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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우리가 최선을 다해 볼 미래

  • 임지은 작가

[에세이] 우리가 최선을 다해 볼 미래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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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넘어가면서 주변인들이 직장인 5년차, 7년차 정도에 접어들었다. 그들과 만날 때마다, 나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는다. 어떨 때는 직군도 회사도 다른 그들의 상사란 너무나 비슷하게 구린 나머지 혹시 같은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고, 어떨 때는 그들의 직장 동료가 저지르는 무례에 놀란 나머지 ‘세상에는 참 다채로운 미친 사람들이 있구나’ 감탄하면서. 그러나 그들의 얘기로 미루어 볼 때 그 시기 직장 생활을 관통하는 건 ‘선’인 거 같았다. 회사 일은 더도 덜도 아닌 어떤 선만 지켜도 이어진다는 것.

오랜만에 카페에서 만난 B에게 그런 얘기를 하자, 퇴근하고 온 B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원샷했다. “배부른 소리 같기도 한데, 나 진짜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다니까.” 그의 하소연은 거의 랩에 가까웠다. “뭘 제대로 힘주어 해보려고 하면 조직의 관성이 다 쳐내고, 주어진 일은 죄 비효율적이고, 윗사람 중 닮고픈 인간상은 영 없고, 그렇다고 배우자나 자식처럼 무기력을 버티게 해줄 동력도 없고,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지.”

주어진 자유는 퇴근 후 시간뿐이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고 나면 방전돼 버리는 걸 깨달은 B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회사에서는 딱 해야 할 만큼만 해내고, 비축한 에너지로 (뭔지 모를) 내 것을 해내자! B의 이론은 완벽했다.

그러나 현실은 B의 이론보다 강한 모양이었다. “할 만큼만 하는 데도 이상하게 더 지치고, 또 그렇게 비축한 에너지를 유용하게 쓰지도 못하는 거 같다”고 B는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은 금방 자기혐오로 이어졌다. 회사에서도 그저 그런 주제에 왜 지치냐고, 나는 왜 이도 저도 제대로 못 해내냐고, 심지어 왜 그만두지도 못하냐고. 자신의 무기력을 푸념하는 B의 얼굴이 지쳐 보였다.

그날 술집이 아닌 카페로 간 멍청한 나 자신을 탓하며, 나는 B에게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생각했다. 하소연은 들어주기만 해도 되는 걸 알았지만 마냥 자신을 혐오하게 내버려 두기에는 나에게 B가 너무나 근사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부하고 섣부르지만, 뭐라도 B와 나눌 수 있는 교집합을 뒤지던 나는 오래전 회사를 다닌 경험을 떠올렸다. 그 경험이라는 게 인턴을 빙자한 아르바이트 정도라서 민망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해도 보이지 않던 미래

당시 나는 전공을 살려 모 패션회사의 R&D실로 3개월간 출근했다. 마트 시식 코너에서 음식을 제공하듯, 원단회사에서도 패션회사에 샘플로 작은 원단묶음을 제공하는데 그걸 ‘스와치’라고 한다. 회사 구석진 곳에는 여기저기서 제공받은 각양각색의 스와치가 수십 개의 봉투에 가득 담긴 채 쌓여 있었다.

나는 그 스와치를 분류했다. 같은 색상이라도 원단에 따라 채도와 명도가 달라지므로 최대한 균일하게 분류해 내서, 샘플들을 비슷한 사이즈로 자르고 붙여 컬러북을 만들었다. 내 사수는 그걸 보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원단을 골랐다. 비유하자면 그건 내 사수를 위한 메뉴판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 일만 3개월을 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3개월간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알람보다 먼저 나를 깨웠다. 씻고 화장을 하고 있자면, 새벽까지 음식점에서 일하다 들어온 엄마가 부스스 일어나서는 내 곁을 맴돌았다. “밥 차려줄까” “과일 깎아줄까” “드라이기 가져다줄까” 됐으니 제발 다시 자라고 손사래 쳐봤자 엄마는 기어이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배웅하고서야 다시 잠이 들었다.

그래선지 출근길엔 그가 건넨 말들이 잔상처럼 남아 메아리치곤 했다. “뭘 하나 해도 최선을 다하렴, 항상 그게 중요한 거란다.” 지하철 검은 창에 비치는 내 얼굴은 뭐라도 해낼 준비가 돼 있었고, 나는 역에 내려 회사 방향으로 힘차게 걸어가면서 읊조렸다.
“항상 그게 중요한 거지!”

지금 생각해 보면 나처럼 엄마에게도 그것이 어떤 기회처럼 느껴졌던 거 같다. 아마 그래서 나는 작은 실수에도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는지 모른다. 기억나는 실수는 두 번인데, 두 번 다 내가 제멋대로 생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번은 사수가 스와치를 종이에 붙이는 시범을 보여주면서, 일하는 동안 최대한 많이 붙이고 가라고 농담을 했다. 나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속도를 내 많은 양의 스와치를 분류하고 붙여냈다. 보기엔 똑같아 보였으므로 흐뭇해하던 사수는 내가 붙인 스와치를 떼어보더니 얼굴이 굳어졌다. “뭐야 이게?” 알고 보니 그 일에 있어 중요했던 건 많이 붙이는 게 아니라 스카치테이프를 딱 두 번만 말아 붙이는 그의 방식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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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실수는 늦게 퇴근한 거였다. 저녁 6시가 되자 사수는 퇴근해도 좋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웃어 보이고는 조금 더 앉아 있었다. 나는 떼어낸 스와치들을 그의 방식대로 다시 고쳐 붙이고 있었다. 딱 30분만 더하면 끝낼 수 있을 거 같았다. 내가 저지른 실수를 어서 만회하고 싶었다. 빠르게 퇴근하기보다는 일을 잘 해내는 게 내 몫인 거 같아서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분 후, 자리를 뜨는 내게 사수는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왜 안 가?”

그게 마치 경고처럼 들렸다. 나는 죄송하다 말하며 후다닥 가방을 챙겨 나왔다. 빠른 걸음으로 회사에서 100m가량 멀어졌을 무렵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잘하고 싶었는데, 내가 다 망쳤어.” 다행히 근처에 외진 산책로가 있어서 실컷 울 수 있었다. 울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멈출 수 없던 건 당시 귓가엔 내 미래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똑똑히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 모든 게 착각이라는 걸 알았던 건 출근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아침이었다. 도착해 보니 출근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불이 켜지기 전 사무실엔 고요히 햇살만이 드나들었고 처음으로 마음 편히 사무실을 둘러볼 수 있었다.

나는 내 자리와는 달리 PC가 놓여 있는 정직원의 책상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텅 빈 내 책상으로 돌아가 그 위로 풀과 테이프, 가위를 올려두고 스와치를 쏟았다. 책상은 마치 스와치 무더기가 이루어낸 섬처럼 보였고, 그 섬에서 내가 해야 하는 건 명확했다. 사람만 할 수 있는 잡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 그걸 최대한 많이 하기 위해 일찍 온 터였다.

문득 나는 너무 많이 노력하는 것이 실은 무엇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걸 깨달았다. 당시 나는 매일 밤 시즌 패션 트렌드를 외우고 웹에서 이미지를 뒤졌다. 패션 잡지를 통독했고 브랜드의 국내외 기사를 찾아 스크랩했다. 닥치는 대로 했지만 그게 맞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무엇이 중요하고 또 중요하지 않은지 확인받을 일은 없었으니까. 주어진 미래가 없는 섬에서 내가 무너뜨린 미래 같은 건 없었다. 만일 무너진 게 있다면 내 마음뿐이었다. 평범한 나의 최선이 혹시 아르바이트를 계약직으로 만들고,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만들고, 그렇게 무언가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 세상을 까마득하게 몰랐던 내 마음.

그 후 밤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잤다. 더는 실수하지도 않았다. 나는 사수의 방식대로 일했고 칼같이 시간을 맞춰서 퇴근했으며 3개월 내내 원단을 성실하게 분류했다. 내게 누구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충분히 복잡했다. 다만 무언가를 덜하고 있음에도 나는 훨씬 지쳤다. 더도 덜도 아닌 어떤 선의 기대를 맞추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 자신을 초과해 볼 요량으로 장전해 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을 억눌러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거기에는 인터넷쇼핑 중 최저가를 찾아 헤매다 오는 ‘현타’와 비슷한 지점이 있었다.

최저가 물건을 찾는 데 드는 시간처럼, 드는 노력을 계량하는 데에도 품이 들었다. 할 만큼만 하는 데 드는 에너지는 꾸준히 그리고 놀랄 만큼 내 의욕을 빼앗아갔다. 그런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사수는 이따금 참 잘한다고 나를 격려해 주었다. 기뻤지만 큰 감흥은 없었다. 그 칭찬은 내가 앞으로 무엇이 될 수 있을지와는 무관했다. 오해를 살까 말하자면 사수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았고, 그가 내게 한 지적은 전혀 부당하지 않았다.

적당히 할수록 더해지는 무기력

하지만 거기서 일하는 내내, 나의 최선이 저지른 실수는 머리를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뭘 하나 해도 최선을 다하렴, 항상 그게 중요한 거란다.”

그 무렵 나는 엄마가 아침마다 내게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할 때마다 정색을 일삼았다. “평범한 이에게 함부로 최선을 요구하지 마.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 최선은 그저 나를 소모하거나 바보로 만드는 일이야.” 냉소적이고 재수 없게 말하면서 인생의 진실을 꿰뚫고 있다는 듯 굴었다.

그러나 ‘칼퇴’ 후엔 엄마에게 한 말을 뉘우치며 언젠가 숨어서 울었던 그 산책로를 찾아갔다. 산책로는 경사가 심한 대신 올라가면 뻥 뚫린 곳에서 일몰을 볼 수 있었다. 퇴근 후 헉헉대면서 내 다리가 해낼 수 있는 걸음을 초과하려는 듯 경사를 올랐다. 지친 몸을 쥐어짜 매일의 일몰에라도 온 힘을 다하면 그제야 조금 살 것 같아졌기 때문이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나는 엄마의 말이 맞다는 걸 인정했다. 최선을 다하는 일이 있다는 건 내게 중요했다.

그러므로 실수가 내 안에 오래 남아 있는 건 단순히 내가 옹졸하거나 창피해서만은 아니었다. 그 실수로 인해 나는 평범한 이의 최선보다는 비범한 이의 방식이 중요한 그 사회의 진심을, 대체 가능한 일을 주어진 선만큼만 하면 되는 이의 슬픔을 깊게 새겼던 것이다.

다시 돌아가자면, 내 앞의 B는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식으로 버티는 고단한 회사원의 얼굴로 앉아 있었다. 회사원이 아닌 나와 그의 경험은 근본적으로 다를 거였다. 그래서 그런 B에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대안을 제시하거나, 책임도 못 질 거면서 함부로 회사를 그만두길 권유하거나, B의 상사처럼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느냐”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아닐뿐더러 B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기왕의 함부로라면, 나는 친구로서 B의 마음이 그때의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함부로 포개어지고 싶었다. 뭐라도 비축하려는 B의 모습은 자신이 온 마음을 쏟을 대상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최선을 억누르는 B에게 역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어쩌면 B를 이렇게 만든 상황은 그에게 무기력을 빙자한 슬픔을 새겨놓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분배에 드는 에너지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그에게 네 이론에 빠진 게 있는 거 같다고 부러 너스레를 떨었다. B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야, 당연히 지치지. 당연히 뭘 못 하지. 할 만큼만 하는 데 드는 힘은 왜 빼. 분배에 드는 에너지도 만만치 않은데, 그렇게 네 힘을 분배하게 만드는 회사가 잘못이지.”

그 말이 격려로 들리길 바라면서 조마조마하며 쳐다본 B의 얼굴이 다행히 밝았다. “아 맞네, 그걸 몰랐네!” ‘짬’이 찬 회사원답게 B는 빠르게 자신의 이론을 수정했고, 나는 그의 자기혐오가 잠시 사라진 것에 기뻐하며 초콜릿을 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보면 좋을지 한참 동안 노닥거리며, 우리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 볼 미래를 고민했다.


임지은
● 1990년 서울 출생
● 2021년 에세이집 ‘연중무휴의 사랑’ 발표



신동아 2022년 6월호

임지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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