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호

자동심장충격기의 배신…꼭 필요한 새벽에 못 쓴다

[사바나] 서울시 10개洞 심야 실태조사, 10대 중 8대 못 써

  • 박재균 고려대 미디어학부 2학년

    bbqc123@naver.com

    입력2020-07-0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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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촌‧이태원 등 10개洞…108대 중 86대(79.6%) 사용 불가

    • 학교, 병원, 영화관 등 밤에 문 닫는 곳 많아

    • 보건당국 “외부에 설치하면 도난‧훼손 우려”

    • 의무설치대상에 24시간 출입 가능 장소 소수

    *사바나 초원처럼 탁 트인 2030 놀이터.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4월 22일 서울 한 영화관 내부. 주위가 어둡고 직원이 없어 방향 안내를 보더라도 자동심장충격기를 찾을 수 없었다. [박재균 제공]

    4월 22일 서울 한 영화관 내부. 주위가 어둡고 직원이 없어 방향 안내를 보더라도 자동심장충격기를 찾을 수 없었다. [박재균 제공]

    심장 활동이 갑자기 떨어지거나 멈추는 급성심장정지 환자는 한해 수만 명에 달한다. 질병관리본부와 소방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2006년~2018년 급성심장정지 사례 의무기록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119구급대가 병원으로 이송한 급성심장정지(이하 심정지) 환자 건수는 3만539명이었다. 급성심장정지의 생존율은 8.6%였다.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자동심장충격기(이하 심장충격기)를 사용해 조치하면 생존율은 44%까지 치솟는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심장충격기 설치 및 관리 지침을 제작해 심장충격기는 필요할 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된 장소에 보관해야 함을 원칙으로 명시하고 있다. 실제로 심장충격기는 필요할 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설치돼 있을까. 심정지가 빈발하는 시간대로 알려진 새벽에 인파가 많은 서울 강남권에 가 확인해봤다.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 ‘응급의료정보제공’을 활용했다.

    취재 40분 만에 찾은 심장충격기

    4월 22일 지하철 운행 시간이 끝난 후 서울지하철 강남역. 셔터가 내려져 있어 자동심장충격기로 접근이 불가능하다. [박재균 제공]

    4월 22일 지하철 운행 시간이 끝난 후 서울지하철 강남역. 셔터가 내려져 있어 자동심장충격기로 접근이 불가능하다. [박재균 제공]

    4월 22일 새벽 1시경, 서울 서초구 서초4동에서 중앙응급의료센터 앱을 열자 심장충격기가 설치된 7곳이 표시됐다. 그중 서울 지하철 교대역으로 갔지만 지하철 운행을 중단해 각 출구에 셔터를 내려놓은 터라 출입할 수 없었다. 그 뒤 심장충격기를 한 대씩 갖춘 세 곳의 학교를 찾았지만 정문이 닫혀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설사 정문을 넘더라도 학교 건물의 문이 또 닫혀 있어 내부에 설치된 심장충격기에는 접근할 수 없어 보였다. 

    이후 향한 병원과 영화관도 마찬가지였다. 병원은 응급실이 없는 일반 병원이라 퇴근 후 문을 잠가놓았다. 영화관은 출입이 가능했으나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불을 꺼놔 심장충격기를 발견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인근 아파트 단지의 관리 사무소였다. 마찬가지로 문이 닫혀 있었다. 틈새로 빛이 새어 나와 문을 두드리자 당직자가 열어줬다. 그러자 내부에 설치된 심장충격기가 눈에 들어왔다. 취재를 시작한 지 40분 만이었다. 심정지 발생 후 조치가 없을 때 사망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0분이다. 

    각 지역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심야에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시내 10개의 동을 선정해 4월 22일부터 6월 3일까지 찾았다. 앞서 방문한 서초구 서초4동을 포함해 서대문구 신촌동, 마포구 서교동, 영등포구 영등포동, 영등포구 여의동, 용산구 이태원1동, 광진구 화양동, 강서구 화곡6동, 강남구 압구정동, 강남구 역삼1동이다. 각 동에 설치된 모든 심장충격기를 확인하기 위해 심야시간대로 꼽히는 새벽 1시경 찾아가봤다. 새벽 1시가 지하철 운행시간이 종료된 시간대라는 점을 고려했다. 심장충격기 위치는 마찬가지로 중앙응급의료센터 앱을 이용해 파악했다. 

    총 108대 심장충격기를 현장에서 조사했고, 그중 86대는 심야 시간대에 이용할 수 없었다. 비율로는 79.6%다. 즉 10대 중 8대는 쓸 수 없었다는 뜻이다. 이용 가능한 기기는 22대뿐이었는데, 그중 10대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에 집중적으로 위치했다. 동마다 심야에 이용 가능한 심장충격기는 평균 1~3대꼴이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과 서울 광진구 화양동은 이용 가능한 심장충격기가 0대였다. 

    심장충격기는 주로 공공기관에 설치돼 있었다. 신촌동은 경로당, 서교동은 주민센터, 역삼1동은 세무서에 설치돼 있었다. 다만 공공기관 역시 심장충격기를 건물 내부에 설치해 놓았고, 심야에는 공히 문을 닫았다. 24시간 근무하는 치안센터와 지구대 정도가 예외였다. 민간시설 중 야간에도 심장충격기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은 대형 아파트 단지 뿐이었다. 단지 경비실 혹은 관리 사무소를 찾아가면 설치된 기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설 관리자가 실내 설치 선호”

    시민들은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까. 새벽에 길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지금 당장 심장충격기를 이용할 일이 생기면 어디로 갈 것이냐고 물어봤다. 김지홍(26) 씨는 “주민센터나 인근 지하철로 달려갈 것”이라고 답했다. 정영우(25) 씨는 “가까운 보건소나 병원을 찾겠다”고 했다. 다른 시민들도 여러 장소를 말했지만, 모두 문이 닫혀 있거나 설치가 안 돼 있는 장소였다. 아파트 단지나 치안센터를 언급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최근에 삼촌이 심정지 탓에 입원했다고 밝힌 김나영 씨는 “삼촌 일을 겪은 후 밖에 나갈 때마다 심장충격기가 어디 있는지 알아두곤 했지만, 건물들이 야간에 문이 닫혀 있어 이용을 못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심장충격기를 공원이나 야외에도 의무적으로 비치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심장충격기 야외 설치는 관리상 어려움 탓에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 한 자치구 보건소 관계자는 “기술적으로 외부에 설치 못 할 이유는 없지만, 외부에 설치하면 도난이나 훼손당할 가능성이 커진다. 날씨나 범죄같이 통제할 수 없는 문제로 훼손당했을 때 보통 해당 시설의 관리자가 책임지는 만큼 다들 실내에 설치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원이나 산의 경우 야외에 설치하기도 하는데, 관리가 어렵다 보니 관리자가 심장충격기를 반납하는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어쩔 수 없이 심장충격기를 실내에 설치해야 한다면, 24시간 출입이 가능한 시설에 설치하는 것 또한 대안이 될 수 있으나 취재에서 드러났듯 상당수 심장충격기는 야간에 문을 닫는 시설에 설치돼 있다. 원인은 관련 설치 규정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심장충격기는 고가의 의료기기이고 지속적 관리도 필요해 개인이 자발적으로 설치하는 경우는 적다. 보건복지부가 제작한 ‘자동심장충격기(AED) 설치 및 관리 지침’은 16종류의 심장충격기 설치 대상을 명시하고 있다. 그중 대부분은 경마장, 선박, 공항 등 특수한 목적을 지닌 장소다. 시민이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시설은 공공보건 의료기관, 중앙행정기관의 청사, 지하철, 5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이 전부다. 이 중 공동주택을 제외하면 대부분 야간에 문을 닫는 시설이다. 즉 의무설치대상으로 선정된 시설 중 24시간 출입이 가능한 곳이 소수인 셈이다. 

    정부는 설치 장소를 늘리기 위해 노인정처럼 의무설치 대상이 아닌 곳에 지원금을 제공해 설치를 장려하는 사업을 펴고 있지만, 해당 시설 또한 저녁에 문을 닫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장충격기 설치가 잘 돼 있다고 평가받는 일본의 경우 편의점과 자판기에 심장충격기를 설치해 24시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억 원 넘게 쓴 걸로 보이지만…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최근 5년간 자동심장충격기(AED) 설치 현황’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심장충격기 설치 수는 2만 대 이상 증가했다. 2014년 총 설치 대수가 2만1015대였으니 약 2배 증가한 것이다. 보급을 늘리는 데 쓰인 구체적 비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심장충격기 한 대 설치비용이 100~300만 원임을 고려하면 보급을 위해 200억 원 이상이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정부는 33억 원의 예산을 편성해 순찰차에도 심장충격기를 설치할 예정이다. 각 지자체에서도 심장충격기를 추가 설치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에 설치된 대부분의 기기가 심야 시간대에 이용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대책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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