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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코로나 이전 복귀 환상 빨리 지워야”

“대공황 이상의 L자형 장기침체 올 수도”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유종일 “코로나 이전 복귀 환상 빨리 지워야”

  • ● 코로나19 장기화 예상, 지금은 겨우 2회 초
    ● 그린·디지털·휴먼 뉴딜로 극복해야
    ● 국제공조 붕괴 우려
    ● 경제위기 대응 B학점, 시스템이 문제
    ● 코로나19로 고용안전망 부실 드러나
    ● 좀비 신자유주의의 관에 못을 박자
    ● 그린 뉴딜로 가는 길 어려운 이유
    ● 마라톤 초반 선두, 우승 어렵다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코로나바이러스가 인류를 공격한 지 6개월. 세상이 너무 달라졌다. 그래서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시작된 이후 달라진 기준인 ‘뉴 노멀(new normal)’, 혹은 끝난 뒤 사회를 예상하는 ‘포스트 코로나(post Covid-19)’ 시대에 대한 분석이 활발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대표적 뉴노멀이다. 사람 간의 물리적 거리두기가 필수 지침이 되니 쇼핑, 교육, 국제회의, 공연은 주로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대대적 디지털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에도 교란이 생겼다. 이윤 극대화보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다. 다른 감염병이 대대적으로 줄어들었고, 올해는 봄철 미세먼지도 거의 없었다. 중국 인도 등 이동 제한이 좀 더 엄격했던 나라는 대기질이 매우 좋아졌다. 

하지만 많은 이가 뉴노멀을 얘기하고 BC(Before Covid-19), AC(After Covid-19) 시대가 다를 것이라고 하면서도 솔직히는 끔찍한 감염병이 빨리 끝나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그게 가능할까. 많은 전문가가 코로나19 장기화를 예상하는 상황이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유행과 완화를 반복하다가 겨울철에 대유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아시시 자 미국 하버드대 세계건강연구소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지금은 야구로 치면 2회(초)”라고 했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선 확진자 발생이 줄고 있지만 러시아, 브라질, 인도 등에선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중남미 상황이 심각하다. 5월 14일 소미야 스와미나탄 WHO 수석과학자는 “코로나19를 통제하려면 4, 5년이 걸릴 수 있다”고까지 전망했다.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환상 빨리 지워야

코로나19가 진정되면 과연 우리의 삶, 우리 경제는 정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의문을 품고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 거시경제 전문가로 코로나19 생활방역위원회 위원을 맡은 유종일(62)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원장을 5월 14일 만났다. 유 원장의 조언은 의외였다.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그 환상을 빨리 지워야 한다. 새 세계로 나갈 준비를 하고 새로운 각오로 개혁해 나가야 한다.” 



유 교수는 인터뷰에 앞서 5월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그린 뉴딜’ 세미나에서 기조강연을 통해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한국이 방역을 통해 초반 출구 전략은 잘 마련했지만 경제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전문가들은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가 닥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방역과 경제정책이 실패하고, 국제공조가 붕괴하면 대공황 이상의 L자형 장기침체가 올 수 있다.” 

4월 15일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한 세계경제 성장률은 -3.0%였다. 올해 6월에는 대유행이 진정될 것을 가정한 전망이다. 5월 12일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상황이 더 나빠져 “6월에 전망치를 더 낮출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인도주의적 대재앙도 이어지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실업자가 2억 명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 시민단체 옥스팜은 5억 명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으로,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은 2억7000만 명이 극심한 배고픔 상태에 빠질 것으로 봤다.


국제공조 붕괴 우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원장(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은 5월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그린 뉴딜’ 세미나에서 기조강연을 했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원장(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은 5월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그린 뉴딜’ 세미나에서 기조강연을 했다.

- 국회 토론회에서 “대공황 이상의 L자형 장기침체가 올 수 있다”고 했는데, 그렇게 전망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미래를 예상한다기보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하는데, 그 가능성이 꽤 높다. 무엇보다 코로나19에 대한 방역이 국제공조 아래 매우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다. 대공황 때도 세계경제 상황을 악화시킨 주된 요인이 국제공조 붕괴였다. 당시 각국은 근린궁핍화 정책(Begger-my-neighbor policy)을 폈다. 다른 국가의 경제를 궁핍하게 하면서 자국의 경기 회복을 꾀하는 정책이다. 지금도 서로 남을 탓하고 있다. 각국 정부의 대처도 매우 미흡하다. 비관적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 방역 과정에서 경제활동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봉쇄조치도 취하지 않았는데 한국 경제가 많이 나빠진 이유는 무엇인가. 

“봉쇄조치는 하지 않았지만,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 달 시행했다. 더욱이 소비자들이 불안해서 이동을 자제했다. 그래서 대면접촉이 많은 업종은 모두 영향을 받았다. 항공, 관광, 음식점, 자영업자들이 특히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시민의 이동이 줄었기 때문에 일정하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유럽이나 미국 상황이 어려우니 글로벌 경제 위축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가 수출 악화로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4월 수출은 전년보다 24.3% 줄었다. 전반적으로 불확실성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경제활동은 다 위축될 수밖에 없다.”


감염병 대응 A학점, 경제위기 대응 B학점

-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감염병 대응이 A라면, 경제위기 대응은 적극적이었다 해도 B학점을 주겠다. 시스템이 문제였다. 소상공인 지원, 재난지원금 같은 것을 필요한 곳에 빨리 지원할 수 있는 전달체계가 없어 실행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독일은 신청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사후에 입증하게 했다. 저도 그런 쪽으로 아이디어를 냈다. 신청한 사람의 경우 다음 해 소득세에 부과하도록 하면 부자는 신청하지 않을 거라고 봤다. 독일은 피고용자들은 고용 보장으로 파산을 막고, 거기에 포함되지 않은 이들에게는 1인당 2000만 원까지 지원했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우리의 사회안전망이 부실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런 것을 개선해야 한다. 취약·피해 계층에 대한 생계지원, 금융안정화 정책, 고용 유지와 흑자도산 방지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 한국 경제는 V자형 회복이 어려운가. 

“세계경제가 침체돼 있고,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상황에서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해외 비즈니스 활동도 제한적이다. 글로벌 공급망 문제도 해소될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자체에 대한 불안 심리가 기저에 깔려 있는데다, 바이러스가 외국에서 유입되는 것이 걱정되는 상황에서 우리만 독야청청 살아나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지금까지 했듯 앞으로도 방역에서 선방한다면 기회가 올 수 있다.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고, 포스트 코로나 경제로 변신하는 데 노력한다면 위기가 기회로 바뀔 수 있다.” 

- 포스트 코로나 경제에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분야는 어느 곳인가. 

“그동안 4차산업혁명에 대해 많이 얘기했다. 저는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디지털 전환을 더 빨리 하라고 강요하고 경험케 해줬다고 생각한다. 데이터를 잘 활용하면 얼마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지 알게 했다. 극적인 예는 우리가 디지털 기술을 코로나19 감염자를 진단·추적·치료하는 데 잘 활용한 것이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IoT)을 연결해 더 효율적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


코로나19로 고용안전망 부실 드러나

- 디지털 전환도 우리 경제를 살리는 데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어떤 위험성이나 경계해야 할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사람을 살리는 생산성 향상이어야 한다.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디지털 격차 문제가 발생한다. 극심한 빈부 격차와 계급 갈등을 다룬 영화 ‘기생충’에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아들이 화장실 천장에서 휴대전화 와이파이 신호를 잡으려 애쓰는 장면이다. 요즘 미국 뉴욕에서도 집에 와이파이 장치가 없는 이들이 문 닫은 카페 주차장에서 카페의 와이파이 신호를 잡아 사용한다는 뉴욕타임스 보도가 있었다. 취업의 기회, 디지털 사회에서의 경쟁력과 적응력에도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생기겠는가. 생산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포용적 전환을 해야 한다. 교육과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대대적 정책 변화 노력이 필요하다.” 

-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이 올 경우와 오지 않을 경우 경제대책이 달라지나. 

“달라질 수 있다. 우선 방역을 효과적으로 하는 게 경제에 가장 도움이 된다. 2차 감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겠지만, 2차 감염이 유행하면 지역경제 활성화한답시고 소비를 부추기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경제 활성화는 방역에 저해되지 않는 선에서 필요한 만큼 해야 한다.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 같은 사태가 생기면 그만큼 비용이 커진다. 단순히 감염자 수가 느는 것뿐 아니라 여러 계획에 연쇄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사회에 숨어 있던 어떤 문제들이 다시 부각됐나.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감염병을 심화시킨다. 뉴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가난한 사람들은 의료보험이 없으니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했다. 전 세계 금융의 중심이고, 엄청난 부가 몰려있는 도시인데, 가장 비참한 일이 일어났다. 21세기 인류에게는 심각한 불평등의 문제가 있다. 전 세계 최대부호 50명의 부가 세계 인구 절반의 부와 맞먹는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안전을 얼마나 심각하게 위협하는가. 

우리는 초기 방역에 성공했지만 고용안전망이 매우 부실하다는 게 드러났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보다 실업자도 적은 편이지만 상황이 심각하다. 유럽의 사회안전망은 우리보다 좋다. 지금은 우리보다 못한 것 같지만 나중에 최종 방역 성적표를 받아보면 유럽이 우리보다 더 나은 것으로 나올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약점, 문제점을 고쳐나가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경기 회복하면 증세 공감대 만들어야

- 코로나19 경제위기를 막기 위해 1, 2차 추경 등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중장기적 재정건전성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나. 

“국제 금융시장은 한국이 채권을 더 발행해도 된다고 얘기하고 있다. 시장에서 그렇게 얘기하니 재정건전성 우려는 지나치게 할 필요 없다. 필요한 재정은 과감하게 투입해야 한다. 다만 돈을 낭비해선 안 된다. 돈을 빌려 쓸 때는 내 소득이 성장하는 속도와 내 빚이 늘어나는 속도를 비교해봐야 한다. 소득 없이 빚만 많아지면 곤란하다. 빚이 늘어난다 해도 소득도 같이 늘어나면 걱정할 필요 없다. 그래서 성장률과 이자율을 비교하는 게 중요하다. 한동안 저금리 시대였는데, 이럴 때는 좀 더 적극적으로 국채를 발행해서 조달해도 괜찮다. 다만 이자율이 낮다 해도 성장효과를 내야 한다. 그래서 제가 강조하는 전환적 뉴딜, 즉 디지털·녹색·휴먼 뉴딜이 실행돼 지속 가능하게 성장하고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데 쓴다면 좋지만, 과거 방식으로 비효율적으로 돈을 쓰는 것은 곤란하다.” 

- 자칫 다음 세대에게 짐을 지우게 되거나, 증세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나. 

“물론 지금은 비상 상황이라 상당히 큰 재정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돈을 잘 써도 이 정도 대규모 적자를 계속 가져가선 안 된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증세가 필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우리나라는 미국 다음으로 불평등이 심한 나라다.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재정이 역할을 해야 한다. 증세는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니 얘기하지 않고, 빚내서 돈 쓰는 것만 얘기하면 옳지 않다. 물론 지금 증세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말이 안 된다. 이번에 공공의료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났고, 재분배도 더 충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앞으로 회복과 더불어 공공부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그래서 경기 회복 이후 증세에 대한 공감대도 만들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종언

-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공공성보다는 시장경제와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는 종언을 고할까. 

“신자유주의는 이미 끝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끝났다. 앨런 그린스펀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의회 청문회에 나가서 ‘나는 시장이 다 해결해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라고 발언했다. 보호무역주의가 대두하면서 이미 신자유주의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좀비처럼 죽었음에도 뚜렷한 대안이 없어서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관에 못을 박아야 한다.” 

- 포스트 코로나의 핵심 화두는 어떤 것들이 있나. 

“탈세계화, 자국 우선주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탈중국 러시 같은 화두가 있다. 탈세계화라고 해서 폐쇄 경제를 지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시장이 가져오는 폐해를 통제하고 보완할 수 있는 정치적 메커니즘, 국가 간 신뢰관계 등과 함께 세계화의 속도 조절이 이뤄질 것이다. 더 큰 핵폭탄과 같은 문제가 기후변화다. 이것은 국제공조 없이는 안 된다. 많은 면에서 이미 지구는 하나의 공동체다. 지구 공동체가 안고 있는 공공재, 공공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는 문제가 중요하다. 또 국가의 이름으로, 공공성의 이름으로 개인을 억압하거나, 소수집단을 차별하거나, 외국을 탓하는 현상이 세계 금융위기 이후 나타났다. 우익 포퓰리즘이 미국 트럼프 행정부뿐 아니라 전 세계로 퍼졌다.” 

- 코로나19 이후 우리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휴먼·디지털·그린 뉴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휴먼 뉴딜이란 무엇이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성 가능한가. 

“휴먼 뉴딜은 사람의 안전과 행복, 건강과 역량 등 사람 중심 경제를 구축하는 데 투자하자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사람 중심 경제를 내세웠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자본 투자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그런데 자본이 과잉인 사회가 되다 보니 자본을 늘려도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다. 이제는 사람의 역량을 키우는 데 본격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4차산업혁명에서 인공지능 분야가 핵심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 그 분야 인재의 경쟁력이 매우 부족하다. 

사람의 역량을 키우는 의무교육이 왜곡돼 있고, 대학교육에도 투자가 부족하다. 물론 평생교육은 더 부실하다. 사람의 역량을 키우고 그것을 중심으로 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을 만들어가려면 정책과 경영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경제는 행복한 삶, 보람 있는 삶,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바탕이다. 돈 벌고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 안전 규제를 등한시하면 안 된다. 그 바람에 이천의 물류창고 화재 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는가.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만들고, 재분배로 경제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분배되고, 경제가 사람을 살리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린 뉴딜, 일자리 만들기 쉽다

- 그린 뉴딜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프란스 팀머만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단 1유로라도 과거의 경제시스템이 아니라 디지털 경제, 그린 경제를 만드는 데 써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에게도 적용해야 할 말인가.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에서 통제해야 한다고 세계 각국이 합의했다. 2050년까지 넷제로(Net Zero·온실가스 배출을 사실상 제로로 만들자는 탄소중립 개념)를 달성하지 않으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생겨날 것이라고 한다. 지구의 많은 곳이 더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바뀌었다. 우리 후손에게 그런 세상을 물려줄 수는 없다. 화석연료 중심에서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이 이뤄야 하고, 자원 순환경제를 만들어서 온갖 쓰레기를 없애야 한다. 미래의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위해서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다. 더욱이 이것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가장 좋은 정책이다. 일자리 만든다고 무분별하게 경기활성화를 하다 보면 자칫 코로나바이러스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 그린 뉴딜이 어떻게 일자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나. 

“에너지 전환을 할 경우 재생에너지 사업에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 물론 시설 투자가 다 되고 나면 일자리는 줄어든다. 하지만 지금 경제위기 상황에서 긴급하게 일자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니까 시설 투자 과정에서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또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향상시키는 그린 리모델링이 매우 중요하다. 취약계층의 난방비를 줄이기 위해 주거지에 이중창을 만들어주는 것도 한 사례가 될 것이다. 이런 일은 사람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일자리 만들기가 쉽다. 중소기업 협동조합 등이 참여하는 일자리가 될 수 있다. 최근에 영국 옥스퍼드대 한 연구소에서 나온 논문도 그린 뉴딜 같은 친환경 정책이 전통적인 경기 부양책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단기적으로는 경제적이며, 장기적으로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고 봤다.”


그린 뉴딜로 가는 길 어려운 이유

유 원장이 언급한 논문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기후변화 경제학’으로 유명한 니콜라스 스턴 경 등이 참여한 옥스퍼드대 기업환경스미스스쿨의 워킹 페이퍼이다. ‘코로나19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재정투입 정책이 기후변화를 가속화할 것인가 아니면 늦출 것인가?’라는 제목이다. 코로나19 시대에 경제 회복을 위한 일괄 프로그램에 대한 이들의 분석은 경제와 환경 사이에 강력한 공조 개연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 정부의 ‘한국판 뉴딜’에서 ‘그린’이 빠진 채 논의되다, 뒤늦게 5월 12일 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몇 개 부처에 그린 뉴딜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지 협의해 보고하라고 했다. 우리 정부에서 그린 뉴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그린 뉴딜로 가는 길이 어려운 이유는 뭔가. 

“경제학 용어로 경로의존성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선택이 관성 때문에 쉽게 변화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기득권, 관행 탓에 가던 길을 바꾸는 게 쉽지는 않다. 사실 에너지 전환에서 제일 중요한 대목이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전기요금이 인상되면 산업계에서 다 반발한다. 값싼 전기를 펑펑 쓰는 산업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경로를 바꾸는 게 쉽지는 않지만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다. 많은 사람이 코로나19라는 강력한 감염병의 ‘경고’에 부닥쳐 우리가 진짜 변해야 할 세계는 어떠한지를 생각하는 시점이니 새로운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고통을 분담하면서 더 좋은 변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피해가 커진 호주의 대형 산불, 미국의 산불과 허리케인 같은 대재앙에 따르는 경제적 비용이 매우 높다.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게 문제다. 인류 생존의 문제가 걸렸다.”


마라톤 초반 선두, 우승 어렵다

- K방역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코로나 방역에 한국인의 자긍심이 높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할 것으로 보는가. 

“K방역이 잘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한국인은 평소에는 분열하다가도 위기가 오면 잘 뭉친다. 메르스 사태 때 질병관리본부가 매우 비판받고, 정부가 곤욕을 치르면서 신속대응시스템을 갖췄던 게 주효했다. 또 진단키트 개발, 드라이브스루 진료, 앱 활용도 혁신적으로 이뤄졌다. 신천지교인들의 집단 감염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시민의 참여와 협조가 잘 이뤄졌다. 제조업이 받쳐줘서 필요한 의료용품, 개인보호장구 생산도 가능했다. 

그러나 기모란 국립암센터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국무총리 주재 생활방역위원회에 참가해 ‘마라톤 초반 선두가 우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직 마라톤 레이스 초반이니 경각심을 늦추면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경고다. 무엇보다 경기 회복 과정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그린·휴먼·디지털 뉴딜을 해낸다면 한국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하는 주역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신동아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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