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호

진중권 “이해찬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 ‘자체’다”

〈진중권의 인사이트〉 대선은 이해찬 vs 김종인 두 책사의 대결될 것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입력2021-03-25 11: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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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장 후보단일화, 중도층과 보수층의 결합

    • 여당 위기감이 ‘상왕’ 이해찬 전면 불러내

    • 김종인, 보궐선거 승리 땐 대선관리까지 맡게 될 것

    • 산업화, 민주화 이을 다음 서사를 누가 쓰게 될까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전면에 등장한 것은 민주당이 지금 느끼는 위기감을 보여준다. [동아DB]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전면에 등장한 것은 민주당이 지금 느끼는 위기감을 보여준다. [동아DB]

    지난 2월 어느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몰락은 확정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상황이 지나면 다소 회복될지 모르나, 등락을 거듭하며 전반적으로 하향세를 그릴 것으로 보인다. ‘콘크리트’라던 지지층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중도층을 무시해 온 결과

    지금 나오는 각종 여론조사는 중도층이 민주당을 떠났음을 보여준다. 당연한 결과다. 작년 3월 “금태섭 의원의 공천탈락을 계기로 중도층의 마음이 떠날 것이라는 분석은 안 해 봤냐”는 한겨레신문 성한용 기자의 물음에 당시 총선 후보경선을 관리하던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중도층은 미신이다. 쟁점마다 다른 투표를 하는 층이 있을 뿐이다. 중도층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에 따르면 그렇다. 영향이 별로 없을 것으로 본다.”

    그들이 중도층을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친 것은 그들의 표가 절대 탄핵당한 정당을 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을 게다. 하지만 두 야당의 서울시장 후보경선 과정은 그들이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보았던 그 상황, 즉 중도층이 보수층과 결합하는 상황이 정치적 현실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예단은 이르다. 민주당은 마침 최악의 상황에 있고, 국민의힘은 잠깐 컨벤션 효과를 누리고 있을 뿐이다. 고로 시간이 흐를수록 지지율 격차는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중도층이 선뜻 표를 줄 만큼 국민의힘 개혁이 진전된 것도 아니고, 민주당에게는 서울시의 모든 구청을 장악한 조직력이 있다.



    이해찬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줄곧 정권 지원론보다 심판론이 앞선 결과가 나온 것은 야당에게는 유리한 징조다. 중도층이 보수당에 붙는 현상은 서울시장 선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두 야당의 후보 단일화는 대선에서 제1야당의 후보와 가령 윤석열 같은 제3지대 후보 사이의 단일화로 재연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물론 아직 풀어야 할 고차방정식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동안 아무 희망도 없던 야당에게 막연하고 추상적이나마 재집권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20년 집권”을 공언하던 여당에게 빨간불이 들어왔다. 상왕 이해찬 전 대표가 다시 전면에 등장한 것은 그들이 지금 느끼는 위기감을 보여준다.

    과연 그가 민주당을 구원할 수 있을까? 그가 보궐선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가 민주당이 처한 전략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중도층을 아예 없는 존재로 간주하고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운동권 정치를 기획·실행한 것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그 전략으로 그는 지난 총선에서 180석의 압승을 거두었다. 그 승리의 기억이 있기에 그가 전략을 수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략은 중도층이 보수층에 붙지 않을 때에나 효과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코로나 사태도 그 초점이 방역에서 백신으로 옮겨졌다. 이해찬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 ‘자체’다.

    이해찬과 대선기획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취임 후 세 번째로 광주를 찾아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뉴시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취임 후 세 번째로 광주를 찾아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뉴시스]

    이해찬 전 대표가 보궐선거만 보고 다시 나타난 것은 아니리라. 그의 재등장은 직접 대선관리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최근 이재명 지사가 이해찬 전 대표를 만났다. 친노·친문의 입장에서 이재명은 불안한 후보이나, 지금이 어디 이거저거 따질 상황인가? 조금이라도 더 경쟁력이 있는 후보를 택할 수밖에.

    어차피 보궐선거에서 패하면 얼마 전까지 당 대표를 지낸 이낙연 후보는 패배의 책임을 지고 자연스레 ‘아웃’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쪽에 남은 후보는 이재명 지사뿐. 그러니 앞으로 킹 메이커로서 이재명 지사와 친노·친문 및 강성 지지자들의 갈등을 봉합하고, 그 둘을 접합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순수 ‘뇌피셜’인데, 여든 야든 이미 호남 후보는 ‘아웃’된 것으로 보는 듯하다. 얼마 전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취임 후 세 번째로 광주를 찾아 5‧18묘지를 참배하고, 5월 단체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 진정성까지 의심할 것은 아니나, 이낙연 후보의 탈락을 예상해 미리 자락을 깔아둔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 위원장은 4월 8일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할 경우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대선관리까지 맡게 될 것이다. 불행히도 국민의힘에는 아직 전략적 사고를 할 만한 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 경우 이번 대선은 김종인과 이해찬 두 책사의 대결로 치러지는 셈이다.

    시대정신을 잡아라

    대선까지는 아직 1년이 남았다. 한국 정치에서 1년은 조선왕조 5백년만큼이나 긴 시간이다. 그 사이에 온갖 일이 벌어질 수가 있다. 다만 정권의 실정과 독선에 대한 국민적 불만만 갖고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 대선은 ‘과거’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미래’를 위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한국사회를 만들어 온 두 개의 위대한 이야기는 종언을 고했다. 산업화 서사는 오래 전에 생명력을 잃었고, 민주화 서사는 이번 정권에서 마침내 종언을 고했다. 여전히 정권을 지탱하는 40~50대의 연대, 즉 ‘전대협 세대’와 ‘한총련 세대’의 연합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국민들은 그들의 실체를 보았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 이야기를 누가 쓰느냐’다. 대권을 결정하는 것은 이리저리 재는 정략적 머리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정치적 상상력이다. 여당, 야당 다 겪어보고 두루 좌절한 국민에게 ‘복음’을 들려줄 자, 누구인가?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은 이 사회에 나아갈 ‘길’을 보여줄 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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