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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판사’의 한끼

‘별 헤는 밤’과 피자

  • 정재민 전 판사, 작가

‘별 헤는 밤’과 피자

  • 재판은 상처로 시작해서 상처로 끝난다. 당사자들 상처에 비할 순 없지만 판사도 상처를 입는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곤 한다. 정갈한 밥 한 끼, 뜨끈한 탕 한 그릇, 달달한 빵 한 조각을 천천히 먹고 있으면 울적함의 조각이 커피 속 각설탕처럼 스르륵 녹아버리고 위로를 받는다. 그러면서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해서 법정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맞은편 빈자리에 앉은 누군가에게 한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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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거실에 놓인 테이블 앞에서 컴컴한 유리문 밖을 내다보며 피자에 맥주를 마시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고기, 햄, 올리브, 파인애플이 토핑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흔히 배달시켜 먹는 브랜드 피자다. 조금 식었지만 늦은 밤에 맥주와 같이 먹으니 맛이 나쁘지 않다. 밤하늘에 별은 안 보이니 윤동주처럼 별을 헤아릴 수는 없고 그의 시 ‘별 헤는 밤’을 빌려 한입씩 베어 먹는 피자 조각을 이렇게 셀 뿐이다.

배달원이 지나간 식탁에는 피자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식탁 위의 피자를 다 먹을 듯합니다. 

피자 한 입에 추억과, 피자 한 입에 사랑과, 피자 한 입에 쓸쓸함과, 피자 한 입에 동경과… 


서양 사람들은 술 마신 다음 날 해장을 하려고 햄버거를 먹는다던데 나는 햄버거는 모르겠고 피자를 먹고 해장 효과를 느낀 적은 있다. 피자를 삼키면 모차렐라 치즈와 도우가 위장과 창자에 묻은 알코올을 쓱쓱 닦아 내려가는 것처럼 헤롱거리던 정신이 회복된다. 나이가 들수록 소화 기능이 슬며시 떨어져 그토록 좋아하던 라면도 잘 먹지 못하는데 피자는 아직 소화하기에 큰 부담이 없다. 잘 숙성된 도우로 만든 피자는 밥 못지않게 소화가 잘된다.




피자 헤는 밤

20년쯤 전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자동차로 미국 횡단 여행을 한 적이 있다. 미국이 그렇게 넓은 줄 모르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운전을 시작해 야밤에 로키산맥을 넘다가 식겁하고는 덴버에서 포기하고 말았지만. 그때 미국 피잣집들에서 끼니를 해결할 때가 많았는데 세 가지가 인상적이었다. 하나는 피자가 과연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컸다는 점, 둘은 우리 입맛에 너무 짰다는 점, 셋은 미국 사람들이 피자에 콜라가 아닌 맥주를 곁들여 먹고 있던 점이다. 지금이야 피자에 맥주를 곁들여 먹는 ‘피맥’이 널리 퍼졌지만 그때 한국에서는, 마치 라면 옆의 김치처럼, 피자는 무조건 콜라와 먹는 것으로 인식돼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피자를 맥주와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가 친구들한테 무시당하거나 핀잔을 듣거나 했다. 지금은 그 친구들도 피자 먹으면서 죄다 맥주를 마시더라. 하긴 뭘 먹든 술을 마시니까 처음부터 피자와 맥주의 궁합 문제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피자’라는 단어가 처음 기록에 등장한 것은 서기 997년경 작성된 비잔틴 제국에 관한 라틴어 문헌이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나폴리 인근에 있는 ‘가에타’라는 항구도시에서는 재산을 일정 정도 소유한 사람은 성탄절과 부활절마다 그 지역을 관할하는 추기경에게 피자를 12개씩 가져다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이후 ‘피자’는 중남부 이탈리아로 퍼져나갔다. 

16세기 나폴리에서는 피자가 길거리에서 가난한 사람이 먹는 대표적인 음식이었다. 그때 피자 토핑으로는 토마토가 주로 올랐다. 토마토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으로 유입됐는데 유럽 사람들은 처음에 토마토에 독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좀처럼 먹지 않았다. 그래서 가난한 나폴리 사람들이 값싼 토마토를 피자에 올려 먹기 시작한 것이다. 피자는 곧 유명해졌다. 그때도 이미 나폴리 빈민촌에 관광 온 사람들은 지역 특산물을 맛보듯 피자를 먹었다. 기록에 따르면 1800년대 초 나폴리에 피자 전문점이 50여 개 생겨났다고 한다.


‘진정한 피자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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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르게리타 피자의 유래도 재미있다. 1889년 이탈리아 사보이가의 마르게리타 여왕이 나폴리를 방문했을 때 유명한 피자전문점 주인이 세 종류의 피자를 준비했다. 여왕은 그중에서 토마토의 빨간색, 모차렐라의 흰색, 바질의 녹색으로 이탈리아 국기를 표현한 피자를 가장 좋아했고, 이것이 오늘날 마르게리타 피자로 전해지게 됐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밥을 직사각형으로 평평하게 편 다음 한가운데에 빨간 당근채와 파란 시금치를 올리고 네 귀퉁이에 검정 나물을 세 줄씩 배치해서 ‘대한제국황제 비빔밥’을 출시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1984년에는 ‘진정한 나폴리 피자 협회’(True Neapolitan Pizza Association)라는 조직도 생겨났다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진정한 충무김밥협회’나 ‘진짜 의정부부대찌개협회’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이 협회는 진정한 나폴리 피자의 구체적 조건을 확립했다. 예컨대 피자를 반드시 돔형 화덕에서 나무 장작으로 구워야 한다거나, 도우를 돌릴 때 기계나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손을 사용해야 한다거나, 피자 직경이 35㎝를 넘으면 안 된다거나, 피자 한가운데 두께가 3분의 1㎝보다 두꺼우면 안 된다는 것 등이다. 

판결문을 피자에 비유하면 대법원은 ‘진정한 판결문협회’라고 할 수 있다. 판결의 형식, 내용, 논리, 근거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세세한 기준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그에 맞지 않는 판결은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파기해 버린다. 

나폴리 피자는 도우가 쫄깃하고 바깥 부분인 크러스트에 갈색 그러데이션을 넣는 게 특징이다. 빵이 비스킷처럼 바삭하지 않고 카스텔라처럼 푹신하지도 않다. 초밥에서 밥알 틈 사이에 존재하는 공기가 초밥 맛을 좌우하듯 효모를 넣은 반죽의 숙성 과정에서 발생한 공기층이 글루텐을 만나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에 따라 도우 질감과 색깔, 맛이 좌우된다. 

나폴리 피자는 장작불로 화덕에서 굽기 때문에 요리사가 불을 다루는 능력이 중요하다. 잘못하면 속이 덜 익거나 겉이 타버린다. 잘 익히려면 도우가 불에 얼마나 민감한지, 장작이 얼마나 말랐는지까지 고려해야 한다. 

19세기 이탈리아 이민자가 미국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피자는 세계적인 음식으로 전파됐다. 일하느라 늘 바쁜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선 채로 빨리 먹고 다시 일하러 가기 편한 피자를 애용했다. 이탈리아 이민자 중에서 시칠리아 출신은 주로 시카고로 가고, 나폴리 출신은 주로 뉴욕으로 갔다. 시카고 피자는 깊이가 있는 그릇에 굽기 때문에 “딥 디시 피자”라고도 한다. 도우 깊이가 3cm나 된다. 크러스트 바깥은 바삭하지만 도우는 침대처럼 푹신하다. 도우 위는 두툼하고 육향이 그득한 소시지와 끈적끈적한 치즈가 지배한다. 채소가 설 자리는 없다. 모차렐라, 체다 등 도우에 올라가는 치즈 양이 나폴리 피자보다 많다. 

반면 뉴욕식 피자는 평평하고 크고 넓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피자 도우도 비스킷처럼 바삭하면서 탄탄하다. 바쁜 이탈리아 일꾼이 선 채로 들고 먹어도 내용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도우가 탄탄하게 받쳐준다. 정통 뉴욕 피자는 소시지, 치즈 외에 토핑 가짓수가 많지 않다. 

이탈리아 피자의 전파 경로는 이탈리아 마피아의 진출 경로와 비슷하다. 이탈리아 마피아도 시카고와 뉴욕으로 진출했다. 영화 ‘대부’나 ‘좋은 친구들’, 미국 드라마인 ‘소프라노스’ 등 이탈리아 마피아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피자만큼 대중적 인기를 누린다. 우리나라에서도 조폭 영화 비중이 높다. 내 경우에는 폭력이 난무한 영화를 보면 저것은 무슨 죄, 징역 몇 년 정도 되겠군 하는 생각이 자꾸만 스쳐가서 관람에 방해가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즐기는 편이다. 판사가 법정에서 사건 관련자의 말을 듣는 것이 재미있지 않은 이유는 판단을 내리고 판결문을 써야 하는 책임과 부담을 진 채로 듣기 때문이다(내가 ‘혼밥판사’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먹으면 맛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 영화를 볼 때는 간만에 그런 최종 판단 부담 없이 사건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즐기는 것 같다. 

마피아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자세히 보면 마피아가 타인과 관계를 맺고 활동하는 방식이 정치계, 산업계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후자는 교양과 합법을 가장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마피아는 모든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더 담백해 보인다.


폭력의 추억

마피아 영화에서는 현실에서 좀처럼 구현할 수 없는 폭력의 향연을 볼 수 있다. 인간은 본성 깊은 곳에 폭력적 성향을 탑재하고 있다. 평소에는 평화롭게 어슬렁거릴 수 있지만 결정적인 이익을 놓고 경쟁해야 할 때는 자기보다 힘이 약한 자를 폭력으로 굴복시키고 지배하고자 한다. 다만 법과 교양과 문화와 타인의 시선의 힘으로 폭력성을 제어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제어장치가 약해지거나 자기 내면의 힘이 빠질 때는 어김없이 폭력적 본성이 치솟아 오른다. 

요즘 학교에는 ‘일진’들이 있다지만 내가 지방 소도시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는 ‘조직’이라고 불리는 애들이 있었다. 어른 조직폭력배 똘마니의 똘마니 정도 될 것이다. 그래도 동년배에게는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그 아이들은 틈만 나면 담배를 피우고 침을 찍찍 뱉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이상하게도 어른 골프복을 입고 다녔다. 그것도 마치 소변기 앞에 선 것처럼 벨트를 골반 아래로 축 늘어뜨린 채로. 등하교 때는 지금 피자 배달용으로 많이 쓰는 오토바이를 마치 할리데이비슨이라도 되는 것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멋을 부리면서 떼를 지어 타고서 폭주족 흉내를 냈다. 위세를 부리면서 다른 아이를 함부로 괴롭히거나 돈을 빼앗았다. 그들을 제압할 힘을 가질 수 없었기에 모른 척 방관해야 하는 게 불편하고 화가 나고 자존감이 상했다. 

사법연수원 2년차 때 고향 검찰청 지청에서 검찰 시보를 한 적이 있다. 거기서 지방 조직폭력배의 계보도를 봤다. 두목, 부두목, 행동대장 등의 이름과 사진이 있었다. 서류를 보면 대단한 조직으로 보였지만 실상은 허술했다. 가령 주 활동 구역이 ‘OO 분식점’ 일대였다. 검찰청에 파견된 형사와 함께 그곳을 걸어가다가 깍두기 머리를 하고 사채업자처럼 두꺼운 금목걸이를 걸고 있는 뚱뚱한 사내 둘이서 중·고등학생 서너 명을 겁주면서 돈을 빼앗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나는 옆에 있는 형사를 믿고 그들 앞에 서서 “그런 거 하지 마세요”라고 하고 학생들을 보냈다. 금목걸이들이 온 얼굴에 황당함을 머금고 서로 마주 보다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거칠게 물었다. “니 뭔데?” 옆에 있던 형사가 “나쁜 놈들 잡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금목걸이가 다시 물었다. “선생님?”


인간 본성의 심연

이런 식으로 말하면 엉성하기 이를 데 없는, 심지어 귀여운 시골 불량배 같겠지만 실제로는 위험한 아이도 적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아이 중 한 명이 패싸움을 하다가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기도 했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우리 반 아이가 패싸움을 하다가 둔기를 머리에 잘못 맞아 죽은 적도 있었다. 폭력이 흔했다. 교사들부터 심한 폭력을 휘둘렀다. 따귀를 때리거나 발길질을 하는 것은 예사였다. 집에서도 부모에게 맞는 아이가 많았다. 

요즘에는 그에 비하면 작은 폭력도 학교폭력위원회에서 다룬다고 한다. 그러면 폭력성이 줄어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최근 언론에서 보는 아이들의 집단 폭력은 옛날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조직’들이 하던 것보다 훨씬 잔인하다. 무섭다. 여기서 무섭다는 것은 그 행위의 폭력성을 넘어 인간 자체가 무섭다는 것이다. 그러한 잔인함이 같은 인간이라는 이유로 내 본성의 심연에도 있을지 몰라서 두렵다. 

그것은 실은 재판할 때마다 드는 심정이기도 하다. 내가 피고인과 같은 환경에서 자라 피고인과 같은 힘을 갖고 피고인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나는 저렇게 하지 않았을까. 어릴 때, 젊을 때는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 같았는데 점점 더 자신이 없다.


‘별 헤는 밤’과 피자


정재민 | 혼밥을 즐기던 전직 판사이자 현 행정부 공무원. ‘사는 듯 사는 삶’에 관심 많은 작가. 쓴 책으로는 에세이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소설 ‘보헤미안랩소디’(제10회 세계문학상 대상작) 등이 있다.




신동아 202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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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Opinion Lead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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