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호

‘칼잡이’ 이복현에 금융권 ‘들썩’… 시장 왜곡 일으킬 수도

[금융 인사이드]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2-07-1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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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초 글로벌 긴축 여파로 대출금리 8% 전망

    • 李 금감원장 지적에 일제히 금리 인하

    • 신한은행 ‘통 큰 결단’… 하나은행도 움직여

    • 尹정부 ‘규제 완화’ 스텝 高물가에 엉켜

    • 금융권 “당근과 채찍 사이 균형 유지해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6월 2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은행장 간담회를 열고 금리·물가 상승에 따른 건전성 강화와 소비자 이자 부담 완화를 주문했다. [뉴스1]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6월 2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은행장 간담회를 열고 금리·물가 상승에 따른 건전성 강화와 소비자 이자 부담 완화를 주문했다. [뉴스1]

    금융 당국 수장이 금융사들의 금리와 수수료 인하를 압박하는 건 늘 있던 일이다. 은행이나 신용카드사 등 금융사는 제조업과 다르게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국가의 부 증진에 기여하기보다는 서민들을 상대로 ‘이자 장사’를 하고 있다는 뿌리 깊은 인식이 여전한 탓이다. 이런 인식을 드러내는 대표적 표현이 바로 ‘은행들은 땅 짚고 헤엄치기식 장사’를 한다는 말이다.

    정치권에서는 금융사들이 쉽게 번 돈을 공공을 위해 써야 한다는 논리를 때마다 강조하곤 했다. 가깝게는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의 경우 지난해 한 간담회에서 “신용등급이 하락한 (중소) 기업에 대해 대출 한도와 금리 등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땅 짚고 헤엄치는 은행, 이자 장사 늘 지적당해

    금융사가 취약계층이나 중소기업의 리스크를 줄여주기 위한 지원에 나서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이는 위험이 큰 대출에 대해서는 한도를 줄이거나 금리를 올려 리스크를 줄여야 하는 금융 원칙에는 어긋날 수 있는 발언이기도 하다.

    이런 발언이 나오면 은행들은 언론 등 여러 채널을 통해 반발의 목소리를 내곤 한다. 이후 당국은 “직접적으로 금리를 규제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한발 물러선다. 금융사들은 눈치를 봐가며 ‘적당히’ 당국의 체면을 세워주는 식으로 움직이곤 했다. 금융업계에서는 오랜 기간 반복돼 온 흔한 풍경이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산업은 근본적으로 정부가 ‘인허가’를 해주는 산업인 탓에 금융 당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다만 금융 산업의 발전과 혁신은 자율성 보장을 통해 이룰 수 있다는 원칙 역시 널리 통용된다. 이에 따라 당국도 직접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발언은 삼가고, 금융사들 역시 무작정 당국의 압박에 따르지만은 않는다.

    그런데 은행들이 근래에는 볼 수 없었던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갓 취임한 금융 당국 수장이 은행들에 대해 ‘이자 장사’를 한다고 한마디 하자 줄줄이 대출금리를 인하하고 예금금리를 올렸다.

    최근 글로벌 긴축의 여파로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가 연 8%대로 올라설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일부 은행을 중심으로 ‘파격 금리인하’ 행보가 시작된 것.

    신한은행은 주담대 금리가 6월 말 기준으로 연 5%를 초과할 경우 다른 조건 없이 금리를 연 5%로 1년간 일괄 감면하는 방안을 내놨다. 그야말로 ‘통 큰 결단’이다. 그러자 하나은행도 움직였다. 대출금리가 연 7%를 초과한 개인사업자들이 대출을 연장하면 금리를 최대 1%포인트 감면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경쟁사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자 다른 은행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분위기다. 이런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거란 전망이다.

    사실 금융사들 입장에서는 이 원장의 말이 황당할 법도 하다. 당국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기 때문이다.

    5월 새 정부 출범 후 취임한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낡은 규제와 감독·검사 관행을 쇄신하고, 금리와 배당 등 가격변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를 통해 금융산업의 혁신과 발전을 지원하겠다는 의미였다. 자연스레 금융권에서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자율성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윤석열 정부 역시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강조하며 출범한 터였다.

    하지만 6월 7일 검찰 출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한 뒤에는 순식간에 기류가 바뀌었다.

    시작은 6월 20일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였다. 그는 “금리 운영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지속해 높여나가야 한다”며 “금리는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고 있지만, 금리 상승기에는 예대금리차가 확대되는 경향이 있어 은행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검사 출신 금감원장, 은행법 내세워 공공 기능 강조

    이 원장은 검찰 출신으로 ‘윤석열 사단 막내’로 불리는 인물이다. 금감원 최초의 검찰 출신 원장으로, 정권 초 무게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인사였다.

    게다가 이 원장의 말은 단순히 금융 당국 수장의 일상적(?) 발언으로만 볼 수도 없었다. 같은 시기 정치권에서 줄줄이 같은 기조의 발언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금융사들이 그간 해왔던 것처럼 금융 당국의 체면만 적당히 세워주는 수준의 답을 내놓기는 어려웠다는 의미다.

    일단 윤석열 대통령부터 이 원장과 같은 날 같은 목소리를 냈다. 윤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금리 상승 시기에 금융소비자의 이자 부담이 크게 가중되지 않도록 금융 당국과 금융기관이 함께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에서도 힘을 보탰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시중은행들이 예금과 대출금리 차이로 과도한 폭리를 취했다는 비판이 계속돼 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원장은 이후에도 강도 높은 발언을 이어갔다. 법조인 출신답게 법을 내세웠다. 그는 6월 23일 “우리 헌법과 법률, 그에 따른 은행법과 관련 규정에 따르면 은행의 공공적 기능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장들과 만나 대출금리 인하를 언급한 것이 관치금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는 질의에 대한 답변이었다.

    물론 이 원장을 비롯한 여권 인사들이 처음부터 금융사들을 압박할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을 거라는 분석이 많다. 정권 초부터 물가가 고공행진하면서 기준금리 인상이 당초 계획보다 빨라졌고, 결국 새 정부의 ‘규제 완화’ 스텝이 엉켰다는 분석이다. 기준금리가 1년도 채 되지 않아 1.25%포인트 오르자 은행 대출금리도 급등하면서 금융소비자의 이자 부담이 급증한 상황이었다.

    실제 금융업계에서도 이 원장의 이런 행보를 이해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금은 금리인상으로 인해 취약계층이 무너지는 상황을 막아야 하는 것도 맞다”며 “은행들도 이를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원장이 직접적으로 금리 수준을 제시했다면 문제가 됐겠지만, 그 정도 발언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문제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벌써 금융업계에서는 이 원장에게 ‘칼잡이’ 금감원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관치금융을 넘어서 금융권 사정 정국이 전개되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 경우 앞으로도 이 원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금융사들이 다소 과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자칫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이 원장 역시 금세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7월 5일 기자들이 은행권의 대출금리 인하 행보에 대해 묻자 “의견을 내는 것이 다소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리인상기에 은행권에서 자발적으로 금융소비자 보호에 나서주는 것에 주목하고 있으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앞으로 이 원장 임기 내내 관치금융이나 사정 정국에 대한 얘기가 끊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로 살얼음을 걷는 시기인 만큼 이 원장이 당근과 채찍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잘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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