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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 몰린 北 ‘너 좀 맞자’ 심정으로 도발한 것”

[허문명이 만난 사람] 남북회담 300회 김기웅 前남북회담본부장②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궁지 몰린 北 ‘너 좀 맞자’ 심정으로 도발한 것”

  • ●6월 도발 의미는 ‘본때 보이기’
    ●김정일까지 비판한 김정은, 인생 첫 좌절
    ●백두혈통, 왕손(王孫)에는 남녀가 없다
    ●北유고사태, 中이 먼저 알 수밖에 없는 이유
김기웅(59)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세한대 초빙교수)은 1990년부터 거의 모든 남북회담에 관여했다. 수석대표를 비롯해 수행원과 상황실 근무까지 포함하면 300여 차례 회담에 참여했다. 분단 이후 남북회담 680회 중 절반에 가깝다. 

2013년 개성공단 정상화 협상 때 주목 받았으나 지금껏 언론 인터뷰에 응한 적이 없다. 북한의 도발 위협으로 남북이 긴장 상태에 처했던 6월부터 최근까지 그를 세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현장을 오랫동안 경험한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북한의 내부를 읽는 법이나 향후 대북정책의 방향 등에 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남북관계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시사점이 적지 않아 그와의 대화를 8월 4일, 6일, 8일 세 차례로 나눠 싣는다. 이 기사는 그 두 번째다. 

김 전 본부장은 서울대 외교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0년 4월 통일부 남북회담사무국 회담운영과를 시작으로 통일부 정보분석국장, 개성공업지구 협력지원단장, 통일정책실장, 남북회담본부장을 거쳐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지내다가 2018년 8월 공직에서 물러났다. 외교부 대북정책과장으로도 일했다.

6월 도발 의미는 ‘본때 보이기’

6월 16일 북한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주도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6월 16일 북한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주도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 전 본부장은 “김정은을 돈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고 했다. 



“우리나 미국이나 경제적 인센티브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김정은 입장에선 기분 나쁜 말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2019년 금강산 현지지도 때 ‘선임자가 국력이 여린 시절에 남의 도움을 받고자 잘못된 정책을 폈다’고 한 건 ‘아버지 때는 어땠을지 몰라도 나는 돈다발 흔든다고 넘어갈 사람으로 보지 말라’는 공개 선언이나 다름없다.” 

-협상에서 좀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는 속셈 아닐까. 

“김정은은 겉과 속이 달랐던 아버지와 달리 속내를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핵개발을 노골적으로 언급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그랬던 그도 집권 후, 아니 어쩌면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큰 좌절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2017년 이후 경제가 급격히 나빠진 상황에서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회담이 깨진 이후부터다. 북한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과 두 번이나 회담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문재인 대통령도 만나는 광폭 행보를 보였지만 결과는 다시 원점으로 가 있는 상황이다. 핵·경제 병진노선 10년 통치가 올해로 딱 마지막 해인데 아무 결실이 없다. 굳이 성과라고 한다면 한미연합군사훈련 일부 중단, 비무장지대 GP 일부 철수,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단 차단 정도인데 다 일시적인 거다. 경제는 어떤가. 올해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마지막 해인데 성과를 보면 마이너스다. 주민들에게 쌀밥에 고깃국 먹게 해주겠다는 경제강국 약속과 세계 어디도 부럽지 않은 군사강국 약속에 비하면 초라하다. 더 큰 문제는 대안이 없다는 거다.”

김정은의 좌절

-심리적으로 복잡하겠다. 

“김정은의 좌절감이 표현된 게 지난해 12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두 가지 노선, ‘경제는 자력갱생, 대남·대미관계는 정면 돌파’다.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내용이 없는 말이다. 자력갱생은 과거 ‘고난의 행군’ 시절부터 쓴 말이고, 정면 돌파도 선전적 문구에 불과하다. 김정은은 지금 무력감 속에서 내부적으로는 인민 관리와 경제 살리기에 집중하고 미국과 남쪽의 상황 변화를 예의 주시하면서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질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6월 김여정의 도발은 어떻게 봐야 하나. 

“사실 남북관계는 2018년 10월을 끝으로 거의 끊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우리 정부에 대한 비난과 모욕적 언사가 점점 과격해지더니 이번에 행동으로 옮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문 대통령 방북과 평양선언에 그 나름 큰 기대를 했다. 하지만 이후 별 변화가 없는 거다. 6월 도발은 ‘말로는 안 되겠다, 행동으로 보여 주겠다’는 속셈에서 나온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여당 압승을 보면서 우리 측을 강하게 압박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고 본다. 시간적으로 이 정부도 올해 지나면 끝이고 미국 대선도 다가오고 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이거 안 되겠다. 조폭들 표현을 쓰면 ‘너 좀 맞자’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여기 와서는 다해줄 것처럼 요사를 떨더니 돌아가 하는 행동을 보니 아무 것도 없다’는 평양 옥류관 주방장 말이 생각난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를 개선할 의사도 없고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다’는 북한의 말은 진심일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해 1월 1일 ‘한미군사훈련 중단, 외부로부터 신무기 도입 중단, 지상·공중·해상을 비롯한 군사적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실천적 조치, 개성·금강산 협력사업 재개, 평화체제를 위한 다자협상’ 등을 명시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별 진전이 없으니 뭔가 작은 것이라도 구체적 행동으로 보이라고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김정은은 사실상 문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기대를 접은 것 같다.” 

그는 향후 가장 중요한 변수로 ‘미국 대선’을 꼽았다. 

“대선 이후 다시 판을 짤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변수가 아닌 상수라는 게 문제다. 우리 정부의 입장이 명확한데다 바뀔 가능성이 없으니 예측이 가능하고 다루기가 쉽다. 바꿔 말하면 우리로서는 정책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뜻도 된다.”

한다면 하는 사람들

-6월의 경우 김여정이 도발에 나서고 김정은은 뒤로 빠져 있었다. 

“김정은이 나서지 않았다는 건 어떤 여지를 남겼다는 뜻도 된다. 실제로 북한은 도발 와중에도 미묘하게 몇 가지 여지를 남겼다.” 

-그게 뭔가. 

“첫째, 남쪽과의 연락 통신선을 끊는다면서도 국정원과 당 중앙위 간 통신선은 제외했다. 다 끊지는 않았다는 거다. 둘째, 총참모부가 도발 조치를 발표했을 때 당 중앙군사위의 추인을 받겠다고 했다. 군이 군사위 추인을 받겠다고 밝힌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 같은 내용을 공개한 것 자체가 이상했는데, 군사위가 곧 열릴 것이라는 예고와 함께 조치가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김정은이 군사행동 보류 메시지를 중앙군사위를 열지 않고 예비회의에서 내놓았다. 이 역시 전례가 없다. 기존에 없던 회의를 굳이 만들었다는 건 향후 군사위 결정이 남겨져 있다는 뜻이다. 즉, 도발을 잠시 멈춘 것일 뿐 최종 결정이 남아 있고, 언제든 재개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북한의 메시지를 예민하게 읽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북한은 성명 등을 낼 때 시기, 발표 형식, 단어 선택 하나하나까지 매우 신중하게 고른다. 북한은 자신들이 내놓는 메시지를 우리 쪽이 굉장히 심도 있게 분석하고 읽어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그저 배고파서 하는 소리’ ‘하나마나한 소리’ ‘늘 하던 소리’로 치부하면서 섬세하게 들여다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남북관계가 황금기였던 시절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도 보인다.” 

-김정은 시대의 메시지 발신 방식이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성격이 급해 한꺼번에 다 쏟아내는 경향이 있다. 김정일 시대에는 모니터, 보도시점, 남쪽 국민 반응을 봐가며 하나하나 내놓았다. 냉온탕이 있긴 했지만 진폭이 별로 안 컸고 예측도 가능했다. 지금은 동시다발 몰아치기 식이다. 변화 속도와 폭도 매우 크다. 폭발적이지만 치밀함이나 정교함이 부족하다. 리더십과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밑에 사람들이 매우 힘들 것이다.” 

그는 “북한을 무서워할 필요도 없지만 우습게 봐서도 안 된다”고 했다. 

“북한을 대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도발에 대해 경계하는 자세는 필요하지만 과도한 공포심은 도움이 안 된다. 목함지뢰 사건 때는 탱크가 내려오고 전시상태까지 선포됐다. 하지만 며칠 만에 다 끝났다. 핵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핵을 가졌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비핵화 필요성을 냉정히 논의해야 하지만 공포감에 휩싸여 할 일까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오랜 강점이 선전·선동이다. 우리가 차분하고 흔들리지 않으면 선전·선동 효과가 없어진다. 그들로서는 가장 효율적 무기 하나를 잃는 게 된다. 

그들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그 어려운 시절에 핵 개발에 온 에너지를 집중해 마침내 성공시킨 사람들이다. 합리적 잣대가 통하지 않는다. 2009년 북한이 희천발전소를 3년 안에 다시 짓겠다고 했을 때 ‘불가능하다’ ‘금방 무너질 것’ 등 별별 얘기가 있었지만 현재 평양의 전기 부족을 상당 부분 해결하고 있다. 한다면 하는 사람들이란 얘기다.”

백두혈통, 왕손(王孫)에는 남녀가 없다

-과연 4대 세습까지 갈까. 

“현재로서는 예상도 못하고 알 수도 없다. 나의 관심은 그런 것보다 김정은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뭘 지향하는 지다. 나머지는 내게 단순한 흥미거리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거다. 길게 보면 미래는 보인다. 그 사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김여정으로의 세습 가능성은? 

“김여정이 현재 대남관계를 실무적으로 이끌고 있다. 대외적으로 나서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북한이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라고만 호칭하고 소속 부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 경우 대체로 가장 힘이 막강한 조직인 조직지도부를 실질적으로 맡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일 시기에는 김정일이 직접 조직지도부 부장을 맡았다. 

조직지도부장이 누구이든 김여정이 조직지도부를 관장하고 있다면 당에서의 실질적 힘은 김정은 다음이다. 이번 대남 담화에서 ‘위원장 동지와 당,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에 따라 일을 한다’고 했다. 대적사업부 전체회의를 주재했다는 걸 보면 2인자 위치가 거의 확고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은 일찍이 예상된 바다. 김여정은 ‘백두혈통’이다. 일각에서는 여자가 지도자가 되는 게 어렵다고 보지만, 백두혈통에는 남녀가 없다. 신성한 왕손인데 성별이 중요하겠는가.” 

-내부 쿠데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북한의 권력 집단은 현재의 시스템을 즐기고 있다. 김정일 시기에 약간 힘들었지만 핵을 가졌고, 인공위성도 쏜다. 평양 사람들은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심지어 ‘남조선보다 더 잘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北유고사태, 中이 먼저 알 수밖에 없는 이유

김기웅 전 남북회담본부장 [지호영 기자]

김기웅 전 남북회담본부장 [지호영 기자]

-얼마 전 김정은 유고설이 나돌았다. 

“권력 심층부 일이라 판단하기 어렵지만 공개적으로 나오는 정보만 열심히 봐도 상황의 80%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팩트에 의거해 사고해야 한다. 최근 10년간 김정은 행적에서 할아버지 생일인 4·15 행사에 빠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상에 이상이 생겼다고 추론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심폐 기능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도 팩트일까. 

“그렇다. 연설할 때 음성이나 호흡에 대한 의학적 분석이 있다. 유전력도 갖고 있다. 몸에 무리를 줄 만한 상황이 아니다. 건강하지는 못하다. 하지만 젊기 때문에 비상 상황은 아니라는 그 나름의 추측이 있다. 사망설이 나왔을 때 주변국 메시지를 예민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 지도자에 변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아는 나라가 중국이다. 사체 방부처리 등을 위해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유고설 당시 중국 외교부 대변인 등의 태도를 보면서 유고 상황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사망설)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는데. 

“‘사실무근이다’ ‘사실과 다르다’ ‘외국 지도자 신변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 ‘확인해보겠다’ 등 다양하게 말할 수 있는데 그런 표현을 택했다. 사망설은 사실이 아니지만 뭔가 이상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뉘앙스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건강하길 바란다’고 했을 때도 ‘아프다는 건 맞다’ ‘한때 치료를 받았다’라고 짐작하게 했다. 코로나와 관련이 있었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위태롭지는 않지만 정상은 아닌, 거동이 불편한 정도? 의사들이 약을 복용하면서 안정을 취하라고 권고하는 정도로 추정할 수 있겠다. 

김정은이 공식석상에서 사라진 지 20여일 만에 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을 공개한 걸 보면서 아무 일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북한이 애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3회에 계속>



신동아 2020년 9월호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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