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호

봉달호 편의점 칼럼

문재인이 만든 신천지… 그곳에 ‘국가’는 없다

  • 봉달호 편의점주

    runtokorea@gmail.com

    입력2020-03-2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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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이 정치에 환장하면 벌어지는 일

    • 이게 정말 우리나라 이야기 맞나

    • 과연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있는가

    • 국민은 능력을 넘어 ‘자격’을 묻는 중

    • 우리는 ‘그들’을 심판할 것이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매출이 뚝 떨어졌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마스크와 위생용품, 즉석식품, 맥주와 안주 매출이 증가하며 반갑잖은 호재로 작용하는가 싶더니 확진자가 폭증하며 편의점 매출은 완전히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역과 상권을 가리지 않는다. 어디든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 자체가 확연히 줄어든 것이 시야에 들어온다. 편의점은 날씨와 계절의 영향을 받지만, 외부 요인에 따른 매출 변동 폭이 그리 크지 않은 업종이다. 인근에 경쟁점이 생겨났다든지, 태풍 등 자연재해 상황을 제외하고는 그렇다. 지금은 분명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재난’을 거쳐 가는 중이다. 

    계산대에 앉아 뉴스를 검색하며 손님을 기다리다 다른 편의점 상황은 어떤가 싶어 친분 있는 점주들에게 카톡이나 전화를 돌려본다. 영등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는 매출이 그야말로 반 토막이 났다고 길게 한숨을 내쉰다. 아파트형 공장 1층에서 편의점을 하는 다른 점주는 그렇잖아도 입주 업체가 직원을 줄이거나 해외로 공장을 옮겨 매출이 많이 줄었다고 푸념이었는데 이번에 ‘매출 절벽’을 맞았다. 확진자 동선이 확인된 지역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어느 점주는 “민방위 훈련 공습경보가 울렸을 때 거리 풍경과 똑같다”고 현재 상황을 표현했다. “태풍 매미가 왔을 때도 이 정도 매출은 아니었다”며 “20년간 편의점을 운영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도 했다.

    재난, 전쟁, 국난

    편의점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업종이다. 미용실을 하는 지인에게 물으니 손님이 한 명도 없이 지나간 날도 있다고 비명을 지른다. 단골손님들에게 안부를 묻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그 나름의 고객 관리를 하는 것이 요즘 일과라고 했다. 이번 기회에 아예 보름 정도 문을 닫는 미용실도 등장하고 있지만, 그것도 ‘있는’ 사람들 이야기다. 한 푼이 아쉬운 영세 자영업자 처지에서는 오늘도 손님이 한 명도 없을 줄 알면서,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기대감에 점포 문을 열고 닫는다. 썰렁한 점포를 하루 종일 홀로 지키다 돌아가는 참담한 그 심정은 겪어본 사람만이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쌈밥집을 운영하는 친구는 “어제는 손님을 다섯 테이블 받았다”고 말했다. 평소 그 식당은 10개 남짓 테이블을 2~3회전 정도는 하는 식당이었다. 매출이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거의 망한 수준이다. 신선한 육류와 채소류를 취급하는 업종은 이런 경우 폐기량이 늘어나 한숨이 늘고, 선도(鮮度)와 수급을 유지하기 어려워 식당 운영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 

    코로나19가 일상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고 있다. 편의점 일을 마치고 저녁마다 찾아가던 동네 스포츠센터에는 휴관을 알리는 현수막이 입구를 봉쇄하듯 에워싸고 있다. 휴관 종료 시점은 물론 표기돼 있지 않다. 주말마다 달리기 대회에 나가는 것이 하나의 낙이었는데 전국 모든 대회가 속속 취소되고 있다. 올해 플래티넘 레벨로 올라가며 역대 최다 규모의 러너가 참가할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동아마라톤도 결국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동아일보가 정간되고 광복 직후 혼란을 겪은 몇 년을 제외하곤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열리던 대회가 평화 시에 취소되다니, 9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이것은 분명 ‘전시(戰時)’에 가까운 상황이다. 지금 우리는 전쟁을 겪고 있다. 

    처음에는 하루 몇 명이다가 어느 순간 몇 십 명, 이제는 자고 일어나면 몇 백 명씩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리며 어느덧 얼떨떨, 무감각해질 정도다. 아침마다 신문을 펼쳐보기 두렵다. 병실에 들어가지 못해 집에서 하릴없이 대기하던 확진자가 사망했다는 대구·경북의 참혹한 상황을 듣다 보면 ‘이게 정말 우리나라 이야기 맞나?’ 하면서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현기증마저 느낀다. 오늘 저녁에는 뭘 하나, 이번 주말에는 뭘 하나, 학교에 안 가는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주나 걱정하는 고민 따위는 사뭇 부끄럽게 여겨진다. 이것은 분명 ‘국난(國難)’이다. 이웃 나라의 한심한 질병쯤으로 여기던 바이러스는 어느새 우리의 재난이 됐고, 재난은 전시 상황만큼 심각해졌으며, 온 나라와 국민이 함께 겪는 국난으로 전화됐다. 무엇이 상황을 이렇게까지 만들었을까.



    ‘중국 차단’은 쉬운 일일까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느낀 점은 ‘문재인 정부는 과연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있는가?’ 하는 문제다. 능력은 보통 위기에 발휘된다. 우리나라와 같은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야당은 평소에도 별로 할 일이 없지만 비상시에는 더욱 그렇다. 일반적인 시국에는 ‘입’으로 비판과 견제의 역할이라도 한다지만, 비상시에는 바통을 완전히 넘겨주고 잘하는지 못하는지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 집권 세력의 능력은 비로소 그 때에 드러난다. 평소에는 야당이 자꾸 딴죽을 건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만 비상시에는 그런 얄팍한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법이다. 

    초기 대응을 보자. 정부가 그렇게 잘못한 것은 없어 보인다. 정해진 법규와 매뉴얼대로 움직였고, 허둥대거나 오락가락하는 아마추어적인 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부가 오히려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던 과거 비상시의 오류도 범하지 않았다. 질병의 심각성을 알리고 다중 운집 시설을 조기에 폐쇄하는 등 초기 대응은 대체로 잘했다고 보는 편이 오히려 타당할 것이다. 

    혹자는 초기 대응에 완전히 실패했다고, 중국인 입국자를 완전히 차단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일까. 이제 와 결과론적으로 돌이켜 보니 중국인 입국자들을 조기에 차단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하루 10~20명 정도 확진자가 발생하던 당시 상황에서 중국과의 문을 완전히 걸어 잠그는 그런 과격한 (혹은 지나치게 성급한) 조치를 어느 정부든 선뜻 취할 수 있었을까. 중국이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니 하는 문제를 모두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물론 현재 집권 세력이 유독 중국과의 관계에서 저자세를 보여온 것은 사실이고, 최근에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한국 방문을 기어이 성사시키려다 보니 더욱 스텝이 꼬인 측면이 있지만, 그런 배경이 전혀 없더라도 ‘중국 차단’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사태가 심각해지고 나서 “왜 이제라도 중국인을 차단하지 않느냐” 말하는 견해도 있지만 그것 역시 쉬운 선택일까. 중국은 이미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고 우리가 오히려 심각해지는 상황인데, 뒷북을 치면서 이제야 문제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행태를 취하는 것은 정치·외교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고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아마추어적인 선택 아닐까. 이왕 이렇게 된 것, 일관성 있게 나아가는 편이 낫다는 판단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문제는 ‘대확산’의 시기에 벌어졌다. 어떤 정부인들 사태가 이렇게 심각한 지경에 이를 것이라 예측할 수 있었을까. 코로나19가 이렇게 확산성이 무시무시한 존재인 줄, 학계에서도 몰랐으니 정부에서 그런 것까지 미리 파악하거나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최악의 최악의 최악’ 상황까지 예상하면서 준비하는 것이 위기관리 능력이라고들 하지만 우리 정부에 그런 것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수다. 어쩌면 현재 정부로서는, 집권 세력으로서는, 그리고 국민으로서도, ‘운이 나빴다’ 말할 수 있다. 가뭄이나 역병은 나랏님도 어찌하지 못하는 일이다. 하지만 한번 꼬이기 시작한 스텝이 여러 가지 연쇄 효과를 낳으면서 이 정부의 무능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머잖아 종식될 것’이란 대실수

    3월 2일 경기 가평군 신천지 평화의 궁전에서 코로나19 사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만희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총회장. [동아DB]

    3월 2일 경기 가평군 신천지 평화의 궁전에서 코로나19 사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만희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총회장. [동아DB]

    중국인 입국자를 차단하지 않은 것은 그렇다고 볼 수 있다지만 그러면서 중국에 대량의 마스크를 보내준 것이 지금 ‘마스크 민란(民亂)’의 원인이 되고 있다. 코로나19만 아니라면 가가호호 피켓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올 판이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치달을 줄 모르고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 하는 안이한 생각에 그런 지원을 했던 것 같은데, 불행한 이웃을 도울 때는 기분이 좋고 어깨가 으쓱했겠지만 우리가 이렇게 될 줄 알았겠나. 그것이 바로 이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이다.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던 때의 사고방식과 똑같다.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라는. 

    결국 이 정부의 잘못은 세상일을 너무 쉽게 보고 지나치게 낙관하는 데 있다.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것이 처참한 실패로 드러나자 이 정부 사람들이 하는 말이란 “우린들 이렇게 될 줄 알았겠어?” 정도다. 자영업의 몰락도 이미 예견돼 있던 일이라며, 인터넷 산업의 성장과 소비 트렌드의 변화, 우리나라 산업 구조의 문제점 등을 운운한다. 그러니까 “자영업자는 원래 그렇게 힘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나. 최악의 최악까지는 상정하지 못하더라도, 최악은 피하려고 만드는 것이 정책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최악이 발생할 줄 알면서도 국민을 그곳으로 몰아넣은 꼴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 한다는 말이, 국민과 자영업자에게는 한마디 사과도 없이, 아들딸 증명서나 위조하던 위선자 장관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는, 억장이 무너지고 분노가 치솟게 만드는, 거의 국민을 조롱하는 듯한 발언뿐이다. 

    마스크가 이렇게 바닥날 줄 누가 알았겠나. 코로나19가 이렇게 기승을 부릴 줄 누가 알았겠나. 최악의 최악이 벌어진 셈이지만, 그 최악을 빚게 만든 것에 대해서는 일말의 반성의 빛도 보이지 않는다. 고의가 아닌 실수라 하더라도 잘못은 잘못인데, 이 정부는 절대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책임을 특정한 종교 집단에 돌리려 애를 쓴다. 말이 나왔으니, 필자 개인적으로는 20년 전에 그 종교 집단에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어 이번에 이름을 듣고 ‘결국 그들이 사고를 쳤구나’ 싶었는데, 그것은 그것대로 마음에 묻어두는 한편으로, 이번 사태가 오롯이 그들의 책임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의문을 제기한다. 세월호의 책임을 청해진 해운과 구원파의 탓이라고 몰아나가던 5년 전 정부의 그것과 판박이이지 않은가. 

    스텝은 “머잖아 사태가 종식될 것”이라 말한 대통령의 발언에서 일단 한번 크게 꼬였다. 바로 그 직후 신천지를 매개로 확진자가 급격히 쏟아져 나왔으니 대통령의 발언이 꽤 머쓱하고 당황스러운 실언이 돼버렸다. 왜 성급하게 그런 발언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통령과 집권 세력에 미래를 투시하는 선구안까지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니, 당시로서는 누구든 이 위기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낙관을 갖고 있었고, 대통령으로서도 그러한 의지를 대변하고 천명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지나친 우려는 금물”이라고,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자”고, 정부와 어용 매체들도 한결같이 입을 모으던 때였다. 거리에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때였다. 

    신천지의 집회는 딱 그러한 때 이뤄졌다. 물론 그들의 밀집형 집회, 비밀스러운 포교와 폐쇄적인 조직 운영 방식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측면이 있지만, 당시의 일반적인 상황과 조건으로 돌아보건대 신천지가 아니라 어떤 모임과 단체가 됐든 확산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확산의 ‘조건’은 대체 누가 마련한 것일까. 이것을 유독 신천지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은 과연 합리적인 추론일까. 사태가 꼬이면 공적(公敵)을 찾아 분노의 화살을 외부로 돌리는 수법은 어느 정권이든 똑같다. 이 정부의 집권 세력은 내내 그런 행태를 비판하며 성장한 세력이니 작금의 행태가 더욱 메스꺼운 것이다. 

    중앙정부가 보이지 않는다. 대구, 경북에서는 수천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병상이 없다고 아우성이고, 집에서 죽어가고, 시장은 다른 시도에 환자를 좀 받아달라 애걸하는데, 정작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중앙정부는 ‘지방의 일’이라는 듯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다. 이것이 어디 ‘경기도 받아주세요’ ‘서울 받아주세요’ ‘하나 받고 두 장 더’ 하는 식으로 화투판 패 넘기듯 주고받을 일인가. 사실 지금 이런 농담하고 있을 때도 아닌데, 목불인견(目不忍見) ― 차마 눈뜨고 바라볼 수조차 없는 무정부 상태를 경험하는 중이다.

    문재인이 만든 신천지

    문재인 대통령이 2월 25일 대구시청에서 열린 ‘코로나 19 대구지역 특별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왼쪽). 시민들이 3월 5일 서울 강동구 한 약국에서 공적 마스크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 서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월 25일 대구시청에서 열린 ‘코로나 19 대구지역 특별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왼쪽). 시민들이 3월 5일 서울 강동구 한 약국에서 공적 마스크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 서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뉴시스]

    이런 시국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남 장관 지키기’에 열을 올리며 사생팬 역할을 도맡던 소설가는 이번엔 “대구 경북이 투표를 잘했어야 한다”는, 국민의 가슴에 가히 인두질을 해대는 SNS 놀음이나 하고 있고, 언감생심 차기 대권을 노린다는 시장과 도지사는 이 기회에 어떻게든 한번 튀어볼까 안간힘을 쓴다. ‘교주’의 체액을 채취하겠다고 도지사가 직접 나서는 (그걸 왜 도지사가 나서?) 황당한 쇼쇼쇼도 벌어졌다. 혹자의 표현대로 “사람이 정치에 환장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그들의 화장기 없는 얼굴이 바로 이렇다. 

    사태가 장기화되니 비로소 ‘능력’이 보이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매뉴얼에 따르면 되지만 갈수록 매뉴얼에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그럴 때 차츰 숨어 있던 이면이 보이는 것이다. 초기에는 그래도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 같더니 점입가경 아등바등 허둥지둥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드시 보건용 마스크를 착용하라”더니, 갑자기 “천 마스크라도 괜찮다”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말리거나 빨아서 써도 괜찮다” 말하고, 급기야 어떤 교육감은 “마스크는 필요 없다” 말하면서 구설에 오른다. 몇 백만 장을 하루아침에 준비할 수 있을 것처럼 큰소리를 쳤다가 번복하고, 또 번복하고, 일선 공무원들을 탓하고…. 5부제 시행 이전까지 국민들은 하루하루 마스크를 찾아 헤매는 ‘마스크 난민’으로 전락했다. 국격이 무너지고 민격(民格)이 사라졌다. 그깟 마스크 앞에 이토록 자존심이 상하고 부모로서 애간장이 타게 될 줄이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경험하는 중이다. 각자도생 신천지가 돼버렸다. 

    마스크를 사려고 길게 줄을 늘어선 행렬의 한복판에서 국민은 침묵으로 물었다. 문재인 정부는 과연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과연 ‘국가’의 대통령인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계파의 이해를 대변하고 계파의 정서를 추스르는 데에는 직접 얼굴을 내밀고 위로하고 발언하며 그토록 열심이더니, 이러한 시국에는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 국민은 없고, 자기편만 우선이다. 

    대통령이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고 조롱하며 위태롭게 바라보기 시작할 때, 그 정권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지난 정부에서 똑똑히 경험했다. 제발 더 큰 실수나 하지 않길 바라면서 빨리 이 정권이 끝나길 기대하는 마음이 국민의 심중에 자연스레 싹트기 시작할 때, 그 정권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지난 정부에서 여실히 경험했다.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이제 국민은 능력을 넘어 ‘자격’을 묻고 있다. 국민은 투표를 통해 정권에 자격을 부여한다. 4월 15일, 우리는 내가 가진 ‘한 표’로서 겨우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한편으론 안도하고 한편으로 섭섭함을 느끼며 투표장으로 향할 것이다. 한 표 한 표, 우리는 그들을 심판할 것이다. 오만을 심판하고, 무능을 심판하고, 위선을 심판하며, 우리의 무너진 자존심을 일으켜 세울 것이다. 4월 15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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