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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표결 직전 대통령의 절규 “차라리 탄핵 표결 수용하겠다”

‘마지막 비서관’ 천영식의 ‘대통령 박근혜 최후 140일’ (3부) 비극의 정치

  •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계명대 초빙교수 youngsikchun@gmail.com

탄핵 표결 직전 대통령의 절규 “차라리 탄핵 표결 수용하겠다”

  • “최순실 사건 인간관계지 재산문제 아니다”
    ● “지지율 낮다고 헌법 어기고 싶지 않아”
    ● “더 이상 ‘4월 퇴진’ 말하지 마세요”
    ● 대화 내내 두 손 비비거나 포개
    ● “세월호 7시간 ‘딴짓’ 안 했다”
    ● “무슨 말 해도 안 믿어”…TV토론 고사
    ● 참모들 반대 대구 서문시장 방문 후 눈물 펑펑
    ● 해법 찾으려 매일 엄청나게 통화
    ● 대국민 사과, 맨투맨 설득 건의에 朴 “소용없다” “할 게 없다”
    ● 정진석 대표 “유영하 변호사 나서지 않게 해달라”
탄핵 표결 직전 대통령의 절규 “차라리 탄핵 표결 수용하겠다”

프롤로그

얘기는 점점 더 탄핵의 깊숙한 현장 속으로 들어간다. 이번 호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질 국회 탄핵소추 직전 약 열흘간의 장면은 회고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다. 여전히 대통령 탄핵을 만들어낸 20대 국회가 존재하고, 수많은 정치인이 연루돼 있다. 어떤 얘기를 해도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럼에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다. 펠로폰네소스전쟁(BC 431∼404년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각각 자기 편 동맹시(市)를 거느리고 싸운 전쟁) 막바지에 ‘거리’(민회)의 선동적 분위기 탓에 시칠리아 원정을 결정한 아테네는 결국 전쟁에서 참패해 민주주의 자체를 위험에 빠뜨렸다. 이처럼 특정한 정치적 사건이나 결정은 항상 그다음 역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게 거리의 결정이면 후유증이 더욱 크게 돼 있다.


성찰과 미래 담론 형성을 위한 글

2016년 11월 1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일대에 나붙은 포스터 앞을 행인들이 지나고 있다. [박해윤 기자]

2016년 11월 1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일대에 나붙은 포스터 앞을 행인들이 지나고 있다. [박해윤 기자]

거리(촛불)의 요구를 반영한 2016년 탄핵은 대한민국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탄핵 이후 한국 정치는 한 단계 성숙했는가. 아니면 아테네처럼 쇠락하고 있는가. 민주주의가 진전됐는가, 파괴됐는가. 한국의 민주주의 제도는 대단한 취약성을 드러냈는데도, 잠깐 ‘제왕적 대통령제’ 개선 논의가 일다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그 끔찍한 비극을 당하고도 왜 미래 담론은 형성되지 않는가. 이 글을 쓰면서 갖게 된 화두다. 진보 세력에게는 탄핵의 찬가, 보수 세력에게는 탄핵의 상처가 있을 뿐 누구에 의해서도 ‘포스트 탄핵정치’는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을 성숙시키고 있지 않은 것이다. 대중에게는 탄핵이라는 하나의 사건만이 뇌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 탄핵을 둘러싼 정치적이고 정무적인 계산법에만 익숙할 수밖에 없다. 

이번 글에 나오는 하야(下野), 조기 퇴진, 임기 단축, 질서 있는 퇴진 등의 용어는 모두 여의도 정치에서 만들어진 정치 셈법이다.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탄핵 당시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머릿속에 어떤 인식이 작용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주면 좋을 것이다. 부질없는 기억일 수 있는 이번 호의 글은 비극적 역사의 생생한 장면이면서 대한민국 정치의 민낯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이 글의 목적은 아픈 상처를 파헤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성찰과 미래 담론 형성을 도모하는 데 있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따라서 개별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가급적 자제할 것이며, 제도로서, 혹은 집단으로서의 정치적 행동을 평가하는 데 주안점을 둘 것이다. 어쨌든 이번 글의 무대는 정치다.


죽느냐, 사느냐의 순간

2016년 11월 29일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전광판에 생중계되고 있다. [뉴시스]

2016년 11월 29일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전광판에 생중계되고 있다. [뉴시스]

“천 비서관님, 대통령께서 찾으십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 표결을 나흘 앞둔 2016년 12월 5일. 대통령이 필자를 찾았다. 당시는 말 그대로 일촉즉발의 상황.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마지막 해결책을 모색하던 때였다. 죽느냐, 사느냐.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이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마음을 비워나갔다. 대통령은 11월 29일 3차 담화 이후 내키진 않았지만, 다음 해 4월 조기 퇴진을 수용할 수 있다는 쪽으로 정리해가고 있었다. 대통령은 담화에서 임기 단축을 포함해 대통령의 진퇴 문제를 국회에서 결정해달라고 말했고, 새누리당은 12월 2일 ‘4월 퇴진’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이로써 대통령의 4월 퇴진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 임기는 1년 가까이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야당과 새누리당 강경파들이 4월보다 훨씬 빠른 시점, 즉 2월 퇴진, 심지어는 1월 퇴진을 새롭게 들고나왔다. 이미 12월인데, 2월 퇴진은 대통령을 궁지로 모는 요구였다. 그것은 대통령에게 결정적으로 비참한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국회 추천총리(거국내각)를 요구하다가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면 ‘즉각 퇴진’을 꺼내 들었고, 4월 퇴진을 수용하면 2월 퇴진을 요구하는 방식이었다. 대통령과 협상해서 정국의 해법을 도모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계속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데 목적을 두는 ‘살라미 수법’ 같았다. 야당은 몰라도 대통령을 만들어낸 여당의 방식은 아니다. 전투에서 등을 보이면, 가차 없는 공격이 들어온다는 병법(兵法)을 확인해주는 과정이기도 했다. 

대통령은 하야라는 행위 자체가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죄가 확정되지 않은 국가원수의 하야란, 임기제 대통령제의 원리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통치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국가를 위해 조기 퇴진하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대통령은 어떤 선택이 국가를 위한 것인지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국회는 어떤 해답도 주지 못했다. 대통령은 힘들어했다.


“왼쪽 목이 아프다”

“더 이상 4월 퇴진에 대해 누구도 말하지 마세요!” 

대통령은 어느 날 참모들에게 엄명을 내렸다. 운명을 구걸하듯이 청와대가 더는 왈가왈부할 사항이 아니라고 느낀 듯했다. 또 말을 하면 할수록 설 땅이 좁아드는 상황이었다. 대통령은 국회의 진정성 있는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12월 초였다. 

하지만 국회는 ‘질서 있는 퇴진’을 논의하기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퇴진하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청와대가 수용하기 힘들게 하고, 이를 다시 탄핵의 명분으로 쌓아가려 했다. 모든 사람이 극도의 긴장감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판이 깨져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래도 참모 입장에선 국회의 탄핵만은 막아야 했다. 국회가 무리한 요구를 해도 대통령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나는 국회가 탄핵을 가결하면, 헌법재판소도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 탄핵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를 피하자면, 어쩔 수 없이 조기 퇴진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게 3차 담화의 정신이었다. 

당시 청와대에는 조기 퇴진이 불가피하다는 쪽과 탄핵을 당하더라도 비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쪽으로 나뉘어 있었다. 나는 전자였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조기 퇴진을 했다고 해서 대통령의 운명이 더 좋아졌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당시에는 참모로서 대통령의 안위가 걱정이었고, 그것을 피하는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안위라기보다, 대통령의 불명예를 최소화하는 일이었고, 국가의 위기관리능력을 높이는 일이었다. 

대통령은 무척 힘들어했고, 수척해 보였다. 대통령은 “왼쪽 목이 아프다”고 했다. 위민관(현 여민관) 집무실 소파에 앉았는데, 앉아 있기도 힘든 기색이었다.

‘3인방’(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이 나간 뒤 부속비서관도 없이 한 달 이상 혼자서 버틴 여정이었다. 당시 대통령은 누군가와 매일 엄청나게 많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해법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최순실은 구속된 다음이다. 대통령에게 어렵게 운을 뗐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국회 탄핵소추를 피해야 합니다. 탄핵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국회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 홍보 환경은 최악”

적극적으로 조기 퇴진 가능성을 비치면 새로운 협상 국면이 조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은 당시 퇴진의 여러 ‘경우의 수’를 놓고 홀로 고민하고 있었다. 

“4월 이전 조기 퇴진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씀하셔야 합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4월 퇴진도 내키지 않는데 그 이전 조기 퇴진은 입에 담기 힘든 건의였다. 묵시적으로 금기시된 논의였다. 야당의 전술에 놀아나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절박한 만큼 이런저런 의견을 피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미 11월 29일 3차 담화에서 임기 단축을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한 만큼, 논리적으로는 국회가 3월 퇴진을 결정한다 해도 따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당시 내가 내놓은 안은 ‘국회가 결정하면 언제가 됐든 물러나겠다’는 것이었다. 3차 담화에 나온 퇴진에 대한 의사를 조금 더 명확하게 밝히는 내용이다. 

대통령은 가타부타 반론을 펴지 않았다. 적극적인 반론을 펴지 않는 것으로, 나는 대통령이 상황의 심각성과 긴급성에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날 수석비서관들은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출석했다. 필자가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수석들이 면담 직후 연락해왔다. 대통령의 생각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수석들은 특위에서 “대통령이 4월 퇴진, 6월 대선의 당론 수용 의사를 분명히 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에 대통령의 마음이 달라졌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만큼 민감한 시기였다.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으나,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으며 최악의 판단으로 가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결국 나중의 상황은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대통령은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보고 조기 퇴진보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을 받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굳혀가고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과의 대화는 다른 주제로 이어졌다. 대통령은 언론 환경에 대해 많은 걱정과 번민을 쏟아놓았다. 이미 언론은 통제 불능 상태로 간 지 오래였기 때문에, 대통령의 말은 넋두리에 가까웠다. “지금 홍보 환경은 최악입니다. 무슨 말을 해도 안 믿습니다.” 

참모가 해야 할 얘기를 대통령 입에서 듣게 된 것이어서 민망할 뿐, 뾰족하게 답을 할 게 없었다. 그저 죄송할 뿐이었다. 언론 환경과 관련해서는 이미 대통령과 몇 차례 고민해왔던 터였다. 

국회 탄핵소추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할지에 대한 재논의가 있었다. 이미 3차례 담화를 했지만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은 추가 기자회견을 요구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말 좀 시원하게 들어보자는 요구였다. 맞는 말이었다. 대통령은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대통령의 의중을 물었다. 

대통령이 아무 설명도 없이 이대로 불리한 뉴스에 끌려다니다가 결국 국회 탄핵으로 넘어가는 뻔한 시나리오를 눈뜨고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TV토론 형식을 통한 직접적 국민소통의 필요성을 건의했다. 대통령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지금 특검을 앞두고 있는 데다 언론 환경이 나쁜 상태에서 불필요한 논란만 유발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은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대통령 입장에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측면을 인정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국회 탄핵소추를 맞은 당시 상황은 여전히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물론 당시는 그런 걸 하기에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지난 호에서 밝힌 대로 광풍(狂風)의 시대에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을 것이란 무력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과거에 대한 회상도 있었다. 대통령은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한 자긍심을 피력했고, 1990년 1월의 민정·공화·민주당 3당 합당 이후 복잡해진 보수정치에 대한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대통령이 접촉한 거물 변호사들 ‘변호 고사’

나는 호흡을 좀 더 길게 가져갈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광풍의 시대, 초반 승부에서는 졌다. 다음 승부를 노려야 한다는 의미였다. “시간이 흐른 다음 충분히 재평가를 받을 수 있으니 상황을 길게 보고 가야 합니다. 순간의 승부에 ‘올인’하는 것은 불리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합니다.” 

조기 퇴진을 염두에 두고 반보 후퇴하자는 의미였다. 잔인한 말이었지만 당시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필요하면 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상당 부분 단기전의 패배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었지만, 대통령은 아직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분위기였다고 기억한다. 아직은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한 것이다. 

변호인에 대한 우려를 밝혔다. 변호인 구성이 너무 안일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는 시중의 우려를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몇 사람의 이름을 건의했으나, 대통령은 “예, 예”라고만 할 뿐이었다. 왜냐면 변호인에 대해서는 법률전문가 등 상의할 라인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당시 대통령이 접촉한 거물급 변호인들은 모두 변호를 고사했다고 들었다. 나는 최대한 강하게 얘기하고 싶었으나, 이 논의는 더는 이뤄지지 못했다. 사실 대통령도 이미 마음에 상처를 받은 상황이었다. 나중에 정홍원 전 국무총리도 고사했다는 언론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나는 당시 정 전 총리 등 몇 분을 대통령에게 말씀드렸었다. 

대통령은 친박·비박계 사람들의 이야기, 보수 정권 재창출 가능성 등을 소재로 말했으며, 일부 친박 인사에 대한 섭섭함도 토로했다. 친박들은 실제 탄핵정국에서 소신 발언을 하지도 않았고, 대통령을 위해 나서주지 않았다. 정치력을 발휘한 것도 아니고, 국민과 공감한 것도 아니다. 그저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일정 부분 대통령의 업보라고 생각한다. 정치란 게 무상(無常)하다.


일부 친박 인사에 섭섭함 토로

대통령은 대화 내내 두 손을 비비거나 포개면서 긴박한 정국이 주는 마음의 압박감을 달래려 했다. 그래도 특유의 흐트러지지 않는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참모들과 있어도 흐트러지는 법은 없었다. 이렇게 대통령과 대화는 1시간 이상 이어졌다. 물론 어떤 것도 결정한 것은 없으며, 결정하기 위해 나를 부른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시중의 여론을 알고 싶어 했다. 또 3인방이 없어진 상태에서 국회 탄핵표결을 앞둔 민감한 시기, 상황을 한번 정리해보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벗어나고는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더 최악으로 빨려 들어가는 상황. 말 그대로 늪이다. 늪을 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선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다. 늪에 빠진 사람 생각이 다르고, 건지려는 사람 생각도 다를 수 있다. 

지금 생각하면 대통령은 충격과 불신, 무기력증, 억울함 속에서 극단적 승부보다는 일단 시간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 게 아니냐는 아쉬움을 남기는 순간이었다. 시간을 버는 방식이 참모들과는 다소 달랐다. 현재의 위치에서 묵묵히 버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국민들이 조금 더 상식에 맞는 판단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상황은 극단적 각오와 결단을 요구하고 있었다. 

사실, 조기 퇴진의 물꼬는 11월 29일의 제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이미 공론화돼 있었다. 3차 담화는 하야 및 탄핵 요구에 대한 청와대의 응답이다. 국정을 끌고 갈 수 있느냐는 회의적 분위기에 대한 답이다. 여기서 정국 해법이 제시되지 않으면, 탄핵열차는 더 빠르게 달릴 것이다. 1,2차 담화가 사과 위주로 돼 있는 것과 달리 3차 담화는 정국 구상이고 정국 해법인 셈이다. 

처음부터 3차 담화 내용이 그렇게 예정된 것은 아니었다. 당초에는 2차 담화로 최순실 의혹을 해명하는 데 부족했다는 판단에 따라 보충적 형식으로 3차 담화를 고민했다. 11월 4일 2차 담화 이후 논란이 사그라지기는커녕 11월 초·중순에 집중적으로 수많은 의혹이 터져 나오자, 이에 대해 좀 더 진솔하게 국민에게 관련 사실을 밝혀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언론이 요구하는 방식은 기자회견이었고, 대통령과 질의응답을 충분히 하자는 것이었다. 방송 출연 형식의 자연스러운 대국민 회견도 논의됐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 등은 방송을 활용한 생방송 대국민토론을 즐겼다. 이는 기자회견 방식보다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 어떤 것이어도 상관없었다. 대통령이 사건을 정공법으로 이야기하는 게 중요했다.


11월 중순 할 말 했어야

그런데 중간에 검찰조사 문제 등이 뒤엉키면서 타이밍을 놓쳤다. 검찰조사를 앞두고 대통령이 사건 내용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게 좋지 않다는 일부 변호인의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을 자극할 수 있고, 법률 다툼에도 불리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래서 황금 같은 11월 중순이 그냥 지나가버린 것이다. 

나는 검찰조사와 상관없이 당시에 할 말을 했어야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대통령이 사건에 대한 진솔한 기자회견을 하고 정면으로 국민을 설득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기 퇴진을 하든, 법률 투쟁을 하든, 국민을 설득하지 않고는 여론을 반전시킬 방법이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항상 수세로 몰리는 것이다. 

11월 중순의 타이밍을 놓치다 보니 11월 29일이 선택됐다. 그런데 당시는 이미 국회 탄핵 논의가 무르익은 시점이었다. 11월 중순까지의 궁금증은 최순실 사건 내용이었는데, 11월 말로 넘어오면서 탄핵을 언제 하느냐의 문제로 화제가 이동했다. 11월 20일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이후 국민들은 최순실 의혹을 사실로 믿는 경향이 강해졌으며, 이로 인해 국회도 탄핵을 기정사실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문에 기자회견 혹은 담화의 중심 주제가 탄핵을 피하기 위한 해법을 제시해달라는 요구로 집중됐다. 결국 3차 담화는 조기 퇴진 문제를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그냥 의혹 해명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참모들 사이에서도 조기 퇴진의 불가피성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실제 조기 퇴진을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담화에는 조기 퇴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대통령도 그런 상황을 이해했다. 막다른 골목에까지 몰려 있음을 이해한 것이다.


청와대와 상의 않는 정부 부처

정부 내 상황도 좋지 않았다. 정부의 공무원들은 이미 청와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추진 철회’ 발표였다. 이는 교육부가 청와대와 상의 없이 밀어붙인 것이다. 또 다른 부처에서도 아예 청와대에 보고하지도 않고 인사발령 등을 마음대로 내고 있었다. 정부 조직이 무너져 내리는 걸 다잡고, 국회의 탄핵 추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정치권이나 지지자들에게도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을 줘야 했다. 이는 대통령이 마음을 비우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그냥 대통령이 마음을 비웠다는 표현으로 충분하지 않고, 반드시 거취 문제가 포함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통령의 진심과 진실을 담아야 했던 것이다. 

하야라는 용어는 배제됐다. 이는 원칙적으로 헌법적 용어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다. 탈(脫)헌법적 상황을 전제한 용어다. 그런 모든 것을 감안해 고심 끝에 나온 게 ‘임기 단축’이라는 표현이었다. 임기 단축을 포함해 진퇴 문제를 국회에서 결정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는 실질적으로 퇴진 의사 표시였다. 시기만 국회에서 정해달라는 것이다. 임기 단축 표현은 담화 직전 막바지에 포함된 것이다. 담화 전후 청와대 내부 분위기는 착잡했다. 

다행히 회견이 끝난 뒤 기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야당이 주장하던 내용을 대부분 받아들인 것이라는 평가였다. 기자들은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이날 담화가 중요했던 것은 대통령이 그동안 언급하지 않던 임기 단축을 발표함으로써 조기 퇴진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다. 이 담화를 기반으로 ‘질서 있는 퇴진’ 논의가 진전될 수 있다고 봤다. 국회에서도 질서 있는 퇴진을 고민하는 의원이 늘었다. 대통령의 진의가 무엇이든지 간에 조기 퇴진의 물꼬가 트였으면, 그것으로 정국 해법은 한 단계 진전된 셈이다. 국회가 성의 있게 협상에 나섰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국회는 대통령의 양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야당은 대통령의 조기 퇴진 의지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국회에 공을 던졌다는 점을 강조하며 대통령의 조기 퇴진 의사가 진정성을 갖기 어렵다고 해석하면서 갑론을박했다. 이 같은 태도야말로 정략적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3차 담화 후 10일 만에 국회는 탄핵소추안을 가결함으로써 대통령을 강제로 끌어내렸다. 대통령을 상대로 협상보다 힘으로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제3차 대국민 담화문(2016.11.29)
탄핵 표결 직전 대통령의 절규 “차라리 탄핵 표결 수용하겠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의 불찰로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번 깊이 사죄드립니다. 이번 일로 마음 아파하시는 국민 여러분의 모습을 뵈면서 저 자신 백번이라도 사과를 드리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다 해도 그 큰 실망과 분노를 다 풀어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제 가슴이 더욱 무너져 내립니다. 

국민 여러분, 돌이켜보면 지난 18년 동안 국민 여러분과 함께했던 여정은 더없이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1998년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대통령에 취임하여 오늘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왔습니다.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저의 큰 잘못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경위는 가까운 시일에 소상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그동안 저는 국내외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길인지 숱한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이 자리에서 저의 결심을 밝히고자 합니다. 저는 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습니다. 여야 정치권이 논의하여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말씀해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저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하루속히 대한민국이 혼란에서 벗어나 본래의 궤도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대한민국의 희망찬 미래를 위해 정치권에서도 지혜를 모아주실 것을 호소드립니다.


“인간적 도리를 다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12월 1일 대형 화재로 큰 피해를 본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김영오 서문시장 상인회장과 함께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12월 1일 대형 화재로 큰 피해를 본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김영오 서문시장 상인회장과 함께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은 3차 담화 이후 마음이 착잡했다. 임기 단축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공식화한 것이어서 향후 개인적 미래도 더욱 불투명해졌다. 이런 가운데 담화 다음 날인 11월 30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4지구의 679개 점포가 전소하는 큰 화재였다. 실제 현장에서 봤을 때 거대한 시장이 폭삭 무너져 내린 것처럼 처참한 상황이었다. 

서문시장은 대통령이 힘들 때마다 대통령을 지켜줬던 곳이다. 대통령은 반대로 이번에는 어려운 처지의 상인들을 위로하고 싶어 했다. 대통령이 고통스럽게 임기 단축을 꺼낸 상황에서 서문시장에서마저 큰 참화를 겪은 상황이 묘하게 ‘오버랩’됐다. 동병상련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대통령은 서문시장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싶어 했다. 

대통령은 12월 1일 대구 방문을 결심했다. 이것도 11월 29일의 담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임기 단축이라는 승부수를 던졌기에 인간적 행보를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본다. 그런 담화가 없었다면 대구행은 힘들었을 것이다. 

최순실 사태 후 한 달여 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외부 행보였다. 어렵게 방문한 서문시장이지만, 이곳 상인들도 정서가 얼어붙었다. 대통령을 뒤따라가던 내 마음도 얼음장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서문시장 상인들은 쉽사리 과거와 같은 애정을 대통령에게 보이지 않았다. 시커멓게 그을린 화재 현장만큼이나 모든 사람의 마음은 어두웠다. 대통령도 위축돼 있었다. 상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사실 대구 방문에 대해서는 참모 대부분이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서문시장 방문이 정치적 행위로 읽혀 비판 여론을 키울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다. 거의 못 갈 뻔했다. 하지만 나는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차피 더 나빠질 여론이 있는 게 아니며, 인간의 도리를 하는 데 비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인간적 행보는 용납하는 게 한국적 정서라고 여겼다. 무엇보다 대통령에게 숨 쉴 공간을 줘야 했다. 대통령은 사실상 한 달 이상 사저에 ‘감금’돼 있는 상황 탓에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갔다. 불법이 아니라면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인간적 도리를 다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대통령은 화재 현장을 둘러본 다음 상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침묵하던 일부 시민들은 대통령이 자리를 떠나기 직전에야 외마디 외침을 토했다. 

“대통령님, 힘내세요!” 

모든 사람의 마음이 더욱 찢어졌다.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대통령이 상인들 만남도 최소화하고 10여 분 만에 서둘러 방문을 마치도록 동선을 짠 게 마음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감정 표현을 최대한 절제하던 대통령은 청와대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물을 참지 못했다. 

국회 탄핵소추는 일주일 사이 최악의 운명으로 가고 말았다. 김병준 국무총리 카드가 무산된 게 11월 초 상황이라면, 국회 탄핵 논의는 12월 초 급물살을 탔다. 여야가 총리 지명을 두고 티격태격하다가 정국은 탄핵 국면으로 전환되고 말았다. 11월 말부터 야당과 언론은 탄핵을 기정사실화했고, 공은 대통령에게 던져졌다.


“당론 따르겠다”

2016년 12월 2일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새누리당 의원총회가 열렸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2016년 12월 2일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새누리당 의원총회가 열렸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12월 5일 대통령을 면담했을 때, 대통령은 탄핵을 피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했으나, 그다음 날 차라리 탄핵으로 가겠다는 ‘탄핵불사론’을 승부수로 던졌다. 탄핵을 막기보다 맞겠다는 것이었다. 나로서도 현기증이 나는 일이었다. 

탄핵불사론은 법률가를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명분을 중시하던 대통령은 탄핵불사론에 강하게 이끌렸다. 그게 11월 중순쯤이었다. 그래도 마음을 정하지는 못했다. 상당수 참모는 그게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용도이지, 실제로 그렇게 가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탄핵불사론자들은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 가 있는 동안 정국이 ‘쿨다운’돼 혼란을 방지할 수 있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대통령도 덜 구질구질하게 된다는 것이다. 국민도 차분하게 사태를 다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볼 수 있다. 특히 대통령이 법률적으로 죄를 짓지 않았다는 생각이었던 만큼 헌재로 넘어가면 오히려 승산이 있다는 판단을 깔고 있었다. 

이 주장에는 두 가지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 하나는 국회 탄핵안이 통과된 뒤 혼란이 방지되고 쿨다운될 것이라는 정국 전망이었고, 둘째는 헌재에 가서 승산이 있을 수 있다는 잘못된 ‘표 계산’이었다. 그것은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무책임한 선동이었다. 헌재로 가면 탄핵 확률이 높고, 탄핵을 막으려면 국회에서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 움직일 수 없는 정답이었다. 

나를 포함해 정무적 판단을 하는 참모들은 대부분 헌재로 간 뒤 상황이 쿨다운되기는커녕, 특검 수사 등으로 대통령이 더욱 궁지로 몰리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고, 헌재는 정치적 판단을 하는 곳이어서 대통령 편을 들어주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국회에서 탄핵안이 표결되는 상황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할 처지였다. 언론이나 국민들도 비슷한 예측을 하고 있었다. 실제 상황도 우려대로 전개됐다. 그런데도 법률가들은 다른 얘기를 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법률가들에게 많이 의존했다. 대통령은 탄핵불사론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대통령 입장에서는 불가피하게 그렇게 된다면 법이 정한 절차대로 가겠다는 마음의 준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실제 대통령은 11월 29일 대국민담화에서 임기 단축 의사를 표명했으나, 12월 첫 주말 동안 강경파가 대통령의 조기 하야, 특히 당장 하야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면서 마음이 같이 얼어붙고 있었다. 협상을 하고 싶은데, 국회는 대통령을 더욱 궁지로 몰아갔다. 국회는 대통령이 하야할 명분을 주지 않았다. 자존심 강한 대통령은 “차라리 탄핵(표결로) 가겠다”는 말을 다시 입에 올렸다. 3차 담화 전후로 사라진 듯했던 탄핵불사론이 이처럼 살아난 게 12월 2일쯤이다.
 
참모들은 이를 또 한 번 뒤집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조기 퇴진으로 갈 뻔한 순간이 열렸다. 대통령은 고심 끝에 12월 5일 “당원으로서 당론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당에 전달했다. 이때 4월 퇴진의 수용으로 돌아선 것이다. 앞서 새누리당은 12월 2일 대통령이 4월 말 퇴진하고 6월 말 대선을 치르는 안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대통령은 새누리당 당론을 수용한 것이다. 국회가 이를 받아 협상을 해서 4월 퇴진 수순을 기정사실화했으면, 최순실 사태는 수습되는 것이었다.


민주당만큼 거친 새누리당

하지만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대통령의 생각과 국회의 흐름은 정반대로 가고 있었다. 절묘하게 엇갈렸다. 대통령이 당론을 따르겠다고 하는 즈음에 새누리당은 이미 당론을 버리고 있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12월 5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협상 거부를 발표했기 때문에 사실상 여여(與與) 간 4월 대통령 사퇴, 6월 조기 대선 문제를 놓고 논의가 진행되기 어려운 국면”이라며 “물리적으로 12월 9일 탄핵 일정까지 우리 비박계(국회의원들)와 야당이 확고하게 달려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새누리당도 내일 의원총회에서 의견을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출처:정진석 의원 블로그) 이미 4월 퇴진 당론을 스스로 접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통령에게 선택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정진석 대표는 또 “9일 예정대로 탄핵 절차에 돌입하게 되면 저희 당 의원들도 다 참여해서 개개인 헌법기관인 만큼 양심에 따라 투표하는 게 옳다는 게 저의 일관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자유 투표를 선언한 것이다. 자유 투표는 의원들의 권리이며 당연히 확대되는 게 옳다. 하지만 결정적인 국면에서 항상 용인될 수는 없다. 자신들이 내세워 국민에게 표를 구했던 대통령에 대해 결정적 상황에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모습이 정치사에서 옳은 일인지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한 잘못을 탓한다면 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대통령이든 하야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 물러난다는 것은 상정하기 힘든 일이다. 대통령이 퇴진을 고민했을 때 명분을 더 줬어야 했다. 정치의 책임 있는 당사자들이 ‘질서 있는 퇴진’을 만들어내지 못한 건 역사의 불행이다. 대통령은 이미 통제 불능 상황에서 더는 대통령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이 3차 담화에 녹아 있다. 

국회는 ‘항복’을 요구했다. 민주당만큼이나 새누리당은 거칠었다.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요구를 배려해 협상할 협상력이나 의지가 없었다. 대통령은 12월 6일 다시 강성(强性)으로 돌아섰다. 조기 퇴진 상황은 끝났다. 비극의 정치다.


‘원로 정치’의 성과와 한계

2016년 11월 27일 이홍구 전 국무총리,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 정치 원로들이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긴급 회동을 하고 박근혜 대통령 ‘4월 퇴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아일보 ]

2016년 11월 27일 이홍구 전 국무총리,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 정치 원로들이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긴급 회동을 하고 박근혜 대통령 ‘4월 퇴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아일보 ]

질서 있는 퇴진의 출발점은 예상치 않게 정치 원로들로부터 시작됐다. 11월 27일 정치 원로들의 모임 이후 질서 있는 퇴진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11월 29일 대통령의 3차 담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 정치계 원로들은 11월 27일 정국 수습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긴급 회동을 했다. 이 회동은 당초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 여당뿐 아니라 야당 출신도 다수여서 진정성 있는 정국 해법으로 보기 어려웠다. 말하자면 ‘공자님’ 같은 말씀을 하는 뻔한 자리로 인식됐다. 

그 자리에는 박관용 전 의장 외에도 김수한, 김형오, 박희태, 강창희, 정의화, 이홍구, 김덕룡 전 의원뿐 아니라 김원기, 임채정, 권노갑, 정대철 전 의원 등이 망라됐다. 그런데 이 모임에서 4월 퇴진과 6월 대선이라는 정치 일정이 제시된 것이다. 당시 정국은 즉각 하야 주장에서부터 탄핵소추 등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돼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가닥을 잡아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원로들에 의해 처음으로 퇴진 일정이 제시된 것이다. 

이 제안은 공개된 뒤 두 가지 면에서 주목을 받았다. 첫째는 정치권이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공식 의제로 삼기 시작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탄핵이 아닌 ‘정치력’으로 상황을 정리해보자는 인식이었다. 이것은 대통령과 야당이 한발씩 양보하면 가능한 협상이었고, 이를 현실정치로 공론화한 것은 원로들이 할 일을 한 셈이다. 

박관용 전 의장은 4월을 퇴진 시점으로 정한 이유와 관련, “국가적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높아 정당들이 대선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음 대선을 치르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4월쯤이 적절하지 않겠느냐는 계산법이었다. 

실제 이 모임의 주장은 울림이 있었다. 당장 새누리당 비박진영 모임인 ‘비상시국회의’가 4월 30일 퇴진, 6월 30일 대선 일정을 구체화했다. 어느새 4월 퇴진은 현실적인 대안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물론 야당은 즉각 퇴진을 요구했지만, 그들도 내심 4월 퇴진을 현실적 타협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4월 퇴진의 운을 뗐지만, 누구도 4월 퇴진을 두고 실제 협상을 진행하지 않았다. 여야의 셈법이 너무 달랐다. 정작 원로들조차 그 이후에는 어떤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일단 운을 뗐으면 후속 조치를 내도록 노력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것은 우리 정치에서 원로들의 존재가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다. 국가적으로 큰 사건을 겪으면서 대한민국에 미국 상원 같은 조직이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다. 미 하원은 가끔씩 대통령 탄핵을 입에 올리는 등 정치적 노선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상원은 정파적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상원의 존재로 인해 정치적 갈등이 조정되고 중재된다. 그래서 국가적 위기가 극복되는 것이다. 

한국의 국회에 미 상원 같은 무게감을 요구하기 힘들다. 정치 원로들이 그런 역할을 대신 해줄 수 있다면 그나마 최선의 보완재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되지 않았다. 국회 밖 존재라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정치가 갈수록 척박해지고 갈등이 극대화되는 걸 막기 위해서는 원로들의 역할이 지금도 크게 요구되고 있다.


자존심 강하고 ‘프로토콜’ 중시

탄핵이 표 대결로 가면 승산이 없다는 것을 대통령도 알았다. 아무리 구차하더라도 탄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조기 퇴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상대방을 탓하기 전에 그 방법을 왜 실행에 옮기지 않았을까. 실제 많은 사람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대통령은 많은 고민을 했다. 결론적으로 주변에서 조금만 덜 궁지로 몰았다면 충분히 조기 퇴진이 가능했다고 본다. 대통령은 밑도 끝도 없이 밀리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대통령은 자존심이 강하고 ‘프로토콜(규범)’을 소중히 여긴다. 

법률상 범죄행위가 확정되지 않은 대통령에게 당장 나가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얘기였다. 당이 너무 궁지로 모는 데 대해 대통령은 모욕감을 느꼈고,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받았다. 정치 게임 혹은 국가를 생각하지 않는 일방적 몰아붙이기라고 대통령은 생각했다. 

대통령 입장에서 즉각 하야는 최순실과의 범죄를 인정하는 게 된다는 점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는 지나온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당에서는 아무도 대통령의 ‘마지막 자존심’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당시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던 한 관계자는 “모든 걸 잃어도 최순실과의 범죄를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그것은 지나온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결과라고 생각하신 듯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명분론을 중시하던 대통령을 지배하던 당시 화두는 ‘대통령직’에 대한 무게였다고 본다.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이자 상징이다. 대통령직은 본인이 컨트롤할 수 없는, 개인 차원의 문제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에게서 배운 대통령직에 대한 철학이라고 느꼈다. 

나는 몇 차례 소소한 건의를 하다가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원수로서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대답을 몇 번 들었다. 대통령이 비참해지면, 국가가 비참해진다. 이는 차기 대통령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간다. 

로마 역사에서 황금기인 5현제시대(96~193)가 끝난 뒤 황제를 하루아침에 쫓아낸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불안정한 황제권은 로마의 쇠락을 촉진했을 뿐, 로마 역사를 새롭게 세우는 데 기여한 경우는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 쫓아내더라도 프로토콜을 가지는 것이 선진국이고, 그렇지 못한 게 후진국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나라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정파가 눈앞의 이득만을 바라보고 정치를 하면 나라는 어디로 가게 될까. 

“지지율이 낮다고 헌법에 맞지 않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12월 6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만났을 때 한 이 말에 많은 것이 함축돼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대통령직이 구차하게 된다면, 차라리 탄핵소추도 불사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대통령은 이것을 양자 선택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노력은 하겠지만, 구걸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으로서의 자존심이었다. 탄핵소추를 원하는 대통령이 어디 있겠는가. 불가피하다면 독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일 뿐이다. 

인간은 때로 바보스러운 결정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이유가 있고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다. 역사에 정답은 없다. 참모들은 대통령의 안위를 걱정해 조기 퇴진을 건의한 것이지, 실제 조기 퇴진했다면 오히려 더 비참하게 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돌아선 유승민계와 김무성계

상황이 탄핵으로 정리된 마지막 순간은 국회 탄핵 표결을 사흘 앞둔 2016년 12월 6일이다. 대통령은 새누리당의 이정현 대표, 정진석 원내대표와 마지막 담판 회동을 했다.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으나, 누구도 대통령을 위해 나서줄 상황이 아니었다. 이날 회동은 아무런 해결책을 만들지 못한 채 결렬됐고,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각자의 길로 가고 말았다. 실제로는 이미 전날부터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이날 대화는 비공개였고, 일부는 국회에서 의원들에게 공개된 걸로 알고 있다. 대통령은 두 사람에게 강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계속해서 밀리고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당론(4월 퇴진)을 따르려 했지만 당론이 파기된 상황입니다.” 

주말 촛불집회 이후 일부 의원들이 태도를 돌변해 4월보다 더 빨리 퇴진하라면서 사실상 당론을 파기됐음을 지적한 것이다. 대통령은 담담하게 심경을 표명했다. 

“어려운 시기에 일마다 꼬였습니다. 총리 수용은 야당이 차버렸고, 4월 퇴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심을 알아주지 않고 엇나갔습니다. 국가 장래를 위해 물러나라고 하지만, 이런 식이면 더 큰 혼란이 일어납니다. 차라리 탄핵 표결을 수용하겠습니다. 세월호 7시간에 ‘딴짓’ 안 했습니다. 최순실 사건은 인간관계이지 재산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지율이 낮다고 헌법에 맞지 않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조기 퇴진론에 쐐기를 박아버렸다. 조기 퇴진을 공식 거부한 것이다. 이날 이정현 대표는 탄핵 표결 시 찬성 표가 195~205표 정도로 예상된다고 했고, 정진석 대표는 230표까지 가능하다고 했다. 표결에서 승산이 없으니 마음의 각오를 하라는 얘기인 셈이다. 대통령에게 공을 넘긴 셈이다. 어떤 출구도 없었다. 대통령과 정진석 대표 간에 약간의 공방이 계속됐다. 

정진석 대표는 추가적인 대국민 사과와 담화의 필요성을 건의했으나, 대통령은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맨투맨 설득을 해보라”고 권유했으나, 대통령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대통령은 마지막 기대를 당론 수용에 걸었으나, 당은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수습하라고 요구하는 모양새였다. 정진석 대표는 유영하 변호사를 거론했다. 정 대표는 “이미 유영하 변호사가 표를 많이 갉아먹었으며, 국회 표 대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그가 더 이상 나서지 않게 해달라”는 요구를 덧붙였다. 대통령이 수용하기 어려운, 본질과 상관없는 요구였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 대통령이 비박계 의원들을 맨투맨으로 설득했다면 탄핵을 막을 수 있었을까. 당시 유승민계는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판단했고, 김무성계만이라도 돌려세워야 한다는 표 계산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쉽지는 않았다. 대통령도 셈법을 동원해봤을 것이다. 그리고 일부 의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돌려 호소하기도 했지만, 너무 늦었다. 터져서 물이 새는 둑을 손바닥으로 막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비박계 의원들도 그들 나름의 셈법이 이미 확고하게 세워져 더는 협상에 응하려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여권의 책임 있는 당사자들은 어느 누구 하나 문제 해결을 원하기보다는 극단적 방식에 맡기려 했다. 

이제 탄핵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됐다. 대통령은 의원들에게 전화하는 일을 중간에 중단했다. 상당수 의원에게 직접 전화했으나, 전체 의원에게 다 하지는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설득을 더 하기 바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통령은 위기의 순간에 엄청나게 강한 선택을 했다. 기도밖에 할 게 없었다.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옵니까)!


두 번의 일주일 놓치다

2016년 12월 9일 오후 정세균 국회의장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016년 12월 9일 오후 정세균 국회의장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치에서 일주일은 긴 시간이다(A week is a long time in politics).” 

영국 노동당의 당수로 총리를 지낸 해럴드 윌슨의 말이다. 선거를 앞두고 상대방의 인기가 급상승했지만, 초조해하지 않으면 따라잡을 수 있다는 뜻에서 던진 말로 유명하다. 급변하는 현대 정치에서 일주일이란 엄청난 시간이다. 미디어를 통한 무제한적 정보가 쏟아지는 요즈음에는 더욱 그렇다. 일주일이면 전쟁도 끝난다. 

국회의 탄핵 표결로 가기 전 대통령에게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고 본다. 두 번 모두 일주일 사이 운명이 갈렸다. 두 번의 일주일을 잃은 결과가 탄핵으로 가게 된 것이다. 

첫 번째 일주일은 김병준 총리 임명이 실패한 일주일이다. 정확하게 2016년 11월 2일 지명하고, 7일에 버려지는 카드였다. 김 총리 내정자 발표 전날인 11월 1일 대통령을 만나 향후 정국에 대한 의견을 전했고, 분위기도 좋았으나 운명은 바뀌지 않았다. 대통령은 JTBC의 ‘태블릿’ 보도가 나고 3인방과 주요 수석들을 빠르게 사퇴시켰다. 보도 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이때까지 정권이 무너진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대통령이 수습하는 줄 알았다. 대통령을 믿은 것이다. 

주요 참모가 떠난 다음 홀로 남은 대통령이 던진 본격적인 승부수가 김병준 카드였다. 야당의 허를 찔렀다. 이때는 새로운 비서실장이나 수석들이 임명되기 전이었다. 참모의 공백이 있었고, 대통령이 혼자서 모든 그림을 짜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 김병준 카드가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좌초한 것이다.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일주일 새 정권의 운명이 뒤집힌 것이다. 김병준 카드를 먼저 내밀고 야당과 협상할 게 아니라, 야당과 협상하면서 김병준 카드를 내밀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역사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두 번째 일주일은 12월 9일 국회의 탄핵소추를 앞둔 일주일이다. 대통령의 운명을 결정짓는 마지막 일주일인데, 우여곡절 끝에 탄핵으로 가게 된 것이다. 조기 퇴진으로 갈 뻔하다가 차라리 탄핵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으로 번복하면서 대통령의 운명이 역시 일주일 새 결정된 것이다. 당시 대통령은 수많은 사람과 정국 해법을 상의했지만 ‘강 대 강’ 대결에 몸을 맡기게 됐다. 

청와대에서 큰 사건을 겪고 나서는 해럴드 윌슨의 이 말이 뼛속 깊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케팅에서 ‘결정적 15초’라는 의미의 MOT(Moment of Truth)라는 말이 있다. MOT는 투우사가 소의 급소를 찌르는 순간을 의미하지만, 마케팅에서 15초 안에 소비자로부터 선택을 받는지 승부가 결정 난다는 뜻이다. 소비자든 대중이든 속성은 비슷하다. 마케팅의 15초는 정치적 사건에서 윌슨이 표현한 일주일과 질적으로 같은 개념이다. 그 시간 동안 승부에서 이기지 못하면 지는 것이다. 

정치에서 급해도 안 되지만, 머뭇거리는 것도 바보다. 위기 순간의 일주일은 운명을 결정적으로 뒤바꾸어버린다. 대통령도 “일마다 꼬였다”는 표현을 썼지만, 꼬였든 말든 승부에서 진 것이다. 상대가 있는 게임에서는 얼마든 꼬일 수 있다. 

헌재 판결을 앞두고도 운명의 일주일은 있었다. 헌재 출석과 헌재 변론 방식을 둘러싼 갈등으로 제대로 대응이 이뤄지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운명이 정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대통령이 헌재 출석을 했다면 상황이 바뀌었을까, 혹은 태극기부대와 함께 더 강하게 저항했다면 운명이 바뀌었을까. 알 수 없지만, 그건 역사의 가정일 뿐이다.


내부 분열로 가능해진 탄핵

국회 탄핵 과정을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좀처럼 씻겨지지 않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커지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정치적으로만 본다면, 탄핵은 한국 정치의 비극이요, 협치의 실패다. 또 분열 정치의 상징적 사건이자 원로의 부재이고 중간지대의 파멸을 증명하고 있다. 혁명은 혁명을 낳고 증오는 증오를 낳는다. 피는 피를 낳는다. 탄핵이후 한국 정치가 그렇게 돼가고 있다. 

로마의 코모두스(161~192) 황제가 검투사 게임에 미쳐 피를 봐야 했을 때, 로마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의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성도 아들 코모두스의 파멸을 막지 못했다. 피를 찾아 스스로 검투사가 된 코모두스는 결국 황제의 피를 원하는 최측근 근위대장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게 로마 시대 황제 암살정치의 시작이었고 피의 역사의 출발이었다. 지금 한국의 정치는 검투사가 되기를 바라는 코모두스처럼 피를 찾는 리더십으로 신음하고 있다. 정치에 피비린내가 짙게 난다. 

탄핵의 후유증이다. 국회 탄핵의 원인 진단은 정파마다 다르다. 태극기 세력은 탄핵 과정을 반대파의 모략이라고 보고 있고, 정치권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상의 문제를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최순실의 존재 자체가 탄핵의 불가피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수습 과정이 잘못돼 결국 탄핵됐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대통령의 비리가 탄핵의 전부라고 보는 경우는 드물다. 적어도 당시 정치적 주체들의 정치적 실패라는 성격을 무시할 수 없다. 

정치적 주체들에 대한 탄핵의 책임 소재 역시 다르다. 문재인 정부는 탄핵 당하고 구속당한 박 대통령에게 여전히 탄핵의 모든 책임을 가중시키고 싶어 한다. 한국당 내부에서는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 사이의 갈등이 여전하다. 탄핵은 분명 집권당인 한국당의 분열로 가능했던 일이다. 정치 리더십의 관점에서 본다면, 박 대통령을 증오하는 정치인들이 분열을 일으켰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대통령이 증오의 정치를 시작해서 분열이 시작됐다는 반론도 팽팽하다. 결코 끝나지 않을 갈등이다. 아마 목숨을 건 공방일 수 있다.


연루된 이들의 퇴장은 당연

이 같은 책임 공방이 계속되는 것은 여전히 당시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상처가 너무 크기에 책임을 규명하기 어렵고, 섣불리 책임을 지려고도 하지 않는다. 덮어두고 가고 싶어 할 뿐이다. 그럼에도 국회의원들의 표가 모여서 대통령의 탄핵을 통과시켰다는 역사적 사실이 사라질 수는 없다. 20대 국회의 업보다. 그래서 여전히 정치권은 탄핵의 ‘볼모’가 돼 있고, 그런 점에서 탄핵정치가 이어지고 있다. 탄핵은 여전히 한국당 및 보수 세력의 정치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탄핵 논란은 좁은 측면의 책임 공방이다. 다만 당시 정치의 주역들은 국민 앞에 겸손해져야 한다. 탄핵에 찬성했든, 반대했든 마찬가지다. 정치적으로는 똑같이 한 시대의 정치에 실패한 사람들이다. 탄핵정치에 깊숙이 연루됐다고 판단되는 이들의 퇴장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절차라고 본다. 그럼에도 넓은 측면에선 시대의 극복 과제로 넘겨야 한다. 탄핵을 둘러싼 탄핵정치가 가고 ‘포스트 탄핵정치’가 와야 하는 것이다. 보수 세력은 물론 한국 정치가 시급히 해법을 찾아야 할 절실한 과제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시대에 대한 정확한 성찰은 필수적이다. 탄핵정치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공방보다 시대를 정리하는 미래 지향적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 성찰 과정에서 인적 책임의 범위도 규정될 수 있다.


탄핵 이후 보수는…
‘권위’를 버리고 ‘희망’을 이야기하라


민주당 인사들로 구성된 더미래연구소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펴낸 ‘2017 집권전략 보고서’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에서부터 새로운 총선 및 집권 전략을 논의했다. 그들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민주정부 1기라고 규정하고, 민주정부 1기에 대한 성찰은 ‘민주주의 정치 세력이 양극화로 인한 민생위기의 심화에 적정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 역시 제시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반성을 성찰의 핵심 테마로 끌어냈다. 이들은 이를 통해 ‘더 나은 삶’에 대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기득권 집단의 도전에는 피하지 말고 싸워야 한다는 그들 방식의 담론을 제시했다. 또 2016년 총선은 철저히 회고투표, 심판선거로 가야 하며 대선보다 진보적 의제가 강하게 투입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들의 성찰이 맞고 틀리고는 상관없이 이들은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를 버리지 않았다. 인물 중심의 성찰 대신 철저히 담론 위주로 성찰했다. 

진보 세력에게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공과(功過)에 대한 설명 없이 새로운 진보 정권 창출 비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수 세력에게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공과에 대한 성찰은 너무나 중요하다. 정확한 성찰과 이를 토대로 한 미래 담론의 형성은 보수 세력이 시급히 해야 할 정신적 숙제다. 단절할 것은 단절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며, 계승할 것은 계승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의 출발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 새로운 비전을 위한 미래 담론이다. 그리고 그것이 ‘포스트 탄핵정치’의 내용이 돼야 한다. 

보수 세력은 김영삼,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면서 매 순간 정권 단절 이상의 급격한 권력 변동을 겪으며 요동쳤다. 더구나 리더십의 변동과 상관없이 국회를 중심으로 20여 년 유지된 폐쇄적 인적 수혈 구조는 ‘맨 파워’의 총량을 갈수록 잘게 쪼개면서 개개인의 역량도 수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본다. 과도한 줄서기 정치, 국가 담론보다는 ‘보스 담론’ 위주의 정치 문화, 탈권위 시대에 대한 인식 부족, 동지애 및 동질성 상실, 지지층의 파편화, 성장과 분배의 균형 인식 미흡, 시대적 어젠다 선점 부족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한계를 드러냈고 주도적 담론 형성에 실패하고 있다.


보수적 동질성 회복 필요


담론 부족이 프레임 전쟁의 실패로 이어지면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가령 민주당이 ‘미래’ 대 ‘과거’의 프레임을 내걸고 있다면, 보수 세력은 ‘희망의 미래’ 대 ‘파멸의 미래’ 프레임으로 맞받아쳐야 한다는 의미다. AI(인공지능) 시대정신으로 무장한 새로운 보수당이야말로 국민의 삶을 낫게 해주는 희망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해내야 한다고 본다. 문제를 꼬이게 하는 집단과 문제를 해결하는 집단의 싸움이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경제와 관련한 국가인재 총동원 시스템을 짜서 대규모 경제인재 영입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담론과 그에 따른 프레임 설정, 그리고 실행 방안 도출까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구체적 신뢰를 줄 수 있을 때 국민의 마음이 돌아올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탄핵의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포스트 탄핵정치의 동력을 만들어줄 것이다.


탄핵 표결 직전 대통령의 절규 “차라리 탄핵 표결 수용하겠다”
천영식
● 1965년 경북 청송 출생
● 대구 영신고, 서울대 서양사학과
●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사
● 前 문화일보 정치부 부장 대우, 워싱턴특파원
● 前 홍보기획비서관(박근혜 정부)
● 現 KBS이사, 계명대 초빙교수
● 저서 ‘고독의 리더십’(2013) 외





신동아 2019년 8월호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계명대 초빙교수 youngsikch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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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표결 직전 대통령의 절규 “차라리 탄핵 표결 수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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