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

‘혼밥판사’의 한끼 | 순대

누구에게나 자신의 순대가 있다

  • 정재민 전 판사·작가

    입력2019-04-0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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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판은 상처로 시작해서 상처로 끝난다. 당사자들 상처에 비할 순 없지만 판사도 상처를 입는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곤 한다. 정갈한 밥 한 끼, 뜨끈한 탕 한 그릇, 달달한 빵 한 조각을 천천히 먹고 있으면 울적함의 조각이 커피 속 각설탕처럼 스르륵 녹아버리고 위로를 받는다. 그러면서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해서 법정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맞은편 빈자리에 앉은 누군가에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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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정 뚝배기 속에서 흰 사골육수가 목욕탕처럼 부글부글 거품을 뿜어낸다. 한가운데에서는 들깻가루가 곧 폭발할 화산의 재처럼 들썩거린다. 국이 식기를 기다리면서 젓가락으로 당면순대 하나를 꺼내서 새우젓에 찍어 먹었다. 고소한 맛과 함께 물컹물컹하면서도 탄력 있는 질감이 느껴진다. 염통, 허파, 곱창 같은 내장은 꺼내 간장에 찍어 먹었다. 대단히 만족스럽다. 

    딱히 먹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을 때 한 번씩 순대국밥집을 찾는다. 순대국밥은 설렁탕, 육개장, 해장국, 선짓국처럼 흔한 국인데도 먹을 때마다 특별한 느낌을 준다. 색깔도, 내용물 생김도 특이하고 국물도 투박하고 텁텁하고 혼탁하다. 그래서 순대국밥이 몽골이나 중동의 음식처럼 이국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순대국밥을 먹으면 순대도 따로 먹고 국밥도 먹을 수 있어 일석이조다. 대신 국물에 빠진 순대 맛이 그냥 순대보다 못한 것은 감수해야 한다. 특히 당면순대는 순댓국 안에서 불어버린다. 불어 터질까봐 국에 넣는 순대는 두껍게 자른다. 

    국물이 어느 정도 식었다 싶으면 새우젓과 양념장을 국에 넣고 부추와 뒤섞은 다음 숟가락으로 국물 맛을 본다. 짠맛과 매운맛이 얼핏 이웃 같지만 짠맛은 짠맛이고 매운맛은 매운맛이다. 양념장을 아무리 넣어도 새우젓이 안 들어가면 싱겁다. 새우젓을 아무리 넣어도 양념장을 안 넣으면 입안이 후끈후끈해지지 않는다.

    내장 징그러워 못 먹다가…

    순대를 처음 먹은 것은 여섯 살 때다. 일곱 살 이전의 기억이 서너 토막뿐인데 순대를 처음 먹었던 기억이 그중 하나다. 어머니를 따라서 간 재래시장의 어느 채소 가게였다. 주인아주머니가 평상 위에서 이웃 순댓집에서 사온 순대를 놓고 먹고 있었다. 얇은 비닐봉지 안에 거무스름한 당면순대가 쌓여있는 것을 보고서 나는 대체 저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순대를 빤히 쳐다보는 나를 본 주인아주머니가 이쑤시개로 순대를 찍어 내게 건넸다. 



    겁이 많았던 나는 이쑤시개를 마지못해 받아 들고는 경계하면서 물었다. “이게 뭔데요?” “순대다. 순대 안 먹어봤나?” 나는 어머니를 돌아보았고 어머니가 웃으면서 먹어도 되는 거라고 했다. 나는 순대를 받아 들고도 한참 동안 이모저모 살펴보았다. 떡국에 들어가는 떡 같은 모양인데 당면이 돌기처럼 오톨도톨하게 돌출되어 있었다. 나는 혀끝을 조심스럽게 갖다 대보았다. 마치 영화 E.T.에서 소년이 처음으로 E.T.의 손가락에 자기 손가락을 가져다댈 때처럼 긴장되고도 설렜다. 별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마치 귤을 까듯 손으로 까만 순대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채소 가게 주인아주머니도, 그 집에 와 있던 손님도, 어머니도 와락 웃음을 터뜨렸다. 

    첫맛은 별로였다. 고무지우개를 씹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하나씩 더 먹을 때마다 모종의 재미가 느껴졌다. 맛이 고소하고, 색깔이나 모양도 특이하고, 씹을 때 탄력이 느껴졌다. 그 뒤로는 어머니와 시장에 갈 때마다 순대를 먹었다. 소금에 토닥토닥 찍어 먹고 쌈장에도 찍찍 찍어 먹었다. 처음에는 내장이 징그러워서 먹지 못했는데 조금 지나니 없어서 못 먹고 안 줘서 못 먹는 지경이 되었다. 순대 맛에 눈을 뜬 뒤로는 어머니의 꼬불꼬불 말린 장식이 들어간 흰 블라우스를 보거나 흰 케이크의 장미꽃 모양 화이트초콜릿을 보면 마음속으로는 곱창 블라우스, 곱창 케이크로 인식하게 되었다.

    어느 모자의 순대 먹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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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대에 얽힌 웃지도 울지도 못할 추억도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 집에 놀러가서 저녁이 다 되도록 놀았다. 단칸방에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친구였다. 그때는 어려서 왜 그 친구에게 아버지가 없는지 의아해하지 않았다. 나의 어머니를 비롯해 누구에게도 왜 그 친구는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는지 묻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둔감하고 눈치가 없었다. 

    그날도 친구 어머니가 일을 마치고 귀가한 뒤에도 나는 우리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저녁이 깊어져서야 친구 집을 떠났다. 우리 집으로 가다가 문득 가방을 친구 집에 놓고 온 것이 생각나서 다시 돌아갔다. 

    친구는 단칸방에서 어머니와 순대를 꺼내놓고 웃으면서 맛나게 먹고 있었다. 예기치 않게 돌아온 나를 보고 친구 어머니는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화들짝 놀라더니 와서 같이 먹으라고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아들에게만 주려고 순대를 사왔는데 내가 있어서 못 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순대 한 점을 집어 먹어보았다. 식어 있었다. 내가 생각보다 너무 오랫동안 집에 가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더는 먹지 않고 그냥 그 집을 나섰다. 그때는 어려서 더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뿐이었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미안함과 불편함도 느꼈던 것 같다. 아버지 없이 단칸방에 사는 모자가 간만에 오붓하게 순대를 먹는 시간을 내가 훼방 놓은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요즈음에도 내가 눈치 없이 낀 자리라는 생각이 들 때는 어김없이 그날을 생각한다. 

    당면순대는 아주 맛없기도 어렵지만 아주 맛있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길거리에서 파는 모든 당면순대의 수준이나 맛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당면 외에도 찹쌀, 선지, 마늘, 생강, 부추, 콩, 양파, 우거지, 비계 등 다른 재료가 들어갈 수 있다. 재료가 신선하고 다양할수록 더 맛있고 고소한 것은 물론이다. 순대 속이 어떻게 채워져 있는지는 찜통을 들여다봐서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먹고 있는 순대를 엿보면서 맛을 가늠하곤 한다. 

    순대피를 뭐로 쓰는지에 따라 외관이나 성격이 크게 달라진다. 막창을 쓰면 순대피가 두껍고 흰색을 띤다. 막창은 그 자체만으로도 쫄깃하고 고소하지만 상대적으로 질기고 두꺼운 편이라 순대소와 따로 논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순대피가 얇고 보들보들한 대창이나 소창이면 순대소와 함께 씹혀 있는지 없는지 못 느낄 수도 있다.

    당면, 찹쌀, 부추, 생강…

    순대 부속물로는 곱창, 허파, 염통, 암뽕, 간, 혀 등이 있다. 내장에 구린내가 나지 않아야 상등품 순대다. 오소리감투도 핵심이다. 오소리감투는 돼지 위장이다. 쭈글쭈글한 만큼 쫄깃쫄깃한데 그 정도가 지나쳐서 질길 때도 적잖다. 고소한 맛을 낸다. 맛있어서 오소리가 자취를 감추듯 금방 사라진다고 해서 오소리감투다. 

    순대 만드는 것을 보고 나면 순대를 못 먹는다는 말도 종종 듣는다. 서양에서도 소시지 만드는 과정과 법(法) 만드는 과정(또는 외교 협상 과정)은 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그 과정이 매우 지저분하다는 뜻이다. 입법 과정이나 외교 협상 과정에도 고상한 외관 뒤에 치사하고 비열한 술수와 더럽고 추한 모습이 미어 터진다. 순대도 소시지와 다를 바 없다. 삶으면 순대가 되는 것이고 훈연하면 소시지가 된다. 

    호기심에 나는 순대 만드는 것을 직접 찾아가서 본 적이 있다. 순대소 반죽은 언뜻 보면 거대한 음식물 찌꺼기처럼 보인다. 쭈글쭈글한 소창이나 대창 순대피를 보면 다 쓰고 난 콘돔이 연상되기도 한다. 거기에 깔때기를 꽂고 음식물 찌꺼기 같은 순대소 반죽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 것을 보니 순대에 대한 애정이 뚝 떨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몇 달이 지나니 다시 그 기억을 까맣게 잊고 순대를 찾게 되었다. 

    순대 만드는 과정을 보면서 나쁜 인상만 받았던 것은 아니다. 순대 하나 만드는 데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당면, 찹쌀, 부추, 마늘, 생강 등 재료를 따로 구해 익히고 잘게 자르거나 갈아서 뒤섞어야 한다. 요즘은 기계가 보편화됐다고 하지만 그전까지는 순대피에 순대소를 넣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순대피 입구에 깔때기를 끼우고 순대소를 조금씩 밀어 넣고는 그것을 순대피 가장 끝부터 일일이 채워야 한다. 그것을 곧바로 찜통에 옮겨 담는 것이 아니라 물이 담긴 솥에 넣고 장시간 삶아야 한다. 

    순대에 관한 글을 쓰고 있으니 문장들이 순대처럼 느껴진다. 문장 곳곳에 나의 생각과 감정과 경험과 세계관이 뒤섞여 있다. 좋은 생각과 감정과 사상을 재료로 오랫동안 정성 들여 삶아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것도, 그런 재료를 얻고자 삶을 경험하는 과정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점도 순대 만들기와 닮았다.

    아이의 마지막 식사

    어느 젊은 아빠가 휴대전화 게임을 하느라 세 살짜리 아이를 죽인 사건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직업 없이 빈둥거리며 생활비를 주지 않는 남편을 보고 화가 나서 자신이 돈을 벌어 먹고살겠다면서 취업을 하러 멀리 떠난 상태였다. 집을 영영 나간 것은 아니고 1주일 내지 2주일마다 집에 찾아왔다. 

    이 남자는 생활비가 거의 전무했다. 단칸방 집에는 난방도 되지 않았다. 휴대전화 요금도 내지 못해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만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취했다. 직업이 없는 데다 어린아이도 있으니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서 휴대전화 게임에만 몰두했다. 

    그런데 아내가 오랜만에 집에 들어와 보니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아이가 혼자 밖에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렸다고 둘러댔다. 아내는 남편과 함께 경찰에 가서 아이 실종신고를 냈다. 그 과정에서 남자가 경찰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는 것을 보고 아내가 캐물었더니 남자가 실토했다. 아이가 시끄럽게 울어서 툭툭 쳤는데 죽어버렸고 시체는 쓰레기봉투에 넣어 주택가 구석 쓰레기더미 속에 넣어두었다고 했다. 

    이후 아내가 남편을 살인죄로 고소해 수사가 본격적으로 개시되었다. 아기를 부검했는데 특별히 외상 흔적은 없었다. 대신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호흡곤란으로 죽은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이 나왔다. 아이의 입과 식도에 남은 음식물이 순대였다. 아이는 전반적으로 영양실조 상태였다. 돈이 없으니 하루에 한 끼 정도만 먹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분식류가 전부였다. 아이가 배가 고파 자지러지게 울자 게임을 하던 아버지가 시끄럽고 화가 나서 순대를 아이 입에 틀어넣은 것이었다. 

    이 아이가 생애 마지막으로 먹은 순대와 내가 여섯 살 때 생애 처음으로 먹은 순대, 그리고 내 친구가 어머니와 단둘이서 먹던 순대를 생각했다. 세상에는 나쁜 순대와 좋은 순대가, 증오와 환멸이 담긴 순대와 사랑과 위로가 담긴 순대가 있다. 그것은 순대를 주는 사람의 마음이 결정한다.

    창자(gut)는 배짱

    순대는 창자다. 누구에게나 순대가 있다. 자신의 순대 뭉치에서 힘이 솟는다. 그래서 단전도 창자에 있다. 영어로도 창자(gut)가 용기와 끈기를 의미한다. 청년 때는 내가 배짱이 큰 줄 알았다. 의지할 데도 없고 가진 것도 없이 낯선 서울에 올라와 살면서도 누구 앞에서 주눅 들지 않았다. 하룻강아지처럼 아무것도 몰라서 겁이 없었던 것을 내 창자가 큰 줄로 알았다. 

    돌아보니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배짱이 두둑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작 내면에서는 작은 바람만 불어도 번번이 유도선수에게 낚아채인 것처럼 휙 중심을 잃고 쓰러지곤 했다. 그렇게 허약하고 허전해 창자에 순대를 그토록 많이 집어넣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만큼 순대가 먹히지 않는다. 외롭지도, 허전하지도 않다. 나의 순대에 힘이 고인 것일까. 아닐 것이다. 세상이 점점 두려우니까.

    * 이 글은 실제 사건을 일부 각색한 에세이입니다



    정재민 | 혼밥을 즐기던 전직 판사이자 현 행정부 공무원. ‘사는 듯 사는 삶’에 관심 많은 작가. 쓴 책으로는 에세이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소설 ‘보헤미안랩소디’(제10회 세계문학상 대상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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