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호

“어서와, 일당 7만 원 줄게” 기획부동산 ‘수상한 영업’

땅 팔려다가 땅 구매한 직원들… 2억 주고 산 땅, 원래 시가는 2700만원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0-07-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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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동산 배우면서 큰돈 벌 수 있다며 중년여성·청년 취업시켜

    • ‘일당 7만 원+@’ ‘오전 10시 출근, 오후 4시 30분 퇴근’

    • 화려한 사무실 인테리어, 매너 좋은 영업팀장

    • 기획부동산이 투자금 가진 사람 알아내는 방법

    • 근무 조건 좋고 이름 자주 바꾸는 업체 유의해야

    [뉴시스]

    [뉴시스]

    주부 이모(51) 씨는 2월 온라인 취업 사이트에서 S부동산컨설팅의 ‘신입 컨설턴트 채용공고’를 봤다. ‘일당 7만 원+@, 부동산 배우며 일하실 분’이란 제목의 게시물을 클릭해 들어가니 ‘일당 7만 원과 중식비 1만 원 지급’ ‘평일 오전 10시 출근, 오후 4시 30분 퇴근’ ‘명절·휴가비, 경조사비 지원’과 같은 근무조건이 눈에 들어왔다. 곧바로 지원서를 내고 면접 시간을 잡았다. 

    S부동산컨설팅은 서울 테헤란로에서도 눈에 띄게 근사한 빌딩에 입주해 있었다. 사무실 주변에는 ‘◯◯건설개발’ ‘◯◯종합개발’ ‘◯◯인베스트먼트’ 등의 회사명을 내건 업체 수십여 곳이 영업하고 있다. S부동산컨설팅 사무실 입구에는 회사 대표의 인터뷰 기사를 대문짝만 하게 실은 신문이 비치돼 있었다. 

    영업팀장 A씨가 커다란 테이블과 소파, 커피머신, 책이 가득한 책장, 감각적인 인테리어 소품으로 꾸며진 접견실에서 이씨를 맞았다. A씨는 화이트셔츠와 산뜻한 넥타이, 슈트 재킷에 정장 구두를 매치했다. 이씨는 “A씨의 단정한 이미지와 화려한 접견실 인테리어에 호감을 느꼈다”고 했다. 

    “근무 조건만 봤을 때는 ‘혹시라도 이상한 곳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그런데 사무실 분위기와 간부들이 풍기는 이미지를 보니 믿음이 가더라고요.”
    영업부장 A씨는 면접 때 이씨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지원자의 나이·성별·학력은 물론 부동산 자격증 소지 여부나 업계 근무 경험 등을 일절 따지지 않습니다. 부동산을 배우면서 돈을 벌고자 하는 열의만 있다면 체계적인 이론·실무교육을 통해 부동산 전문가로 거듭나게 해드리겠습니다.”



    사무실은 ‘삐까뻔쩍’ 영업팀장은 매너男

    이씨가 S부동산컨설팅에서 맡은 업무는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강원 춘천시 일대 땅(임야)을 사도록 권하는 일이었다. A씨는 이씨에게 “테마파크 예정지 근처로 2~3년 내에 무조건 땅값이 200% 오를 곳”이라고 귀띔했다. 춘천 테마파크 개발 관련 인터넷 언론 기사와 ‘◯◯랜드 개발계획’이란 제목의 보고서도 보여줬다. 보고서 표지에는 춘천시청 로고가 찍혀 있었다. 

    이씨가 판매 대상 토지의 정확한 위치를 묻자 A씨는 “지금 정보가 새면 땅값이 미리 오를 수 있어 정확한 위치는 알려주기 어렵다. 대신 현장을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겠다”고 답했다.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회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땅을 팔지 못하더라도 매일 7만 원의 일당과 1만 원의 중식비를 받았거든요. 오전 10시 출근, 오후 4시 30분 퇴근으로 근무시간도 짧았고요. 점심시간은 1시간이었습니다. 영업팀장이 틈날 때마다 부동산 투자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고요.” 

    1개월이 흘러 A영업팀장에 대한 신뢰가 쌓였을 즈음 업무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영업팀장은 이씨에게 지인 이름 및 연락처, 재무 상태 등을 아는 대로 적어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지인들을 상대로 부동산 영업을 하라는 거였다. 

    입사 이후 일당 7만 원과 중식비 1만 원을 받으면서 ‘밥값’을 못한다는 생각에 미안함을 느끼던 이씨는 A씨의 지시를 따랐다. 이씨는 A씨로부터 지인들의 재무 상태를 확인하는 방법도 전수받았다.

    지인 재무 상태 확인하는 방법도 배워

    기획부동산 사무실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기획부동산 사무실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먼저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 인사를 주고받은 후 요즘 ‘내가 부동산 투자에 푹 빠져 있다’고 말합니다. 일주일 뒤 그 지인에게 연락해 ‘혹시 1억 원 정도 투자할 수 있느냐’고 다급하게 묻습니다. 10명이면 10명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죠. 아랑곳하지 않고 ‘상황이 급해 자세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 좋은 기회가 있다. 1억 원 정도 투자할 수 있느냐’고 다시 묻는 겁니다. ‘그런 돈 없다’거나 ‘2000만 원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답하면 ‘다시 연락할게’라고 답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한 시간 뒤 다시 전화해 ‘조금 전 수익률 100%를 보장하는 ‘대박’ 땅이 급매물로 나와 연락했어. 그런데 아쉽게도 다른 사람이 계약금을 냈다더라. 나중에 좋은 물건 나오면 다시 연락할게’라고 설명합니다. 투자할 여유가 있는 지인들은 ‘나중에 꼭 연락 줘’라고 답합니다.” 

    여유 자금과 땅 구매 의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면 회사의 ‘특별 관리 대상’이 된다. 소소한 부동산 재테크 정보를 알려주고 매물을 소개하며 관리하기 시작한다. 신뢰가 쌓이면 사무실을 방문하게끔 유도한다. 

    “영업팀장이 ‘일단 회사를 찾아오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더군요. 회사에 찾아오면 십중팔구 땅을 산다는 거예요. 매매 대금의 10%가 내 몫이라고도 했습니다.” 

    이씨는 이 같은 방식으로 부동산 영업을 하다가 회사에서 ‘좋은 땅’이라고 선전하는 경기 하남시 등 5개 지역 임야 2314㎡(약 700평)를 2억여 원에 본인이 ‘직접’ 매수했다. 직접 땅을 산 것도 실적이어서 포상휴가와 현금 인센티브를 받았다. 휴가를 보내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발 호재가 있다는 이유로 3.3㎡당 77만 원을 주고 산 경기 하남시 임야의 공시지가는 3.3㎡당 3만8700원에 불과했다. 물론 회사의 설명대로 추후 개발돼 시세 차익을 볼 수도 있다. 

    이씨는 “실적에 대한 압박과 다들 부동산에 투자하는 회사 분위기에 휩쓸려 무턱대고 땅을 산 게 너무 후회된다”고 털어놓았다.

    “순진한 사람 등쳐 먹은 것 같아요”

    기획부동산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부동산 매매 법인은 대규모 토지나 임야를 매입한 뒤 적당한 크기로 나눠 매도하곤 한다. 일부 법인이 투자 가치가 낮은 땅을 부동산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 비싸게 파는 경우가 있다. 

    “기획부동산이 순진한 사람을 등쳐 먹은 것 같아요. 부동산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당할 줄은 몰랐어요.” 

    주부 한모(44) 씨는 요즘 마음이 심란하다. 3.3㎡당 공시지가가 9만3700원인 임야 1322㎡(약 400평)를 1억200만 원이라는 거액을 주고 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서다. 한씨는 “그러면 안 되는데 자꾸 나쁜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한씨는 “기획부동산에 휘말린 것 같다”면서 “수개월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한씨는 ‘부동산 컨설팅사’라고 채용 공고를 낸 한 업체에 취업해 투자 권유 업무를 담당하다 개발 호재가 있다는 직원 말을 믿고 임야 1322㎡를 매수했다. 한씨는 “분위기에 휩쓸려서 땅을 샀다”면서 울먹였다. 

    “회사에서는 실적이 좋은 몇몇 우수 사원을 뽑아 수천만 원의 성과급을 공개석상에서 지급해요. 성과급을 우수 사원의 계좌로 이체하지 않고 현금 다발째 줍니다. 우수 사원은 마치 의식을 거행하듯 돈다발을 손에 쥔 채 사무실을 한 바퀴를 돌아요. 그럼 전체 직원들이 흥분하게 마련이고 ‘나도 저렇게 큰돈을 벌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됩니다.” 


    “업체가 기망했다는 것 입증할 자료 확보해야”

    직원들이 기획부동산에서 맡은 업무는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토지나 임야를 사도록 권하는 일이다. [GettyImage]

    직원들이 기획부동산에서 맡은 업무는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토지나 임야를 사도록 권하는 일이다. [GettyImage]

    성과급 지급 행사가 끝나면 직원들은 땅을 팔고자 경쟁적으로 전화를 돌린다고 한다. 여의치 않을 때는 스스로 땅을 구매하기도 한다. 어느 순간 자신이 판매하는 땅이 ‘좋은 땅’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왜 그 돈을 주고 그 땅을 샀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사기를 당한 것 같기도 한데 내가 결정한 것이니 뭐라고 말도 못하겠고 마음이 너무 무겁습니다.” 

    이씨와 한씨는 하나같이 “회사가 설명한 그럴싸한 개발 호재에 속은 것 같다”고 말했다. 법률적으로 투자 행위는 손해든 이익이든 본인 책임이다. 이씨와 한씨가 사기죄로 기획부동산 업체를 고소하면 업체 측은 “당사자가 원해서 계약한 것일 뿐”이라거나 “시간이 지나면 땅값이 오른다”고 반박할 공산이 크다. 

    권윤주 부동산 전문 변호사(법무법인 유로)는 “업체 측의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 투자 권유 과정에서 기망하거나 속였다는 것을 입증할 자료가 없는 터라 대부분의 사건이 ‘혐의 없음 처분’으로 끝난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업체들이 언론 보도를 근거로 개발 호재가 있다고 강조하더라도 그 정보가 사실인지, 개발 계획이 백지화될 가능성은 없는지 등을 꼼꼼하게 알아봐야 한다. 사전에 기획부동산 업체들의 유형이나 영업 수법 등을 숙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경기 불황으로 청년 미취업자와 경력 단절 여성이 늘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 매매 법인이 괜찮은 근로 조건을 내세우면서 청년층이나 중년 여성을 고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획부동산 업체 대부분은 현금으로 급여를 지급한다. 7만~8만 원의 일당과 인센티브를 주는 곳이 많다. 한씨와 이씨가 근무한 업체 두 곳은 현금으로 일당 7만 원씩 지급했다. 업체들이 유독 일급제를 고수하는 이유는 뭘까.

    “노동강도에 비해 급여가 많으면 의심해 봐야”

    김모(29) 씨는 “기획부동산 특성상 퇴사가 빈번한 편이라 직원을 붙잡아두기에는 당일 돈을 지급하는 일급제가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김씨는 기획부동산에서 6개월간 근무한 적이 있다. 김씨는 채용 사이트에 올라온 정보를 꼼꼼히 확인하면 부동산 매매 법인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고 경험자로서 조언했다. 

    “이직률이 높아 직원을 끊임없이 충원해야 하기에 구직자의 구미가 당기는 근무 조건을 내세우곤 한다. 채용 정보에 담긴 요건이 노동강도에 비해 많은 급여를 제시한다든지 부동산을 배우며 큰돈을 벌 수 있다고 강조하는 곳은 기획부동산일 가능성이 크다. 대표 이름은 동일하지만 회사명이 자주 바뀌는 업체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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