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호

文, ‘대환상’ 못 깨면 안보 위태로워져

비핵화 협상 2年 ‘거짓 평화’가 남긴 것

  • 김기호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초빙교수

    .

    입력2020-01-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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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분풀이하는 北

    • 체제 결속 다지며 경제 총동원 비상 체제 구축

    • 세계도 북한도 깨어났는데 文만 이상주의에 함몰

    • ‘새로운 길’ 겁박하는데도 나 홀로 “상생번영” 외쳐

    • 국제정세는 민족·국가주의로 회귀

    [노동신문]

    [노동신문]

    북한은 지난해 12월 28일부터 나흘간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진행했다. [노동신문]

    북한은 지난해 12월 28일부터 나흘간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진행했다. [노동신문]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피어난 남북대화 및 평화 분위기와 북·미 협상은 ‘대(大)환상’에 불과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4일간이나 개최한 후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끝까지 추구한다면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겁박했다. 미국 또한 외교적 협상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군사적 옵션을 준비하고 있다. 

    북·미 핵 협상이 이렇듯 종말을 향해 치닫는 형국이다.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며, 전운(戰雲)마저 감도는 분위기다. 한반도 주변 정세는 제2의 냉전구도가 형성되는 형국이다. 북한은 사실상 ‘새로운 길’을 천명했으며 미국은 평양에다 대선에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 정치권은 4월 총선에만 시선이 쏠려 있다. 그렇다면 2020년 북·미 핵 협상과 남북관계는 어떻게 전개될까. 

    1990년대 소련이 붕괴한 후 탈냉전 시대가 도래했다. 미국이 세계질서를 주도하면서 세계화(globalization)가 급속히 진행됐다. 세계화 시대가 열리면서 단일 패권국이 된 미국은 ‘확대 및 개입 전략(Enlargement and Engagement)’을 펼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세계에 확산하려 했다. 특히 중동 지역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파해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려 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전쟁까지 벌였다.

    2020년 국제정세 : ‘대환상’ 버리고 민족·국가주의로 회귀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슬로건 깃발과 성조기(아래).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의 저서 ‘대환상’. [AP=뉴시스]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슬로건 깃발과 성조기(아래).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의 저서 ‘대환상’. [AP=뉴시스]

    미국의 이 같은 시도는 오히려 분쟁과 테러의 원인이 됐다. 중동의 사막과 산악에서 10년 넘게 천문학적 달러를 사용하며 국력을 소진하는 동안 중국이 급부상했으며 러시아도 소련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강해졌다. 9·11테러가 도화선이 돼 미국이 이라크·아프간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수만 명의 인명과 수조 달러의 전비만 탕진했다. 미국의 부채는 급기야 정부 재정마저 초과했다. 미국은 2016년 3월 9년간 매년 1090억 달러 규모의 재정지출을 감축하는 내용의 ‘연방정부 예산자동삭감조치(시퀘스터·sequester)’를 시행했다. 

    미국인들은 세계경찰 임무 수행에 피로감을 느꼈다. 소련 붕괴 이후 30년이 지나면서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대환상(The Great Delusion)’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국의 국제정치 석학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명저 ‘대환상’에서 이를 설명하고 있다. 영악한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인의 피로감을 간파하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를 외쳐 대통령에 당선됐다. 세계보다는 미국을 우선하는 국가주의로 돌아선 것이다. 



    미국뿐 아니다. 영국도 국가주의자 보리스 존슨 총리가 유럽연합에서 이탈하는 브렉시트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중국도 시진핑(習近平)이 ‘중국몽’을 외치면서 중화사상에 바탕을 둔 중화민족 부흥을 야심만만하게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아베 신조도 미국을 등에 업고 일본 민족의 중흥을 영악스럽게 몰아가고 있으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도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되찾으려 유럽과 아시아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렇듯 2020년 전개될 국제정치의 도드라진 특징은 세계화가 퇴조하고 민족 및 국가주의(Nationalism)가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한국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트럼프, 시진핑, 아베, 푸틴이 하나같이 민족·국가주의자며 스트롱맨이다. 이들 스트롱맨은 모두 이상이나 가치보다는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우고 있다. 김정은도 그들에 뒤지지 않는 스트롱맨이다. 

    2020년 세계 안보 질서는 미-일-영 대(對) 중-러-북(-이란)의 제2 냉전구도 아래 펼쳐질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도 신냉전 구도의 하나다. 문제는 북핵 문제가 꼬일 때 제2의 냉전구도가 한반도에서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데 있다. 미·중 패권경쟁은 한국에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 봉쇄를 위해 미국-일본-호주-인도를 연결하는 다이아몬드의 최전선에 있는 한국을 ‘인도태평양전략’에 끌어들이려 한다. 반면 중국은 한국에 ‘일대일로’에 참여하라고 요구한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문제 삼아 경제 및 관광 보복으로 압박하면서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하는 무력시위도 벌이고 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경도된 한국이 어정쩡하게 양다리 걸치기를 지속하기가 더는 어려운 상황이다.

    김정은의 ‘새로운 길’

    김정은은 2012년 집권 후 8년 만에 처음으로 신년사를 내놓지 않았으며 4일간이나 진행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과로 신년사를 대치했다. 북한에서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정권의 중요 노선을 비롯해 당 내외 문제를 논의해 의결하는 기구다. 북한 최고권력기관이 포진한 중앙위원회 조직과 인사도 결정한다. 북한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당대회 또는 당대표자회가 열리지 않는 시기에 전원회의가 이 기능을 대신하기에 사실상 최고의사결정기구 역할을 한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당 전원회의에서 “국가의 ‘전략적 지위’와 국력 강화를 위한 투쟁 노선과 방략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전략적 지위는 ‘핵 보유국’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김정은은 전원회의에서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끝까지 추구한다면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면돌파전’ 노선을 앞세워 핵·미사일 등 전략무기의 지속적 개발을 천명했으며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 약속의 파기도 위협했다. 

    북한의 제7기 당 중앙위원회에는 234명의 위원·후보위원이 포진해 있다. 당 중앙위원회는 최고 핵심 권력기관인 정치국(상무위원·위원·후보위원 30여 명)과 정무국, 검열위원회, 중앙군사위원회(13명), 전문부서(19개)로 구성되며 정무국의 부위원장(11명)은 정치국원 및 전문부서장을 겸한다. 

    북한은 이번 회의를 통해 지난해 4월 4차 전원회의 때와 비슷한 규모인 77명을 물갈이했다. 북한은 노동당에 19개가량의 전문부서를 두고 내각과 사회 전 분야를 통제·감시해 왔는데 이번에 부장 10명이 교체되거나 이동했다. 김정일 시대에는 주요 인사의 장기 보직이 특징이었는데 김정은 시대에는 수시로 인사가 이뤄지고 있다. 2019년에만 해도 중앙위원 234명의 절반 정도가 교체됐다.

    경제 총동원 비상 체제 구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방과학원에서 진행한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TV가 지난해 11월 29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제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방과학원에서 진행한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TV가 지난해 11월 29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제공]

    김정은 인사의 특징은 경쟁을 통한 능력 위주 발탁이다. 김정은은 이번 개편을 통해 일종의 비상 체제를 구축했다. 

    첫째, 핵미사일을 담당하는 항공 및 반항공(공군)사령관(북한군 대장) 출신인 리병철을 정치국 위원 및 당 부위원장 겸 군수공업부장에 임명한 것은 다탄두 ICBM(MIRV),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핵탄두 운반수단 개발 능력을 계속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실제로 북한은 최근 2년간 겉으로는 핵 협상을 하면서 내부적으로는 핵미사일을 더욱 고도화했다. ICBM에 3~4발의 소형 핵탄두를 실을 수 있는 MIRV와 SLBM 발사가 가능한 탄도미사일 탑재 핵추진 잠수함(SSBN)도 개발하고 있다. 북한은 2019년에만 13차례 한국이 방어하기 곤란한 탄도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 등 신형전술무기를 시험발사했다. 

    둘째,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던, 김정은 동생 김여정이 노동당 제1부부장에 임명됐는데 조직지도부로 이동한 것으로 관측된다. 조직지도부는 북한 내 모든 조직의 인사와 정무를 총괄하는 당중당(黨中黨)이다. 김정일 시대의 조직지도부장은 최고권력자가 겸직하거나 공석으로 뒀다. 제1부부장은 조직지도부장의 대행으로 볼 수 있다. 

    셋째, 당과 내각의 경제 관료를 대폭 교체했는데 이는 제재 장기화에 대비해 자력갱생에 의한 경제 총동원 체제를 구축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넷째, 북한의 외교를 총괄하던 리수용-리용호 라인이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노동당 국제부장 리수용은 스위스 유학 시절의 김정은을 돌봐주던 인사다. 주러시아 대사였던 김형준이 국제부장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외교 라인의 변화는 북·미 핵 협상 결과에 대한 문책 성격이 짙다. 종합하면, 북한의 이번 인사는 핵미사일 능력을 더욱 고도화하면서 체제 결속과 경제 총동원으로 미국과의 장기전에 대비하는 진용을 갖추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재인의 ‘대환상’

    문재인 대통령이 1월 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부 신년합동인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월 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부 신년합동인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국가우선주의에 따른 제2의 냉전구도가 한반도에 형성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새로운 길로 접어든다며 겁박하고 있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에 함몰돼 있다. 문 대통령은 1월 2일 “평화는 행동 없이 오지 않는다”면서 “남북 상생번영의 평화공동체”를 역설했다. “남북관계에서도 더 운신(運身)의 폭을 넓히겠다”고도 했다. 반면 북한은 4일간 이어진 전원회의에서 평화 대신 전략무기를 언급했으며 ‘남조선’은 거명조차 하지 않고 철저히 무시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문재인 대통령을 철저히 배제하고 무시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발표에서는 문 대통령의 ‘평화경제’ 구상과 관련해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했다. 심지어 “아랫사람들이 써준 것을 그대로 졸졸 내리읽는 한국 당국자가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이라며 막말에 가까운 발언도 했다. 

    김정은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분풀이하고 있다. 트럼프가 하노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간 뒤부터 북측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화풀이하는 모양새다. 김정은은 영변과 동창리만 내주면 미국과 합의가 성사되고 대북제재는 해제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일부에서는 남측과 그렇게 교감한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이유는 김정은이 우라늄 핵시설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는 데 있다. 영변에는 고농축우라늄(HEU) 시설도 있으나 주로 플루토늄 핵무기를 만들던 곳이다. 플루토늄탄은 반영구적인 우라늄탄과 달리 플루토늄 순도가 90%를 밑돌지 않게 하고자 3~4년에 한 번씩 핵물질을 재충전해야 한다. 핵무기 노심부의 열화현상으로 장약이 팽창해 균열하고 렌즈가 뒤틀려 결정체가 갈라지기에 1~2년 안에 바꿔 끼우지 않으면 ‘수소탄’도 ‘수류탄’으로 전락할 수 있다. 

    반면 고농축우라늄 핵탄두는 반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기에 거의 영원히 숨길 수 있다. 우라늄 농축 시설의 규모가 크지 않으며 핵탄두는 축구공 크기만 해 숨겨놓으면 사실상 찾을 수 없다. 북한은 3차 핵실험 때부터 우라늄 핵탄두를 사용했는데 하노이 회담에서 우라늄 농축 시설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이 같은 내용을 설명하면서 영변 핵 시설은 물론이고 숨겨놓은 우라늄 농축 시설과 물질, 핵탄두를 다 협상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고 설득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지금처럼 무시받지 않고 김정은으로부터 중재자로 대우받았을 것이다. 물론 김정은이 문 대통령의 설득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큰 것도 사실이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거짓 평화’

    국가 간 협력과 평화를 강조하는 이상주의(idealism)는 세계화 시대에서는 빛을 발했다. 그러나 힘에 바탕을 둔 현실주의(realism)와 국가주의가 부상하는 2020년대 이상주의가 설 자리는 없다. 세계도 북한도 대환상에서 깨어나고 있다. 올해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이상주의적 평화에 함몰돼 있다면 그야말로 ‘대환상’이 아닐 수 없다. 문 대통령이 대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평화는 ‘거짓 평화’라는 점을 역사가 입증하고 있으며 최근 2년이 이를 방증한다. 문 대통령이 시급히 대환상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안보가 위태롭게 될 것이다. 



    김기호
    ● 육군사관학교 졸업(35기) 육군 대령 전역
    ● 한미연합사령부 작전계획과장
    ● 국방대 안보대학원군사전략학부 교수
    ● 現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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