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호

‘대선 잰걸음’…윤석열이 만난 사람들

尹, 대선으로 가는 STEP 3: 고견 청취·보충수업·출마 선언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1-05-2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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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사회 원로들과 정치 고민 상담

    • 노동 분야 전문가에 직접 만남 요청

    • ‘청년’ ‘자영업자’ 사회경제적 키워드 삼아 민생 행보

    • 초등학교 동창에게 받는 안보 과외

    • 정치1번지 여의도와는 거리두기?

    • 공식 출마 선언 시기 두고 엇갈리는 예측

    3월 4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치고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뉴스1]

    3월 4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치고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61) 전 검찰총장의 정중동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윤 전 총장은 3월 4일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한 후 차기 대선 선호도 조사에서 이재명(57) 경기지사와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5월 4~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정치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도 응답자 22%의 선택을 받아 이 지사(25%)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윤 전 총장 사퇴 후 네 번 실시된 해당 조사에서 윤 전 총장과 이 지사 사이 격차는 최근 한 달간 최대 3% 이내에서 움직이고 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세간의 관심은 윤 전 총장이 언제 본격적으로 정치 행보를 시작할지에 쏠린다. 윤 전 총장은 아직은 공식 활동을 자제하는 모양새다. 대신 각계 인사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만남을 요청하고, 각종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구하며 ‘내공’을 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총장이 누구를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그것을 통해 국민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지 짚어봤다.

    Step 1 
    철학·정치…원로들의 고견을 듣다

    3월 4일 윤 전 총장은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나며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동안 두문불출하던 윤 총장의 외부 활동이 세상에 알려진 건, 그가 3월 19일 김형석(101) 연세대 명예교수를 방문하면서부터다.
    김 교수는 1920년 출생해 일제강점기와 분단, 독재와 경제성장 등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영광을 모두 지켜본 인물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친 그는 윤 전 총장의 부친 윤기중(90) 연세대 명예교수와 친분이 있다. 3월 19일 윤 전 총장과 김 교수의 만남도 윤 교수가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총장은 이날 김 교수에게 그동안의 고민을 털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3월 23일자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정치해도 될까요” “부족한 게 많습니다” 등의 이야기를 하며 김 교수에게 조언을 구했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 쓴소리를 해온 학자이기도 하다. 이날 만남에서 윤 전 총장이 김 교수에게 “현재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하자 김 교수는 “내 편은 정의고, 네 편은 정의가 아니다. 이런 이분법이 만연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윤 전 총장이 ‘공정’ ‘개혁’ 등 우리 사회 중요 화두에 대한 김 교수의 의견을 묻고 답을 듣는 방식으로 대화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3월 22일에는 이종찬(85) 초대 국정원장을 만났다. 이 전 국정원장은 윤 전 총장의 50년 지기인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아버지다. 이 교수 자택에서 이들 부자(父子)와 만난 윤 전 총장은 주로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주로 이 전 초대 국정원장이 의견을 말하고 윤 전 총장은 경청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이날 만남에 대해 “당시 윤 전 총장이 역대 정부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며 “아무래도 가친(家親)이 오래 정치에 몸담았던 분이라 해줄 이야기가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국정원장은 1980년 정치에 입문해 4선 의원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 초대 국정원장으로 일했다. 이 전 국정원장은 윤 전 총장에게 “역대 정부는 모두 공과가 있지만 가급적이면 긍정적인 면을 보라”고 조언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대화를 나누며 검찰총장직을 수행하며 힘들었던 점도 털어놓았다고 한다.

    연달아 사회 원로를 만난 윤 전 총장 행보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이를 ‘일종의 신고식’이라고 평했다. 이 평론가 얘기다.

    “윤 전 총장이 만난 두 사람은 우리 사회의 어른이자 오피니언 리더다. 윤 전 총장은 이들의 고견을 들으며 정치환경 등에 대해 배우고, 국민에게 원로 이야기를 경청하는 긍정적 이미지도 심어주는 효과를 얻었다.”

    윤 전 총장이 당시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면서도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목적으로 두 원로를 방문했다는 해석도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당시는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본격적으로 정치 행보에 나서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그 시점에 적합한 인물 선정이었던 걸로 여겨진다”고 평가했다.

    Step 2 
    온·오프라인 ‘열공모드’

    4월 2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함께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로 향하고 있다. 윤 교수는 윤 전 총장이 만나 조언을 구한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

    4월 2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함께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로 향하고 있다. 윤 교수는 윤 전 총장이 만나 조언을 구한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

    4월이 되면서 윤 전 총장은 본격적인 정책 공부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4월 11일 정승국(65)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만난 것이 한 사례다. 윤 전 총장은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통해 정 교수에게 식사 자리를 청했다. 만난 자리에서는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언급하고, 정 교수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양극화로 인해 발생하는 우리 사회 문제와 해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경청했다고 한다.

    정 교수는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사회학·사회복지학 등 두 개의 박사학위를 받은 노동·복지 분야 전문가다. 중앙승가대 교수로 부임하기 전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한국노총 등에서 근무해 노동 현장에 정통한 전문가로 통한다. 정 교수가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는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고용안정성과 임금수준에 따라 양질의 1차 노동시장과 상대적으로 열악한 2차 노동시장으로 구분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대기업 정규직 직원은 1차 노동시장에 속한다. 이런 고임금 정규직이 거의 평생에 걸쳐 일자리를 보장받는 구조는 청년실업 문제 등을 낳는다.

    정 교수는 이를 풀 해법으로 유연안정성 모델을 제안하는 학자다. 사측에 해고의 자유를 줘서 기업경쟁력을 높이되, 해고된 노동자에게는 정부 지원과 재취업 기회를 제공해 직업 안정성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은 정 교수와 만난 자리에서 이 아이디어에 대해 관심을 집중했다고 한다.

    “윤 총장이 나를 만나러 오기 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유연안정성에 대한 보고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만난 날 보니 해당 자료에 형광펜으로 밑줄까지 그어가며 숙독(熟讀)했더라. 궁금한 점을 미리 정리해 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유연안정성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 4시간여의 대화는 결국 청년 현실을 한탄하며 끝났다.”

    윤 전 총장이 최근 관심을 둔 또 다른 주제는 자영업자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5월 8일 윤 전 총장은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을 만났다. 권 원장은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은 자영업자”라고 진단하는 전문가로, 지난해 책 ‘자영업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를 출간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자영업자가 늘어난 이유, 노동과 기업 갈등 속에서 자영업자가 정책적으로 소외받은 계기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이 책을 읽고 권 원장과의 만남을 요청했다고 한다. 권 원장은 “윤 전 총장이 ‘책 내용에 공감하는 바가 있다. 직접 만나 토론도 하고 디테일한 부분을 더 알고 싶다’며 연락해 왔다”고 말했다. 권 원장의 부연이다.

    “윤 전 총장과 만나 자영업자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4시간여 토론을 나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자영업자가 느끼는 고통을 심화한 측면이 있다는 내 의견을 전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금을 늘리면 소비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했겠지만 자영업자들은 인건비 상승을 버티지 못했다. 이뿐 아니라 비트코인 등 최근 경제 현안에 대한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다음 대선 키는 사회구조 개혁”

    전문가들은 다음 대선의 주요 화두가 ‘사회적 약자’가 될 것이라고 본다. 윤 전 총장은 이 흐름을 정확히 읽고, 관련 학자들과 만나는 것으로 대중에게 일종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4·7 재보선 결과에서 확인됐듯, 청년이나 소상공인의 선택이 향후 정치 지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윤 전 총장은 거대 양당이 주도한 한국 정치 구도에서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겨냥해 자신만의 정치적 위치를 만들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그룹 ‘민’ 대표는 윤 전 총장 행보를 이렇게 해석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권력기관 개혁이 중요했다. 이제는 사회구조 개혁에 초점을 맞춰야 할 시점이다. 4월 이후 윤 전 총장은 외부 활동을 통해 자신의 관심이 사회경제적 약자를 향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냈다.”

    동시에 윤 전 총장은 외교·안보 분야도 공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과외 선생님은 초등학교 친구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다.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2차관을 지냈다. 윤 전 총장은 3월 중순부터 김 교수와 수차례 전화 통화를 하며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는 전언이다. 4월 26일 TV조선은 윤 전 총장이 최근 미·중 반도체 전쟁에 관심이 많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중 갈등은 무역 전쟁에서 기술 전쟁으로 번진 형국이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기술을 선도하는 미국과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올리겠다는 중국의 투자 경쟁이 불붙은 것이다. 양국 모두가 생산 기기이자 판매처인 한국 반도체 시장 역시 G2 분쟁의 영향권 아래 있다.

    그래서일까. 5월 17일 윤 전 총장은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를 찾아 정석균 석좌교수를 만났다. 윤 전 총장은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제조공장 안을 둘러보고 반도체 산업 전반에 대한 질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동석한 이종호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는 “반도체 분야는 책이나 뉴스로만 접해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며 “공부를 열심히 해 온 학생처럼 전문 용어나 기술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왔다”고 설명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윤 전 총장은 25년간 검찰에만 몸담았기 때문에 경제와 안보 등의 분야에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있다”며 “이런 부분을 알고, 관련 전문가와 폭넓게 교류함으로써 국민에게 ‘나는 지금 공부하고 있다. 관련 네트워크도 쌓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tep 3 
    공식 출마는 언제?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윤 전 총장이 언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할지에 쏠린다. 정치권에서는 윤 전 총장이 의도적으로 여의도와 거리를 두며 적절한 시기를 조율하는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이에 대해 “현재 기성 정치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이다. 윤 전 총장은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차별화된 캐릭터로 남는 것이 낫다”고 평했다.

    “현재 윤 전 총장은 미래를 준비하며 조직 기반을 다지는 단계로 보인다. 대선 출마 선언이 나오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의견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말이다.

    “정책전문가와 의견도 나누고 공부하는 것은 좋지만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건 잘 생각해 봐야할 문제다. 윤 전 총장은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는 순간부터 여기저기서 공격받게 된다. 이에 대비하려면 방어 기술과 체력을 갖춰야 한다. 지금부터 정치인에게 정무 감각을 배우고, 의원이 많은 정당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신 교수는 또 ‘대선주자 윤석열’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지금, 더 늦기 전에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박성민 대표는 윤 전 총장이 6월 중순 이후 결단을 내릴 것으로 예측한다. 그는 “김오수 검찰총장후보가 임명돼 검찰 조직이 안정 상태에 들어가고,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끝나는 시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20대대선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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