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호

사바나

소개팅은 가라! 데이팅 앱 찾는 2030

만나고 헤어지는 일도 피곤하다

  • 장민지 웹 평론가·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

    mingi.jang@gmail.com

    입력2020-03-0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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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애, 구매 않지만 당첨 바라는 ‘복권’

    • 사이버 공간에서의 ‘유사연애’ 증후군

    • 2030에 선풍적 인기 틴더, 직접 써보니

    • 소개로 만나 나를 전시? 고통스럽기까지 해!

    ‘사바나’는 ‘회를 꾸는 , 청년’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뉴스랩(News-Lab)으로, 청년의 삶을 주어(主語)로 삼은 이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입니다. <편집자 주>

    [GettyImage]

    [GettyImage]

    사람들은 말한다. 살면서 그 나이대에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20대에 접어들었을 무렵, 인생 선배들은 ‘많은 사람을 만나보라’고 말했다. 만남의 범주는 다양했겠지만, 아마 ‘연애’를 꼭 집어 말한 것이었으리라. 그들은 하나같이 ‘지금에야 만날 경로도 많고 기회도 많지만, 나중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했다. 당시 나에게 그 말은 전혀 와닿지 않았다. 나이 많은 선배 중 하나는 “나중엔 귀찮아서 연애도 못 한다니까”라고도 했다. 설마 연애가 귀찮을 때가 올까 싶었다. 20대에 ‘데이트’는 당연한 일상과 같았기 때문이다.

    귀찮지만 ‘올해는 꼬옥’…마치 ‘복권’

    3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 틈날 때마다 선배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럴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아 연애? 아, 새사람? 후, 귀찮아. 무슨 집어치워.” 되뇌면서 꼭 새해 다짐 첫머리는 “올해는 꼬옥 연애해야지”부터 끄적거린다. 연애는 마치 구매하진 않지만 당첨되길 바라는 ‘복권’ 같은 것이 돼버린 거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20~30대를 만나면 안부처럼 묻는 말은 ‘애인 생겼어?’(남자친구/여자친구 등등)다. 드라마에서도, 영화에서도, 심지어 예능에서도 ‘러브라인’은 필수다. 그러나 막상 주위를 둘러보면 연애하지 않는 사람이 꽤나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즘 ‘나 사람 좀 소개시켜 줘’란 말을 하기도, 심지어 ‘소개받을래?’란 말을 하기도 어렵다. 

    나이를 먹으면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그건 오래전부터 인연을 쌓아온 사람들과도 마찬가지다. 친구 사이에도 약속 정하기가 어려운 마당에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어렵다. 무엇보다 직장인의 삶은 일종의 루틴(routine)을 형성하는 일과 같다. 쉽게 약속을 잡을 만큼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여유가 줄어든다. 늘 직장의 범주에서 사람을 만난다. 시간이 갈수록 소개받기도, 소개하기도 어렵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의 폭도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게 당연지사. 그러니 현실에서 ‘썸’을 탈 만한 사람을 발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모두 다 연애’하는 사회에서, 연애를 쉬고 있거나,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자신만 연애하기 힘든 사람이 된 것처럼 박탈감에 시달린다. 그 와중에 TV에서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룬다. ‘연애의 참견’ ‘하트 시그널’ ‘선다방’ ‘연애의 맛’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이 남의 연애에만 열을 올리는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연애는 공기처럼 ‘필수’인 듯 보일 수밖에. TV 속 연애는 마치 미디어에 의해 매개된 ‘판타지’ 같은 것이다.

    ‘유사연애’ 증후군

    2013년 개봉한 영화 ‘her’는 인공지능(AI)에 사랑을 느끼는 주인공을 다룬다. [Annapurna Pictures 제공]

    2013년 개봉한 영화 ‘her’는 인공지능(AI)에 사랑을 느끼는 주인공을 다룬다. [Annapurna Pictures 제공]

    미디어의 발달은 일상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초연결사회를 잉태했다. 일상은 하나의 데이터가 됐다. 우리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텀블러, 유튜브 같은 플랫폼에 일상의 개인 정보를 많이 저장한다. 

    타임라인은 매우 신기해서, 가상(이제는 가상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공간에 포스팅된 게시글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상대와 굉장한 친밀감을 느낀다. 어느새 사람들은 가상공간에서 느끼는 감각을 현실 차원으로 옮겨오기 시작한다. 2013년 개봉한 영화 ‘her’에서는 대필 작가 ‘테오도르’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AI) ‘사만다’에게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이 영화는 미디어에 의해 인간의 감정과 감각이 변화했음을 세밀한 연출로 보여줬다. 

    이런 감정을 우리는 ‘유사연애’라고 한다. 실제 존재하는 연애감정은 아니지만 사이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마치 ‘연애’와 유사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처럼 진짜(real) ‘intimacy’(친밀감)는 아니지만 마치 살갗으로 느껴지는 듯한 ‘친밀감’을 ‘fake intimacy’라 칭한다. 

    ‘아, 누가 이런 걸 착각하겠어?’ 싶겠지만 생각보다 자주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이 감각을 경험한다. 가령 우리는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연예인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그 연예인은 실제 우리와 전혀 관계없을뿐더러, 우리 존재를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게 그에게 인사를 건넨다. 다른 일반인을 만났을 때는 존재하지 않을 ‘친밀감’이다. 이것이 바로 미디어가 가진 가상적 매개의 힘이다. 

    논의 전개를 위해 ‘랜선 연애’(인터넷을 통한 연애)와는 구별되는 ‘현실 연애’ 이야기를 잠시 경유할 참이다. 2030세대는 부담스러운 관계를 싫어한다. 연애도 결혼도 귀찮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소개팅조차 부담스럽다고 한다. 소개를 받는 입장이면, 상대에게 비치는 내 모습뿐만 아니라 주선자와의 관계에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소개팅 주선자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주선자는 소개팅 상대를 이어주고, 그 만남에 일정 부분 책임을 지는 의무를 갖게 된다. 그러나 나도 나를 모르는데, 다른 사람을 어찌 알 것이며, 그 소개로 인한 책임까지 굳이 내가 나서서 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2030세대는 소개팅을 하기도, 주선하기도 껄끄러운 상황에 도달하는 것이다. 

    30대 직장인인 나도 만나는 사람의 수가 손을 꼽는다. 소개해 줄 사람은 더욱 적고, ‘친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전부 안다고도 말할 수 없다. 특히 연애는 사적인 영역이다. 소개해 줄 사람이 사적 영역에서 어떤 행동을 보일지 알기 쉽지 않다. 그런 모든 것이 부담스럽다. 

    이에 따라 2030세대 사이에서 이성을 만나고 싶어 주변에 도움을 청하면 늘 돌아오는 대답은 ‘주위에 사람이 없어’다. ‘울며 겨자 먹기’로 만날 수 있는 저변(pool)을 넓히는 데 미디어를 이용하게 된다. 사이버 공간에서 ‘친밀감’을 전달해 주는 데이팅 앱이다.

    틴더에서 직접 ‘매칭’해 보니

    미국 데이팅 앱 ‘틴더’는 2010~2019년 전 세계 스마트폰 소비자 사이에서 지출액이 두 번째로 높은 앱이었다. [tinder app 제공]

    미국 데이팅 앱 ‘틴더’는 2010~2019년 전 세계 스마트폰 소비자 사이에서 지출액이 두 번째로 높은 앱이었다. [tinder app 제공]

    지난해 12월 26일 모바일 데이터 분석 플랫폼 업체 앱애니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2019년 전 세계 스마트폰 이용자 사이에서 소비자 지출액이 가장 높은 앱 1위는 넷플릭스였다. 2위는 2012년 서비스를 개시한 미국의 데이팅 앱 틴더(Tinder)였다. 범위를 2019년 상반기로 좁히면 틴더는 게임이 아닌 앱 중 넷플릭스를 제치고 전 세계 소비자 지출 1위를 차지했다. 

    틴더의 한국 버전 앱 소개말은 ‘친구를 발견하는 새로운 방법’이다. 사용 방식은 간단하다. 상대의 사진과 간단한 소개 문구를 읽고 마음에 들면 오른쪽,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왼쪽으로 스와이프(휴대전화 화면을 한쪽으로 밀어내는 행위)를 한다. 양쪽 모두가 마음에 든다고 표시하면 매칭이 성사되는 직관적 앱이다.
     
    데이팅 앱이 그전까지 없었던 것도 아니건만, 틴더가 유독 급속도로 인기를 끌게 된 요인은 다름 아닌 이 ‘직관’에 있다. 틴더 앱을 내려받아 열면 자신의 성별을 지정할 수 있고(틴더는 이성애 기반이다), 나이를 입력하면 자신의 주요 관심사를 다섯 개 정할 수 있다. 프로필에는 관심사와 함께 인사말이 뜬다. 출신 학교나 재직 중인 회사를 프로필에 지정할 수도 있다. 이 데이팅 앱은 ‘실질적인 만남’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거주하거나 주로 활동하는 지역이 프로필에 표시된다. 사전작업을 하고 나면 드디어 매칭이 시작된다. 

    취재를 위해 스마트폰에 틴더를 설치하고 접속했다. 프로필 사진은 각양각색이었다. 대부분 얼굴을 공개했다. 출신 학교나 다니는 회사, 자동차, 반려견 등을 보여주는 이용자가 많았다. 가끔 FWB(Friends with benefit·연인은 아니나 필요에 의해 가끔 성관계를 맺는 친구)라는 문구도 눈에 띄었다. 술친구를 찾거나 이야기를 나눌 상대를 찾는 이도 많았다. 연령대는 20, 30대가 가장 많았고 40대 또한 종종 눈에 띄었다. 프로필을 보고 마음에 든 사람에게 ‘좋아요’를 눌렀을 때, 상대방도 나에게 ‘좋아요’를 누르면 매칭이 성사된다. 그러면 채팅이 시작된다. “안녕하세요?” “어디 사시죠?” “뭐 해요?” 이 어색한 첫마디가 부담스럽지 않은 건, 어차피 서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만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성과 매칭됐을 때 소개팅과는 다른 감각적 희열을 경험했다. 내가 ‘좋아요’를 택한 사람이 나를 ‘좋아요’ 하고 반응해 줬을 때 이성과 한 단계를 넘었다는 쾌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틴더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의 군상이 있다. 그 가운데서 ‘좋아요’와 ‘싫어요’로 단순하게 이루어지는 매칭, 그 우연 속에서 낯선 타인과의 채팅. 말하자면 2030세대는 그 어떤 앞 세대보다 직관적으로 이성을 접하고 있다. 

    이 간단한 앱이 국적을 불문하고 가장 많은 돈을 지출한 앱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관심을 표현하고, 채팅은 하지만, 서로의 딥(deep)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는 것. 부담스러워질 때 언제든 간단하게 관계를 떠날 수 있는 것. 신체나 정신적 위험을 초래하지 않아도 되는 것. 진지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 이 얼마나 간단한 공식인가. 내가 원할 땐 만나서 현실 연애를, 굳이 부담스러운 관계를 원치 않을 땐 랜선 연애를 지향할 수 있는 관계. 그것이 2030세대가 지금 원하는 연애의 방정식이다.

    만났다 헤어지면서 받는 피로도 싫다!

    가끔 사람은 혼자 있고 싶을 때도, 가볍게 누군가를 만나고 싶을 때도, 진지하고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을 때도 있기 마련이다. 연애가 필수적이지 않은 사람도 있다. 사람 얼굴만큼이나 연애의 얼굴 또한 다양하다. 그러나 사회는 ‘연애를 하지 않거나’ ‘가볍게 연애하는’ 사람들을 어딘가 정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몰아세운다. 

    일정한 연령대에 이르러 연애를 시작하면 사람들은 다들 ‘결혼’을 연애의 종착지로 생각한다. 2030세대 사이에는 연애를 하면서도 결혼과 연애를 무관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주변에는 으레 ‘결혼을 하겠거니’ 생각하는 지인이 많다. 그러니 연애는 세상 어떤 관계보다 더 어려운 관계다. 

    자기 한 몸 영위하기에도 바쁜 일상이다. 여유가 있더라도 타인을 믿는 게 쉽지 않은 세상이기도 하다. 만났다가 헤어지면서 받는 육체적, 정신적 피로도를 굳이 감수하지 않겠다는 청년이 늘고 있다. 옛 청년들처럼 자연스럽게 소개를 받으면 된다고? 소개팅 자리에서 나 자신을 전시하는 과정은 어떨 땐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2030세대가 소개팅이 아닌 데이팅 앱에서 친밀감을 갈구하는 까닭이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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