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호

[우그그] 뒤처지는 韓 기업 ESG 전략…“구글·유니레버를 배워라”

친환경 투자, 부서 간 소통, 전문성 확보 핵심

  • 정다솜 서스틴베스트 선임 애널리스트

    dasom.jeong@sustinvest.com

    입력2021-09-08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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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EU 환경 관련 공시 의무화 착수

    • 한국 기업은 규제 대응에 바빠

    • 기후변화를 투자 기회로 이용해야

    • 구글 4년 전 친환경 에너지 100% 전환

    • 분절적인 한국 기업 환경 전략

    • 톱다운 방식이 부서 간 소통 부재 현상 빚어

    • 유니레버가 환경 기업으로 우뚝 선 이유

    • 유기적 구조·전문가 그룹 운영이 키워드

    *환경 플랫폼 ‘우그그(UGG)’는 ‘우리가 그린 그린’의 줄임말로, 환경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실천입니다.

    미국과 유럽은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전담협의체(TCFD) 권고안에 따라 환경 관련 공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GettyImage]

    미국과 유럽은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전담협의체(TCFD) 권고안에 따라 환경 관련 공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GettyImage]

    2020년 10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 넷제로(Net-Zero·온실가스 순 배출량이 0인 상태)’를 선언한 이후 국내 기업들도 친환경 전략을 만드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럽·미국 등에서 ‘환경 이니셔티브(initiative·주도권)’가 강화되면서 기업들은 이례적인 규제 및 정책 환경 변화를 겪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주도하는 환경 이니셔티브는 기업에 통합적이고 장기적인 환경 전략을 요구하는 반면,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단편적이고 분절된 환경 전략을 운용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향후 시장에서 환경 리스크 관리 부실로 인한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

    구체적 공시가 미국·유럽 트렌드

    EU 환경 이니셔티브의 핵심은 기업이 통합적·미래지향적(forward-looking)으로 환경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5년 전 세계 196개국은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2°C 아래로 억제하고, 더 나아가 1.5°C를 넘지 않도록 한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약)’을 체결했다. 이 목표 아래 각 국가는 해당 목표 달성을 위해 국가 단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설정해야 한다. 국가뿐 아니라 각 기업도 파리협약을 준수하기 위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에 부합하는 환경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단순히 환경 규제에 대응하는 소극적인 환경 전략이 아니라, 2°C 또는 1.5°C 아래로 지구 온도 상승을 제한하는 시나리오에 따라 장기적인 ‘기후 전환(Climate Transition)’을 고려한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전략이 요구된다.

    금융안정위원회(FSB)가 만든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전담협의체(TCFD·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는 2017년 기업이 어떻게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과 기회를 다루고 있는지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내놨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①지배구조 ②경영전략 ③위험관리 ④지표·목표 설정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공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 문제에 대한 이사회의 결정부터 경영 전략, 재무 계획까지 기업 전반의 환경 대응 전략을 아우르는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또한 2°C 시나리오에 따른 기업의 회복탄력성을 설명해야 하는 등 구체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권고하고 있다.

    EU는 이에 따라 기후변화 관련 공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또한 TCFD 권고안을 반영한 상장기업의 기후변화 관련 정보 공개 의무화에 착수했다.



    환경문제 ‘위험’ 아닌 ‘기회’로 봐야

    TCFD 권고안은 88개국 2300여 개의 기관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우리·KB·하나 등의 금융그룹과 SK이노베이션·삼성SDS 등이 지지 선언을 했다. 이런 흐름에도 아직 한국에서는 TCFD 권고안이 요구하는 환경 전략 수립 및 정보 공시가 부진하다.

    현재 한국 기업이 구사하는 환경 전략은 규제 대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원신보 아시아 지역 총괄 스튜어드십팀 본부장은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은 규제나 법이 존재하면 이에 맞춰 정확히 이행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그 이상은 잘 추구하지 않는다”며 “아직 국내에서 ESG 관련 기준이 강제되거나 권고되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뒤처져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이 전 세계 ESG 트렌드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환경문제는 더는 ‘규제’가 아닌 기업의 수익과 생존에 직결된 ‘전략’의 영역에 가깝다. 그런데 기업들은 환경문제를 ‘사업을 영위하는 데 부차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으로 인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프레임워크(정책적 기반) 부재로 인해 혼란을 느낀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이런 소극적인 대응은 통합적·미래지향적인 환경 경영 전략 대신 제재를 회피하는 정도의 효과만 볼 뿐이다.

    기후 시나리오에 기반한 과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환경 전략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기후 ‘위험’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을 넘어 기후 ‘기회’를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기술에 투자하고, 화석연료 기반에서 청정에너지 기반으로 생산시설을 전환하는 등 적극적 노력이 이에 해당한다.

    구글이 4년 전 달성한 RE100, 韓 7년 후에나…

    구글은 2017년 재생에너지로 사용 전력의 100%를 조달하는 ‘RE100’을 달성했다. [AP=뉴시스]

    구글은 2017년 재생에너지로 사용 전력의 100%를 조달하는 ‘RE100’을 달성했다. [AP=뉴시스]

    PAII(Paris Aligned Investment Initiative) 등 환경 관련 공시 기준은 기관투자자가 포트폴리오 대상 기업의 친환경 기술 비중을 관리할 것을 요구한다. 투자자가 온실가스 배출량이나 탄소집약도 관리 성과는 물론 해당 기업의 친환경 기술과 이에 대한 투자 가능성과 같은 기회 요소도 신경써야 한다는 의미다. 기업 처지에서 기후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향후 자금 유치 및 조달 비용 관리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미국 IT기업들은 이미 기후변화를 전환의 기회로 보고 있다.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글로벌 캠페인 ‘RE100’이 대표적이다. 구글은 2016년 RE100 계획을 발표하고 이듬해 이를 달성했다. RE100 실현을 위해 2.6기가와트시(GWh)에 이르는 전력을 풍력·태양광발전 방식으로 조달하며 2017년 최대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구매 기업이 됐다. 더불어 구글은 기후 적응 전략을 전사적 경영에서 실행할 수 있는 정책적 근거를 만들고, 미래의 기후 위기 노출도와 취약성을 분석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올해 들어 규제 대응을 넘어 적극적인 환경 전략을 수립하는 기업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다. 2020년 말, SK그룹이 RE100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아모레퍼시픽·LG에너지솔루션·현대자동차그룹이 RE100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미 RE100을 달성한 글로벌 기업이 많은데도 한국 기업의 RE100 달성 목표 연도는 평균 2028년으로 상당히 늦은 편이다. 또한 전력 소비량이 많은 제조업 기반 기업의 참여가 부진한 상황이다. 기후 리스크에 민감한 기관투자자들의 자금을 확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기르려면 더욱 진취적인 태도가 필요한 상황이다.

    또 다른 문제는 한국 기업이 구사하는 환경 전략이 분절적이라는 점이다. 규제 변화나 투자자의 요구에 반응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매번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기업 내 각기 다른 유관 부서에서 대응하는데 이는 환경 전략의 비일관성과 비효율성을 가져온다. 가령 한 기업 내에서도 공시 담당 부서, 재무 담당 부서, 환경부하 관리 부서 등 서로 다른 부서가 각기 다른 환경 전략을 구상하고 수행한다. 한 회사의 다른 부서에서 동일한 환경 공시 업무를 따로 진행하다가 컨설팅 회사에 동시에 같은 내용으로 문의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환경 전략 통합 관리 시스템 부재

    2014년 폴 폴먼 당시 유니레버 최고경영자가 ‘유니레버 지속가능한 삶 계획(Unilever Sustainable Living Plan)’을 발표하고 있다. [유니레버 유튜브 캡처]

    2014년 폴 폴먼 당시 유니레버 최고경영자가 ‘유니레버 지속가능한 삶 계획(Unilever Sustainable Living Plan)’을 발표하고 있다. [유니레버 유튜브 캡처]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부서 간 협업 문제를 넘어선다. 환경 전략을 전사적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부재한 것이다. 최근 ESG경영이나 환경경영에 대한 요구가 가속화하면서 많은 기업이 톱다운 방식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그 하위 부서에서 경영 세부 목표를 설정한 뒤 시행에 옮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환경관리를 실무적으로 담당하는 전기·안전관리·환경부하 및 배출권 관리팀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돼 있지 않아 실행 단계에서 목표를 재조정하거나 사업이 지연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ESG 전담팀을 설치하거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지만 그 규모는 크지 않다. 환경 전략을 잘 세우려면 장기적인 목표와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한데 그만큼의 권한과 자원이 전담팀에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환경 전략을 짜는 데 재무·환경·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지닌 인력이 필요하다. 기후변화 시나리오 분석을 위한 과학 분야 전문성 또한 요구된다. 전담팀이 장기적으로 전사적 관점에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면 기업이 통합적인 환경 전략을 운용하기 어렵다.

    영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 유니레버는 이사회부터 실무 조직, 본사부터 지역사업장까지 통합적인 환경 전략을 운용하고 있다. 10년 단위로 ‘유니레버 지속가능한 삶 계획(Unilever Sustainable Living Plan)’을 설정하고, ‘유니레버 컴파스(Compass)’라는 이름으로 통합적인 지속가능 전략 패키지를 만들었다. 이 전략 패키지는 제품 개발부터 인사관리·홍보까지 모든 과정에 적용된다.

    유니레버에서는 의사결정을 하는 이사회가 유니레버 컴파스 계획의 목표를 설정하면, 경영진이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세우고, 생산을 담당하는 실무진이 이를 구현해 낸다. 글로벌 지속가능 전담팀은 경영진과 실무진 사이에서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한다. 일방적인 톱다운 방식이 아니라 인적 구성의 공유를 통해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구조를 만든 것이다.

    유니레버가 친환경 기업 선두 주자가 된 이유

    또한 유니레버는 환경문제에 대한 전문성 제고를 위해 탄소중립위원회(Carbon Neutral Board), 통계팀(Metrics Team), 환경안전센터(Safety & Environmental Assurance Centre), 지속가능패키지위원회, 지속가능자원조달그룹을 만들었다. 기존 사업 및 조직 구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전문가 그룹을 상시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환경 이슈는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음을 고려할 때 팀을 넘나드는 전문가 그룹은 부서 간 협업과 소통을 촉진한다. 수직·수평적 구획을 넘어 운용되는 환경 전략은 유니레버를 누구나 손꼽는 친환경 기업으로 만들었다.

    기후변화가 가속화하면서 기후 대전환이 가까이 다가왔다. 이에 따라 기후리스크 및 기회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커질 것이다. 미국과 유럽 기업은 파리협약 이후 발 빠르게 환경전략을 수정하고, 큰 시장 잠재력을 가진 기후 기회를 선점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한발 늦게 친환경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초기에 그 격차를 따라잡지 못하면 나중에는 큰 차이가 돼 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뚜렷한 환경 관련 이니셔티브가 부재한 상황이지만 기업들은 이 상황을 관망하기보다 선제적으로 통찰력 있는 환경 전략을 수립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환경이니셔티브 #구글 #유니레버 #우그그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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