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호

금융권 핫 이슈 ‘오픈뱅킹’ 써보니

“한번 해킹당하면 피해 막심할 수도”

  • 박종오 이데일리 기자

    pjo22@edaily.co.kr

    입력2019-11-22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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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앱 하나로 전 은행 계좌 조회·이체 가능

    • 폐쇄적 은행 결제망, 핀테크 업체에까지 개방

    • “한 놈만 살아남는다?”…은행들 고객 유치 혈안

    • IT·핀테크 업체 가세하면 금융사 무한 경쟁 돌입

    • 요구불예금 입출입만 가능한 건 한계

    • 기대와 달리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도

    기자는 신한은행, KB국민은행, 우리은행 등 3개 은행에 계좌를 보유하고 있다. 용도는 모두 다르다. 매달 월급이 들어오는 계좌, 카드 대금·통신비 등 다달이 고정비용이 빠져나가는 계좌, 청약통장 계좌가 그렇다. 

    휴대전화에도 3개 은행의 애플리케이션(앱·응용 프로그램)이 다 깔려 있다. A은행에 입금된 월급의 일부는 카드 결제일에 맞춰 B은행 계좌로 이체한다. C은행 청약통장 계좌에도 매달 정해진 날 돈을 입금한다. 안전하게 송금됐는지 확인하려면 각 은행 앱에 접속해 또다시 개인 인증을 해야 한다. 꽤 번거로운 일이다. 

    그런데 지난 10월 30일부터 이런 수고를 덜 수 있게 됐다. ‘오픈뱅킹(open banking)’ 서비스가 시작돼서다. 오픈뱅킹은 하나의 은행 앱으로 모든 은행의 계좌 잔액과 거래 내역을 조회하고 각 은행 계좌에 있는 돈을 간편하게 다른 은행 계좌로 이체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3개의 은행 중 기자는 신한은행의 모바일 앱 ‘쏠’에 접속했다. 이용 약관 동의, 전화 인증 등을 거치자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의 보유 계좌 번호와 잔액 정보가 화면에 주르륵 뜬다. 신한은행 앱에서 우리은행 계좌에 있는 돈 1000원을 국민은행 계좌로 옮겨봤다. 이체 수수료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오히려 오픈뱅킹 이용자에게 캐시백을 제공하는 행사가 진행 중이라 신한은행으로부터 100원을 돌려받았다. 또한 오픈뱅킹은 24시간, 365일 이용 가능하다.

    은행 결제망 핀테크 업체에까지 개방

    휴대전화에 주거래 은행 앱 하나만 있어도 모든 은행의 계좌 조회·이체 등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개방형 금융 서비스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행에 들어갔다. 국내 은행 18곳 중 10곳이 오픈뱅킹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IBK기업·경남·부산·제주·전북은행 등이다. 나머지 8개 은행도 시범 서비스를 개시한 10개 은행에 계좌 조회·이체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이 은행들도 준비를 마치는 대로 자체 앱에서 오픈뱅킹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제2금융권도 참여한다. 



    오픈뱅킹은 은행권의 개방형 공동 결제망이다. 모든 은행의 계좌 조회·이체 시스템 등을 외부에 개방해 공유한다. 이 망을 이용하려는 회사가 은행이 공통으로 약속한 표준 방식에 맞춰 계좌 잔액 조회·송금 등을 금융결제원에 요청하면 금융결제원이 다시 각 은행에 이를 전달해 실제 조회나 금융거래를 실행하게끔 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는 달랐다. 각 은행은 자기 고객에게만 계좌 조회·이체 서비스를 제공했다. 은행이 아닌 다른 회사가 은행의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려는 것도 되도록 제한했다. 이 때문에 법인의 은행 계좌에서 직원 은행 계좌로 매달 급여를 송금해야 하는 기업은 개별 은행과 각각 계약을 맺고 은행의 전용 회선을 이용해야만 했다. 하나의 앱에서 여러 은행 계좌로 돈을 옮길 수 있는 간편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토스’ 등 핀테크(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금융 서비스) 업체도 마찬가지였다. 토스는 각 은행과 일일이 제휴를 맺고 현재 값비싼 이체 수수료를 내며 은행의 전용 회선을 사용한다. 

    오픈뱅킹은 이처럼 폐쇄적인 은행 결제망을 은행끼리는 물론 신생 핀테크 기업에까지 대폭 개방한 것이 특징이다. 금융 서비스 시장 진출을 확대하는 네이버·카카오 등 대형 정보기술(IT) 기업도 은행이 제공하는 오픈뱅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망 사용료도 확 낮췄다. 지금까지는 다른 회사가 은행의 입·출금 이체 서비스를 이용하면 이체 1건당 400~500원을 수수료로 냈다. 하지만 오픈뱅킹 시행 후엔 이 비용이 이체 1건당 40~50원으로 내려갔다. 거래액과 건수가 적은 중소 핀테크 업체는 1건당 20~30원만 은행에 수수료로 내면 된다. 

    대형 IT 기업과 핀테크 회사는 시범 운영이 끝나는 올해 12월 18일부터 오픈 뱅킹 서비스에 참여한다. 국내 은행 18곳 외에 은행권의 공동 결제망을 이용하겠다며 금융 당국에 신청한 핀테크 기업 등은 138개에 달한다. 소비자의 휴대전화에 금융거래 앱을 설치하려는 회사 간 무한 경쟁이 시작되는 셈이다.

    은행 하나만 살아남나?

    [동아DB]

    [동아DB]

    은행이 먼저 선보인 오픈뱅킹 서비스의 소비자 호응은 높은 편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10월 30일 시범 서비스 개시 후 11월 5일까지 일주일 새 102만 명(중복 포함)이 서비스에 가입했다. 이들이 등록한 은행 계좌는 183만 개, 오픈뱅킹 서비스 이용 건수는 1215만 건에 달했다. 하루 평균 174만 건꼴이다. 

    이는 우리보다 앞서 지난해 1월 오픈뱅킹 서비스를 시행한 영국의 초기 이용 실적을 훌쩍 뛰어넘는다. 영국은 서비스 도입 10개월 만인 작년 11월 기준 오픈뱅킹 이용 건수가 하루 평균 60만 건에도 못 미쳤다. 

    물론 이 같은 이용 실적엔 휴대전화를 이용한 금융거래 비중이 높은 국내 환경과 새로운 서비스를 향한 소비자의 호기심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은행들의 고객 유치 경쟁도 한몫했다. 

    신한은행은 올 연말까지 ‘쏠’ 앱으로 오픈뱅킹 이용 신청을 하면 최대 500만 원을 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 쏠에서 다른 은행 계좌 간 돈을 이체하거나 카드·증권·보험 등 금융 자산 정보를 추가로 등록하면 별도의 적립금도 지급한다. 신한은행 계좌가 없는 사람도 쏠에 가입해 다른 은행의 보유 계좌를 등록하고 오픈뱅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국민은행은 ‘KB스타뱅킹’과 ‘리브’ 앱에서 다른 은행 계좌를 등록하면 현금과 스마트폰 등 경품을 제공한다. 우리은행과 농협은행도 비슷한 경품 지급 행사에 나섰다. 하나은행은 오픈뱅킹을 등록한 사람에게 추첨을 거쳐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인 ‘하나머니’를 지급한다.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홍보전에 뛰어든 것은 위기감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오픈뱅킹이 본격 시행되면 결국 서비스가 가장 편리한 은행 몇 군데만 살아남을 것”이라며 “은행의 생존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서비스 시행 초기부터 이용자 유치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모바일 등 비대면 금융거래 비중은 이미 90%를 넘었다. 국내 금융 소비자 대부분이 은행 지점을 직접 찾지 않고 손바닥 안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중요한 금융거래를 한다. 은행으로선 오픈뱅킹 시행으로 더 편리한 서비스와 많은 혜택을 제공하는 회사의 앱만 소비자의 전화기 속에서 살아남으리라는 절박함이 크다는 얘기다. 

    은행에 오픈뱅킹은 기회이기도 하다. 은행은 오픈뱅킹 서비스를 통해 개인이 보유한 다른 은행의 계좌 정보를 알 수 있다. 또 다른 은행에 있는 예금을 자기 은행으로 이체시키거나 금융 상품 가입 등을 유도할 수도 있다. 실제로 국민은행은 타 은행 계좌 최다 5곳에서 국민은행 계좌로 돈을 한 번에 끌어올 수 있는 ‘잔액 모으기’ 서비스를 출시했다. 신한은행은 다른 은행 계좌에 있는 돈을 신한은행 예·적금으로 옮기면 이자를 더 주는 혜택까지 제공한다.

    IT · 핀테크업체 가세, 무한 경쟁 돌입

    KEB하나은행 소속 하나금융경영연구소와 (사)한국금융연구센터가 10월 11일 서울 중구 한국금융연구원에서 ‘오픈뱅킹 시대, 한국 은행산업의 미래’라는 주제로 제9회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했다. [뉴시스]

    KEB하나은행 소속 하나금융경영연구소와 (사)한국금융연구센터가 10월 11일 서울 중구 한국금융연구원에서 ‘오픈뱅킹 시대, 한국 은행산업의 미래’라는 주제로 제9회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했다. [뉴시스]

    오픈뱅킹 도입을 주도한 정부는 은행 간 경쟁이 본격적으로 불붙으면 그만큼 소비자 선택권이 넓어져 금리·서비스 등 혜택에 따라 수시로 거래 은행을 바꾸는 ‘금융 노마드(유목민)’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신한·국민·우리·하나·농협은행 등 시중은행 5곳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10월 말 현재 465조2532억 원에 이른다. 요구불예금은 정기예금이나 적금보다 훨씬 낮은 이자가 붙는 대신 언제든 입출금이 가능한 대기성 자금이다. 이런 저원가성 자금을 자기 은행으로 끌어들이려는 쟁탈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송현도 금융위 금융혁신과장은 “정부가 깔아준 인프라 위에 어떤 집을 짓고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지는 기본적으로 금융회사 몫이지만, 은행과 핀테크 업체가 서로 소비자를 붙잡기 위한 경쟁을 벌이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선보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 당국이 기대하는 오픈뱅킹의 효과는 이뿐 아니다. 은행 결제망 개방이 궁극적으로 국내 핀테크 산업 육성과 결제 시장 혁신의 계기가 되리라는 기대감도 있다. 한 계좌에서 다른 계좌로 자금을 이체하는 결제는 일상생활에서 소비자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금융 서비스다. 그만큼 폭발력도 크다. 중소 핀테크 기업이 신용카드 중심의 국내 결제 시장에 뛰어들어 신종 간편 결제 서비스인 ‘알리페이’를 발판 삼아 초대형 금융 그룹으로 성장한 중국의 알리바바 같은 회사가 국내에도 등장할 수 있다. 현재 신용카드가 제패하고 있는 국내 결제 시장을 은행 계좌와 연결된 직불 결제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정부가 제시하는 장기적인 청사진이다.

    개인정보 유출·독과점 우려 제기

    문제는 오픈뱅킹 서비스 시행의 효과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당장 시범 서비스 기간에 오픈뱅킹 이용이 생각보다 불편하다거나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한 은행 앱에 다른 은행 계좌를 등록하려면 계좌 번호를 일일이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또 수시로 돈을 넣고 뺄 수 있는 요구불예금이 아닌 정기 예·적금 계좌는 오픈뱅킹 서비스 이용 계좌로 등록할 수 없다. 실제로 한 은행 앱에 다른 은행의 청약통장 계좌를 등록하려 하자 불가능하다는 안내문이 화면에 떴다. 

    대다수 은행의 앱에서 다른 은행 계좌 간 자금 이체를 할 수 없다는 점도 오픈뱅킹이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만든다. A은행 앱을 이용해 B은행 계좌에서 C은행 계좌로 돈을 옮기려면 반드시 A은행 계좌를 경유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오픈뱅킹 서비스가 당초 기대와 달리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오픈뱅킹을 먼저 시작한 영국의 경우 지금도 이용률이 전체의 10%도 안 된다”면서 “금융회사 간 서비스 경쟁이 강화되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개인 정보 유출 등의 금융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뒤따른다”고 지적했다. 

    사실 오픈뱅킹 이용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보안 문제다. 자신의 모든 은행 계좌 정보가 한 회사에 모이기 때문이다. 자칫 이용하는 회사가 해킹당하면 개인의 금융거래 정보는 물론 예금까지 송두리째 유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금융 당국은 소비자 피해 보상을 위해 보증보험 가입 등을 의무화할 방침이지만 적극적인 보안책이라 보기 힘들다. 

    한편 오픈뱅킹의 확대로 시장 독점 현상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김상봉 교수는 “은행 등 금융회사의 결제망과 정보 개방을 대폭 확대하면 오히려 기존에 자본과 데이터를 많이 보유한 대형 금융사가 핀테크 업체와의 경쟁에서 이겨 시장을 독점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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