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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쓸모 많은 ‘빨간 무’ 래디시를 추앙하기로 해요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오늘부터 쓸모 많은 ‘빨간 무’ 래디시를 추앙하기로 해요

래디시 구이. 래디시는 다양한 요리의 식재료로 쓰인다. [gettyimage]

래디시 구이. 래디시는 다양한 요리의 식재료로 쓰인다. [gettyimage]

요즘 ‘추앙’이라는 단어에 마음 설레는 이가 한둘이 아니지 싶다. 평생 한 번도 입으로 뱉어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단어가 일주일 내내 기대감, 설렘, 낯섦, 쑥스러움의 모습으로 순간순간 다가온다. 친한 선배는 스스로를 추앙하는 의미에서 평양냉면에 수육을 혼밥 메뉴로 택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한 편의 주말 드라마 덕에 우리는 다른 주제와 시각으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일상이 즐거워졌다. 한편 나도 무언가를 추앙해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무생물은 무미건조할 것 같고, 인간은 너무 버거운 존재이니, 역시 태어나고 자라고 호흡하는 채소가 좋겠다. 그 중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5월의 빨간 무 래디시, 너를 추앙하기로 정했다.

눈처럼 하얀 속살, 매콤달콤 시원한 매력

 래디시는 씨를 뿌려 빨간 뿌리를 거두기까지 20일이면 족하다. 그래서 ‘20일 무’로도 불린다. [gettyimage]

래디시는 씨를 뿌려 빨간 뿌리를 거두기까지 20일이면 족하다. 그래서 ‘20일 무’로도 불린다. [gettyimage]

새빨간 얇은 껍질 속에 눈처럼 하얀 속살을 지닌 래디시는 오랫동안 장식용 채소로 머무는 중이다. 기껏해야 얇게 썰어 샐러드 위에 몇 장 얹어지는 역할이 다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렇게 얹혀 나온 래디시를 밀어내고 안 먹기 일쑤이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손수 키운 래디시를 나눠주는 친구 덕에 아삭하고, 매콤하면서도 달고, 시원한 맛이 나는 래디시의 매력을 알았다.

우리가 흔히 보는 래디시는 작고 둥글고 빨갛다. 흙속에 묻혀 자라는 뿌리채소이지만 마치 열매처럼 예쁘게 생겼다. 래디시는 ‘20일 무’라는 별명이 있다. 씨를 뿌려 빨간 뿌리를 거두기까지 20일 만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래디시를 크게 키우면 뿌리가 너무 단단해지기도 하지만 매운 맛도 점점 더해진다. 그러니 20일 정도 키워 손바닥에 두어 개 올리면 가득 찰 정도로 앙증맞을 때 뽑아 먹는 게 좋다. 싱싱한 래디시의 잎과 줄기도 먹을 수 있다. 무청 먹는 게 당연하듯 래디시의 청도 마찬가지다. 억세면 데치거나 볶아 먹으면 된다.

빨간 무 래디시를 더 이상 샐러드의 조연으로 두지 말고 주연으로 써보자. 깨끗이 씻은 래디시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장식용으로 쓸 때처럼 둥근 모양을 살려 썰지 말고, 사과 썰 때처럼 단면이 반달 모양이 되도록 썬다. 그래야 아삭한 래디시의 맛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릇에 래디시를 그득 담고 해바라기 씨, 아몬드 슬라이스, 굵게 부순 땅콩 등을 뿌린다. 그 다음 원하는 드레싱을 듬뿍 끼얹어 골고루 버무려 잠시 두었다가 먹으면 된다. 잎채소가 있다면 작게 찢어 곁들여도 좋은데, 래디시가 주인공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래디시는 맛이 진한 드레싱과 잘 어울린다. 마요네즈, 발사믹 글레이즈 같은 것을 활용해보면 좋다. 또한 기름을 쪽 뺀 참치를 부수어 함께 버무려도 맛있다.

샌드위치도, 구이도, 날것도 맛 좋아

래디시는 아주 좋은 샌드위치 재료이기도 하다. 오이, 토마토, 래디시를 준비해 얇게 썬다. 오이와 래디시에 소금을 뿌려 살짝 절이면 더 맛있다. 빵 한 쪽에는 과일잼, 나머지 한 쪽에는 마요네즈를 얇게 펴 바르고 채소를 듬뿍 끼워 넣는다. 산뜻하고 개운한 맛이 좋아 봄뿐 아니라 여름 샌드위치로도 그만이다. 래디시는 예쁜 색감과 모양, 아삭함, 매운맛 단맛을 모두 지니고 있어 피클 재료로도 그만이다. 피클링 스파이스 없이 초절임물만 부어도 된다. 식초, 설탕, 소금만 섞어 한소끔 끓여 차게 식으면 반 잘라 둔 래디시에 부어 하루를 꼬박 절인다. 맛도 빨리 들고, 볼그스름한 색이 빠져 아주 예쁜 피클을 만들 수 있다. 래디시는 무의 친척뻘이니 김치 양념과도 썩 잘 어울린다. 수분이 많은 재료이니 소금에 미리 절여서 김치 양념에 버무리거나, 절이지 않은 채로 시원하게 물김치를 담가 즐겨도 좋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래디시 요리는 바로 구이다. 올리브 오일에 래디시를 아주 천천히 구워 말랑하게 익힌다. 사실 오븐에 넣어 구우면 더 맛있다. 래디시의 겉은 거뭇거뭇하게 익고, 속이 말랑해지면 버터를 한 숟가락 넣고 녹이며 래디시에 골고루 묻힌다. 마지막에 소금, 후추만 뿌리면 끝난다. 더 맛있게 먹고 싶다면 먹을 때 꿀이나 달콤한 시럽을 살짝 곁들인다. 구운 래디시를 먹는 순간 그동안 얇게 썰어 아무데나 흩뿌린 래디시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래디시를 키우는 내 친구는 생으로 먹기를 가장 좋아한다. 도톰하게 썬 래디시에 버터를 발라, 소금을 솔솔 뿌려 그대로 먹는다. 너무나 간단한 즉석요리다. 텃밭에 놀러 갔다가 한 번 얻어먹은 적이 있는데, 래디시 모양으로 눈이 동그래질 정도로 맛이 좋았다. 이때부터 나도 모르게 래디시를 추앙하고픈 마음이 싹튼 것인가 싶기도 하다.



신동아 2022년 5월호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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