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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특집

김종인, ‘반기문 대항마’ 된다?

야권 떠도는 3대 시나리오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 song@yeongnam.com

김종인, ‘반기문 대항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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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문재인-김종인-박원순 밀약설
  • ● 안철수, 총선 전후 도태?
‘더민주의 알파고.’

야권 인사들이 김종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말엔 기대와 불안이 혼재돼 있다. 올해 초 더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는 바람 앞의 등불 같았다. 안철수와 김한길이 빠져나가 국민의당을 창당했고, 아성인 호남에서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수도권이 넘어가면 끝이었다.

야구로 치면 9회말 무사만루 역전 위기에서 문재인은 김종인을 구원투수로 불러들였다. 급한 쪽이 ‘을’이 되는 법. 김종인은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공천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이후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더민주당이 안정을 찾은 것이다. 호남에서 예전의 지지율을 회복했고 수도권에서 국민의당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70~80석’ 패배감에 젖어 있던 당내 분위기도 ‘과반 의석 한번 해보자’로 바뀌었다. 모두가 ‘김종인 효과’였다. 김종인의 이동으로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브랜드에서 더민주의 구호로 덧칠되고 있다. 이해찬, 정청래 등 친노 의원의 잇따른 공천 탈락으로 친노(親盧) 패권 이미지도 옅어지는 듯했다.
 
김 대표는 정책·노선에서도 문재인 체제와 다소 다르게 갔다. 그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뒤 “북한 궤멸”이라는 네 글자를 썼다. ‘국보위’ 출신다운 ‘무조건 반사’였다. 개성공단에 대해선 “공단 폐쇄가 북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것은 신통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공단 가동 중단에 반대한다는 건지 찬성한다는 건지 모호했다. 이런 그의 스탠스는 ‘개성공단 부활’을 확약한 국민의당보다 ‘우(右) 클릭’ 한 것으로 비쳤다.





“‘오케이 거기까지!’ 안 먹혀”

아마 더민주당의 주류인 문재인과 친노 핵심은 김종인을 스카우트한 자신들의 결단력에 스스로 찬사를 보냈을는지 모른다. 김종인은 유능한 인공지능처럼 난제를 척척 해결해 더민주당을 몰락의 구렁텅이에서 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주인인 인간을 지배할지 모른다’는 불안을 수반한다. 

문재인과 친노 핵심은 김종인을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친노 의원들이 나가떨어지는 상황을 보면, 이게 과연 문재인 측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인지, 아니면 문재인 측 통제에서 벗어나 김종인이 제멋대로 휘두르는 것인지가 잘 판단되지 않을 정도다. 더민주당의 한 의원은 “문재인 전 대표 측이 영화의 한 대사처럼 ‘오케이, 거기까지!’라고 하면 김종인 대표가 하던 걸 딱 멈춰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 명령이 안 먹히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더민주당에선 ‘박영선 의원, 이철희 총선기획단 전략기획본부장 등 여러 명이 김종인과 가깝다’는 이야기가 나돈다고 한다. 한 비주류계 관계자는 “김종인계가 구축되는 징조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야권의 일부 중진급 인사들은 김종인의 존재감이 그의 경륜에서 나왔다고 본다. 대법원장 출신 정치인인 할아버지(김병로)의 심부름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정치를 배웠고 이후 보수(전두환·노태우 정부)와 진보(노무현 정부)를 넘나들며 전국구 의원(현 비례대표) 4선을 한 데 따른 노련함이라는 것이다. 독일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보건 분야 장관을 역임한 이력은 김종인이라는 이름을 정책 브랜드로 만들어준다고 한다. 친노의 ‘대포(大砲)’인 정청래 의원도 공천 탈락 전 김 대표에 대해 “경제민주화님 환영합니다”라는 트윗을 날렸다.



“24년 전 대권후보로 검토”

더민주당 관계자는 “총선 전엔 어떤 의원도 공천권자에게 항거하지 못한다. 또한 ‘친노 낙천’에 반발하면 ‘반(反)개혁’으로 몰린다. 김 대표는 이런 당내 구도와 사회 분위기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기 구상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자 김 대표는 정치가 재미있는 모양이다. 그는 욕심을 내는 듯, 처음엔 “나는 잃을 게 없다”고 말했지만 요즘엔 총선 이후를 내다본다. 한번은 ‘원 포인트 릴리프(한 타자만 상대하러 나온 구원투수)’라는 말이 나오자 “정치를 원 포인트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박했다.

더민주당의 한 의원은 “김 대표가 비례대표로 20대 국회에 입성하면 차기 당 대표에 1순위로 거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부 당 관계자는 “김 대표가 지역구·비례 공천을 통해 친위세력을 구축하고 몇몇 의원과 당협위원장들이 자발적으로 그를 따른다면, 주류인 문재인과 친노계를 위협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야권 일각에선 ‘김종인이 총선 이후에도 더민주당에 남아 킹메이커 노릇을 하거나 대권주자가 되려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24년 전에도 김종인 대선후보설이 떠돈 바 있다. 

노태우 대통령 임기 말기인 1992년 10월 여당인 민자당을 떠난 박철언 전 정무장관, 이종찬 전 의원, 김복동 전 의원 세력은 새한국당을 창당해 ‘국민 대선후보’를 내세우기로 했는데 그 적임자로 김종인 당시 민자당 의원이 검토됐다고 한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박철언 전 장관과의 대화다.

▼ 당시 이종찬 전 의원 쪽에서 김종인 의원을 대선주자로 내세워보자고 했습니까.

“그때 타진한 일이 있죠. 결국 안 됐지만….”

▼ 김종인은 대선후보감이 아니라고 판단한 건가요.

“대통령감이 아니라기보다는…. 당시 이종찬이 이중 플레이를 했죠. 본인이 (후보를) 하려고 강하게 나간 통에 (김종인에게) 찬스가 안 갔죠.”



▼ 박 장관의 생각은 어땠습니까.

“김종인 박사는 내가 6공화국 때 같이 일 해봐서 잘 알지만 머리가 굉장히 좋아요. 정치, 경제, 사회 여러 문제에 대해 분명한 판단을 가지고 있는 명석한 분이죠.”

▼ 요즘 보기엔 어떤가요.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하고 있는 게….”

▼ 김종인 대표에게도 대권 도전 기회가 주어질 만하다고 봅니까.
“괜찮다고 보고 있어요. 여야에서 두루 경험을 쌓아왔잖아요. 본인 의사는 잘 모르겠고…. 조직화된 세력의 뒷받침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는 거죠.”

▼ 1940년생으로 76세인 나이가….

“건강하십니다. 같은 헬스클럽 멤버라서 가끔 보는데 이상 없어요.”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올해 12월 임기를 마친다. 72세인 반 총장이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출마하는 움직임이 나오면 야권에서 ‘김종인 대항마’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총선 이후에도 여권의 선두 대선주자로 계속 내달릴 경우엔 어떻게 될까. 또 다른 정치평론가는 “김종인은 문재인·박원순에 비해 안정감이 있고, 안철수에 비해 경륜이 있다. 김종인과 김무성을 놓고 볼 때는 김종인이 오히려 보수층에 더 어필하는 스펙이나 성품을 지녔다”고 평했다. 

문재인 앞엔 두 가지 과제가 있다. 하나는 더민주당의 총선 승리고 다른 하나는 범야권 대선후보가 되는 일이다. 그는 여전히 당 최대 계파의 수장으로 통한다. 야권 일각에선 ‘김종인이 더민주당에 들어올 때 문재인, 김종인, 박원순 간에 묵계나 밀약이 있었다’는 설이 나온다. 다음은 한 야권 인사의 말이다.



껄끄러운 親盧만 날렸다?

“김 대표가 문 전 대표와의 묵계에 따라 거추장스러운 친노 의원들을 정리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 의원들이 줄줄이 날아가는 와중에 김 대표와 문 전 대표가 박원순 서울시장을 배려해 박 시장 측근 인사들의 공천을 사실상 배려해주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문 전 대표가 지난해 당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문·안·박 연대를 제의했을 때 안철수 의원은 거부했지만 박 시장은 흔쾌히 문 전 대표의 손을 잡아줬다. 박 시장은 측근들을 국회로 보내 여의도에 기반을 마련하고 싶어 한다.”  

김종인 체제의 비대위와 선대위는 의원들을 컷오프 하면서 친노이면서 문 전 대표와 거리가 있는 인물을 집중 제거한 흔적이 있다고 한다. 문재인을 중앙에 놓고 친노라는 원을 그려볼 때 친노 중에서도 외곽의 아웃사이더를 족집게로 집어내듯 골라냈다는 것이다. 범(汎)친노로 분류되는 정세균 의원 계열의 강기정·오영식·전병헌 의원 등이 날벼락을 맞은 게 대표적이다.

반면, 문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의 종합상황실장을 맡은 홍영표 의원과 윤호중 의원 등이 공천을 받았다. 이목희 의원은 보좌진 급여 상납 의혹으로 물의를 빚었는데도 컷오프되지 않고 경선지역에 포함됐다. 비(非) 현역 중 정태호 전 청와대 대변인 같은 ‘문재인 사람’ 상당수는 단수 추천됐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더민주의 공천 결과를 보면 김종인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가 서로 논의해 만든 모양새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더민주에서 중간 당직을 맡다 국민의당으로 옮겨간 한 인사는 “문 전 대표와 김 대표는 그저 필요에 의해 결합한 사이가 아니다. 문 전 대표는 부부동반으로 자주 식사를 하면서 김 대표와 인간적 관계를 맺어온 걸로 안다”고 귀띔했다.

‘친노 가지 치기’ 논란과 관련해, 문재인 체제 때 작성됐다 김종인 체제에서 발표된 ‘현역 하위 20% 컷오프’에 문희상, 유인태, 신계륜 의원 같은 친노 중진도 포함됐다. 이들은 친노이긴 하나 문 전 대표 처지에선 껄끄러운 존재였다고 한다. 문희상은 친문재인계의 독주에 자주 제동을 건 것으로 알려진다.

그동안 친노 진영에선 원로급 인사들을 중심으로 “문재인은 2012년 대선에서 실패했으니 2017년엔 안희정 충남도지사 같은 새로운 친노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말이 많았다고 한다. 문 전 대표에겐 뼈아픈 이야기다.

황태순 평론가는 “문재인이 김종인을 끌어들인 건 빌려온 칼로 상대방을 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밑에서 한솥밥을 먹은 동지들이니 아무리 부담스러워도 직접 내칠 순 없는 거 아닌가. 김종인을 빌려 대권가도에 장애가 될 수 있는 비우호적 친노를 정리하는 원모심려(遠謀深慮) 같다”고 말했다.



호남의 전략적 투표

김종인은 “박원순 사람이라고 해서 꽂아주고 하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기동민·민병덕, 임종석, 권오중, 천준호, 오성규 등 박원순계로 분류되는 이들은 거의 다 3월 중순 현재 공천을 받았거나 컷오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더 단단해진 문재인과 친문계 이너서클은 총선 후 김종인으로부터 별 어려움 없이 권력을 회수해올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이들이 바로 더민주당의 뿌리이자 주인이자 실세일 것이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김종인을 ‘임시 사장’이라고 부른다.

김종인은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대선 후 외면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총선 때에도 허물어져가던 문재인의 대권가도를 반듯하게 닦아준 뒤 객(客)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더민주당 관계자는 “김종인의 역할은 총선까지”라고 잘라 말했다. 한 친노 인사는 “김종인은 차르로 불리지만 사실 국보위 전력부터가 당의 정체성과 맞지 않다”고 했다.   
 
2012년 안철수 신드롬이 일었을 때 김종인은 안철수의 멘토였다. 그러나 안철수는 자신의 다른 멘토와 마찬가지로 김종인을 뜨뜻미지근하게 대했고 둘은 결별했다. 더민주당으로 간 김종인은 자존심에 상처를 준 안철수를 응징한다. 그는 야권 연대도 아닌 야권 통합을 제안함으로써 안철수를 궁지로 몰았다. 탈당한 안철수에게 통합은 받을 수 없는 카드였다. 김종인은 “이기심을 버려라” “(안 대표가) 정치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다 된 집에 들어가면 모든 게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까 다시 또 집을 짓겠다고 나갔다” “대권 생각 때문에 야권통합 반대한다”고 정신없이 몰아붙였다. 안 대표가 천정배 공동대표, 김한길 전 상임선대위원장과 갈등을 겪자 김종인은 “안철수 대표만 빼고 더민주로 다시 오라”며 한껏 조롱했다.

야권에선 “안철수가 총선 전후 도태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야권 인사는 “‘문재인의 대안을 남겨두자’는 호남의 전략적 투표만이 안철수를 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문재인의 오만에 학을 뗀 호남이 안철수로 갔다가 안철수가 조금 못한다고 다시 더민주당으로 쏠린다”면서 “호남이 문재인 대안인 안철수를 죽이면 앞으로 두고두고 문재인에 끌려 다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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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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