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호

봉달호 편의점 칼럼

노무현을 모욕하는 건 누구인가, 홍위병 닮은 ‘대깨문’이 사는 법

  • 봉달호 편의점주

    runtokorea@gmail.com

    입력2020-02-2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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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심리

    • 테러리즘의 어원, 공포정치

    • 역사는 무대와 복장만 다른 역할극

    • 조국과 정경심은 사인방인가

    • 산 자들의 곡해와 아귀다툼

    [뉴시스, 동아DB]

    [뉴시스, 동아DB]

    친구 중에 ‘문파’(文派·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 그룹)가 있다. 원래 친노(친노무현)였는데 자연스럽게 문파가 됐다. 이른바 ‘원조 노사모’는 아니다. 나는 친구가 친노가 되길 결심한 날을 기억한다. 그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이었다.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대체로 그랬겠지만, 비보를 접한 그날 우리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심정으로 술자리에 마주 앉았다. 말없이 술잔을 몇 차례 주고받다 친구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이 친구가 원래 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많은 친구였던가. 

    그날 이후 친구는 열성 친노가 됐다. 노무현의 영상을 뒤늦게 찾아보고, 노무현에 대한 책이나 자료라면 뭐든지 읽고, 한국에 갈 때마다 봉하마을을 찾아 참배하고, 이런저런 ‘굿즈’까지 챙긴다. 노무현의 죽음은 그렇게, 중국에서 어학원을 운영하는 평범한 40대 가장을 열성 친노로 만들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심리

    2009년 5월 29일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 행렬이 남대문으로 향하고 있다.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2009년 5월 29일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 행렬이 남대문으로 향하고 있다.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노무현 대통령 퇴임 시 국정 수행 지지율은 27% 정도였다. 역대 다른 대통령의 퇴임 시 지지율과 비슷한 수준이긴 하지만 노무현의 특징이라면 취임 직후 잠깐 60%를 기록하고는 20~30%대 낮은 지지율에 줄곧 머물렀다는 사실이다. 한때 12% 지지율을 보인 적도 있다 (박근혜의 경우 탄핵 1년 전만 해도 47% 지지율까지 나왔다). 그만큼 노무현은 임기 내내 인기 없는 대통령이었고 쓸쓸히 퇴장했다. 

    그런데 지금 여염의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12% 지지를 받았던 대통령 맞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모두 노무현을 ‘좋은 대통령’이었다고 추억하며 애잔하게 생각한다. 물론 ‘좋은’ 대통령과 ‘잘한’ 대통령은 다르다지만, 노무현을 나쁘게 이야기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로 여겨질 정도다. 88%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도 어느 틈에 끼어 나지막이 ‘노무현이 그립다’ 말하고 있을 것이다. 리(理)보다 정(情)에 이끌리는 한국인의 정서, 어떤 이유가 됐든 고인이 된 사람을 모욕하는 일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 여기는 탓도 있을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을 복기해 보자. ‘가족과 측근에게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는 건 알지만, 그게 그렇게 죽을 일이었을까?’ 대체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세상에 더 큰 죄를 짓고도 살아가는 자가 수두룩한데 그깟(?) 일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다니, 역시 노무현은 순박한 사람…. 내 친구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해’ 죽었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믿고 따르면서 열성적으로 지지해 주는 세력이 없어서 노무현은 외롭고 안타까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고인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자신의 책임으로까지 느낀다. 그가 친노가 된 이유다. 



    노무현에 대한 애틋한 심정은 엉뚱하게도(!) 문재인에게 옮겨간다. ‘문재인은 노무현처럼 만들지 않겠다!’ 그래서 친구는 오늘도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라고 당당히 외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문재인을 지지하는 마음은 거두지 않겠다’ ‘노무현을 경원시했던 실수, 노무현이 당했던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각오한다. 

    노무현이 과연 ‘대깨노’가 없어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 그에 대한 논증은 차치하고 ― 시비를 따지기 어려운 논증이니까 ―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데 그것을 기어이 말려야 할 이유는 없다. 필자가 인생을 살아오며 터득한 처세의 기술이 하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 됐든 누군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함부로 폄훼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말해 봤자 본전도 못 찾는 일들이 있다. 지금 이른바 문파를 거론하는 일이 그렇다. 그럼에도 펜을 들 수밖에 없는 것은 BTS(방탄소년단)를 좋아하는 팬덤과 특정한 정치인(또는 정치세력)을 좋아하는 팬덤이 미치는 사회적 의미는 비교할 수 없이 다르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유에서다.

    테러리즘의 어원, 공포정치

    중국 문화혁명 시기 홍위병. [GettyImage ]

    중국 문화혁명 시기 홍위병. [GettyImage ]

    몇 달 전 이 지면을 통해 조지 오웰 소설 ‘동물농장’에 빗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칼럼을 썼더니 친구는 당연히 노발대발했다. 감히 그것과 그것을 연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마저도 굉장히 순화해서 쓴 것’이라고 변명했다. 

    사실은 중국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에 빗대 쓰려고 했다. 나는 수년간 중국에 체류하며 과거 홍위병이었던 사람과 피해자였던 사람을 여럿 만난 적 있고, 문화혁명이라는 말만 들어도 나 자신이 겪은 일처럼 애잔하게 느끼는 다소 지나친 소회마저 있다. 하지만 홍위병과 문파를 비유하는 방식은 손쉬운 직유라 오히려 꺼려졌다. 뭐든 너무 원색적이면 감흥이 떨어지는 법이다. 

    하지만 실상을 놓고 보면 홍위병과 문파는 판박이처럼 똑같다. 2020년 대한민국 문파를 보면서 1960년대 중화인민공화국 홍위병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물론 홍위병이 생겨나고 작동되는 과정은 문파와 약간 다른 측면이 있지만 본질상 상통하는 지점이 셀 수 없을 정도다. 역시 가장 핵심적인 공통점은 ‘자신들이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역사에 어떤 해악을 끼치고 있는지, 본인들 스스로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전체주의의 무서움은 ‘떼’의 힘으로 발언을 누르려는 데 있다. 자신의 생각과 견해가 아직 미흡하다고 판단해 발언을 자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세력’이 무서워 말을 아끼는 사회라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말할 것이다. “내가 언제 당신보고 말하지 말라고 그랬어? 말해 봐. 어서 말해 봐” 하면서 쿡쿡 찔러댈 것이다. 그래서 말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털어낼 것이다. 신상을 털고, 과거를 털고, 동선을 털 것이다. “너는 얼마나 잘났는지 확인해 보겠어” 하면서 확인(!)할 것이다. 직장과 학교에 압력을 가하기도 할 것이다. 물론 ‘그들’은 말하겠지. “깨어 있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일인데 우린들 어쩌겠어? 그러게 누가 그렇게 살래?” 

    다소 거칠게 표현했지만 전체주의의 본질은 이렇다. 생각이 다르다고 하룻밤에 수천 개 문자 폭탄을 안기고 18원 후원금을 보내는 행동이 본인들로서는 통쾌하고 기발하며 ‘깨시민’의 정당한 저항권 행사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거기에 담긴 본질은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자가 있으면 우리 집단의 힘으로 얼마든 눌러주겠어’ 하는 힘자랑이나 다름없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한다. “그래도 우리는 박근혜 정부처럼 블랙리스트 같은 것은 만들지 않잖아!”라고. 블랙리스트보다 더 강력한 무엇이 작동하고 있는데 굳이 블랙리스트가 필요할까?

    역사는 무대와 복장만 다른 역할극

    테러리즘의 어원이기도 한 프랑스 혁명기 공포정치(Reign of Terror)는 정치적 이견을 가진 사람들이 아예 말문을 열지 못하도록 온갖 방법을 동원한 것에 본질이 있다. 당시 공포정치의 주동자들은 스스로 ‘정의’를 행하고 있다고 믿었으며 거기에 일절 망설임이 없었다. 문파와 공포정치, 친위정치, 전체주의, 테러리즘은 본질상 잇닿는다. 

    문파를 홍위병이나 공포정치에 견주어 말하면 친구는 “우리가 사람을 죽였어? 감옥에 가뒀어?” 하면서 항변할지 모른다. 맞는 말이다. 중국 홍위병은 정말로 사람을 죽였고, 우붕(牛棚· 외양간)이란 이름의 사설 감옥을 만들어 정치적 반대자들을 가두고 박해했다. 프랑스의 자코뱅 클럽은 기요틴을 만들어 정적의 목을 잘랐다(정말로 ‘목’을 잘랐다). 

    물론 한국의 문파는 그러지는 않는다. 아니, ‘그럴 수 없는’ 환경이다. 여기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광복 직후 우리나라의 피비린내 나는 이념 대립 역사를 읽을 때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형이 동생을 고발하고, 낮밤을 나눠 좌우가 서로 교차하며 학살했던 기록을 훑다 보면, 현재 우리는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본질상 이들과 무엇이 다를까 하고 섬뜩한 느낌에 소름이 돋는다. 지금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이든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이든,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는 사람을 그 시대에 옮겨놓으면 분명히 어느 한쪽에서 총과 낫을 들지 않았을까? 다만 우리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역사는 무대와 복장만 달리하는 역할극이다. 1960년대 중국 홍위병을 1940년대 독일로 옮겨놓으면 유겐트가 되고, 독일의 나치를 1930년대 스페인으로 옮기면 프랑코 왕당파가 되며, 스페인 인민전선 일부를 1950년대 한반도에 겹쳐놓으면 서북청년단이 되거나 붉은 완장을 두른 사람들이 됐다가, 2020년 대한민국에서 시대에 맞는 복장과 소품으로 다시 갈아입는다. 친구는 억울할 것이다. 어찌 그리 ‘끔찍한 것들’과 자신을 비교할 수 있느냐고. 

    물론 범죄에도 경중(輕重)이 있는 것처럼 본질상 상통한다고 모두를 도매금 취급할 수는 없다. 이른바 문파에도 여러 성향의 사람이 있을 테고, 그들이 그런 결심을 하게 된 배경 역시 다양할 것이며,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모조리 문파라고 싸잡을 수 없다. 앞에서 ‘그들’이라고 표현한 부류는 문재인 지지 그룹 중에서도 극소수일 것이며, ‘그들’마저 현실에서는 내 친구처럼 다정한 미소를 지닌 평범한 이웃일 것이다. 그들 나름대로 순수한 열정과 의지를 지니고 있으리라 믿는다. 역사의 비극성은 그러한 평범함에서 도드라진다.

    조국과 정경심은 사인방인가

    사법적폐 청산 범국민시민연대 회원들과 시민들이 2019년 8월 3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조국 수호 사법적폐 청산 촛불문화제’를 열고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임명 및 사법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사법적폐 청산 범국민시민연대 회원들과 시민들이 2019년 8월 3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조국 수호 사법적폐 청산 촛불문화제’를 열고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임명 및 사법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과연 홍위병은 특출한 사람들이었을까? 중국 현대사에 적잖은 트라우마를 남겼기 때문에 한동안 중국에서는 홍위병이라는 용어조차 금기어에 속했지만 이제 피해자 수기는 물론 가해자들이 남긴 참회록을 통해서도 당시의 실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홍위병은 그저 평범한 학생들이었고,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 농부들이었고, 신중국의 탄생에 누구보다 감읍하던 풀뿌리 민초들이었다. 그렇게 순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런 소중한 나라가 한 줌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를 따르는 파)의 은밀한 반격에 다시 뒤집힐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구악(舊惡)을 타도하자”며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다. 마오쩌둥은 “사령부를 포격하라”고 그들의 영혼에 불을 질렀다. 홍위병은 순수했고, 마오쩌둥은 영악했다. 

    문파는 ‘검찰과 이명박이 노무현을 죽였다’고 생각한다. 문파의 창세기와도 같은 세계관이다. “노무현과 측근은 완벽하게 깨끗했다”고 차마 말할 수는 없으니 “‘논두렁 시계’ 같은 것으로 전임 대통령에게 모욕을 주어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아픈 상처를 소환한다. 그런 원적(怨敵) 검찰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지난 2년간 왜 살려두고 오히려 앞세웠는지 의문이지만 차도살인(借刀殺人·칼을 빌려 사람을 죽임)이나 토사구팽(兎死狗烹) 정도로 갈무리하자. ‘검찰이 바뀌면, 검찰을 경찰로 대체하면, 세상도 바뀌는 건가?’ 하는 의문도 이제는 접어두자. 말로 논증할 수 없는 문제는 실증으로 확인하면 되는 거니까. 이제 우리가 살펴볼 대목은 ‘홍위병의 순수함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한 마오쩌둥’에 있다. 문파의 이런 세계관을 꿰뚫고 그것을 자신들의 사리사욕에 이용하려는 세력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마오쩌둥과 비슷하게 행세하는 것은 어쩌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스스로 무소불위 ‘선출된 권력’이라 생각하니까.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게다가 그의 ‘강남 스타일’ 아내까지 구치소에서 피해자나 순교자 행세를 하면서 ‘깨시민’에게 고마워하고 ‘노무현의 논두렁 시계’까지 끌고 와 부부의 파렴치한 범죄 행위를 끝내 미화하려는 몸부림을 보면서 비열함과 가련함마저 느낀다. 검찰이 자신을 기소하자 그것을 ‘쿠데타’라고 칭한 청와대 비서관에게서는 역사의 기시감이 느껴진다. 스스로 장칭(마오쩌둥의 아내)이나 사인방(문화혁명 당시 수뇌부) 정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역사는 왜 이렇게 유독 좋지 않은 유전자만 국경과 시대를 건너뛰어 유전하는 것일까? 세상 모든 그릇된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편향은 그것을 팔아 이득을 보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오늘도 잘 팔리는 인기 상품으로 유통된다.

    ‘원조 친박’도 박근혜 탄핵했다

    이제는 결론을 이야기하자. 앞에 잠깐 언급한 것처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기 1년 전 국정 수행 지지율은 46.7%였다(글을 쓰는 현재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정 수행 지지율은 45%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결정이 있은 때로부터 따져보면 그렇고,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기 딱 9개월 전 지지율이 그랬다. 그런 지지율이 9.7% 바닥을 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8~9개월이었다. 국민은 그만큼 냉정하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행하는 일련의 폭주를 보면서 이른바 태극기 부대는 이런 푸념을 한다고 한다. “우리 박근혜 대통령은 왜 저렇게 과감하지 못했을까?” 박근혜도 끝내 사과하지 않고, 모른다고 고개 돌리며 버티고, 의혹을 제기하는 쪽을 향해 도리어 ‘불순하다’ 공격하고, “최순실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말하고, 수사하는 검사를 싹 바꿔버리는 식으로 정면 돌파했더라면 자신들의(!)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 긴 한숨을 내쉬며 후회한다고 한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울 때 좋은 말보다 부정적인 표현이나 비속어를 먼저 배우는 것처럼, 역시 역사는 이렇게 나쁜 쪽으로 먼저 유전한다. 노무현의 죽음에서 전혀 엉뚱한 교훈을 찾고 오늘 저렇게 폭주하는 것처럼,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정권을 잡을 세력은 최근 문재인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안면몰수하고 그저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정치에 원래 염치나 양심이란 없는 법이라고. 

    박근혜 정부가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2016년 4월 총선 직후다. 총선 때까지는 ‘공천’이라는 칼날 아래 숨죽이고 있었지만 총선의 다리를 건너니 호두알처럼 단단해 보였던 여당은 내부에서부터 깨져나갔다. 박근혜 탄핵 소추안에는 새누리당에서도 절반가량이 찬성 표결했다. 그중에는 ‘원조 친박’을 자처했던 의원도 여럿 포함돼 있다. 정치란 그런 것이다. 

    이른바 문파는 다가오는 총선을 승리로 이끌고, 그러한 위세로 검찰을 계속 누르고, 문파의 열렬한 후원을 받는 사람을 차기 대통령 후보에 올려놓고 정권을 재창출하는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 역사의 무게중심이 완전히 자기들 쪽으로 넘어올 것이라 장담한다. 그럴듯한 도식적 사고관이다. 모든 계획이 한 치 빈틈없이 완벽하게 진행돼 한국은행을 털고 유유히 빠져나와 남태평양 어느 섬에서 칵테일을 들이켜는 범죄 스릴러 영화와도 같은 구상이다. 알다시피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세상일이 그리 간단치 않다. 그중 하나만 삐걱거려도 커다란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하나씩 잘 완수돼 가다가도 언젠가 대반전의 드라마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때 그들은 또 무슨 교훈을 찾을까?

    산 자들의 곡해와 아귀다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 작성한 유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 작성한 유서.

    노무현 대통령이 유서처럼 작성한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주제어처럼 담겨 있다.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망자는 분명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 미안함을 찾으면서 그것을 자신의 운명이라고까지 끌어 붙인 의도된 곡해로부터 지금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망자는 분명 원망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 분노하라 외치면서 그것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정치적 오용으로부터 해결은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역사는 죽은 자를 앞세운 산 자들의 아귀다툼 아닐까 확인한다. 문재인 정부도 과거 정부와 한 점 틀림없는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분명한 예감 앞에, 왜 정치는 우성(優性) 유전을 하지 않는 것인지, 못내 참담함을 느끼며 하릴없이 먼 산등성이만 바라본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기라” 했던 당신의 마지막 한 줄 글 앞에 눈물 흘리며 고개 숙인다. 누가 노무현을 모욕하는가.

    '신동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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