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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용 前외교차관 “방역보다 시진핑 방한이 더 중요한가"

  • 조규희 객원기자 playingjo@donga.com

조태용 前외교차관 “방역보다 시진핑 방한이 더 중요한가"

  • ● 외교 사안 국내 정치 활용 그만
    ● 文 탈원전, 韓 안보선택지 줄여
    ● 3불 약속해 놓고 中으로부터 받은 게 없어
    ● 중·러 ‘동해’ 침범, 별말 없는 미국
    ● 김정은 목표는 북한 우위 한반도
    ● 美 확장억제 믿을 수 있나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문재인 정부의 중국에 대한 저자세 외교가 도마에 올랐다.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자 한국 정부는 마스크를 비롯한 방역 물품을 지원했다.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자 중국 일부 지역이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했다. 청와대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한국 입국 제한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중국을 두둔하더니 일본이 한국발(發) 입국제한 조치를 발표했을 때는 적반하장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나타냈다. 

박근혜 정부가 주한미군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배치하는 것을 받아들이자 중국은 자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했다며 경제 보복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내리자 이번에는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을 제한하는 등 보복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는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는 극일(克日)을 강조하면서도 중국에는 저자세를 보이고 있다.


외교 사안 국내 정치에 활용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3월 6일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해 일본 정부의 한국인에 대한 입국제한 조치에 유감을 표명하고 “우리도 대응 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3월 6일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해 일본 정부의 한국인에 대한 입국제한 조치에 유감을 표명하고 “우리도 대응 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조태용(64) 전 외교부 제1차관은 문재인 정부의 대외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치적 고려가 외교 정책을 압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38년간 외교·안보 일선에서 활동한 그는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외교부 북미국에서 잔뼈가 굵었으며 북핵 위기관리 경험도 가졌다. 박근혜 정부 4년간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과 호흡을 맞춰 정부 대외 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다. 조 전 차관을 3월 10일 서울 이태원동에서 만났다. 

- 중국과 일본을 대하는 문재인 정부의 자세가 극명하게 나뉩니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그런 모습이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습니다. 일본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볼까 합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일본의 과거사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더욱이 대한민국 국민 중 한국의 이익보다 일본의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친일파는 없는 것입니다. 일본에 대한 정책을 어떻게 펼치느냐를 두고 생각이 다를 뿐입니다.” 

- 문재인 대통령은 극일을 강조합니다. 

“국내 정치적 고려를 너무 앞세우는 게 아닌가 싶어요. 어느 정부나 외교 문제를 대할 때 국내 상황을 고려하지만 이번 정부는 정도가 심합니다. 일본에 대한 강경책을 외교관계의 문제가 아닌 국내 문제로 보는 경향도 있습니다. 2002년까지는 특정 진영이 반미 정서를 앞세워 정치적 파장을 일으켰고 일부 국민도 동감했습니다. 지금은 반미가 더는 효과가 없다 보니 반일에 눈을 떴다는 이야기입니다. 반일은 누구나 다 찬성하니 그것을 명분 삼아 국내 정치 차원에서 많은 일을 하려고 한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2002년 6월 13일 경기 양주군에서 주한미군이 운전하던 미국 육군 장갑차량에 여중생 두 명이 압사당한 사고가 발생했다. 한일 월드컵 여파로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크게 조명받지 못하다 11월 30일 미군 군사법정에서 육군 부사관 2명이 무죄판결을 받으면서 국민적 공분이 일어났다. 

- 한일관계 회복이 가능할까요. 

“어려운 것은 압니다만 국민 여론을 결집해야 합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관련 판결을 그대로 집행하면 양국 관계가 회복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관계 회복에 나서지 않는다면 누가 하겠습니까.”


일본과 이혼소송?

대법원은 2018년 10월 강제징용 관련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소멸되는 청구권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다시 말해 청구권 협정과 관계없이 불법행위 피해자는 일본 기업 등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가 가능해졌다. 

- 정상 간 톱다운(Top Down) 방식의 합의를 말씀하는 것 같은데 현재 상황을 보면 쉽지 않아 보입니다.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 정부가 일본에 제시했다는 이른바 1+1안은 대법원 판결 그대로 집행하는 방안이 아닙니다. 판결대로 집행하면 한일관계를 관리하기 어렵다는 점을 우리 정부가 인정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정상 간 합의가 필요합니다. 이후 정부 간 구체적 해결 방안을 찾는 과정이 뒤따라야겠죠.” 

문재인 정부는 2019년 6월 한일 두 나라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재원을 마련해 위자료를 지급하는 1+1안을 일본 정부에 제시했다. 일본이 거절 의사를 밝혔고 문희상 국회의장은 정부안을 수정해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 그 외 민간 부문의 자발적 기부금으로 재단을 설립해 강제징용 피해자 등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1+1+α’를 제안했다. 피해자 일부도 동의하지 않았고 청와대도 거부 의사를 드러냈다. 

-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다퉈보자는 카드를 들고나왔는데요. 

“양국이 국제 사법절차를 밟는 길로 가서는 안 된다고 봐요. 정부 간 진솔한 협의를 통해 건설적 해결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사법적 해결로 간다면 이혼소송 같은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혼소송이 끝나면 서로 안 보잖아요. 외교는 그런 최악의 결과를 막는 것입니다.” 

- 일본은 코로나19와 관련해 한국발(發) 입국제한 조치도 실행했습니다. 

“전쟁 중에도 상대국과 대화를 시도합니다.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려면 만나야죠. 그런데 우리 정부는 화만 내는 모습입니다. 협상, 외교에서는 할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할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는 친절하게, 일본에는 강하게 대응하는 틀에 박힌 도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해요.”


방역보다 시진핑 방한이 더 중요했나

문재인 대통령이 2월 20일 청와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월 20일 청와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대(對)중국 저자세 외교가 도마에 오릅니다.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중국에 대한 우리 정부의 태도를 두고 논란이 많더군요. 제가 보기에도 시진핑 주석 방한 추진이 그런 태도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듭니다. 코로나19 방역의 중요성과 시급성보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 성사가 우선순위에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현실적으로 중국 내 코로나19 상황이 이제 겨우 진정되는 국면입니다. 시진핑 주석이 자기 나라를 떠나기가 어려운 상황이죠. 애당초 정부가 상반기에 방한을 성사시킨다고 말한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기대할 일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외교부는 3월 3일 ‘2020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면 보고하며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예정대로 상반기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하반기에는 리커창 중국 총리 방한을 추진할 방침이라며 “한중관계의 복원을 넘어 한중 정상 간 양국관계 협력 방향을 설정하고 ‘미래 30년 협력 비전’ 수립을 위한 논의를 개시하겠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코로나19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고 국내에서도 확진자가 폭증하는 시기에 이런 계획을 보고한 것이다.

- 중국을 상대로 할 말을 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예를 들면 일본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갑작스러운 입국제한 조치에 항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대사도 같이 불렀어야죠. 중국도 입국을 제한하고 있으니까요. 지방정부가 하는 일이라서 중앙정부가 모른다는 중국의 답변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고요.”


3불 약속해 놓고 中으로부터 받은 게 없어

- 박근혜 정부는 할 말을 했습니까. 

“아직 먼 과거의 일이 아니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만 한미동맹과 관련해 한국의 입장을 선명히 할 일이 생긴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측 입장을 중국에 밝혔고 베이징이 이해하면서 그에 따른 후속 조치가 이뤄진 적이 있습니다. 한미동맹을 흔들지 않으려고 중국이 불편할 수 있는 우리의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 대중 외교의 실패 사례로 문재인 정부의 ‘3불’이 많이 거론됩니다. 

“어려운 협상이어도 주고받는 게 분명해야 합니다. ‘3불’은 어떻습니까. 우리 정부는 안보, 동맹과 관련한 3가지를 내놓았는데 중국이 내놓은 게 무엇인지 아직도 의문입니다. 처음에는 경제 보복을 철회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됐는지도 의문입니다. 도대체 우리 정부가 받아낸 것은 무엇인가요.” 

외교부는 2017년 10월 31일 ‘한중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결과’를 발표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 측은 미국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협력 등과 관련해 중국 정부의 입장과 우려를 천명했다. 한국 측은 그간 한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밝혀온 관련 입장을 다시 설명했다”고 표현돼 있다. 협의 결과 어디에도 중국의 사과나 구체적인 경제보복 해소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 중국에는 저자세로 외교하면서 일본에는 강경 대응하는 게 외교 전략상 가능한 선택지일까요. 

“절대 가능하지 않습니다. 미·중 간 큰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거기서 우리가 어떤 방향을 취하느냐는 난제 중 난제지만 섣부르게 방향을 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국을 우대하는 것처럼 보이면 일본도 일본이지만 미국 내부에서 부정적 반응이 나옵니다. 우리가 노선을 정할 때는 확실하게 얻을 게 있어야 합니다.” 

- 한미관계는 어떻게 보나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고 한미 양국 간 대화도 유지되고 있으나 착시 현상을 걷어내고 보면 한미 양국의 신뢰가 깊은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중·러 ‘동해’ 침범해도 별말 없는 미국

-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2019년 7월 23일을 떠올리면 됩니다. 중국, 러시아 군용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으로 진입해 동해에서 사상 처음으로 공군 훈련을 했습니다. 그 이후 러시아 군용기가 두 차례 독도 영공을 침범하는 사태도 벌어집니다. 그 일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했습니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은요. 독도는 일본 땅이라며 러시아에 강력하게 항의했어요. 7월 23일 사건은 6·25전쟁 이후 유지된 역내 안보 질서가 흔들리면 벌어질 일을 극단적으로 보여줬다고 봐요.” 

- 미일동맹은 나날이 강화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미국과 이란이 핵 문제, 석유 자원 이권을 두고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죠. 그럼에도 아베 총리가 일본의 이익을 위해 최근 이란을 방문했습니다. 성공적 방문은 아니었지만 아베 총리는 이란에 갈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겁니다. 그런 선택을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해하니까요. 제가 강조하는 게 바로 이 지점입니다. 공조가 튼튼하면 외교의 지평, 선택지가 넓어집니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중국의 항일전승 70주년 기념 열병식 때 톈안먼 망루에 올랐습니다. 

“그때만 해도 시진핑 주석이 북한 김정은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한 것이죠. 그래서 우리도 조금 욕심이 났습니다. 북한과 중국 관계를 떨어뜨리고 베이징이 우리와 먼저 전략적 협의를 깊게 하는 새로운 관행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다가선 듯 보인 것입니다.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박 전 대통령이 톈안먼 망루에 오르기 전 한미 간 조율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양국 간 공조가 확고했기에 우리도 그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공조는 상대방이 좋아할 일을 할 때가 아니라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할 때 특히 필요합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이 정도까지는 한번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으냐’고 제안했을 때 양해할 정도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박 전 대통령이 톈안먼 망루에 오른 것은 이 같은 맥락이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고자질 외교’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2015년 9월 3일 중국은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맞아 49개국 대표를 초청해 대규모 열병식을 치렀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톈안먼 망루에 올라 중국군의 열병식을 지켜봤다. 이 망루에는 1954년 김일성 북한 주석이 오른 적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당시 행보는 동북아 안보 지형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 한국 외교의 선택지가 줄어드는 양상입니다. 

“2014년부터 2106년까지와 지금이 가장 다른 것은 미국이 중국을 제1의 가상적국으로 생각하면서 본격적 경쟁 국면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종의 냉전 시대가 열리면 상대방이 얻는 게 있으면 내가 손해 보는 완전한 제로섬게임이 됩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점점 제로섬게임처럼 돼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정세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일본은 한국이 미국 편을 들지 않고 있다고 미국에 말하는 고자질 외교를 잘합니다. 

상황이 이렇듯 어렵지만 몇 가지 원칙을 세울 수 있습니다. 안보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의 방향은 분명하다, 미국이 우리의 동맹국’이라는 점을 확고히 하면 됩니다. 동맹국이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미동맹에 따른 우리 정부의 결정을 동맹국이 아닌 중국이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지요.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제재 등 경제 관련 이슈는 구체적으로 내용을 점검하고 장단점을 따져 우리 입장을 정해야 합니다. 예컨대 미국 정부의 중국 화웨이 제재 같은 케이스는 워싱턴이 어떤 목표를 갖고 어디까지 행동할 것인지 사전에 교감을 거친 후 국익에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 동아시아 안보 문제에서 북한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생존을 위해 핵 개발, 도발 등을 하는 것이고 따라서 원조만 해주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 과거에 사로잡힌 개념이고 그동안의 협상 역사를 봤을 때도 잘못된 인식입니다. 놀랍게도, 현 정부 사람들은 과거 개념, 그것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전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생각하는지 그 이전 시기에 생각이 멈춰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대북 접근법으로 내놓았다. 대화와 경제 지원을 통해 북한과의 경색을 풀어나가는 게 햇볕정책의 골자다. 노무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계승했다. 이후 북한의 핵 실험, 천안함 폭침,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등이 벌어졌으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북한과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졌다. 

- 핵 개발의 목적이 체제 생존이 아니다? 

“2016년이나 2017년 이후부터는 북핵이 생존용이라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김정은의 핵 개발이 지향하는 목표는 훨씬 더 전략적입니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한반도에서 전략적 주도권을 잃기 시작해 1990년대에 이르러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김정은의 행보는 잃어버린 주도권을 되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우위에 있고 한국이 아래에 있는 수직 구조를 만들려는 것이지요. 특정한 환경이 조성되면 한반도 통일도 생각할 것입니다. 통일이 아니더라도 한반도 전체를 북한의 뜻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의 전략적 주도권을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 북한이 주도권을 되찾으려 한다는 분석에는 어떤 근거가 있을까요. 

“김정은이 지난해 창린도에서 포 사격을 지휘한 적이 있습니다. 창린도는 NLL(북방한계선)에서 18㎞ 떨어진 곳으로 우리 영토와 아주 가깝죠. 이곳에서 해안포 사격을 지휘했다는 것은 범상치 않은 일입니다. 핵무기 독트린을 보면 핵은 결국 마지막에 사용하는 수단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핵무기가 실제로 사용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 핵무기를 사용해 얻는 이익보다 핵무기 보유를 기초로 전략적·전술적 이익을 얻는 쪽으로 독트린을 발전시키는 게 현재의 추세입니다. 북한은 핵 보유를 뒷배로 삼아 재래식 도발을 하는 전략을 개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핵무력 바탕으로 재래식 도발 전략 수립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월 2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날 인민군 부대 합동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월 2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날 인민군 부대 합동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 북한이 단거리미사일을 보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요. 

“북한 처지에서 보면 합리적인 순서로 전력을 개발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핵 실험, 장거리미사일 시험 발사가 이뤄졌습니다. 장거리 타격 능력에서 상당 부분 진보를 이뤄냈고요. 낙후된 단거리 타격 능력을 발전시키는 게 다음 수순입니다. 특히 정밀타격 능력에 초점을 맞춰 시험 발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북한은 세 종류의 단거리미사일을 시험했습니다. 사거리로 봤을 때 중국이 목표가 아니라면 타깃은 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 문재인 정부의 대응은 어떻습니까. 

“안보의 기본은 위협을 인식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심정적으로 정이 가는 나라와 편을 먹고 싫은 나라를 적대하는 것은 외교 정책이 아닙니다. 가상의 적을 식별하고 우리 편을 들어줄 나라를 고려하면서 정책을 만들어야 해요. 감정, 정서, 이념보다 안보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중단했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중장거리미사일 시험 중단을 약속했지, 단거리미사일 발사 중단은 약속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미국이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 정부도 같은 태도를 취하면 주인의식이 없는 것 아닙니까. 먼저 걱정부터 해야죠. 단거리미사일 사정권 안에 우리가 있는데 정부가 그것을 엄중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 실제로도 위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지 의심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위협을 인식하는 데 필요한 개념도 없고, 판단도 제대로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과거의 북한과 현재의 북한은 다르다? 

“우리 군도 새로운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합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기 전 세워둔 국지도발 대응책이 아닌 핵무력 완성 이후 북한이 선택할 재래식 도발에 대응하는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합니다. 북한의 도발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하는 것은 과거와 같으나 북한이 새로운 선택지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상황이 됐으니 우리 역시 그에 대비한 계획을 짜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북한 핵을 미국 핵으로 대응한다는 확장억제에 대해 미국과 인식을 분명하게 공유해야 합니다.” 

-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력을 제고하는 게 쉽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제가 정부에 있을 때 한미 간 확장억제 협의체가 있었습니다. 국방부에 국장급, 차관보급 협의체가 있었는데, 박근혜 정부에서 차관급 협의체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외교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이 참여하는 2+2회의도 만들었고요. 당시에 만들어놓은 다양한 협의 통로가 현 정부에서 운영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협의체 회의를 했다는 발표가 없습니다. 정부 성향을 떠나 기왕의 협의체를 원활하게 가동하면서 한국이 가진 안보적 우려를 지속적으로 미국에 설명하고, 미국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따져 묻고, 요구하는 대화를 진행해야 합니다.”


文 탈원전 정책, 전략적 선택 범위 줄여

- 안보가 지나치게 미국 의존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미국이 우리가 정한 기준과 수준의 핵 억제를 충족해줄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 남습니다. 과연 우리가 미국만 바라보고 계속 있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죠. 미국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옵션을 고민해야 하고 내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 핵 개발을 말씀하는 겁니까. 

“핵 무장을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우리가 가진 전략적 선택지로 무엇이 있는지 검토해 봐야 합니다. 일본은 미일 원자력협정을 맺은 덕분에 핵연료 재처리와 농축을 하고 있습니다. 상당량의 농축 우라늄과 풀루토늄을 일본 국내와 해외에 쌓아놨습니다. 한국도 그 정도 수준까지 나아가자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에 ‘우리의 안정적인 원자력발전 연료 수급을 위해 일정 부분 핵연료 재처리와 농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는 있어야 합니다. 에너지의 안정적 수급이라는 명분이 있기에 미국도 쉽사리 반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전략적 선택 범위를 좁히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 문재인 정부가 집권 1000일을 넘었습니다. 외교·안보 정책을 총평하면. 

“북한 위협에 대한 인식, 미국과의 동맹에 대한 인식, 중국과 일본을 대하는 자세 등이 정권이 가진 진영 논리에 따라 형성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아주 특수한 상황에서 출범했습니다. 그래서 ‘적폐청산’이라는 큰 프리즘에서 외교안보 정책이나 다른 분야가 다뤄진 것 같습니다. 남은 임기 동안 그동안 해온 일에 대한 객관적 자기 점검이 필요합니다. 백지에서 다시 생각할 부분도 있고요.”




신동아 202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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