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호

즉문즉답

“현장과의 소통은 조달행정의 기본”

‘함께 꾸는 꿈’ 정양호 조달청장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17-03-24 16:01:08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1961년 경북 안동 출생
    ● 서울대 경제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경제학 박사
    ● 행정고시 28회   
    ● 지식경제부 산업기술정책관·기후변화에너지자원개발정책관, 새누리당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일반인에게 조달청은 다소 생소한 중앙행정기관. 하지만 여러 공공기관이 필요로 하는 물자와 서비스, 시설물을 구매·공급하고, 시장 수급 및 가격 안정을 위해 비철금속 등 원자재 비축사업을 운용하며, 정부 물품과 국유재산을 관리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 연간 집행·관리하는 공공조달 예산만도 55조 원에 달한다.

    이런 조달청을 이끄는 정양호(56) 청장(제33대)은 산업통상자원부 출신으로선 첫 수장(首長). 그동안은 청장 자리를 기획재정부 출신이 독식하다시피 했다. 이에 대해 정 청장은 조달청의 본래 기능인 국가예산 절감 등 재정정책 지원뿐 아니라 공공조달시장을 활용한 중소기업 육성과 신산업 창출 등 산업정책 지원도 중요해지는 흐름에 따라 산자부 출신 청장으로서의 역할이 더욱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래선지 그가 지난해 2월 24일 취임 직후부터 조달행정에서 방점을 찍은 부분은 내·외부와의 소통 강화. “현장과의 소통이 조달행정의 기본”이라는 지론에서다.

    정 청장은 취임 후 줄곧 지방청, 관계기관, 기업 등을 두루 돌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소통 행보를 보여왔다. 내부 소통을 위해선 본청·지방청의 신규 임용 및 6급 이하 젊은 직원이 참여하는 ‘주니어 보드’ 모임을 정례화했다. 또한 취임과 함께 개설한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업무 외 시간과 주말에 직원들과 조달정책 방향을 활발히 공유하고, 일반 국민에겐 조달업무를 적극 소개함으로써 조달청에 대한 친밀감과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불필요한 일에 시간과 노력이 낭비되지 않게 기업 민원 중시, 의전·행사 간소화를 강조하는 업무 스타일도 조달청 안팎의 시선을 끈다. 이윤 추구와 효율성을 최우선시하는 기업은 형평성에 초점을 맞춘 정부보다 더 시간을 소중히 여기므로 굳이 민원처리기간에 얽매이지 말고 일찍 처리할 수 있는 민원은 단시간 내 처리하고, 중소기업 지원도 ‘지원한다’는 차원보다 ‘억울함이 없게 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하게끔 독려하는 것. 내실을 기한 행사 개최를 위해 수행요원은 필수인원으로 최소화하고 행사 준비도 간소화했다. 청장 해외출장 시 간부들의 공항 영접에도 금지령을 내렸다.

    정 청장의 이런 소통 노력은 어떤 성과를 내고 있을까. 3월 7일 정부대전청사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 주요 조달정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기업성장·품질우선 조달행정’

    ▼ 취임한 지 1년 남짓 됐다. 그간의 소회와 성과라면.

    “첫 산자부 출신 청장이라 더 막중한 책임을 느껴왔다. 청장으로 임명된 데 대해 ‘(산자부 근무 경험을 살려) 공공조달을 통해 산업 쪽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라’는 주문으로 이해한다. 결국 대규모 공공구매력을 활용해 우리나라 경제와 산업을 고루 지원하는 게 관건이다. 신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중소기업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나와 조달청이 해결해야 할 과제, 곧 ‘시대정신’이라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해 5월 경제·산업 지원을 위한 ‘국정과제 지원계획’을 수립해 차질 없이 수행 중이다. 특히 신산업과 벤처산업의 신생기업이 손쉽게 조달시장에 진입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벤처나라’라는 전용 쇼핑몰을 구축했다. 드론·클라우드 등 미래 유망 제품이 공공 분야를 디딤돌 삼아 저변을 확대하도록 다양한 지원방안도 추진 중이다.”

    ▼ 올해 정책 운용 방향을 ‘기업 성장과 품질 우선 조달행정’으로 정했다. 지난해와 비교할 때 어떤 변화가 있나.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첫째는 이제껏 하지 않은 새로운 일을 해보자는 거다. 그동안 물품·서비스 계약의 중소기업 비중이 80%에 육박할 만큼 조달청이 중소기업 판로 지원에 힘쓴 건 긍정적이다. 그러나 ‘신생기업 진입→중소기업으로의 성장→글로벌 기업 도약’이라는 조달시장에서의 선순환적 접근엔 다소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경미한 위반에 대해선 합리적 범위 내에서 불이익을 최소화하거나, 사회적 약자 기업 등의 신인도 가점에 대한 일몰제 검토 등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이다. 둘째는 지금껏 추진해온 일들의 내실을 다지자는 거다. 고품질의 조달물자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제공하는 건 조달업무의 기본 중 기본이다. 이를 위해 현장 중심의 품질점검 강화, 리콜제 활성화 등으로 품질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불공정 조달행위에 대한 대응조직을 강화해 선진 조달문화를 확립해나갈 계획이다.”



    ‘벤처나라’로 창업기업 뒷받침

    ▼ 지난해 10월 개통한 벤처나라는 기술력 있는 창업 초기 벤처기업의 공공조달시장 진입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는 등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다.

    “벤처나라는 기존 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서 거래가 어려운 신기술, 융합·혁신 분야 제품과 서비스를 공공기관에 판매하는 전용 쇼핑몰이다. 공공기관에 상품을 홍보하고 초기에 공공 납품실적을 쌓는 기회를 제공하는 의의가 크다. 아직 개통 초기여서 등록 상품 수가 부족하고 보수적인 공공기관의 구매 특성 등으로 인해 판매에 어려움이 있지만, 최근 거래실적이 증가 추세다.



    이에 따라 올해엔 벤처나라 이용이 활성화되도록 등록 상품의 다양화, 공공기관의 구매부담 경감, 벤처나라 홍보에 집중할 계획이다. 먼저 공공기관의 우수한 벤처·창업기업 제품 구매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 규제개혁장관회의 심의를 거쳐 올해 1월 국무조정실에서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에 벤처나라 등록 상품 구매를 권고했다. 앞으로 더 많은 업체에 등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광역자치단체 등으로 추천기관을 확대하는 한편, 등록 절차를 간소화하고, 등록 상품에 ‘우수 벤처·창업기업 제품’ 지정 마크를 부여해 벤처나라 등록 상품의 인지도·신뢰도를 향상시키겠다.”

    ▼ 공공부문의 드론산업 육성에 발맞춰 조달청도 드론 같은 기술혁신형 제품의 초기 시장 창출을 위한 공공조달혁신을 추진 중인데.


    “국내 드론 기술력은 세계 7위로 평가되지만, 가격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고부가가치 임무탑재장비(항법 센서, 카메라 등)는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가격은 중국, 기술력은 선진국에 열위인 실정이다. 미래창조과학부와 조달청은 정부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드론의 현장 활용을 위한 기술 수요를 발굴해 시범 구매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조달청 차원에서 신제품·신서비스에 대한 연구개발(R&D) 촉진, 구매 연계를 통한 선도시장 창출을 위해 기술혁신형 공공구매 지원체계 개편을 추진 중이다. 우선 우리 실정에 맞는 공공혁신조달(PPI·제품 개발 시 구매를 미리 약정하고, 추후 약정에 부합하는 제품이 개발되면 구매하는 것) 제도 도입의 근거 규정을 마련 중이고, 장기적인 기술혁신 견인과 고부가가치 신성장산업 육성 등을 위한 범부처 ‘공공혁신조달협의체(가칭)’ 구성을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기술 융복합 분야에 공공혁신조달을 접목함으로써 신산업 분야의 공공조달 연계 확대를 위한 신규 수요 발굴 등을 긴밀히 협의 중이다.”

    ▼ 기술력을 지닌 중소기업들이 점차 해외 조달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조달청도 대학, 협회, 유관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해외시장 공략을 지원하는데.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확대 등으로 해외 조달시장이 새로운 수출시장으로 부각되지만, 우리 기업의 진출은 제한적이다. 자국 기업 우대, 까다로운 요건, 절차의 어려움 등 보이지 않는 장벽 탓에 기업 단독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조달청은 기업의 해외 전문인력 및 정보 부족 등의 어려움을 해소하려 지난해부터 산·학·관 협업으로 해외 전문인력을 육성하고, 해외 진출 희망업체에 채용을 추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산·관·학 협업 ‘글로벌 공공조달 상담회’를 처음 개최해 2100만 달러 규모의 계약, 5100만 달러 규모의 업무협약(MOU) 체결 성과도 냈다.

    올해는 해외정부조달 입찰 지원센터를 설치해 우수 중소기업이 미국, 유엔 등의 조달시장에 직접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앞으로도 G-PASS기업(국내 조달시장에서 기술력, 품질 등이 검증돼 해외 조달시장 진출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된 중소·중견업체) 지정 확대, 전문인력 양성·공급, 해외 바이어와의 거래 기회 확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중소기업청 등 유관기관과의 협력 강화로 조달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확대할 것이다.”



    ‘나라장터’에 여행·체험상품 공급

    ▼ 지자체, 한국관광공사 등 각종 공공기관과의 여행상품 개발이 확산되고 있다. 여행상품 개발의 효과와 향후 계획은.

    “세월호 사고 여파로 수학여행·체험상품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해외여행 붐까지 겹치면서 국내 지역 관광산업이 위축됐다. 이에 지자체와 협력해 지역의 역사·문화 등 볼거리·먹거리와 나라장터의 판로지원·홍보 기능을 융합해 안전하고 신뢰성 있는 여행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자연생태학습, 전통문화, 힐링, 안전체험 등 총 54개 여행·체험상품을 개발해 나라장터 쇼핑몰을 통해 공급 중이며, 특히 학생들에게 우리의 자연과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최초 개발 상품인 전북 군산지역(근대역사박물관) 방문객은 나라장터 등록 이전보다 100% 증가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으며, 충남 서천 등 다른 지역에도 관광객이 늘고 있다.

    지난해 8월 한국관광공사와 MOU를 통해 공무원 출장 시 여비 한도액 범위 내에서 이용토록 한 베니키아 체인호텔도 인기를 끈다. 앞으로도 지자체와 협력해 지역 특색 관광상품 개발을 지속하고 정부의 ‘국가 해안 관광도로’ 개발계획에 따른 남해안 지역 여행상품 개발도 추진할 것이다.”

    ▼ 전통주와 전통식품 살리기에도 나섰는데.

    “전통주·전통식품 제조업체는 일반 주류·식품 제조업체와 달리 영세하고 영업망이나 대리점망 등이 갖춰지지 않아 판로에 애로가 많다. 조달청은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 지난해 3월 전통주와 전통식품을 등록하고 5만여 공공기관이 편리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올해 2월 말 현재 35개사 111개 상품의 전통주와 9개사 46개 전통식품이 나라장터 쇼핑몰에서 판매 중인데, 사업 초기 공공기관의 인식 부족 등으로 판매 실적은 저조하다.

    따라서 전통주·전통식품의 판로 활성화를 위해 정부조달 문화상품, 전통주, 전통식품을 ‘정부조달전통상품(가칭)’으로 통합해 홍보·판로 지원을 강화하고, 오는 7월부터는 공공기관뿐 아니라 일반인도 팩스 등을 이용해 나라장터 쇼핑몰을 이용할 수 있게 개선하려 한다. 내년엔 ‘전통상품 전용 쇼핑몰’을 구축한다. 또한 국내외 전시회 참가를 지원하고, 각종 행사와 외국 초청인사 선물용 등으로 전통상품이 많이 구매·활용될 수 있도록 홍보와 협력을 강화할 것이다.”



    불공정 조달행위 근절에 최선

    ▼ 조달청이 불공정 조달행위에 대한 법적 조사권을 갖게 됐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불공정 조달행위가 근절될 것으로 보나.

    “그동안 외국산 납품, 하청생산 등 규정을 위반해 경쟁 질서를 교란하는 조달업체의 불공정행위가 다수 존재했다.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 조달청의 조사권 신설 방안을 추진했고, 지난해 12월 29일 조달청에 조사권을 부여하는 ‘조달사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조사권 신설로 날로 지능화·다양화하는 불공정 조달행위의 적발에 상당한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한다. 법적 조사권이 뒷받침되므로 그간 조사에 비협조적일 경우 조사 이행이 힘들었던 문제가 해결돼 조사에 한층 힘이 실리게 됐다. 피조사업체의 회계장부, 영업서류 등도 법적으로 열람할 수 있게 돼 위반행위를 입증할 증거 확보에도 유리해졌다.

    현재 불공정 조달행위 대응방안을 마련해 시행 중인데, 올해 2월 직제개편을 통해 임시 태스크포스(TF) 1개 팀으로 운영되던 조사 부서를 공정조달관리과와 조달가격조사과 등 정식 2개 과로 확대하고, 조사인력도 8명에서 17명으로 대폭 늘렸다. 인력에 의한 감시의 한계를 극복하려 지난해 12월 조달업체가 적법하게 계약을 이행하는지를 온라인으로 감시하는 ‘공공조달 계약이행 확인시스템’도 구축해 오는 6월까지 시범 운영한 후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조사권이라는 법적 기반, 조사조직 확대라는 조직적 기반, 계약이행 확인 시스템이라는 시스템적 기반, 이 3가지 조사업무 기반이 완비되면 지금보다 조사·적발 능력이 한층 높아져 불공정 조달행위 근절에 큰 효과를 거둘 것이다.”



    ‘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

    연일 현장 소통과 새로운 조달정책 구상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서도 정 청장은 지난해 12월 첫 저서 ‘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매일경제신문사)를 펴냈다. ‘조달청장 정양호의 직장별곡’을 부제로 단 이 책은 ‘직장생활의 기본 갖추기’ ‘당신이 거울입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직장인들이 꼭 읽어야 할 책’ 등 4개 장으로 구성돼 그가 32년간의 공직생활 중 겪고 터득한 경험과 지혜를 후배 공직자와 직장인에게 전하는 공감대가 되고 있다. 발간 이후 단기간에 4쇄 6000여 권이 팔려 ‘공무원이 낸 책은 실패한다’는 속설을 깨고 인기몰이 중이다. 올해 들어서는 정부대전청사와 산자부, 한국가스공사, 부산시교육청 등에서 특강을 통해 후배 공무원과 공직생활 경험, 삶의 지향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자리도 가졌
    다.

    정 청장은 2008년 이후 온라인 서점 ‘YES24’에서 파워 블로거로 활동하며 1350권의 책 리뷰를 올린 다독가(多讀家)이기도 하다. 매년 100권 이상 책을 읽는다. 그의 블로그 누적 방문자는 1400만 명. 조달청 내 월례 ‘책소사(책과 소통하는 사람들)’ 모임을 통해 직원들과 독서 토론도 한다. 이번 저서 출간도 이런 소통 행보의 연장선이다.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정 청장이 취임사에서 인용한 칭기즈 칸의 말이다. 꿈을 ‘함께’ 꾸기 위해 필요한 것 역시 소통과 공감이라는 얘기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