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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만 200종 ‘담배 천국’ 북한…여성 흡연율은 0%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브랜드만 200종 ‘담배 천국’ 북한…여성 흡연율은 0%

  • ● 40개 생산기업 大경쟁 체제 
    ● 담배는 ‘권력’ ‘돈’ ‘권위’
    ● 여성 흡연 금기시 
    ● 중국 동남아 중동 수출
    ● 프로파간다 수단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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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탈북해 올해 3월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정시우(28) 씨는 평양에서 탁구장을 운영했다. 탁구장 사업은 꽤 잘됐다고 한다. 맥주, 음료, 담배 판매 수입이 컸다. 상점에서 북한 돈 1000원에 파는 사이다를 탁구장에서는 3000원에 판다. ‘내기 탁구’를 한 뒤 진 사람이 맥주 값을 내는 식으로 유흥이 이뤄진다. 

‘기관’에 매달 300달러를 바쳤으며 보안원이 정씨의 탁구장에 매일 들러 담배 한 갑씩 상납받았다. 관공서에서 일을 볼 때도 담배를 찔러줘야 한다. 병원에서 진단서를 안 떼주면 ‘아, 또 고이라는 거구나’ 한다. 병원에서 진료받을 때 의사에게 담배 한 갑을 건네는 것은 예의다. 

북한에서 담배는 ‘돈’이다. ‘담배를 고이는’ 것은 사회생활의 윤활유다. ‘뇌물을 준다’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인사한다’거나 ‘고이다’라고 표현한다. 

북한 담배 브랜드만 200종이 넘는다(한국은 50여 종). 1달러에 10갑인 담배가 있는가 하면 1갑에 20달러 하는 담배도 있다. 담배를 받을 때 브랜드만 보고도 뇌물 액수를 알 수 있다. 담배를 ‘보루’ 단위나 큰 상자에 넣어 고이는 건 말 그대로 뇌물이다.


북한에서 담배는 ‘권력’ ‘돈’ ‘권위’

200종 넘는 담배 브랜드가 북한에서 경쟁 중이다. [GettyImages, 동아DB, flickr]

200종 넘는 담배 브랜드가 북한에서 경쟁 중이다. [GettyImages, 동아DB, flickr]

북한은 ‘흡연 파라다이스’다. 호텔이나 음식점, 공공장소는 물론이고 엘리베이터에서도 담배를 피운다. 실내에서도 끽연하는데 예절 차원에서 삼가는 게 좋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전매제도가 아니라 대(大)경쟁 체제다. 40곳 넘는 담배 생산기업이 경쟁한다. 북한 국적기를 운행하는 고려항공도 담배사업을 한다. 



북한 담배회사를 10곳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내고향담배공장, 대동강담배합영회사, 나선신흥담배회사, 룡봉담배회사, 룡성, 만경대대성담배공장, 조선금흥, 평양번영담배공장, 평양은하담배공장, 진흥합작회사. 

내고향담배공장을 운영하는 ‘내고향’이라는 명칭의 기업은 담배, 빵, 스포츠 의류, 생리대 등을 생산하는 기업군을 거느렸다. 김정은이 즐겨 피우던 담배 ‘727’이 내고향이 생산한 제품이다. 내고향은 ‘아침’이라는 브랜드로 중동에 담배를 수출한다. 담배와 술은 북한 공산품 중 수출이 가능할 만큼 경쟁력을 갖춘 몇 안 되는 품목이다. 

북한에서 담배는 ‘권위’다. 노동당 간부 출신 탈북민 L씨는 “크건, 작건 조직의 장은 휴식 시간에 부하 직원에게 담배 한 개비 나눠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한 대로라면 여성 흡연율은 0%다. 조선중앙통신도 “조선에는 여성 흡연자가 없다”고 보도했다. 여성 흡연을 금기시하고 ‘권위’를 가진 남성만 담배를 피운다. 성인 남성 흡연율이 54.7%(2015년 기준)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탈북민 이주희(33) 씨는 “여성이 담배 피우는 것을 술 마시는 것보다 더 부도덕한 행위로 여긴다. 그렇다고 해서 0%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탈북 여성은 “할머니들은 담배를 피워도 된다. 여자로 안 보는 거다”라고 했다.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열차 편으로 이동하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난닝 역 플랫폼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포착됐다.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재떨이를 들고 옆에 서 있었는데, 이 장면은 가부장제가 강하게 남아 있는 북한의 남녀 관계를 상징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김정은 ‘727’에서 ‘건설’로 바꿔… 프로파간다 수단

'북한담배 프로파간다와 브랜드의 변주곡’(왼쪽), 북한 언론은 김정은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이미지 정치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조선중앙TV]

북한에서 담배는 ‘권력’이다. 김정은이 노동당과 군부 고위간부 앞에서 담배를 피운다. 실내체육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권력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는 최고 권력자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주민들에게 노출한다. 젊은 지도자의 권위를 높이고자 고안된 고도의 이미지 정치다. 김정은은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발사대 옆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38노스’는 이 모습을 두고 “무모하다”고 논평했다. 

김정은은 내고향이 만든 ‘727’을 피우다가 평양대성이 만든 ‘건설’로 갈아탔다. ‘727’은 미국과 전쟁 위기가 고조될 때 피웠다. ‘727’은 정전협정 체결일인 1953년 7월 27일을 가리킨다. 북한에서 이날은 ‘전승절’이다. “미제국주의와 남조선 괴뢰 도당이 일으킨 전쟁에서 승리한 날”로 선전한다. 미국과 협상 국면이 열린 후 피우기 시작한 ‘건설’에는 붉은 깃발을 든 노동자와 건설 현장이 그려져 있다. 

‘북한 담배, 프로파간다와 브랜드의 변주곡’을 출간한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자력갱생, 자급자족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지키자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북한 사회에 깊숙이 침투한 자본주의 행위 양식은 이미 사회 변화의 주요 동력이다. 정치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상표를 만들지만 동시에 소비자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북한 당국의 이중적 고민이 담배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선전(propaganda·프로파간다)과 또 다른 선전(advertize·애드버타이즈)이 변주곡으로 울린다.” 

북한 국장(國章)에 새겨진 별 모양을 상징으로 한 ‘붉은별’이란 담배는 주체혁명의 프로파간다다. ‘하나’는 북한 주도 남북통일을 강조한 노래에서 따왔다. ‘우리는 하나’라는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하나 민족도 하나. 핏줄도 하나. 하나, 태양조선 우리는 하나.’ 북한 당국은 평양을 방문한 한국인들에게 이 노래를 가르쳐 함께 부르게 한다. ‘고향’은 김일성의 생가인 ‘만경대고향집’을 가리킨다. ‘백두산’과 ‘천지’는 백두혈통을 암시한다. 

강동완 교수는 “담배는 북한의 외화벌이 창구이기도 하다”면서 “북한이 담배를 중국, 동남아, 중동으로 수출한다. 북한 담배가 중국에서 가격경쟁력이 있다. 외국 소비자를 신경 쓰다 보니 상표와 디자인에도 노력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북한은 2000년대 초 세계 유명 브랜드의 위조 담배를 만들어 외화를 벌었다. KT&G 담배도 위조했다. 당시 축적한 기술이 담배 수출의 디딤돌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신동아 12월호'

*참고문헌 : 강동완 '북한담배: 프로파간다와 브랜드의 변주곡'(2019)






신동아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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