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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포용적 혁신성장‘ 현장

인터뷰 | 박형건 한국의류시험연구원(KATRI) 원장

“소비자 안전 지키는 ‘최후의 방패’ 역할 제대로 해야죠”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인터뷰 | 박형건 한국의류시험연구원(KATRI) 원장

  • ●조직 정비·전산화로 정밀검사 수행, 미래 먹거리 준비
    ●블라인드·AI 채용 도입, 인사 투명성 확보
    ●동기부여, 보상, 능력에 맞는 자리 배치는 ‘성과 지름길’
    ●“같은 탄소 원자라도 ‘결합 방식’ 따라 다이아몬드, 숯 되기도”
    ●해외 진출 기업의 ‘글로벌 경제전쟁’ 지원
인터뷰 | 박형건 한국의류시험연구원(KATRI) 원장
“다이아몬드나 숯을 구성하는 원자는 탄소(C)죠. 그런데 이 탄소 원자가 결합 방식에 따라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숯이 되기도 해요. 그리고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가 결합하면 물(H2O)이, 산소 원자가 하나 더 붙으면 과산화수소(H2O2)가 됩니다. 조직도 마찬가지예요. 자라온 환경과 습관이 비슷할 수도, 다를 수도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하고, 숯이 되기도 하죠. 여기서 조직의 명운이 결정된다고 봐요.” 

8월 9일 만난 박형건(59) 한국의류시험연구원장은 2년 10개월간의 연구원 운영에 대해 물었을 때 이렇게 답했다. ‘마음씨 좋은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이지만 조직 운영에서는 확고한 철학을 드러냈다. 박 원장은 행시 35회로 국무조정실 정책상황팀장, 재정경제부 지역특구과장, 산업통상자원부 제품안전정책과 과장 등을 지냈고, 2016년 10월 한국의류시험연구원(KATRI) 원장에 취임했다. 그가 2년 10개월가량 이끈 KATRI는 1965년 대한메리야스시험검사소로 발족한 국가공인 종합시험·인증기관이다. 가난하던 시절, 한국을 먹여 살린 의류 수출품 검사를 하면서 보세가공·수출입국(輸出立國)의 기치를 드높였다. 한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이제는 마스크와 화장품, 자동차, 비행기 부품 등 검사 품목도 다양해졌다. 소비자의 피부에 닿는 공산품 대부분은 KATRI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KATRI가 54년간 ‘국민 갑옷’으로 불리는 이유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미래 먹거리 찾아 나선 3년”

-가을이면 임기 3년이 된다. 

“시간이 참 빠르다. 우리가 검사를 잘못하면 국민 건강을 해치게 되는 만큼 KATRI 직원 400여 명은 소비자를 지키는 ‘최후의 방패’라는 사명감으로 일했다. 건강에 대한 관심과 소비자의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검사 장비를 첨단화했고, 이를 바탕으로 완벽한 검사를 수행하고 있다. 우리는 제품 성능 시험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수행해 그 결과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기업 제조원가에 반영되는 시험수수료도 과학적 분석을 통해 적정한 수준을 연구하고 있다.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맞춰 조직을 정비하고 부지런히 미래 먹거리를 찾아 나선 3년이었다(웃음).” 

-조직 정비라면…. 

“일할 때는 목표도 중요하지만 직원들이 무엇을, 왜, 어떻게 하느냐가 무척 중요하다. 업무 성과가 떨어지는 직원에게는 동기부여를 해주고, 성과를 내면 합당한 보상을 하고, 적성과 능력에 맞는 인사 배치 시스템을 갖추는 데 집중했다.” 

-앞서 말한 조직 내 ‘원자 결합 방식’ 말인가. 

“그렇다. 결합 방식이 중요한데, 우선 조직 인사와 운영이 공정해야 한다. 채용 과정이 공정해야 하고, 조직에 들어오면 그 직원이 성과를 발휘한 것을 간부들이 공정하게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공공기관의 경우 채용비리 등 채용 방식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도 많았다. 

“채용 부정이 개입할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선 조직 최고책임자의 확고한 결심이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부임 이듬해(2017) 10월 신입직원을 채용할 때부터 지원자의 자기소개서에 출신 지역이나 부모 이름 등을 일체 기록하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했고, 외부 평가위원을 참여시켜 공정성을 높였다. 주로 섬유공학과 중심으로 채용하던 관행을 깨고 전자공학, 미생물학 출신과 인문학 전공자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세계 무대에서 새로운 미래 사업을 마련해야 하는 만큼 다양한 전공자도 필요하다. 올해부터는 AI(인공지능) 면접도 도입했는데, 우수한 인재가 많이 몰렸다.”


조직 내 공정성 확보 방안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조직 내 공정성은 어떻게 확보했나. 

“인사제도 운영에 상위 책임자의 참여 확대와 투명화, 고성과-고평가 시스템이 중요하다. 인사 부서장이 승진 인사를 보고하면 원장이 ‘선택’하는 기존 방식에 변화를 줬다. 인사 평정 순위를 바탕으로 부서장 회의에서 가산점을 합산한 뒤 승진 인원의 2, 3배수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부서장 회의 가산점은 뭔가. 

“각 부서장들은 해당 직원이 어떤 성과를 냈는지, 타 부서와 업무 협조를 잘하는지는 원장보다 더 잘 안다. 따라서 평가회의에서 12명의 부서장이 해당 직원에게 점수를 주면 최고점과 최저점을 뺀 10명의 점수를 합산해 가산점을 매긴다. 이렇게 하다 보니 부서 간 협업도 잘 되고, 부사장의 책임감도 커진다. 또한 연구원은 경영, 영업, 시험이라는 3개 축으로 운영되는데, 보통 한 부서에 오래 근무하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다양하게 업무를 배울 수 없다. 그래서 직원의 30%가량을 순환 근무시켜 ‘원자 결합 방식’을 바꾸도록 유도했다. 균등 지급하던 성과급도 성과에 따라 S, A, B등급으로 차등 지급했고. 연구원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시도였다.” 

-그래서 지난 4월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한 건가. 

“9본부 5지원 25팀의 조직을 4실 8본부 26팀으로 개편했다. 감시실과 미래사업을 기획하는 전략기획실을 신설했고, 유사 업무를 하는 부서는 통합했다. 외부 환경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조직을 개편했다.” 

-직원들은 시험성적서 보관 방식을 바꾼 것을 높이 평가하던데.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얘기일 수 있다. 하루에도 수만 건씩 시험성적서가 쏟아지는데, 그동안 시험성적서를 포대에 넣어 경기 화성의 보관창고에 두던 것을 알게 됐다. 며칠간 화성 창고에 직접 내려가 효율적인 관리 시스템을 고민했다. 검사 후 발급하는 시험성적서는 연구원의 생명이자 자산이고, 고객과의 신뢰를 확보하는 연결고리다. 게다가 문제가 생기면 신속하게 관련 기관에 성적서를 제공해야 한다. 이제는 화재로 인한 소실 위험도 사라졌고, 곧바로 자료를 찾을 수 있게 됐다. 정말 마음 편하다(웃음).”


고도의 집중력, 전문 검사 능력

-대한메리야스시험검사소로 발족한 만큼 의류 안전성 검사만으로도 먹거리는 충분한 거 아닌가. 

“전체 시험 물품을 비율로 따지면 의류 부문 85%, 비의류 부문 15% 정도 된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의류에서 벗어나 자동차, 전자, 건축 내장재 등 산업자재 품질 시험과 중금속 등 유해물질 시험도 병행하고 있다. 물놀이 기구나 비비탄총의 안전성 인증부터 기저귀, 안경테 등 생활용품의 적합성 검사까지 검사 범위가 전방위적으로 넓어졌다. 이들 제품은 우리 검사를 통해 안전성이 입증되면 국가통합인증인 ‘KC마크’를 부여받는다.” 

-시험인증기관도 산업 및 기술 환경 변화를 예의 주시해야겠다. 

“흔히 말하는 4차 산업혁명, 즉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우리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3D프린터, 증강현실(AR)/가상현실(VR)등의 신기술과 그로 인한 산업 변화를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검사 범위를 넓혀야 한다. 여기에 제품 완성 이전 단계에서 해당 기업에 노하우를 공유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연구원은 시험 불합격 사례에 관한 자료를 모아 세미나 등을 통해 고객에게 도움을 주는 한편 수준 높은 컨설팅도 하고 있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던 박 원장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중소기업이 회사 명운을 걸고 거액을 쏟아부은 제품이 시험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그 회사는 큰 타격을 입는다.” 

-물론이다. 

“그래서 어려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제품 생산 단계에서부터 ‘카운슬링’을 해주는 게 중요하다. 어떤 소재를 쓰면 완성품 검사에서 합격률이 낮다든지 하는 정보를 미리 알려줘 실패율을 낮추는 거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체 제조업의 98%가 중소기업인데, 인력과 자금, 네트워킹 등에서 어려움을 호소한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친구 가 돼 파트너십을 쌓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중소기업이 신소재를 개발하거나 수입하더라도 이를 활용할 수요처를 확보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을 쓰는 게 현실이다. 상설 전시회가 있다지만 개최 횟수가 적고, 비용과 시간, 인력 부담도 만만찮다. 따라서 인증기관이 기업 일반 정보를 활용해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해주는 ‘작은 박람회’를 개최하거나, 빅데이터 시스템을 활용해 도움을 줄 수 있다. 중소기업은 정보 탐색 비용과 시간 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현재 국내 기업 1만3000여 곳이 우리에게 제품 시험 의뢰를 하는데, 이들 기업을 ‘매칭’시켜 시너지를 내게 하자는 거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도 중소기업 특성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하고 시험 능력을 키워야 한다. 검사 방식도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어떻게 달라졌나. 

“과거에는 씨실과 날실에 코(loop)로 연결돼 만들어진 메리야스 시험이 주류였다면 이제는 서멀마네킹(Thermal maneking·인체와 유사한 조건을 가진 특수 마네킹)을 이용해 원단의 수분 제어 기능 등을 정밀 검사한다. 소방복의 꿰뚫림이나 열피로도 같은 안전성 검사는 현장 소방관의 생명과 직결된다. 해외에 진출한 기업에는 현지에서 곧바로 시험해 판매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중국 상하이와 옌타이, 베트남 호찌민 등에 진출한 KATRI 법인(해외사업장)이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KATRI는 항공우주산업 분야 등 시험 범위를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190도 고온에 견디는 기계적 강도검사 등 시험장비를 갖춰 2014년 11월 미국 시험인증기관 PRI로부터 국제항공우주 분야 특수공정(NADCAP) 인증을 받았다. 2016년에는 가속질량분석기(AMS)를 도입해 국내 기관 중 유일하게 화장품과 샴푸 등의 천연 원료(바이오매스) 제품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는 능력도 갖췄다. 

-연구원들의 업무 중압감도 높겠다. 검사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소비자가 직격탄을 맞으니…. 

“물론이다. 예를 들어 보건용 미세먼지 마스크 검사가 잘못되면 직접적으로 국민 건강을 해치게 된다. 엄중한 업무를 야무지게 수행해야 한다.”


미세먼지 마스크에 숨은 첨단 과학 검사

마스크 착용자가 체임버에 들어가 누설률 시험을 하는 모습. [한국의류시험연구원 제공]

마스크 착용자가 체임버에 들어가 누설률 시험을 하는 모습. [한국의류시험연구원 제공]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증 ‘KF(Korea Filter) 마스크’ 말인가. 

“그렇다. 마스크 성능 시험검사는 3단계를 거쳐 성능 수준에 따라 KF80(0.4㎛ 크기의 입자를 80% 이상 걸러냄), KF94, KF99 등급으로 구분하는데, 검사는 △안면부 흡기저항(시험자 머리에 마스크를 씌워 공기 흡입 시 저항을 측정) △분진포집효율(마스크의 투과율 측정) △누설률 시험 단계를 거쳐야 한다. 누설률 시험은 염화나트륨 에어로졸이 공급된 체임버에 마스크를 착용한 시험자가 들어가 트레이드밀(러닝머신)에서 시속 6km로 빠르게 걸으며 마스크 내외부의 염화나트륨 농도를 측정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 시험성적서가 발급되고 식약처가 인증해준다. 단순해 보이는 마스크에도 첨단 과학 검사가 적용된다.” 

-빅데이터 시대에 KATRI의 시험성적서는 굉장한 자산이 될 거 같은데. 

“공감한다. 올해 40억 원 이상을 들여 시험 전 과정에서 전산화 작업을 하는 이유다.” 

-전산화? 

“전산화를 하면 임의로 데이터(시험성적서)를 가공할 수 없게 해 신뢰도를 높일 수 있고, 내부 경영 혁신과 대외 고객과의 관계도 활성화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전산화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업무혁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비유하자면, 전산이 고속도로라면 업무 혁신은 교통수단이다. 고속도로에 경운기를 타고 갈 순 없지 않나. 업무 혁신을 이뤄 스피드카를 타고 달려야 한다(웃음).” 

-스피드카(업무 혁신)는 어디서 구하나.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하나의 스피드카가 될 수 있다. IoT 기술을 활용하면 단순·반복적인 작업을 줄일 수 있고 업무능률을 높여 비용을 줄인다. 예를 들어 1층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3층에 있는 시험장비가 가동 중인지 올라가서 확인하기보다 IoT 기술로 가동 여부를 알 수 있도록 하는 거다. IoT 기술을 접목해 검사 장비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현재 일부 직원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박 원장과 직원들의 노력으로 KATRI의 매출은 2017년 525억 원에서 2018년 609억 원으로 16% 증가했고, 당기순이익도 49억 원에서 77억 원으로 56% 급증했다. 

-들어보니 사회적 역할도 큰 거 같다. 

“제품의 우수한 성능과 안전 확보 등을 위한 공적 기능을 수행하니까. 그래서 정부로부터 규제나 지원 등에서 혜택을 받는다. 정부가 기대하는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고객인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원 직원들은 매월 서울 용두동 본관과 안양 별관 인근 보육원을 찾고, 서울 동대문 관내 독거노인 식사비 모금운동을 하면서 사회적 역할을 되새기고 있다.” 

인터뷰 말미 박 원장은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거고, 그만큼 직원들의 역량이 중요하다”며 “직원을 위한 예술 및 IT 강좌를 개설하고 연구원 내 작은 도서관을 마련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나라를 구한 것도 평소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기 때문”이라며 “우리 직원들도 직분에 충실하면 KATRI를 더욱 발전시킬 것으로 믿는다”며 웃었다.




신동아 201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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