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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독감백신, 같은 제조번호 사망자 나왔다

의협 “접종 멈추고 조사하라”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불안한 독감백신, 같은 제조번호 사망자 나왔다

  • ●독감백신은 사(死)백신, 중증이상반응 발생 가능성 낮다
    ●급성과민반응 아나필락시스, 접종 후 길어도 수 시간 내 발생
    ●2009년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한 60대, 길랭바레증후군 확인
    ●접종 전후 컨디션 관리 필수, 달걀 알러지 있으면 의사와 상의해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21일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가 잇달아 발생한 것과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청주=뉴시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21일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가 잇달아 발생한 것과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청주=뉴시스]

전국에서 독감백신 접종 뒤 사망 사례가 잇달아 보고되고 있다. 질병관리청(질병청) 집계에 따르면 10월 22일 오후 4시 기준 25건이다. 이들 사례에서 독감백신 접종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된 건 아니지만 백신 접종에 대한 우려는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22일 오후 동일 제조번호를 가진 백신 피접종자 다수가 사망한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이에 대한 불안이 확산하는 상황이다. 질병청은 23일 전문가 대책회의를 열어 독감 예방접종 현황을 전반적으로 점검한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국가 백신접종 사업 유지 여부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전망이다. 

22일까지만 해도 방역당국은 “당장 예방접종을 중단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한 사람의 지역(서울·경기·인천‧대전·전북‧대구‧전북‧경북‧경남‧제주 등)이 전국에 퍼져 있고, 피접종 백신 제조사(녹십자·보령바이오파마·LG화학·SK바이오사이언스·한국백신 등)와 제조번호(로트번호)가 제각각인 것 등을 이유로 들었다. 

로트(LOT)는 같은 날 같은 원료를 이용해 같은 설비에서 생산한 백신군(群)을 일컫는다. 이들 제품에는 동일한 제조번호가 붙는다. 독감백신 1로트는 보통 14만~15만 명 접종분이다. 정은경 질병청장은 21일 언론 브리핑에서 “어느 한 제조번호에 해당하는 백신 피접종자가 모두 사망하면 제품 자체의 문제를 우려하게 될 텐데 현재는 사망 사례 사이에 이런 공통점이 없다”고 밝혔다. 정 청장은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같은 제조번호를 가진 백신 피접종자 가운데 추가 사망자가 나오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때는 해당 로트를 봉인 조치하고 접종을 중단하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재검정을 요청한다”고 답했다. 22일 오후 바로 이 사례가 확인된 것이다. 

피접종자 사망사례가 두 건 이상 발생한 백신의 제조사 및 제조번호는 △지씨플루쿼드리밸런트 Q60220039 △플루플러스테트라 YFTP20005 △스카이셀플루4가 Q022048 △스카이셀플루4가 Q022049 등이다. 현재까지 이들 백신을 맞은 피접종자 규모는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다. 사망 사례는 고령층에 집중된 모양새다. 질병청이 확인한 사망자 연령대는 60세 미만이 3명, 60대 1명, 70대 12명, 80세 이상 9명 등이다. 60세 이상이 22명으로, 전체의 88%를 차지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올해 독감백신 국가접종사업은 이미 각종 사건사고로 얼룩진 상황이다. 백신 유통 중 상온 노출, 백색입자 발견, 문제가 된 백신 피접종자 인원 집계 오류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여기에 사망 사고까지 속속 보고되면서 예방 접종에 대한 시민 불안이 한층 확산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22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를 향해 “현재 시행하는 독감 관련 모든 접종을 일주일간(10월 23일∼29일) 유보하라”고 권고했다. “해당 기간 동안 사망과 독감백신 접종 사이의 인과성 등에 대한 의학적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는 게 의협 주장이다. 의협은 이날 “독감백신을 이미 접종한 사람은 대부분 안심해도 좋다. 단 신체 불편을 초래하는 특이증상 발생 시엔 즉시 의료기관을 방문해 진료를 받으라”고 알렸다. 회원 의료기관에도 23일부터 접종을 중단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독감백신은 사(死)백신, 중증이상반응 발생 가능성 낮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독감백신 사업을 총괄하는 질병청이나 잠정 중단을 권하는 의사단체 모두 “독감백신 자체의 위험성은 크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는 점이다. 

모든 백신에는 바이러스 항원, 즉 ‘항체가 형성되도록 하는 물질’이 들어 있다. 그것이 체내에서 면역반응을 유발해 바이러스 감염을 막는다. 즉 독감백신을 맞으면 우리 몸은 독감과 한 번 맞서 싸워 이겨낸 것 같은 상태가 된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독감에 걸리면 안 되므로, 백신 제조사는 바이러스의 독성을 줄이되 면역반응은 일어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백신 종류는 크게 바이러스를 살려둔 상태로 제조하는 생(生)백신과 바이러스를 아예 죽인 뒤 만드는 사(死)백신으로 나뉜다. 독감백신은 모두 후자에 속한다. 김탁 순천향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생백신에 해당하는 홍역‧풍진(MMR) 백신 등은 임신부가 맞을 경우 태아가 감염될 위험이 있어 접종을 권하지 않는다. 반면 독감백신은 임신부도 맞는다. 사백신이 생백신에 비해 이상반응 발생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밝혔다. 9월 독감백신 상온 노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전문가들은 “해당 백신의 단백질(항원)이 변성돼 약효가 없는 ‘물백신’이 될 수 있지만, 바이러스가 활성화해 중증이상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2009년 이후 독감백신으로 인한 사망 인정 사례는 1건

10월 20일 서울 강서구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서부지부에서 한 시민이 독감백신을 맞고 있다. [뉴스1]

10월 20일 서울 강서구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서부지부에서 한 시민이 독감백신을 맞고 있다. [뉴스1]

질병청에 따르면 2009~2019년 사이에 국내에서 독감백신 접종 이후 사망해 인과관계를 검토한 사례는 모두 25건이다. 신종플루 유행으로 독감백신 접종에 대한 관심이 컸던 2009년(8건) 관련 신고가 집중됐고, 최근에는 2018년 2건, 2019년 2건 등으로 많지 않았다. 

이 가운데 보건당국이 독감백신과 죽음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사례는 한 건이다. 2009년 10월 독감백신을 맞은 뒤 이듬해 사망한 60대 여성이 독감백신 접종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판정을 받아 피해보상을 받았다. 

이 여성은 별다른 기저질환이 없는 상태에서 독감백신을 맞았고, 사흘 뒤부터 팔다리의 근력저하를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눈과 얼굴이 마비되는 ‘밀러피셔증후군’ 진단을 받고 입원 치료 중 흡인성 폐렴으로 사망했다. 정은경 질병청장은 21일 기자간담회에서 “그 외 사례는 대부분 환자가 심장질환이나 뇌졸중 같은 기저질환으로 사망한 것이 확인돼 (피해보상 없이) 정리됐다”고 밝혔다. 

김우주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2009년의 경우 신종플루 유행과 독감백신 공급 부족 이 겹쳐 고령자 사이에서 ‘제때 예방접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확산했던 시절이다. 고령의 기저질환자가 사람이 붐비는 보건소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접종 차례를 기다리다 백신을 맞는 사례가 많았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저질환이 악화해 사망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독감백신 접종 상황도 이때와 비슷하다. 코로나19와 독감 동시 유행에 대한 우려로 고령자의 예방접종 수요가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고령자가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육체적으로 지친 상태에서 독감백신을 맞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질병청이 발표한 ‘예방접종 주의사항’에도 △예방접종은 건강상태가 좋은 날 받는 것이 좋다 △혼잡을 피하고 장시간 기다리지 않도록 사전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접종 후에는 15~30분간 접종기관에서 이상반응이 있는지 관찰하고 귀가하라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의료 현장에서 백신접종 예약제는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사람 많은 병원에서 접종 후 30분 넘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김우주 교수는 “국가 예방접종 사업이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시행되는 게 문제”라며 “피접종자가 편안한 환경에서 독감백신을 맞을 수 있게 예방접종 사업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급성과민반응 아나필락시스, 접종 후 길어도 수 시간 내 발생

10월 21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동부지부에 설치된 독감백신 접종실.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한산한 모습이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10월 21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동부지부에 설치된 독감백신 접종실.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한산한 모습이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편안한 환경에서 백신을 맞아도 인체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몸 안에 면역유발물질이 주입되는 만큼 다양한 이상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백신 피접종자의 15~20%가 발적(빨갛게 부어오름)과 통증, 근육통, 발열, 메스꺼움 등을 겪는다. 대부분 하루 이틀 안에 사라지는 가벼운 증상이다. 일부에서는 두드러기, 혈관 부종, 호흡곤란, 현기증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주의할 것은 ‘아나필락시스’라고 불리는 급성과민반응이다. 

아나필락시스는 특정 식품 또는 약물에 의한 중증 알레르기 반응을 일컫는 용어다. 원인물질에 노출된 뒤 짧게는 몇 분, 길게는 수 시간 내에 발생한다. 이때 기관지 근육이 굳고, 혈압이 떨어지며, 뇌로 가는 혈류가 줄어드는 등 전신에서 여러 증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독감백신 접종으로 인한 아나필락시스 발생이 흔한 건 아니다. 질병청은 미국의 경우 100만 명 중 2명, 국내에서는 100만 명 중 0.65명꼴로 발생이 보고됐다고 밝혔다. 올해 방역당국에 접수된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 가운데서 아나필락시스가 의심되는 경우는 현재까지 1건이다. 

독감백신에서 아나필락시스를 유발할 수 있는 알레르기 물질로 첫손에 꼽히는 건 달걀 단백질이다. 국내에 유통되는 독감백신은 SK바이오사이언스 제품을 제외하면 모두 배양 과정에 유정란을 사용한다. 심한 달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독감백신 접종 전 의사와 상의하는 게 바람직하다.

2009년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한 60대, 길랭바레증후군 발생

독감백신 접종 후 발생할 수 있는 중증 이상반응으로 ‘길랭바레증후군’도 있다. 20세기 초 프랑스 의사 조르주 길랭과 알렉상드르 바레가 처음 진단한 이 신경질환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환자 체내 신경세포에 염증이 생기면서 전신으로 마비 증상이 퍼지다 심할 경우 사망하는 게 확인됐을 뿐이다. 1976년 미국에서는 독감백신 접종자 가운데 최소 30명이 길랭바레 증후군으로 사망했다. 한국에서 독감백신 접종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확인된 60대 여성 또한 예방주사를 맞고 사흘 뒤부터 팔다리의 근력이 떨어졌고, 이후 눈과 얼굴이 마비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됐다. 당시 진단명은 ‘밀러피셔증후군’인데, 길랭바레증후군의 한 종류다. 

눈여겨볼 것은 이 여성이 마비 증상 발생 후 곧바로 죽음에 이른 것이 아니며, 직접적 사인은 치료과정에서 발생한 폐렴이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길랭바레증후군으로 인한 사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만큼, 현재 사망 사례가 길랭바레증후군으로 인한 것은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 단, 독감백신으로 인해 길랭바레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접종 후 근력 저하나 마비증상을 느낄 경우 즉시 의료기관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접종 전후 컨디션 관리 필수, “불안하면 잠시 기다렸다 접종해도 괜찮다”

아직 독감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만큼 고령자, 기저질환자, 임신부 등 고위험군은 독감백신을 맞는 게 좋다”고 입을 모은다. 이때 컨디션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예방접종 후 적어도 30분은 의료기관에 머물며 안정을 취하고, 이후 최소 24시간 동안은 과도한 활동을 삼가며, 접종 후 2~3일 간은 몸 상태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정기석 한림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기본적으로는 독감백신을 맞지 않는 것보다 맞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망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고, 질병청에서 사망과 독감백신 접종 사이의 연관성을 조사하고 있는 만큼,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동안 상황을 지켜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신동아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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