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출퇴근 시간을 바꾸자는 게 아니었다는 걸 역설적으로 7·4제를 폐지하자고 건의할 때 느꼈다”며 이렇게 회고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지만 누구도 감히 건의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숙의 끝에 결국 ‘도입 10년 정도 됐으니 좀 바꾸면 어떻겠습니까’ 했더니 회장은 의외로 너무나 쉽게 ‘누가 바꾸지 말라고 그랬나’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7·4제의 본뜻은 8시간만 제대로 일하자는 거였다, 쓸데없이 오래 앉아 있는 게 일 잘 하는 것처럼 보는 관행을 없애자는 말이었다. 몇 시 출퇴근이 뭐가 대수인가. 비효율과 낭비를 없앨 수 있다면 폐지하라’고 하셨죠.” 

    노 전 사장에 따르면 회장의 ‘근무 효율’ 강조는 그 뒤 주 5일근무제 도입으로도 계속됐다고 한다. 

    “정부가 추진한 주 5일근무제 시행을 1년 앞두고 관련 보고를 드렸더니 ’내가 평소 늘 하던 얘기 아니었나, 제대로 일하고 제대로 놀아라. 바로 시행하라‘고 하셨죠. 그래서 삼성은 법으로 시행되기 1년 전부터 주 5일근무제를 시행했습니다.”


    몸을 바꿔야 생각이 바뀐다

    1994년 11월 2일 삼성전자 기흥공장을 방문한 리펑 당시 중국총리(왼쪽에서 세 번째)와 반도체 설비에 대해 설명을 듣는 이건희 회장. [동아DB]

    1994년 11월 2일 삼성전자 기흥공장을 방문한 리펑 당시 중국총리(왼쪽에서 세 번째)와 반도체 설비에 대해 설명을 듣는 이건희 회장. [동아DB]

    7·4제는 조용상의 말처럼 의식개혁 운동이었다. 고정관념 파괴라는 강한 충격파를 던졌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전 직원의 출퇴근 시간을 바꾸겠다는 발상이나 실천은 한국은 물론 세계 기업 문화에서도 보기 드문 파격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LA, 프랑크푸르트, 도쿄, 오사카 해외 회의를 통해 삼성 임직원 1800명과 350시간 대화했다. 이때 만난 사람들은 대다수가 임원급이었다. 회장은 자신의 개혁 선언이 맨 밑바닥 직원들에게까지 전파돼야 한다고 생각해 사내 방송을 통해 수시로 육성을 들려주게 했다. 하지만 사람이 바뀌려면 머리가 아닌 마음이 바뀌어야 하고, 마음을 바꾸려면 몸이 바뀌어야 하는데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생체리듬을 바꾸는 일인 출퇴근 시간 조정을 생각한 것은 아닐까. 

    이는 제일기획 사장을 지낸 배종렬의 말에서 확인된다. 그는 비서실 홍보팀장을 지내며 이 회장이 부회장으로 경영에 참여하던 시절부터 참모 역할을 했다. 회장의 의중을 제일 잘 아는 삼성맨 중 하나로 꼽힌다. 그의 말이다. 

    “회장은 신경영 이후 당신의 의지가 사장단에게만 전파돼서는 안 되고 18만 전 직원들에게 전달돼야 삼성이 변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물리적으로 사람의 정신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을 하신 것 같고, 그런 배경하에서 7·4제라는 것이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사람이 1시간 잠을 덜 자고 아침에 ’팍팍‘ 일어난다는 게 무지무지 괴롭다는 것을 아신 거죠. 몸을 비틀게 만들어 정신 개혁을 해야 되겠다 해서 시작한 게 7·4제라고 할 수 있지요.” 

    2005년 출간된 책 ‘세계 최강기업 삼성이 두렵다’는 ‘이웃 나라 한국에서 삼성 같은 세계적 기업이 탄생했다는 것을 대부분 모르거나 무시하는 일본인들을 향해 경종을 울리겠다’는 취지로 일본인들(일본디베이트연구협회)이 처음 펴낸 삼성 분석 보고서다. 책 93쪽에는 ‘7·4제의 충격, 일본이 흉내 낼 수 없는 혁명적 근무 태세’라는 제목으로 이 제도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며 이렇게 적고 있다. 

    “평소보다 1시간 30분이나 빨리 출근하고 오후 4시에는 일을 마쳐야 한다는 지시는 일본에서는 도무지 상식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내용이다. 보통 일본 기업의 근무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 반경까지다. 밤늦게까지 잔업을 하는 것이 ‘열심히 일하는 사원’이나 ‘능력 있는 사원’의 본보기처럼 돼 있다. 이런 상태에서 7·4제를 하자고 하면 사원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힐 것이다. 노조도 반대할 것이다…(중략)…20만 삼성의 모든 사원은 두 시간 가까이 빨리 출근하는 것으로, 세계 제일의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이건희의 각오를 실감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따르겠다는 결의로 가득 찼을 것이다. 이건희의 뜻이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깊이 침투한 것이다. 7·4제로 삼성 그룹은 하나가 된 것이다…(중략)…인간의 정신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7·4제가 남긴 것

    1993년 이회장의 신경영 선언 당시 삼성그룹을 출입하던 필자는 7·4제 가 실시됐을 때의 직원들의 충격적이고 황당해하던 반응을 기억하고 있다. 초기에는 출근 시간만 빨라졌지 퇴근시간은 그대로인 상황이 이어지면서 반발심도 컸었다. 하지만 앞서 저자들의 말처럼 7·4제는 직원들을 하나로 묶었다. 수용이든 비판이든 모두들 모였다하면 회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도대체 왜 이런 파격적인 조치를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돌이켜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변화의 씨앗들이 침투하는 과정이었다. 

    나중에 7·4제가 폐지된 것을 두고 세간에서는 ‘실패로 끝난 실험’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지만, 유지냐 폐지냐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리더의 혁신을 향한 강한 의지와 열정을 직원들이 몸으로 느꼈느냐, 아니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다시 조용상의 말이다. 

    “7·4제는 근면 성실이 최고의 미덕이던 시절 효율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혁신적인 제도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하고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회장이 한 여러 일 중에 매우 중요한 ‘스타트’로서 상징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만약 그때 도입을 늦추거나 실패했다면 이후 여러 혁신적인 프로세스는 삼성에 안착하지 못했을 겁니다. 7·4제를 시작으로 삼성의 생활 패턴부터 모든 것이 바뀌어갔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회장이 생전에 가졌던 시간에 대한 개념을 소개할까 한다. 그의 책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 나오는 ‘시간 경쟁력’이란 제목의 글에서는 시간에 대한 관념도 미래지향적으로 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일부 대목을 옮겨본다. 

    “정보화시대가 다가오면서 시, 분, 초 단위는 그대로지만 주어진 시간 안에 필요한 활동을 하지 않으면 기회를 잃고 마는 시대가 됐다. 경영컨설팅, 법률 자문은 시간 단위로 가격이 매겨지고 증권 및 선물거래는 찰나에 가격이 바뀐다. 시간의 가치가 극적으로 커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초 단위 시간 개념도 의미가 없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이미 컴퓨터의 성능을 비교할 때는 10억분의 1초인 나노(nano)초를 다투는 시대가 전개되고 있지 않은가…(중략)…과거 기업 경쟁이 가격과 품질 경쟁이었다면 앞으로는 시간 경쟁력이 승부를 좌우할 것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 시간 단위가 갖는 가치가 점점 높아지기 때문에 고객이 원하는 바를 경쟁업체보다 빨리 만족시켜 주는 쪽이 우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살았던 시절에 비해 시간에 점점 더 가속도가 붙는 느낌이다. 과연 우리는 고인의 말대로 시간을 잘 쓰고 있는가. 몸과 의식, 생활에 군살이나 거품, 비효율은 없는가. 

    이 회장은 생전에 피력한 시간 개념을 ‘20분 정신’이란 단어로 피력한 적도 있다.


    ‘20분 정신’, 같은 양복 다섯 벌

    “일본에선 8시에 일을 시작한다고 하면 전원이 8시 10분 전에 온다. 미국인들은 8시에서 8시 5분에 온다. 한국인들은 8시 정각이나 플러스마이너스 1분에 온다. 이게 국민성의 차이다. 일본 사람들은 10분 전에 와서 전화기, 팩스 이런 거 닦고 서류 정돈한다. 하루 일이 끝나면 10분 동안 남아서 기계 닦고 정돈하고 간다. 이 ‘20분’이 정신적으로 엄청난 역할을 한다. 하루 8시간 일을 하는데 불량률을 없애주고 생산성을 높여주는 것이다. 이런 정신은 계산으로는 안 나오지만 ‘시간’은 물리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 삼성 전체 직원이 18만 명인데 이 사람들이 하루 20분간을 준비해와 마무리한다고 할 때 1년간 7000명을 고용한 효과와 같아진다. 인건비로 따지면 1000억 원이 된다. 18만 명에 1000억이 나오니 4000만 명이면 얼마겠나? 정신을 돈으로 따질 수 없지만 이렇게 따질 수 있는 돈만도 얼마인가?” 

    생전에 회장이 한 인터뷰 기사들을 읽다 보면 그가 사생활에서도 시간을 무척 아끼고 작은 일에서도 효율을 추구했던 일화들이 눈에 띈다. 1989년 12월호 ‘월간조선’과의 인터뷰 중 “대학 때 공부를 좀 했느냐”는 질문에 한 답변은 이렇다. 

    “공부에는 정말 취미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낙제 점수에서 10% 정도 올리는 노하우가 있잖습니까. 그것도 기술이지요. 어떤 과목 교수가 어떤 문제를 낼 거라는 ‘탐지전’을 벌인 거였죠. 공부를 열심히 안 하고도 생존해 온 그 노하우 자체도 사업에 연결 되고 있지 않나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젊은 사람들한테 하면 해가 될지 모르지만, 결국 공부란 것도 적게 하면서 효율을 많이 내는 방법을 찾아야지요. 전 그건 정말 철저합니다.”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과목을 먼저 수강한 학생들한테 ‘과거 2년간 시험지 좀 내놔 봐라’ 해서 공부합니다. 그럼 80% 이상 들어맞죠.” 

    한마디로 기출문제 중심으로 공부를 했다는 거다. 솔직한 답변에 슬며시 웃음이 나오면서도 ‘공부를 열심히 안 하고도 생존한 노하우가 사업과도 연결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는 대목에서는 매사를 기업 경영과 연결하는 기업가적 DNA도 느껴진다. 

    이 회장은 입는 옷에 대해서도 ‘효율’을 추구했다.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왜 늘 같은 옷(검은 양복)만 입느냐”는 질문에 “지금 입고 있는 옷하고 똑같은 게 다섯 벌이 있다. 이런 복장(검은 바탕에 보일 듯 말 듯한 줄무늬가 있는 양복)은 어디서든 통하지 않느냐. 상가(喪家)에서도 통하고 결혼식에 가도 통하고”라고 답했다. 

    그의 말을 들으니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옷장에 후드 모자가 달린 티셔츠만 죽 늘어놓고 있는 모습이나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청바지에 검은 색 스웨터만 입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에너지를 최대한 아껴서 일상생활에서 극단적인 효율을 추구하겠다는 마인드가 읽힌다. 이 회장은 사생활에서도 시간을 극도로 아끼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가치가 없는 데에는 가급적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방에서 화장실에 갈 때에 최단 코스로 걸어본다든지 하는 거지요.”(월간조선 2000년 7월호)

    그가 쓴 에세이에는 직접 적은 이런 일화도 있다.

    “몇 년 전 나는 삼성본관 28층에 있는 내 사무실에서 아래층 직원들 사무실까지 걸으면서 이동 시간을 재보고 가장 빠른 코스가 어디인지를 찾아 본 적이 있었다. 또 어떻게 하면 더 편리하게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서랍에 달린 손잡이 위치를 옮겨 보기도 하고 가구 배치를 바꿔 보기도 했다.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할 일도 없군, 그런 것에 관심을 갖고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다니’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하면서 불필요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공간을 최대로 활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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