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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을 홀린 미꾸라지 맛, 시원 얼큰 추어탕 레시피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전국을 홀린 미꾸라지 맛, 시원 얼큰 추어탕 레시피

몸이 고된 날 추어탕을 한 그릇 먹으면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싹 가신다. [GettyImage]

몸이 고된 날 추어탕을 한 그릇 먹으면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싹 가신다. [GettyImage]

나는 책 만드는 일을 한다. 새 책이 나오면 서점 담당자를 만나러 간다. 주요 내용과 저자, 이 책만의 남다른 점과 가치 등에 대해 짧게 설명하기 위해서다. 운이 좋아 내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면 20분, 짧으면 5~10분 사이에 일을 마쳐야 한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담당자 앞에 앉을 때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며 긴장된다. 어떨 때는 새 책이 내 맘에 흡족해 흥분하고, 또 어떨 때는 모자란 부분만 떠올라 횡설수설 한다. 이러나저러나 짧은 소개 시간이 끝나고 나면 공기 빠진 풍선처럼 기운이 증발하고 만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대형 온라인 서점의 신간 미팅은 보통 점심시간 직후 시작된다. 나는 주로 점심시간에 이동을 하고, 일이 끝나면 밥을 먹는다. 진이 쏙 빠진 나를 채워주는 혼밥 메뉴는 늘 똑같다. 추어탕이다.

‘동글이’ 미꾸리와 ‘납작이’ 미꾸라지

추어탕을 끓이려면 미꾸라지 크기가 15~20cm 정도는 돼야 한다. 그렇게 자라기까지 보통 미꾸라지는 1년 정도 걸린다. [GettyImage]

추어탕을 끓이려면 미꾸라지 크기가 15~20cm 정도는 돼야 한다. 그렇게 자라기까지 보통 미꾸라지는 1년 정도 걸린다. [GettyImage]

서른 넘어 추어탕을 처음 먹은 나는 지나온 30년이 너무 억울해 추어탕을 최대한 자주 먹는 편이다. 다행히 추어탕은 언제 어느 때 먹어도 웬만하면 구색이 맞는다. 술이 덜 깬 날엔 땀을 쪽 빼 해장이 되고, 몸이 고된 날엔 긴장을 풀어줘 피로가 가신다. 마음이 산만한 날엔 먹느라 바빠 딴 생각이 안 든다. 여럿이 분주하게 후후 불며 먹으면 즐겁고, 혼자 오롯이 즐겨도 좋다.

전국에 수많은 추어탕 식당이 있는데 대체로 양식 미꾸라지를 사용한다. 본래 추어탕은 논두렁에서 잡히는 미꾸리로 끓였다. ‘동글이’라 불리는 미꾸리는 몸통이 둥글고 아담하다. 진흙 많은 얕은 물에 산다. ‘납작이’라 불리는 미꾸라지는 미꾸리보다 길고 미끌미끌하며 몸통이 납작하다. 더 넓고 깊은 물에 산다.
추어탕을 끓이려면 미꾸리든 미꾸라지든 크기가 15~20cm 정도는 돼야 한다. 그렇게 자라기까지 미꾸리는 2년, 미꾸라지는 1년 정도 걸린다. 먹어본 사람들은 미꾸리 쪽이 뼈가 연하고 살이 달아 더 맛있다고 하는데, 수익을 내려면 당연히 미꾸라지를 키우는 편이 낫다.

같은 미꾸라지를 써도 지역마다 식당마다 추어탕 맛이 제각각이다. 서울식은 ‘추탕’이라 하여 통미꾸라지에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풀고 얼큰하게 끓인다. 밑국물은 쇠고기 양지나 곱창을 끓여 만든다. 들어가는 재료도 두부, 유부, 버섯, 호박, 대파, 달걀 등으로 독특하다. 고추에서 우러난 붉은 기름이 동동 떠 있는 국물이 아주 진하다.

매운탕의 시원함과 육개장의 농후함,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서울식 추탕 맛은 내게 낯설면서도 좋게 다가왔다. 여러 가지 식감이 나는 채소와 두부, 유부를 진한 국물과 함께 푹푹 떠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것도 즐거웠다. 요즘에는 ‘서울식’을 표방하면서도 미꾸라지를 갈아 만드는 곳이 많으니 초심자라도 겁먹을 필요가 없다.



향긋한 원주맛, 고소한 남원맛

강원도에서는 원주가 유명하다. 서울식과 비슷한데 고추장을 주로 쓰고, 감자와 깻잎을 넣어 국물에 걸쭉함과 향긋함을 더하는 게 특징이다. 미나리와 부추를 올려 전골처럼 끓이며 먹기 때문에 매운탕 느낌이 나지만, 밀도 높은 국물에서 우러나는 구수함이 확연히 다르다. 끓이는 중간에 수제비를 떠 넣어 함께 먹기도 한다. 푹 익은 감자를 구수하고도 얼큰한 국물에 부숴 먹는 맛이 일품이다.

전라도에서는 미꾸라지를 삶아 곱게 갈고 그 국물에 들깨즙을 풀어 끓인다. 들깨를 곱게 갈아 체에 걸러낸 뽀얀 즙을 넣는 것이다. 자연스레 들깨의 또렷하고 고소한 향이 국물에 스며든다. 그만큼 향을 내려면 국물이 탁해질 만큼 들깨를 넣어야할 텐데, 들깨즙이라는 지혜가 맛의 한 수가 됐다. 여기에 무청 시래기와 된장을 넣고 푹 끓인다. 결이 다른 여러 종류의 구수함이 한 그릇에 어우러져 있다. 간혹 씹히는 잔뼈의 고소함, 먹을수록 도드라지는 들깨 향, 코끝에 남는 무청의 마른 내, 된장의 속 깊은 맛이 다 있다. 미꾸라지가 아니라 미꾸리로 만든 남원 추어탕을 한 그릇 꼭 먹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추어탕에는 마늘 다진 것, 매운 고추 다진 것, 잘게 썬 부추, 제피가루, 들깨가루, 후춧가루 등 ‘강렬한 토핑’을 더하는 경우가 많다. [GettyImage]

추어탕에는 마늘 다진 것, 매운 고추 다진 것, 잘게 썬 부추, 제피가루, 들깨가루, 후춧가루 등 ‘강렬한 토핑’을 더하는 경우가 많다. [GettyImage]

찬바람 불기 전 추어탕 먹어야 할 이유

경상도식은 국물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아주 맑다. 미꾸라지를 푹 삶은 다음 갈지 않고 체에 내리기 때문이다. 여러 번 걸러 뼈도 살도 최대한 곱게 내린다. 뽀얀 국물에 배추나 우거지, 토란대, 숙주, 고사리 등 채소를 많이 넣고 고춧가루를 연하게 풀어 끓인다. 된장을 넣더라도 역시 연하게 푼다. 어탕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맑고 깨끗하며 맛이 아주 시원하다. 하늘하늘 뚝배기 가득 들어 있는 부드러운 채소를 건져 먹는 맛이 좋다.

전라도나 경상도식 추어탕에는 제피나 방아 등을 넣고 끓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강렬한 토핑을 따로 내준다. 마늘 다진 것, 매운 고추 다진 것, 잘게 썬 부추, 제피가루, 들깨가루, 후춧가루 등이다.

지역별 특징은 있지만 추어탕은 집집마다 재료와 맛이 조금씩 다르다. 다른 민물고기를 같이 넣기도 하고, 우렁이나 민물 게를 넣어 맛을 내는 집도 있다. 칼국수를 말아 주는 곳도 봤다. 가을 벼가 무르익을 때 미꾸라지 살도 함께 차오르기 시작한다. 지금부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까지가 부지런 떨며 다양한 추어탕을 맛볼 시기다. 어차피 양식인데 무슨 상관이냐고 한다면 한 겨울에 먹는 수박, 한 여름에 먹는 배를 떠올려 보면 되겠다.

#추어탕 #미꾸리 #서울식추탕 #혼밥메뉴 #신동아



신동아 2021년 10월호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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